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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잊혀진다는 것만큼 안타까운일이 없다. 그리고 잊혀진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한권의 책이 탄생하기 위해서 쏟아부어진 작가의 열정과 수고는 아무리 대중에 인기를 얻지 못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비평가들의 날 선 비판이 있더라도, 그리 쉽게 비난받고 묻혀 버리고 말아서는 안된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18년전 독자들을 찾아왔지만 고스란히 잊혀져 버렸던 한권의 책이 있다. <그리드즈비 스푸드베치>라는 생소한 제목의 이 책이 <쾅! 지구에서 7만광년>이란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되살아났다. 잊혀졌지만 잊혀지지 않았고, 잊혀졌지만 새롭게 태어난 이 작품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느낌과 기대로 다가올지... 이제 그 특별함 속으로 잠시 몸을 맡겨본다.
<한방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으로 극찬을 받았던 마크 해던이 새롭게 그려낸 환상 모험이 시작된다. 말썽 꾸러기 짐보와 찰리, 이 두 녀석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어느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주고받는 '..스푸드베치!..' 와 같은 이상한 외계어를 듣게 된 두 아이, 선생님들의 눈에서는 파란빛이 뿜어져 나오기도 하는데... 다소 소극적인 짐보와 달리 찰리는 그 비밀을 푸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급기야 비밀을 풀기위해 피어스 선생님의 집에 몰래 숨어들게 되고, 그곳에서 놋쇠 팔찌, 스코틀랜드 지도, 이상한 언어가 쓰여진 종이 한장을 발견한다. 찰리는 <스푸드베치!> 공책에 이 내용들을 기록하고... 이렇듯 선생님들의 비밀을 파헤쳐가던 어느날, 갑자기 찰리가 사라져버린다.
짐보는 누나에게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털어놓는다. 찰리의 아빠에게 부탁했던 종이의 암호는 스코틀랜드의 어느 호수를 가르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짐보의 집에 캡틴 치킨에서 만났던 이상한 남자가 찾아와 위협을 가하고, 누나의 애인인 크레이터페이스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한 짐보와 그의 누나는 찰리가 스카이 섬에 있는 코루이스크 호수로 갔을거라 추측하게 된다. 말썽꾸러기 짐보와 헤비메탈 소녀 베키는 비밀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찰리를 찾기 위해서 기나긴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그들앞에 벌어지는데....
모험은 가득했지만 꿈은 없었던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한 개인으로서 요즘 출간되는 작품들을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해보게 된다. 무한상상이 가능한 요즘의 아이들이 그래서 부러운지도 모를일이다. SF영화와 소설속에서 듣도 보도 못한 외계 생명체들과 문명, 괴물들이 넘쳐나고 고전속에 새로운 종족들, 문명들이 전혀 새로운 이야기들 들려주기도 한다. 이렇듯 거칠것 없는 무한 상상과 환상속 이야기들은 아이들에게 보다 넓은 세계를 만들어주고 더 커다란 꿈을 선물해준다. 그리고 그런 꿈은 모험이라는 이름과 함께 새로운 삶을, 세계를 열어갈 열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스푸드베치! 7만광년 너머에서 쾅!하고 떨어진 이 작품도 아이들의 꿈과 모험을 이어줄 즐거운 선물이 될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게 이루어지는 고무 빨판, 외계종족들의 위험하고 은밀한 비밀, 거대 원숭이 거미, 4차원 공간 이동, 은하 함선, 웨프 빔... 아이들의 모험을 자극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폭탄처럼 터져나온다. 일본 SF 작가인 츠츠이 야스타카, 쓰네카와 고타로...의 작품들을 보면서 느끼게되는 섬세하고 환상적인 모습의 세계는 아니지만, 쇼트쇼트의 작가 호시신이치처럼 조금은 가벼우면서도 아이들이 읽으면서 정말 빠져들수 있게 만드는 즐거움과 모험이 <쾅! 지구에서 7만광년>속에 있다. 읽는 내내 궁금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이 책속에 담겨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SF장르나 모험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가두어 한정 할 수 없을것 같다. 실직한 아버지, 다혈질의 엄마, 일탈을 꿈꾸는 누나, 말썽꾸러기 주인공이 등장하는 가족들... 환상적인 모험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자신의 자리와 위치를 찾아가는 가족들, 가족애의 모습을 발견하는 가슴 따뜻한 성장동화, 가족소설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것 같다. 평범한 일상이었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가족애와 우정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일깨우게 되는 아이들의 성장과 어른들의 변화가 이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하게된다.
작은 일에도 서로 다투기만 하던 짐보와 누나 베키, 하지만 그들은 위험속에서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형제애를 보여준다. 실직으로 고민하며 프라모델에 빠져있는 아빠는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며 새로운걸 배우고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라진 친구를 찾기위해 떠나는 짐보와 찰리의 우정, 가슴 따뜻해지는 가족애... 모험과 상상을 넘어 이런 사랑이란 테마가 이야기의 재미와 함께 감동을 전해준다.
7만 광년 너머의 외계행성, 외계인들에게 납치된 짐보와 찰리... 외계인들은 왜 지구를 넘보는 것이고 이들을 납치 했으며 그들로부터 말썽꾸러기 아이들은 지구를 지켜낼 수 있을지... [어린왕자]가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동화, 모험소설이 아닌것처럼, 마크 해던의 이 작품 또한 아이 어른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기고 느끼고 함께하는 그런 작품이 될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된다. 쉽게 잊혀졌던 작품을 넘어, 이제는 좀처럼 쉽게 잊혀 질 수 없는 작품이 되어버린 <쾅! 지구에서 7만광년>! 지금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간직하고픈, 소유하고픈 욕구를 가지게 만드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