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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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없는 방향성과 트릭을 담아내는 미스터리' 일년전쯤 만났던 [행방불명자] 읽고 그 작품을 그렀게 표현했었다. 그리고 그 제목속에 '오리하라 이치'라는 이름이 있었다. 여름이라는 계절, 미스터리의 계절 여름에 그의 이름을 다시금 만난다. 그와의 이번 만남을 준비하며 가진 다짐중 하나가 '이번엔 결코 속아 넘어갈 수 없다!' 였다. 그가 촘촘하게 쳐놓은 거미줄에 더이상 놀아날 수 없다는 다짐. 그런 다짐과 함께 국내에서 만나는, 행방불명자에 이은 오리하라 이치의 두번째 '者 시리즈' <원죄자>를 펼친다.

 

'오리하라 이치'를 일컬어 미스터리의 대부이자 '서술 트릭'의 달인?, 일인자 라고 부른다. 서술 트릭은 쉽게 말해 고의적으로 독자를 현혹시키고 독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수법이라 할 수 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일반적인 트릭이 다른 인물들을 통해 범인이 자신이 아니라는듯 속이는 수법이라면 서술 트릭은 작가 자신이 독자들을 향해 거짓말을 써내려간다. 어찌보면 작품을 지켜보는 3자적 입장의 독자로서는 불공평하기 그지 없는 형태인 것이다. 모든 정보가 등장인물과 독자에게 공평하게 제공 되어야하는 추리문학의 일반적 형태와는 조금은 다른 이런 특징때문에 독자들은 가끔 이런 불공평한 처사에 화가 나기도 한다.

 

어쨌든 오리하라 이치하면 떠오르는 서술 트릭, 이런 불공평에 현혹되지 않고 이번만큼은 속아넘어가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원죄자>를 시작한다. '원죄(寃罪)'라는 말처럼 이 소설은 억울한 누명을 쓴 무기징역수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사실 그가 주장하는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라는 것이 정말 '寃罪' 인지 '怨罪'(원한을 품고 저지른 악한 죄)' 인지는 책을 내려놓는 순간에서야 알게 되겠지만... 그렇게 원죄(寃罪)에 대한 이 이야기는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가라시 씨. 저를 기억하실는지요. 물론 잊을 리가 없겠지요. 저는 가와하라 데루오. 당신의 연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자입니다. 분명 당신은 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고 있겠지요. 먼저 일심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고, 지금 또 항소심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 P. 36 -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도쿄 주변에서 발생했던 연쇄 성폭행 살인사건의 범인인 가와하라 데루오. 그가 자신은 결백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논픽션 작가인 이가라시 도모야는 분노하게 된다. 그 또한 가와하라 데루오의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12년전 우연히 이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첫번째 사건의 목격자가 되었던 이가라시 도코야는 이 사건을 보도하게 되고 이후 미즈사와 마이라는 출판사 직원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마이는 연쇄 살인의 일곱번째 희생자가 되어버리고...

그런 그에게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했다는 가와하라 데루오의 주장은 어떻게 들렸을까.

 



 

