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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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에도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 국제도서전에 갔었다.

커다란 배너에 "온다! 리쿠!" 라고 써 있었다.

일본 소설가 온다 리쿠씨가 온다며 써 놓은 글귀다.

특정 상황에서 모두가 머리 속에 떠오르지만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는 유머를 본 듯한 느낌.

재치있다기보다는 용감하다는 면에서 공감이 간다.

꽤나 인기있는 작가인 것은 알았지만, 싸인을 받으려는 줄이 싸인회 부스를 뱅뱅 두바퀴는 감겨 있다.

마치 밤의 피크닉의 두 주인공이 보행제를 하듯이...

난 그녀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싸게 파는 책이나 더 뒤적여 보고 있었다.

문득 플래쉬가 터지길래 뒤돌아 봤더니 부스에 난 틈새로 온다 리쿠 씨의 뒷통수가 보인다.

살짝 몸을 틀어보았더니 옆얼굴도 보인다.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잘 안나왔지만.... 내 사진기에는 온다 리쿠의 '직찍'이 들어있는 것이다.

더구나, 친구 녀석은 밤의 피크닉은 읽을만 하던데... 라고 했다.

게다가, 이제 팔 만큼 판 "밤의 피크닉"은 인터넷 서점에서 반값에 팔고 있었다.

주문 했고, 왔다. 리쿠.

 

일요일 내내 밤의 피크닉을 읽었다.

읽는 내내 조금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매력적인 두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해 낸 이야기이다.

보행제라는 행사를 통해 아무도 잘못하지 않은 일로부터 얽힌 감정의 실타래가 풀리고 화해가 이루어진다.

세상은 사실 그렇게 쿨하지 않고 질퍽거리는데.... 고등학생들의 생각과 시선은 마흔 넘은 아주머니 작가 마냥 성숙해 있고, 쿨하다.

트렌디 드라마같은 이 소설은 영화로도 나왔을 것이다. (아무렴... 검색해 보니 있다.)

 

같은 한자문화권이지만 일본의 한자어들은 그 쓰임새나 사용빈도가 한국과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미묘하게 낯선 경험을 전해 주는 것 같다.

그 작은 차이가 일본 소설이 의도하지 않는 채 갖게 된 일종의 경쟁력은 아닐까? 

 

예를 들면, 일본에 진출한 야구선수 이승엽의 경기를 일본 해설자의 해설을 생각해 보자.

(일본어를 하는 야구광이 자막까지 넣었다.)

 

" 이슨요프 선수의 이번 호무랑(홈런)은 이전의 어떤 것과는 다르네요. 마음으로부터의 기백을 담은 호무랑이랄까요?"

 

기백이라는 말은 한국어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많이 쓰는 모양이다.

우리는 잘 쓰지 않는 그 단어를 알고 있다. 그 말이 쓰이는 것이 달라 뭔가 신선하게 여겨지는 듯 하다.

이런 낯선 단어가 주는 경험은 글(특히 소설)을 읽는데 중요하다. 정확히 쓰인 낯선 단어에는 힘이 실린다.

하지만 한국소설에서는 좀체로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낯설만큼 어려운 한국어 단어는 이미 이질적이다.

반면 서양의 단어들은 그 차이가 너무 크다.

 

작지만 미묘한 쓰임새의 차이가 주는 낯선 즐거움. (정신물리학에서 말하는 JND(Just Noticeable Difference) ? :)

그렇지만 이러한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져들면 자칫 잘못된 번역체나 정확하지 못한 일본식 단어선택에 익숙해져 버릴 수도 있다.

(일본 소설을 탐독하며 자란 세대의 작가들의 소설이 나오면 검증가능할 것이다.)

 

월요일 밤에 정신이 제멋대로 피크닉을 다니고 있다.

이상 밑도 끝도 없는 독후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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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20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밤의 피크닉은 좋았어요. ㅋㅋ 그나저나 온다! 리쿠에 대한 생각 ㅋㅋㅋㅋㅋ 카피제작자의 용기에 박수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