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 읽어봐야지 하며 생각했었는데 친구집 책장에 얌전히 꽂혀 있는 책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친구와의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책을 빌려 달라는 말을 불쑥 해 버렸다. 참 염치없게 말이다. 본인은 책 빌려주는 것을 겁나게 싫어라 하면서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손에 들어온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책은 5년전에 쓰여졌지만, 지극히 현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모범적인 삶을 살던 40대 의사 영빈의 외도, 중산층에서 시집온 송씨 재벌가 의 맏며느리, 40대 여성 현금의 농담 같은 삶, 시어머니와 딸만 가진 며느리의 갈등, 아들을 얻기 위한 아내의 노력.... 이봐라.  드라마(특히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침 드라마)에 한번정도는 소재로 등장했을 법한 것들이다. 그러나 책은 무늬만 재벌가인 그들의 모습을 미화시키지 않았다. 장남의 죽음을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겨울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40대 후반의 위태로운 평화로움도 돋보기로 보듯 분명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단순히 돈에 쩔쩔매는 모습이나 흔히 있을 법한 40대 중반의 권태로움을 보여주려고 했을까. 그것만은 아닐것이다.

죽음. 자신의 죽음이 아닌 타인 즉 가까운 이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자신에 관한 것이지 "가까운 이"의 그것에 대해서는 준비를 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누가 내가 사랑하는 부모.형제.자식의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한단 말인가. 그러기에 막상 그런 상황에 놓여지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죽음을 알리고 준비할 시간을 줄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비밀로 하고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것인가. 상식적으로는 전자이다. 영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도 녹록하지도 않다는 듯이 송씨일가의 짓거리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치킨집의 박사장을 통해서 다시 한번 씁쓸한 맛을 느끼게 한다. 돈이라는 몹쓸 것은 죽음이라는 성스러움 앞에서도 요염한 자태로 사람들을 현혹 시킨다.

박완서라는 작가가 특별한 것은 드라마처럼 재미를 주면서도 그런 평평함 속에 그냥 스치고 지나 갈 수 없도록 중간중간 못을 박아 둔다는 것이다. 한번은 그 못에 걸려 뒤 돌아 보고 조심스럽게 뒷걸음쳐 그 상처부위를 바라보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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