'서술 트릭'의 일인자답게 오리하라 이치는 초반부터 치밀하고 섬세하게 사건을 그려내며 독자들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와하라 데루오가 쓴 기록들, 인터넷 홈페이지를 비롯한 자료들, 이메일, 신문과 편지 등 다양한 형태의 사건과 사건의 진실을 담아내려는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의 등장은 첫번째로 독자들을 어지럽게 만든다. 그 기록들은 사실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담기도 해서 어느것이 진실인지를 쫓고자하는 독자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한 자료로서 서술 트릭의 진수가 되어주고 있다.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한 가지는, 바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존재이다. 자신이 원죄자임을 주장하는 가와하라 데루오, 두번째 연쇄살인 사건의 희생자 아버지인 세토다, 옥중에서 가와하라의 아내가된 이쿠, 가와하라에게 허위 자백을 받아낸? 전직 형사 다카야마, 구명 단체 회장 사사오카... 좀처럼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캐릭터를 어떻다하고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이야기속에 빠져들다가도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함에 현혹되기도 한다. 역시 오리하라 이치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진실은 무엇인가? 자신이 억울한 원죄자라고 주장하는 무기징역수, 그리고 그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작가의 이야기. 치밀한 복선과 곳곳에 숨어있는 트릭, 그리고 마지막에 맞닥드리는 충격적인 진실. 어느것인 진실인지, 누가 옳은지 쉽게 단정지을 수 없이 작가의 펜 끝을 독자들은 한없이 뒤따라가기에 바쁘다. 쉽게 빠져들지만 쉽게 빠져 나올수 없는 마법, '오리하라 매직' 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해 줄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원죄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원죄자>는 묵직하게 다가오는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속에서 가볍게 웃음이 되어주는 재치도 담겨있다.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오리하라 이치의 수려한 필치가 매혹적이다. '이번엔 절대'를 외쳤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의 발 밑에 주저앉고 만다. 그의 전작인 [행방불명자]와는 분명 닮아 있지만 분명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사실 [행방불명자]를 읽고 그의 다른 작품인 [도착의 론도]를 읽어보고자 했지만 아직도 만나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하며 다시 한번 그와의 만남을 준비해본다. 그리고 앞으로 출간 예정이라는 [실종자], [도망자] 등 '者 시리즈'도 꼭 함께 하고 싶다. 오래도록 그의 매직에 빠져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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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구 -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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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이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딛었던 것이 아마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던것 같다. 워낙 축구를 조아라해서 항상 축구장에 살지만 야구 만큼은 예전 박찬호의 LA 다저스, 이승엽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정도가 좋아하는 팀이랄까?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잠실 야구장에서 두산과 삼성 경기를 관람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처음 찾아간 야구장, 생동감 넘치는 경기장의 분위기, 축구와는 또 다른 구단들의 다양한 마케팅, 그리고 지금은 前총리지만 그 당시 교수이면서 야구 해설도 종종 하던 정운찬 前총리와의 만남까지... 그 날 그곳에서 야구와의 만남은 개인적으로 색다르고 멋진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예상치도 못했던 전승 우승이라는 대기록에 '이게 야구구나!'하는 감탄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야구에 미칠 정도로 열정적이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축구와 야구, 왠지 라이벌이랄까? 아직까지는 공존하지 못 할 듯한 그런 묘한 분위기가 자리한다. 월드컵과 프로야구... 얼마전 끝난 남아공 월드컵기간에도 한 야구선수의 엉뚱한 발언이 축구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는데... 어쨌든 축구를 사랑하지만 야구도 싫어하지 않는, 요즘은 지바 롯데가 홈팀처럼 되어버린 팬으로서 <열구>라는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와 함께 한다.

 

도쿄에 사는 '요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스오로 내려오게 된다. 그의 아내는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그의 딸 '미나코'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고향에서 아버지를 모실지 다시 도쿄로 돌아갈지 고민하던 요지는 슈코 고교에서 함께 야구를 하던 '가게야마', 진노, '교코' 등 다른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20년전 잊을 수 없는 쓰라린 아픔 때문에 쉽게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리고 미나코는 학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되고... 과거의 안타깝기만한 쓰라린 기억, 현재에 간직된 그들의 문제들...요지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열구(熱球)'. '열정이 가득한 야구', '열정적인 야구'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까. 현재의 기억속에서 그들에게 야구란 좌절과 시련만 안겨준 안타깝기만한 기억일뿐이다. 20년전 야구에 대한 이 안타깝기만한 기억은 요지와 미나코 사이의 이어지는 대화속에서 그 때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고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시간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열구>는 야구라는 이 단순한 스포츠를 통해서 친구들간의 우정을, 가족간의 단절되었던 사랑을, 인생에 대한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20년만의 화해, 아빠와 딸의 소통, 인생에서 진정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열구>는 그 해답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20년전 열정적인 야구를 통해 하나가 되었던 이들, 하지만 이제 그 열정은 식어버리고 삶이 정해준 시간을 쳇바퀴 돌 듯 걸어나간다. 우리가 인생에서 놓치고 지나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소중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20년의 시간의 무게 속에서 그 답을 꺼내어든다.

