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라캉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라캉과 지젝의 조합은 언제나 이렇듯 전복적 쾌감을 주는 것일까? 최소한 알라딘 내에서는 'How to Read' 시리즈 중 가장 많이 판매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수백 킬로미터의 속도감과 중력에 반할 때의 현기증으로, 매 페이지마다 한 번씩 뒤집히는 롤러코스터같다. 라캉과 지젝을 본격적으로 읽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므로, 정신분석학적 놀이공원같은 이 책의 성격이 라캉과 지젝 중 누구에게서 주로 기인한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간혹 메스컴에서 눈에 띄는 그의 책에 대한 리뷰와 가장 유명한 알라디너 중 한 분인 로쟈님의 열정적인 소개에 힘입어, 그 성격 중 많은 부분이 지젝에게서 왔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추측을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매 장 처음에 등장하는 라캉의 원전과 그 외 부분의 비교이다. 지젝의 글이 르네 마그리트의 투명하고 명료한 초현실주의적 아이러니의 연속이라면, 라캉의 글은 무의미한 잉크 흘림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잭슨 폴록의 추상화와 같다. 지젝의 글은 건빵처럼 텁텁한 라캉을 청량감 넘치는 복숭아향으로 전환하여 즉자적으로 뇌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힘이 있다. 많은 지적 독자가 반할 만한 현대적 덕목. 말하자면 이 책은 지젝이 현대 인문/사회학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파퓰러한 위치를 보여주는 스냅샷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의외의 곳에 숨어 있다. 바로 역자 후기. 수십 번 전복되다시피하는 위기를 넘기고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의 사파리 짚차를, 역자는 측면에서 코뿔소처럼 강하게 들이받아 끝내 뒤집어 버리고 만다. 후기에서 한참을 라캉과 지젝에 대해 비판적으로 써내려 간 역자는, 마침내 "리비도적 충동으로서의 욕망! 한 번 더 '프로이트로의 복귀'가 필요하다."고 라캉 없는 프로이트를 구호처럼 부르짖기에 이른다. 어째서 역자는 자신이 공들여 번역한 책의 주제를 완전히 뒤엎는 후기를 쓴 것일까? 아니, 어째서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한 것일까? 수유+너머의 '안티-오이디푸스' 강의에서 역자가 라캉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잠깐 비췄던 것이 떠오른다. 그 때 그는 라캉을 '보수주의자'로 규정했었다. 또한 지젝에 대한 비판도 떠오른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지젝을 '한 때의 유행'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 때 이미 지젝의 다른 책(<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을 번역했었고, 지젝에 대한 책(<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도 번역한 바 있지만, '어떻게 지젝을 번역한 사람이 지젝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느냐?'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또, 그는 지젝을, 그리고 라캉을 번역했다. 이는 "환상적 악몽의 공포를 회피하는 방법으로서 이행", "깨어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우리를 지배하는 환상의 주문에서 깨어나기"를 몸소 보여준 것인가?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끔찍스러운 성적 환상의 악몽에서 깨어난 톰과 니콜이 '섹스'라는 해법을 제시한 것처럼, 역자도 라캉과 지젝의 환상에서 깨어나기 위하여 '전복적 후기'라는 이행을 감행한 것인가?

결국 이 책은 두 메시지가 기묘하게 공존한다. 'How to Read 라캉'과 'Don't Read 라캉'. 더 기묘한 것은, 역자의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람도, 지젝이나 라캉의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람도, 모두 이 책을 흥미로워하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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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09-18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책 찜해놨는데,,요즘 읽을게 넘 많아서
곁눈질도 못주고 있어요.
님의 리뷰로 읽고 싶어졌어욥!!!ㅎㅎ

전자인간 2007-09-18 18:27   좋아요 0 | URL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라캉 원전 대목에서 조금 막히기는 합니다만... :)
라캉, 지젝과 함께 좋은 시간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