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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 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한 번은 읽게 되는 어린왕자. 저 역시 통과의례처럼 그 책을 읽었습니다. 학창 시절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어릴 적인지, 혹은 사춘기 무렵인지. 대부분의 靑春은 '어린왕자'를 그 시절의 책갈피처럼 기억 속에 끼워넣고 있었더랬죠. 단풍잎과 같은 것들을 감명 깊게 읽은 책 사이에 끼워두던 취향처럼, '어린왕자'도 그 학창시절 어느 틈새에 끼워져 있는 책갈피와 같은 것이었죠. 그러나 그땐 이 책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아름다웠던 시절은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그 가치를 깨닫듯이, '어린왕자'도 그 소중함을 당시엔 잘 몰랐었죠. 십여년이 지난 후, '어린왕자'를 다시 읽으면서 그 투명한 존재의 의미가 바로 나의 청춘의 의미였음을 이제서야 통찰해낸 것처럼요. 그러나, 또 그렇겠죠. 시간이 더 흘러 내가 40대가 되고, 50대가 되면, 바로 지금의 20대가 또 그땐 투명하디 투명한 '어린왕자'의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겠죠. 다시 읽은 '어린왕자'가 그래서 새삼 눈물겹네요.
어릴 때엔 이 책의 삽화와 보아뱀이나 여우,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에게 흥미를 느꼈었습니다. 그렇게 집과 가족 바깥의 세상을 배웠던거죠. 그러나, 지금 다시 보니 '어린왕자'의 함의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숨겨진 의미는 제일 마지막 장면, 즉, '나'가 어린왕자가 사라진 사막을 다시 한 번 더 보여주는 장면에 있습니다. '나'는 거기서 이렇게 말하죠. '내게 이 그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슬픈 풍경이랍니다. [...] 어린 왕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진 곳이 바로 여기에요.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하게 되면 이곳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이 풍경을 잘 보아두세요. 그리고 이곳을 지나게 되거든 서두르지 말고 그 별 아래서 잠시 기다려보세요. 만일 한 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오면, 그 애가 웃고 있고, 금발의 아이라면, 또 질문을 던져도 대답이 없으면, 그 애가 누구인지 여러분은 아시겠지요. 그러면 내게 친절을 베풀어주시길! 내가 이처럼 마냥 슬퍼하지 않도록 말예요. 그리고 내게 편지를 보내주세요. 그 아이가 다시 돌아왔노라고....' 여기서 그 아이는 바로 유년의 자기 자신입니다.
즉, '어린왕자'는 그의 직업처럼,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를 '야간비행'하던 생텍쥐페리가, 30대 즈음에 자신의 유년의 모습과 마주친 그 순간을 기록한 것이죠. 사막, 비행기, 수많은 별빛... 그 순간 아찔하게 자신의 幼年을 대면한 것이죠. 그렇게 어린 생텍쥐페리와 어른 생텍쥐페리가 시간을 초월해서 소통합니다. 사실 이 둘의 동일시에 대한 증거는 많죠.
예를 들어, 어린왕자가 왜 항상 빨간 머플러를 하고 나오는지 아나요? 빨간 머플러는 비행사의 상징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어린왕자'가 양을 그려 달라고 하면서 등장하던 장면도 어릴 때 화가를 꿈꿨던 생텍쥐페리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안타까움에 대한 회상이죠. 이제는 통 속의 양이나 보아뱀 속의 코끼리를 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죠.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유년을 '어린왕자'로 이입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유년의 자신이 어린 왕자가 되어 나타나고, 현재의 자신인 '비행사'와 영혼의 대화를 하는 것이 이 책 '어린왕자'인 것입니다. 유년의 꿈을 매개로 진지하게 자신의 영혼을 성찰하고, 잃어버린 꿈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보여준 메시지는 어른들에게 어릴 적의 자신과 다시 대면해보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과연 어릴 적의 꿈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 어릴적의 나, 즉 각자의 내면 속에 있는 '어린왕자'가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도 비행사가 사막을 횡단하면서 자신의 '어린 왕자'와 만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분명 그는 그 아름다운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의 유년을 만났겠죠. 저도 오늘 밤엔 저의 '어린왕자'와 다시 마주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더 이상 그 꿈들이 눈물로 변하기 전에, 자신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