 

'..당신은 우리에게 져도 가슴을 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지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소중한 경험인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지는 일뿐이었습니다. 계속 이기기만 하는 사람 따윈 필시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싸웠다, 잘 싸웠어."하고.. 그 목소리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으며 우리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그라운드에 서서 행복이라는 이름의 백구를.. 아니 열구를 쫓아디니고 있습니다..' - P. 252 -

 

청춘을 소위 불꽃처럼 화려한 시간이라고 부른다. 열정이 있고, 아픔과 고통이 있지만 그 속에 희망과 꿈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청춘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잊고 있던 추억들을 떠올리게 되고 어느샌가 잃어버렸던 열정과 정열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소설을 통해 되살아나는 청춘이란 시간의 감동을 다시금 느끼곤 한다. <열구> 또한 우리에게 그 시간들의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인생의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청춘이란 시간에 간직했던 열정을 추억하게 하고, 바쁜 현실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는 꽤 빠르게 전개된다. 화려하고 정열적이었던 시간들과 모든 것이 꼭꼭 막혀있는듯 답답한 현실이 대비되면서 이야기는 속도감을 내기 시작한다. 그리 두텁지 않은 페이지수도 그렇지만 이야기속에 빠져들어 너무 쉽게 책장이 넘어간다. 청룡기, 황금사자기 같은, 지금도 인기있지만 과거엔 더욱 치열하고 관심받았던 우리의 야구 이야기도 간혹 떠오른다. 야구장에서 느낄 수 있는 그 후끈한 열기, 터질듯한 열정이 <열구>가 담아낸 청춘의 시간속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시게마츠 기요시'는 현대 사회가 가진 여러가지 문제점들... 가족, 청소년, 학교, 사회...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소재로해서 아픔과 갈등을 예리하게 담아내는 작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 <열구> 만으로도 그에 대한 이런 수식들이 옳음을 확인 할 수 있을것 같다. 그렇게 책을 내려 놓을때쯤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감동의 메세지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추억속에 잠겨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플레이볼!' 상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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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원숭이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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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골든 슬럼버] 도 그랬다. 시간을 넘나들고 무심히 지나쳤던 이야기들속에 복선을 깔아놓으며, 마지막에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하는... '이사카 코타로' 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던 이 작품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드디어 영화를 통해 소개된다고 한다. 기발하고 정교하고 재치있는 이야기들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들은 이처럼 만화, 영화, TV드라마로 이어지며 작가 특유의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특유의 상상력을 소재로한 또 한편의 작품과 만난다.

 

<SOS 원숭이> 라는 독특한 제목으로 다시 우리는 찾아온 이사카 코타로. 이번에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풀어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제목에서부터 전해진다. 책속에는 두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엔도 지로와 이가라시 마코토. 책속에는 두가지 이야기가 번갈아 이어지는데, 하나는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엔도 지로와 다른 하나는 '원숭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가라시 마코토의 이야기이다. 엑소시스트라는 부업을 가진 지로는 어린 시절 동경하던 누나 헨미에게서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히키코모리가 된 아들 마사토를 도와 달라는 것이다.

