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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바우 나무에 새기는 사각의 시간 - 조각가 정상기의 글 이야기
정상기 지음 / 시디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환영합니다. 멀바우나무 조각공원에 오신 당신을....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간혹 하게된다. 멋드러지게 아름다운 그림, 눈부시도록 예쁜 풍경을 담아낸 사진, 기괴하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한 다양한 조각 작품들... 이런 예술품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야기를 품은 작품들, 우리에겐 별것 없어보이고 추상적인 모습이지만 예술가의 혼이 담긴,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들이 바로 '예술' 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수많은 예술품들, 예술가들... 그 중 '정상기'라는 한 조각가의 일상속으로 시선을 맡겨본다.
2010년 15년만에 자신의 개인전을 준비한다는 조각가 정상기. 이 책은 그런 그의 조각품들과 그가 틈틈히 써놓았던 그의 일상의 이야기들을, 조각품의 이야기를,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랑의 느낌이 있고, 기다림의 시간이 있고, 날짜 별로 쓰여진 간결한 일상이 있다. 조각가로서 자신의 혼을, 이야기를 담아낸 조각들과 함께, 책속에 쓰여진 짧은 시어들, 일상의 이야기들이 어는 따스한 봄날 조각공원을 걷듯 정겹고 편안한 분위기로 우리를 이끈다. 잠시 그 길에서 사랑과 기다림, 삶과 일상의 모습을 되뇌어 본다.
... 그대가 있음으로 나에게는 힘과 위안이 되어 가파른 언덕을 넘기 위해 발을 내디딥니다.
그대가 내딛는 걸음 앞, 뒤에는 내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대라는 또 다른 내가 있기에 그대가 있어 다행입니다.
- P. 36, [그대가 있어 다행입니다] 中에서 -

정상기는 조각가이자, 시인이며 신 이상주의자이다.
책을 펼치노라면 어디선가 망치소리와 나무 깎고 끌 치는 소리가 은은한 종소리처럼 들려올듯 하다. 조용히 앉아 나무를 깍는 조각가의 모습도 떠오른다. 책의 제목속에 나오는 멀바우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찾아보게 된다. 멀바우 나무는 강질목으로 오래도록 잘 썩지 않으며 충해에 무척이나 강한 나무라고 한다. <멀바우 나무에 새기는 사각의 시간>이라는 제목은 그래서인지 이 강한 나무처럼 사랑도, 자신의 삶도 그처럼 오래도록 변치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램이 담겨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한다.
그렇게 눈물이 흐른다. 그대가 보고파 눈물이 흐른다. 그대의 채취가 아직 나의 입가에 남아 있는데 그대가 곁에 없어 눈물이 흐른다. 사랑스런 꽃들이 내 눈물처럼 진다. 바위틈에서 자란 강한 생명력의 그 꽃들이 내 눈물처럼 진다. - P. 21, [애화] 中에서 -
세상은 어찌보면 참 불공평한지도 모른다. 조각가로서 자신의 생각과 상상을 표현하면서도 일상을, 사랑을, 다양한 이야기들을 글로써 표현할 수 있는 재능까지 저자는 모두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 자신이 말하듯 자신의 글을 돌아보면서 '굉장히 어설프지만 그때 그때의 상황에 충실했구나라는 생각에 혼자 웃어 본다'고 말하는 정상기 조각가. 이 글들을 쓰게해준 당시의 시간들에게 감사한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는 독자로서 책과 만남이 있는 이 시간에 감사하고 싶어진다.

글은 나의 또 다른 감성을 보여 줄 것이다.
책속에 담긴 100여편이 넘어보이는 그의 조각품들, 그 숫자를 넘어서는 사랑의, 삶의 이야기들... 봄이라는 계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멀바우 나무에 새기는 사각의 시간>은 잠시 '여유'라는 시간을 선물해준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바쁜 삶속에서 마주하고 지나치는 사물과 사람들을 우리는 무심히, 단순한 시간의 흐름속에 맡겨두고 있었다. 작은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그 속에서 찾아내고 창조해낸, 한 조각가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자신도 우리만의 시간속에 우리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꿈꿀 수 있는 시간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다시 태어나는 일이 생긴다면 그런 것들이 정해진다면 나의 바램은
나무로 태어나 다시금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P. 159, [내가 원하는 만큼 움직여줄까] 中에서 -
나무로 다시금 태어나고 싶다는 조각가. 앞서 언급했던 멀바우 나무가 가진 특성처럼 오래도록, 변치않고 한결같을 수 있는 사랑, 삶을 작가는 꿈꾸는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잠시 이름 모를 한적한 조각공원을 걷다 문득 문득 추억의 시간을 떠올리고, 작품들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또 우리의 이야기를 그 곳에 추억으로 남기듯, <멀바우 나무에 새기는 사각의 시간>은 우리에게 또 다른 추억과 이야기들을 선물해주고 있다. 편안한 맘으로, 따스한 손길로, 만지고 바라보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