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성과 트릭을 담아내는 미스터리' 일년전쯤 만났던 [행방불명자] 읽고 그 작품을 그렀게 표현했었다. 그리고 그 제목속에 '오리하라 이치'라는 이름이 있었다. 여름이라는 계절, 미스터리의 계절 여름에 그의 이름을 다시금 만난다. 그와의 이번 만남을 준비하며 가진 다짐중 하나가 '이번엔 결코 속아 넘어갈 수 없다!' 였다. 그가 촘촘하게 쳐놓은 거미줄에 더이상 놀아날 수 없다는 다짐. 그런 다짐과 함께 국내에서 만나는, 행방불명자에 이은 오리하라 이치의 두번째 '者 시리즈' <원죄자>를 펼친다.

 

'오리하라 이치'를 일컬어 미스터리의 대부이자 '서술 트릭'의 달인?, 일인자 라고 부른다. 서술 트릭은 쉽게 말해 고의적으로 독자를 현혹시키고 독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수법이라 할 수 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일반적인 트릭이 다른 인물들을 통해 범인이 자신이 아니라는듯 속이는 수법이라면 서술 트릭은 작가 자신이 독자들을 향해 거짓말을 써내려간다. 어찌보면 작품을 지켜보는 3자적 입장의 독자로서는 불공평하기 그지 없는 형태인 것이다. 모든 정보가 등장인물과 독자에게 공평하게 제공 되어야하는 추리문학의 일반적 형태와는 조금은 다른 이런 특징때문에 독자들은 가끔 이런 불공평한 처사에 화가 나기도 한다.

 

어쨌든 오리하라 이치하면 떠오르는 서술 트릭, 이런 불공평에 현혹되지 않고 이번만큼은 속아넘어가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원죄자>를 시작한다. '원죄(寃罪)'라는 말처럼 이 소설은 억울한 누명을 쓴 무기징역수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사실 그가 주장하는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라는 것이 정말 '寃罪' 인지 '怨罪'(원한을 품고 저지른 악한 죄)' 인지는 책을 내려놓는 순간에서야 알게 되겠지만... 그렇게 원죄(寃罪)에 대한 이 이야기는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가라시 씨. 저를 기억하실는지요. 물론 잊을 리가 없겠지요. 저는 가와하라 데루오. 당신의 연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자입니다. 분명 당신은 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고 있겠지요. 먼저 일심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고, 지금 또 항소심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 P. 36 -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도쿄 주변에서 발생했던 연쇄 성폭행 살인사건의 범인인 가와하라 데루오. 그가 자신은 결백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논픽션 작가인 이가라시 도모야는 분노하게 된다. 그 또한 가와하라 데루오의 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12년전 우연히 이 연쇄살인범이 저지른 첫번째 사건의 목격자가 되었던 이가라시 도코야는 이 사건을 보도하게 되고 이후 미즈사와 마이라는 출판사 직원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마이는 연쇄 살인의 일곱번째 희생자가 되어버리고...

그런 그에게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했다는 가와하라 데루오의 주장은 어떻게 들렸을까.

 



 

'서술 트릭'의 일인자답게 오리하라 이치는 초반부터 치밀하고 섬세하게 사건을 그려내며 독자들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가와하라 데루오가 쓴 기록들, 인터넷 홈페이지를 비롯한 자료들, 이메일, 신문과 편지 등 다양한 형태의 사건과 사건의 진실을 담아내려는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의 등장은 첫번째로 독자들을 어지럽게 만든다. 그 기록들은 사실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도 하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담기도 해서 어느것이 진실인지를 쫓고자하는 독자들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한 자료로서 서술 트릭의 진수가 되어주고 있다.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한 가지는, 바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존재이다. 자신이 원죄자임을 주장하는 가와하라 데루오, 두번째 연쇄살인 사건의 희생자 아버지인 세토다, 옥중에서 가와하라의 아내가된 이쿠, 가와하라에게 허위 자백을 받아낸? 전직 형사 다카야마, 구명 단체 회장 사사오카... 좀처럼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캐릭터를 어떻다하고 한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이야기속에 빠져들다가도 신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함에 현혹되기도 한다. 역시 오리하라 이치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진실은 무엇인가? 자신이 억울한 원죄자라고 주장하는 무기징역수, 그리고 그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작가의 이야기. 치밀한 복선과 곳곳에 숨어있는 트릭, 그리고 마지막에 맞닥드리는 충격적인 진실. 어느것인 진실인지, 누가 옳은지 쉽게 단정지을 수 없이 작가의 펜 끝을 독자들은 한없이 뒤따라가기에 바쁘다. 쉽게 빠져들지만 쉽게 빠져 나올수 없는 마법, '오리하라 매직' 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해 줄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원죄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원죄자>는 묵직하게 다가오는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속에서 가볍게 웃음이 되어주는 재치도 담겨있다.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오리하라 이치의 수려한 필치가 매혹적이다. '이번엔 절대'를 외쳤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의 발 밑에 주저앉고 만다. 그의 전작인 [행방불명자]와는 분명 닮아 있지만 분명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사실 [행방불명자]를 읽고 그의 다른 작품인 [도착의 론도]를 읽어보고자 했지만 아직도 만나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하며 다시 한번 그와의 만남을 준비해본다. 그리고 앞으로 출간 예정이라는 [실종자], [도망자] 등 '者 시리즈'도 꼭 함께 하고 싶다. 오래도록 그의 매직에 빠져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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