 

한편 시스템회사 품질관리부에 근무하는 마코토는 회사로부터 오발주 사건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게된다. 평소 논리적이고 꼼꼼한 성격인 그는 오발주 사건의 숨겨진 원인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엔도 지로와 이가라시 마코토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 <SOS 원숭이>는 이처럼 아무 상관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야기속에서 결국 두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는 독특한 구성을 띄고 있다.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조금은 모호한 경계를 걷다보면 마지막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정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거나 나가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히키코모리'라고 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류의 유형들이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는데... 이처럼 이 작품속에서는 히키코모리와 같은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더불어 직장이나 가정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나는 사회적 폭력에 대해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문제들에 대한,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SOS(save our souls)' 를 우리가 어떻게 대처 해야하는지 넌지시 그 대답을 던져 놓고 있다.

 

'정당한 폭력도 있다는 말인가요?'

정말 정당한 폭력이 있을까? 히키코모리와 같은 왕따나 외톨이들을 양산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안전한지, 성폭력, 가정폭력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던져지는 암묵적 폭력들이 정당화 될 수 있는 우리 사회를 작가는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서유기'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에피소드들이 간간히 재미를 전해주고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들이 교차하면서 환상과 현실을 넘나든다.

 

'인간에게는 메시아 콤플렉스라는 게 있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집착인데, 그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약한 마음에서 생겨나는 거라고...'  - P. 393 -

 

세상에 상처받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사회에 대해서 SOS를 외치라고, 그 신호를 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먼저 따지고 주저할 것이 아니라 우선 따스하게 손을 내밀면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어느샌가 세상의 중심에 나란 존재는 없어지고 타인들의 모습만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나약해지고 고립되고 고독하다. 그런 이들에게 사회는 더욱더 냉정하고 폭력적으로 변해버린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먼저 깨닫고 사회에 손을 내밀때 우리 사회는 함께 소통이 가능한 그런 세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냐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독특한 제목에서 부터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에 초반 애를 먹기 시작했다. 아니 마지막까지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너무나 대조적인 두 주인공을 통해서, '서유기'라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는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 목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단 한번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다시 읽고 읽음으로써 작가가 담고자 하는 메세지와 그 속에 숨겨진 재치까지 함께 와닿지 않을까 싶다. 책을 내려놓을때까지 무한한 상상과 사회에 대한 메세지가 가득하다. 힘겨움에 몸서리치는 현대인들이 사회에 외치는 SOS, 그 소리를 들을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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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7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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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하면 수없이 많은 작가들의 이름들이 떠오른다. 본격, 사회파, 신본격 미스터리라는 추리소설속에서도 다양한 장르를 자랑하는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매력은 한번 빠져버리면 쉽게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니까. '일상 미스터리'라는 독특한 수식을 가진 추리소설 한 편과 마주하게 되었다.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이란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빌라 매그놀리아라는 곳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을 추리하고 풀어가는 구성을 지닌다. 다만 기존의 추리 미스터리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극단적이고 잔혹하기보다는 정말 일상에서 만날 수 있을것 같은 평범함과 유쾌함이 묻어있다.

 

'하자키葉崎'라는 가상의 해안도시, 사건은 시작된다.

