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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의 몰락 - 기업의 문화 지배와 교양 문화의 종말
모리스 버만 지음, 심현식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버만이 말하는 '미국 문화의 몰락'은 일단 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미국에 국한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첫째, 문화란 것은 그 사회의 물질적 기반에 토대를 두고 있는 정신적인 차원인데,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의 물질적 기반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본주의는 오늘날의 세계를 거의 하나로 묶고 있는 유일한 단일 메커니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버만의 '미국 문화의 몰락'은 자본주의 생산체계의 한계와 모순입니다. 그 속에서 생산되는 자본주의적 주체들과 그들의 자본주의적 일상 영역은 문화란 것 역시 자본주의화 합니다. 가치와 질적인 다양성을 본질로 하고 있는 '문화'는 여기서 필연적으로 몰락하게 되죠.
버만은 '사회적 불평등, 사회보장제도의 점진적인 붕괴, 지적 능력의 상실, 정신적 죽음 등이 미국 문명의 몰락의 4가지 원인이라는 것을 실제로 증명하기는 어렵다'(89쪽)며 엄살을 피워대지만, 제가 논증한 것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한계로 보면 쉽게 증명이 됩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실증적 연구가 있었구요. 다만, 저자인 버만은 자신의 전공영역 탓인지 '문화' 자체를 실재론적 입장에서 파악하다보니 증명하기 어렵게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와 같은 '문화유물론'의 입장에서 사회의 물질적 차원으로 문화적 영역이 환원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저자인 버만의 입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앞에서 논증했던 것 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학자들이 문화를 실재론적인 입장에서 이해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 결론은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지금까지 '미국 문화의 몰락'이 '자본주의 생산체계의 한계와 모순'의 표피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저자가 말하는 '수도사적 해법'에 대해서 언급해 봅시다. 사실 버만이 말하는 수도사적 해법의 타당성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단은 중세 수도사와 12세기 문화 부흥에 대해서 깊은 지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대안 자체가 허술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자가 말하는 수도사적 해법이라는 것은 다소 두리뭉실하지만, 그 요지는 볼테르 식의 건전한 회의주의와 개인의 창의성 발휘, 전통적인 기술, 남에 대한 배려, 학문의 정통성 보존, 계몽주의 지적 전통,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투쟁, 개인적 성취 및 독립적 사고 등입니다(208-209쪽). 즉, 소비주의 문화를 벗어나서, '나름대로의 바람직한 생활방식을 '수도원'으로 삼아 전통적인 좋은 문화유산을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보존'(209쪽)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말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듯한 말 아닙니까? 더욱이 이런 그의 주장이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의 '노마돌로지(nomadology)'를 언급하는 것에로까지 이어져 있다니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은 매우 길기 때문에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요점은 저자 버만은 보드리야르를 언급하는 정도에서 '노마돌로지' 개념을 이해했다는 점입니다. 두 철학자를 아시는 분이라면 이 개념이 얼마나 자주 곡해되어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유목주의가 아닙니다. 버만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그들의 이 개념을 빌려온 것 같은데, 사실 노마돌로지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반-자본주의적 논지를 충실하게 이해한 다음에서야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탈주선', '리좀', '노마드' 개념은 버만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의 뒷부분에서는 참 많이 실망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제가 모리스 버만의 '미국 문화의 몰락'을 읽은 후의 감상은 한 순간의 번뜩임은 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이상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제[역사결정론, 문화적 실재론]가 불합리하며, 논리전개[자본주의 생산체제를 보지 못하고 '미국'과 '문화'라는 국지적 영역의 징후만을 언급함]가 엉성하고, 결론[제기된 문제에 대한 어떤 정당성이나 효과도 가지지 못하는 수도사적 해법]이 황당합니다. 어떻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