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두 편의 한국영화는 모두 일상적이지 않은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보인다. 정신질환자들간의 사랑은 고사하고 평상시에 정신질환자 자체를 구경하기 힘들고, 비롯 의붓관계이기는 해도 오누이간의 사랑은 패륜적인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랑들이 그리 흔하지 않은 종류의 것이기는 해도,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양상을 띤다. 하나는 극도로 외향적이고 자유분방한 형태, 또 하나는 가슴뚜껑 안에서 조용히 보글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형태다. 전자는 라디오의 청취자 사연에 소개돼도 좋을만큼 알콩달콩한 추억을 동반하는 '성공한 사랑', 후자는 로미오와 줄리엣류의 맺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실패한 사랑'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기대주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라는 의미 때문에 상당한 기대를 품고 봤던 이 영화들은 그러나 그리 특별하지는 않았다. <싸이보그...>는 <복수 삼부작>으로 익숙해질만큼 익숙해진 박찬욱 감독의 경쾌한 영화화법이 조금 덜 참신하고 덜 야심찬 영화적 공간안에서 반복되고 있었고, <천년학>은 노거장의 한층 더 깊어진 관조적 시선만이 한 곳에서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듯, 노인의 무기력함이 지배적이다. <복수 삼부작>과 <취화선>의 맹렬한 공격적 아름다움이 수그러든 것이 아쉽다. <싸이보그...>는 박찬욱 감독의 희망과는 달리 '베토벤 8번 교향곡'의 포스 넘치는 즐거운 소품과는 약간 거리가 있고, <천년학>은 100번째 영화라기보다는 100살짜리 영화의 느낌이다.
그래도 이 영화들의 의미를 찾아 보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싸이코'들의 사랑도, 의붓 오누이의 사랑도, 성공한 사랑도, 실패한 사랑도, 모두 우리네 인생의 핵심이다. 자유분방한 정신분열적 사랑이 웃음가득한 충만을, 자폐적인 의붓 오누이의 사랑이 고독한 달콤씁쓸함을 경험하게 해 주는데, 바로 그러한 경험들이 인생의 가장 뜨거운 '엑기스'라고, 그러므로 '싸이코지만, 그리고 천년학이지만 괜찮아, 왜냐하면 사랑이 함께하니까'라고 이 두 영화는 나에게 소곤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