바닷가 언덕위에 자리잡은 빌라 하자키 매그놀리아. 10채의 빌라는 3호실만을 제외하고 모두가 입주해 있는 상황이다. 그러던 어느날 3호실에서 신원을 알 수 없을 만큼 손상된 시체가 발견된다. 사건 당일에는 태풍때문에 외부인의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 완벽한 밀실살인, 형사 반장인 고마지 도키히사와 신참 히토쓰바시 하쓰미는 이 의문의 살인사건을 조심스럽고 철저하게 조사하기에 이른다. 빌라 매그놀리아의 거주하는 모든 이들에 대해서 탐문수사를 펼치는 고마지 반장과 히토쓰바시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빌라 매그놀리아에 사는 모두가 용의자다. 고마지 반장의 탐문 수사속에서 빌라 매그놀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들이 속속 들어나기 시작한다. 고다마부동산 사장 부부를 시작으로 해서 중고차 판매상인 이노 와타루 그의 아내 이노 게이코, 마쓰무라 켄과 그의 아내 마쓰무라 아케미, 학원강사 다쿠야... 등 빌라 매그놀리아에 거주하는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두가 범인인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책을 내려놓을 때까지 좀처럼 그 해답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모두가 용의자이기도 하고 모두가 탐정이기도 하다. '밀실 살인' 이란 미스터리 추리 소설속에 빼놓을 수 없는 공식을 던져 놓고서는 범인을 찾는데 있어 모두가 범인이 될 가능성을 열어 놓는 '트릭'을 선보이고, 또 그들 나름의 색다른 추리가 어우러진다. 살인사건이라는 무거움보다 빌라 매그놀리아에 사는 이들은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보는듯 유쾌하고 즐겁다. 정말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다양한 성격과 스캔들이 그려진다. 그 유혹속에서 독자들은 쉽사리 범인의 윤곽을 잡아내기 어렵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을 통해 작가는 여지없이 독자들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빌라 매그놀리아의 약도와 등장인물 소개는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빌라 매그놀리아의 구조를 알게 함으로써 이야기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정말이지 셀수도 없이 많은 등장인물에 대한 짧은 소개는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소설속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주고 있다. 사실 국내 소설속에서도 등장인물들이 많을 경우 책에 몰입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외국작품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다행히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복잡하고 어수선하지는 않다. 더구나 그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개성있기에...

 

무겁지 않은 즐거움이 있고, 유쾌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들, 곳곳에 자리한 트릭과 마지막 반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이 특별한 이 시간과의 만남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는 '일상 미스터리의 여왕'이란 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는 모두 3부작이라고 하는데 그 첫번째 작품인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과의 만남은 이어질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있다.

 

평범함을 삼켜버린 특별한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는 평범함을 평범함에 머무리게 하지 않고 독특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작가다. 일상속 사건을 다루면서도 유쾌하고 쾌활하게 풀어나가는 미스터리를 보통 '코지 미스터리' 라고 하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이 작품 또한 코지 미스터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일상을 일상적이지 않게, 평범함을 넘어서 독특함으로, 잔인함을 유쾌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펜끝이 너무나 맛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면면이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밀실살인'이라는 전통적인 공식을 채용하면서도 과장스럽거나 잔인하지 않고 시종일관 유쾌하고 맛있게 이야기가 이어진다. 스릴 넘치는 추리, 형사 콤비의 맹활약, 곳곳에 숨어있는 트릭과 예기치 못한 반전. <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은 조금은 가벼우면서도 놓쳐버릴 수 없는 색다름이 가득한 작품이다. 다음주쯤 이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를 만날 계획이다. 그렇게 와카타케 나나미의 매력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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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쑤퉁 지음, 김재영 옮김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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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덕만!' 많은 이들이 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TV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기억할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겠지만... 2009년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어릴 적 이름이 바로 덕만이다.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후일 삼국통일 이라는 대업의 초석들 다진 왕으로 평가받는 선덕여왕의 이름이 <측천무후>를 펼쳐든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다. 중국 유일의 여성 황제, 하찮은 후궁에서 대륙을 호령하는 강철의 여인이 된 무측천의 일대기. 그녀와 그녀는 왠지 닮아 있는듯 보인다.

 

'만일 누군가가 정관 15년 궁녀 명부를 찾아낸다면, 궁정화가가 그린 재인 무조의 초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넓은 이마에 각진 턱, 가느다란 눈썹 밑에 봉황의 그것처럼 작은 눈을 가진 한 소녀의 모습을 말이다. 궁에 갓 들어온 여느 소녀들과는 달리 웃음기 한 점 없는 그녀의 얼굴에는 절반의 오만이 나머지 절반의 우수를 가려주고 있으리라.' - P. 10 -

 

