알라딘에 마지막 글을 쓴 지도 이미 한 달이 넘게 흘렀다. 회사일과 개인적인 일로 바빴다고 변명하고 싶기는 하지만, 너무 궁색한 듯하여 그냥 넘어가련다. (사실 그간 두 번 정도 글 쓸 시도를 해 보았지만, 글 쓰기 시작한 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아 다른 일들이 나의 영혼을 앗아가는 바람에 글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아직도 못 다 쓴 '임시 저장 글' 하나가 있다.) 하긴, 일 년 넘게 공백을 가지곤 했던 나로서 한 달이 뭐가 대순가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일일 방문자 통계가 '0'이 아닌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한 달이 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서재 방문객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같다.
21세기형 천동설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느낀 대로 말하자면, 나의 공백은 내 환경의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이를테면, 내 경우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3박4일짜리 짧은 휴가를 갔다 온 것 뿐인데도 회사 식당의 인테리어가 홀랑 바뀌어 있다던지, 자주 지나던 길을 2,3주 안 간 사이에 공사로 온통 파헤쳐져서 덕지덕지 누더기같은 우회로로 변해 있다던지 하는 일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엄습하고 있다. 나와 서로간에 왕래가 잦은 편이던 두 분의 서재가 폐쇄와 다름없는 상태로 변해 있는 것.
자발적 블로그 폐쇄는 '자살'이라 할 만하다. 싸이버상으로만 그 분들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 분들의 블로그 폐쇄는 곧, 그 분들을 다시 볼 수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알라딘 서재'라는 공간에서 물러나기, 그것은 '이승'이라는 공간에서 물러나려는 시도인 자살과 본질적으로 동등한 것이다. 자살을 하더라도, 그 주체는 어딘가 다른 공간에서 연속성을 이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블로그를 폐쇄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어딘가 다른 공간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중요하고도 슬픈 사실은, 그 믿음과 상관없이 나는 그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 초간단 싸이버 레퀴엠을 중얼거려본다. 즐~~~ ('즐'에 대한 초딩어 사전 1번 뜻으로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이 경우에는 특히 '즐' 뒤의 지렁이 세마리를 주목해야 한다. 점 세 개로 구성된 말줄임표<...>가 모든 말을 함축하는 역할을 수행하듯, 이는 모든 행위를 함축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경우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허무주의다. '인생 뭐 있어?' 또는, '블로그 뭐 있어?' 라며 입꼬리를 실룩대며 냉소적으로 중얼거리기... 결국 이런 태도로 변하곤 한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그러므로 너무 몰두하지 말자, 그냥 되는 대로 즐기자..." 위의 대상이 '인생'이라면, 나는 대체로 반대하는 쪽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블로그(또는 인터넷, 옛날을 기억하는 이라면 PC통신, 등 싸이버 상의 모든 활동)'라면, 나의 의견은 대체로 찬성하는 쪽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싸이버 상에서는 여러 번 죽을 수 있다." 몰두하다가 허무하다 느끼면 죽어버려라, 그리고 다른 어딘가에서 부활하라!
그리고 이런 태도로 인해 역설적으로 가장 궁극의 슬픔이 솟아난다. 그 어디에도 닻을 내릴 수 없는 '플라잉 더치맨'호의 선원들이 가질 만한, 텅 빈 안구가 주는 깊은 상실감. 죽을 수 없는 고단한 싸이버 상의 삶에 대한 회의.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날아 가버린 망자들을 향한, 옅을수록 더 애수에 찬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