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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
구효서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오랫만에 '소설'이란 장르에서 벗어나 '인문학'이란 이름을 가진 작품을 손에 집어든다. 너무나도 잘 짜여져,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어느 한순간 한눈 팔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게 촘촘히 쓰여진 이야기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인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중 하나는 바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로 대변되기도 한다. 먼저 '인문학(人文學)이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인간의 조건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따라서 인간과 관계된 철학, 문학, 역사학, 언어학, 종교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들이 모두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위기란 무엇일까?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대학 진학이라는, 구직과 사회 생활로 이어지는 하나의 맥락 아래에서 비롯된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위해 특정 과목만을 공부하고, 대학이란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취업자리를 따라 인기 학과, 인기 과목에만 집중되는, 취업을 위해 필요한 지식에 인문학이란 장르는 철저하게 배제되는 현실이 바로 인문학의 위기라 통칭되는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빨리 빨리, 앞으로만 돌진을 외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더라도 이런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또한 인문학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무관심 혹은 무감동이란 말로 대변된다. 이렇듯 일반 대중과 약간은 괴리되어 있는,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작은 첫걸음을 기록한 작품이 바로 <길 위의 인문학>이다.
'일상생활 속에 인문학을 심고, 대중과 인문학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취지'로 시작되었다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강의와 답사의 결과물을 정리해놓은 작품이 바로 이 책 <길 위의 인문학>이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 되었다는 이 인문학 대중화 사업은 이제 이 작품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함으로써 인문학의 나아갈 길, 인문학의 방향과 조금은 더 인문학을 가깝고 재미있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이상 인문학의 위기를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사람을 통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통해 느껴보는 뜻깊은 시간이 책 속에 그려진다.
<길 위의 인문학>은 '사람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과 '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추사 김정희과 정약용, 허균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인문학 이야기와 함께 서울 성곽, 강화도, 남한산성과 양동마을을 아우르는 역사의 흔적들이 녹아있는 길 위의 인문학 등 재미있고 유익한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자극적인 스토리를 뒤쫓던 독자들에게 어쩌면 이 작품은 쉽게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운 작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의 여유를 갖고 잠시 걷던 길을 멈추고 주저앉아 삶의 쉼표 한가운데서 이 작품을 만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 '책'을 즐겨 읽기 시작하던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이야기가 '문사철 500'이란 말이었다. 젊었을때 문학책 200, 역사책 200, 철학책 100권은 읽어야 한다는... 요즘들어 되돌아보면 문학책은 그렇다지만 역사와 철학 분야에선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게 사실이다. 왜 문학책만을 그렇게 편식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재미와 오락 위주의 독서 편식이 불러온 결과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문학을 제외한 역사와 철학은 그렇게 재미가 없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는 조금은 재미가 떨어지는 인문학에 어떻게 그에 접근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문학이 앞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재미와 유익', '감동과 느낌', '여유와 관조'를 아우르는 통찰의 인문학! 이것이 바로 작가가 추구하고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대중들과 더욱 가까이 할 수 있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인문학, 정신적 여유와 풍요를 제공하는 인문학의 길, <길 위의 인문학>은 작가가 말하는 이런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통찰의 인문학을 담아낸다. 선인들의 발자취를 되밟고, 현대의 시간속에 묻혀있던 역사의 시간을 꺼내면서 들려주는 작가의 따스하고 느낌 가득한 이야기들이 화선지에 번지는 붓자욱 마냥 가슴속에 퍼져 흐른다.
맹자(孟子)의 가르침중에 이런 말이 있다. '유수지위물야(流水之爲物也)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라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자극적인 재미와 흥미만을 담아낸 문학뿐만이 아니라 깊이있고 감동과 느낌을 담아낸 역사와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 어느 한가지 소홀하고 부족함 없이 가득 채워져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인문학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통찰의 인문학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준 <길 위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요즘 '인문학의 기회'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모든 분야에서 사람 중심으로 재편되는 인문학적 접근의 사회 분위기도 인문학의 기회를 우리에게 확인시켜준다. 선인들을 만나고, 역사의 땅을 걸으면서 여유와 멋을 즐기고 느끼는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 한번쯤 참여하고 싶어진다.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귀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멋진 기회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해도 다시한번 여유있게 <길 위의 인문학>의 첫페이지를 되넘겨 봐야 할 것 같다. 더욱 차분히 더욱 진지하고 재미있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