똑똑하고 약간 거만하며 호기심 많은 열네살 소녀 '미랑'. 측천무후의 어린 시절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 태종의 후궁으로 황궁에 들어온 이 작은 소녀는 그다지 주목받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듯 하다. 하지만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던 그녀의 권력에 대한 야욕은 조금씩 조금씩 그 불씨를 지펴대고 있었다. 태종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출가(出家)를 하게 되지만 고종과의 연으로 재입궁하기에 이른다. 이때쯤 그녀의 외모는 괄목성장을 한 것일까? ^^ 어찌됐건 그녀의 욕망은 그때부터 그렇게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렇게 황후와 다른 후궁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황후(皇后)가 된다.

 

앞서 드라마 선덕여왕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사실, 무측천의 경우 최초라는 수식어가 닮아 있는 선덕여왕 보다 '미실'에 더 가까운 인물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처음 미실이 진정 꿈꾸고자 했던 것은 '왕후'가 되는 것이었지만, 선덕여왕의 말을 통해 불가능하게 생각됐던 '왕'이란 자리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여인 미실. 하지만 무측천은 미실이 그토록 원하던 그 꿈을 이루고야 만다. 고종의 후궁에서 황후로, 고종이 죽고 그녀는 섭정(攝政)하게 되고 그의 아들들이 줄줄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권력에 대한 욕망은 그 끝을 알 수 없었으니...

 



중국 문단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쑤퉁'의 이 소설은 역사의 시간을 거슬러 중국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를 시간들속에 되살려 내고 있다. 궁녀에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쫓다보면 어느새 역사의 시간 한편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쉽게 꿈꾸기도 어려운, 궁녀에서 황제로 이어지는 그녀의 삶속에서 그려지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희노애락이 역사의 시간을 타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자신의 아들과 딸까지 권력을 위해 무참히 버려야 했던 욕망의 화신, 무측천. 순수한 소녀에서 야심으로 가득찬 여인과 황제,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두고 다시 돌아온 여인의 모습까지... 측천무후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가의 손길이 유연하다.

 

'또 비가 오는구나. 열네 살 때, 내가 궁에 들어오던 날도 꼭 이렇게 비가 내렸지...' - P. 326

 

중국 최초의 여성 혁명가!

권력의 야욕앞에서 냉철하기 그지없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측천. 작가 쑤퉁은 이런 야심가이자 여성 혁명가인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문체속에 써내려간다. 권력을 꿈꾼 강철 여인의 모습속에 감춰진 여인으로서의 삶, 우리는 그녀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마지막 순간 열네 살 어린 소녀였던 미랑을 떠올리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숨막힐듯한 역사의 시간 속에 놓여진 한 강철 여황제 무측천,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의 현실속에도 측천무후와 같은 이런 권력에 대한 야욕?들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현정부내에서도 노란 완장?을 찬 장관들의 끝을 모르는 야욕이 바로 그것이다. 한창 개각이 단행되고 있지만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고 기대해도 좋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고문과 죽음을 선사했던 측천무후, 현실속 우리의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측천무후의 모습이 오버랩되는건 나 혼자 뿐일까. '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인지 그녀를 통해서, 아니 우리 현실을 통해서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측천무후! 그녀의 일대기속에서 나타나는 주요 키워드는 권력, 욕망, 고독 등 조금은 어둡고 부정적인 모습들이 대부분이지만 단순히 그녀의 삶을 그런 단어들로 마무리 할 수는 없을것이다. 측천무후가 통치하던 시기를 사람들은 당태종이 통치하던 '정관(貞觀)의 치(治)'에 버금간다고 하여 '무주(武周)의 치(治)'라 불린다고 한다. 그만큼 그녀기 이룩해놓은 업적이 대단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그리고 황제로 거듭난 그녀의 발걸음이 무거움속에 가볍다. 오랫만에 만난 중국역사 소설이 여름밤의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미스터리 추리만큼 색다른 재미를 전해주는 역사의 시간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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