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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07년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즐겁게 읽었던 책이었다. 내게 있어 2007년 올해의 책이라고나 할까?
더글러스 러미스라는 이름의 이 책의 작가는 1936년생으로 일본 오키나와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시다가 정년 퇴임 하셨다.
이 분은 대학교수 혹은 지식인의 역할을 가장 잘 하고 있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즈음에야 미디어나 기업에 '흡수고용'된 듯 한 지식인들이 많기도 한데, 이분은 대학교수의 고유한 권리인 건전한 상상을 하는 것에 매우 충실한 분이다. 요즈음의 대학교수들은 영어로 강의해야 하고, 제자들을 부지런히 취업시켜 자기가 속한 조직이 없어지지 않게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는 것 같던데... 지식인들은 이렇게 현실에 부역하면 상상력이 거세되고 만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학교수들은 합법적으로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이고, 학생들은 대학교에 가서 간판을 얻어오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 (꿈꾸는데 있어, 작가들은 좀더 자유롭고, 대학교수들은 조금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한다는 점의 차이가 있다.)
꿈과 현실, 혹은 이상과 현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 무게 중심이 너무나 현실로 쏠려있다. 안타깝다.
불과 20년전에 사람들은 1센티가 안되는 두께의 핸드폰을 개개인마다 들고다닐 것이라고 꿈이라도 꾸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러미스 교수는 이 책에서 경제성장 제로를 환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러미스 교수의 이야기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이야기 하며 외면할지도 모르지만 6장에서 말하고 있듯이 현실은 바뀐다.
"이면의 상식"은 "표면의 상식"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이 잘 바뀌지 않는 이유는 현실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예전에 맡은 일 중에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 툴을 소개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흔히 그렇듯이 사람들이 업무를 하는 습관(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사람들은 곧 팔짱을 끼고 입꼬리를 내리며, "내가 회사생활 10년동안 수없이 이런거 도입하려는거 봤는데....이거 절대 안돼"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컨설팅회사에 많은 돈을 주고 도입하려던 그 툴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고, 사람들은 "거 봐 내가 뭐랬어? 안하길 잘했지..." 하면서 팔짱을 풀고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절대 안돼" 라고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절대 안될지 맞추었을까? 과연 회사 경험 10년이 주는 혜안이었을까?
아니다. 그 툴이 적용되지 않은 실제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낀 팔짱과 내려간 입꼬리에 있었던 것이다.
검은색 색연필로 줄을 그으며 읽었던 이 책은 그 속이 속 썩이는 자식 둔 부모 속 마냥 새까맣다.
이 포스트에서는 가장 인상깊은 구절 중 하나였던 97~98페이지에 나오는 내용만 소개하려고 한다.
제로 성장을 환영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정책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구조, 곧 안전망 만들기를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 사람들은 지금 보다 적게 돈을 받더라도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자유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추세가 상식이 되어 있지만 그 전환이 잘 안된다.
그 이유는 바로 경쟁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인 두려움 때문이다. 사고 방식을 바꾸고 싶다가도 결국에는 어떻든 일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개인적인 선택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런 공포가 있다는 것은 사회의 안전구조가 약하기 때문이다. 경쟁사회라는 기본적으로 그런 구조이다. 즐겁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 혹은 계속한다기 보다는 목이 잘리면 나는 어떻게 되나, 직장에서 잘리면 가족은 어떻게 되나,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 하는 공포가 경쟁사회의 원동력이다. 공포가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공생사회라든가 상부상조의 사회를 실현하고, 그 어떤 이도 빠짐없이 서로 뒤를 돌보아주는 그런 진정한 의미의 안전이 보장된 사회라고 한다면, 그 두려움은 크게 줄고, 그런 두려움이 줄어든다면 건전한 제로 성장의 사회는 가능해 질 것이다. (97~98페이지 내용 요약)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은 정말 중요한 것으로 요즈음 나의 주요 관심사다.
언젠가 캐나다에 다녀온 내 친구가 희한하다는 듯이 말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더라." 고.....
사회적 안전망이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고, 사람들을 느슨하게 만든다고 비판하는 신자유주의는 오늘의 상식이지만, 내일의 상식은 아니길 바란다. 당연한 것들이 그렇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갈 때 느끼는 쾌감을 얻고 싶다면 가격도 저렴하여 이시대의 키워드인 "효율성"에 꼭 들어 맞는 이 책을 사서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