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
기노시타 한타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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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 이거 죽는구나. ... 이런 여행 오는게 아니었다.' 오노다 아유무의 독백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폭주일가, 오노다 가족이 여행을 떠난다. 일본에서 제일 긴 미끄럼대가 있는 곳으로... 가장인 오노다 겐키, 아내 치사토, 아들 아유무와 딸 유비코, 이렇게 오노다 4가족이 여행을 떠난다. 아니, 고등학생인 아유무의 가정교사인 호리이 한나도 함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왠지 수상한 냄새가 난다. 평범해보이는 이 가족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여행을 떠난 의도부터 수상하다. 아버지가 당한 실연의 상처를 달래주기 위해 떠나는 여행! 이 무슨 헤깔리는 시츄에이션?인가?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노시타 한타! '악몽'시리즈로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국내 독자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던 그가 다시금 우리를 찾아왔다. '악몽' 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는 않지만 그 내용은 이미 '악몽'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악몽의 엘리베이터, 관람차'를 만나고는 아직 '악몽의 드라이브'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가 전해준 미스터리의 매력에 가벼운 웃음과 사회적 메세지까지 담긴 이야기에 이미 마음을 내어주고 말았다. 특히 '악몽의 관람차'는 어쩌면 이 작품이 담아내려는 작가의 의도와도 어느정도 부합되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폭주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는 그 어느 작품보다도 쉽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수상한 여행을 떠난 오노다 가족, 그들에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가정교사 한나는 고등학생인 아유무에게 공부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인체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가르침을 선사하는 멋진? 왕가슴 선생님! 집안의 가장인 겐키와는 또 그렇고 그런 사이이기도 한나! 겐키는 그 와중에 또 바람을 피고 실연을 당한다.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만의 속셈?을 가지고 참아내는 아내 치사토, 그리고 딸 유비코는 많지 않은 나이에 벌써 세번 이혼이라니...

 

치사토와 유비코의 황당하고 엄청난 계획, 유비코와 전남편 마사오의 또 다른 계획,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들이 예기치 못한 사고와 겹쳐지면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 다시금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이 이어지는 듯하다. 4명의 가족과 불청객들 사이에서 시선이 바뀌면서 빠르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것 같은 이 가족구성원들의 속사정, 그 이야기들이 기노시타 한타의 촘촘하고 짜임새있는 구성속에 녹아들어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엮어낸다. 그것이 바로 기노시타 한타만이 가진 특별한 매력인 것이다.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시리즈' 중 조금 더 인상깊은 작품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악몽의 드라이브'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두번째 작품인 '악몽의 관람차'라고 말하고 싶다. 그 작품이 아마 <폭주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가 말하려하는 작은 메세지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이지로, 우시지마 부부, 아사코!... '악몽의 관람차' 내부를 흐르던 '가족애'라는 메세지가 미스터리의 흥미진진함, 코믹하고 재치넘치는 구성과 더불어 색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바로 그것이 콩가루 가족 오노다 일가를 통해 바라보고 느끼게 만들었던 그것!과 다르지 않은것 같다.

 

처음 <폭주가족 미끄럼대에 오르다>를 펼치고서는 '뭐, 이런~ 콩가루 집안이 다있어!' 하며 언짢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족들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들,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가정을 유지?해가며 자신들만의 욕구?를 따로 해결하는 말만 가족인 가족들이 현실속 우리의 모습은 아닐지...

 

가족 구성원이 둘러 앉아 식사 한번 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이 일주일, 아니 한달에 몇번정도 가능한지... 남편, 아빠, 아내, 엄마, 아들, 딸, 누나 ... 그렇게 수많은 이름들로 불리고 부르지만 그 속에 가족이란 특별한 느낌표!가 잊혀진지 이미 오래전 일은 아닌지... 우리들 자신에게 묻고 싶다.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아마도 극단(極端)에서 극단(極端)으로 치닫는 이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 가족애라는 잊혀진 이름을 다시금 되돌리고 되찾기를 희망한다는 따스한 메세지가 아닐까!

 

'적당히 친한 사람과 우산을 같이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우산을 같이 쓰면 우산을 든 사람이 많이 젖는다.' 옮긴이는 이 작품 마지막에 이런 자신의 느낌을 적고 있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일, '배려'라는 말속에 담긴 가족의 따스한 사랑... 더불어 가족이란 말 앞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처음 그 순수했던 마음 그대로, 아끼고 사랑해주라고... 처음 아내를 만나 결혼하던 그 순간처럼, 첫아이의 울음 소리에 눈물 흘리던 그 황홀했던 시간처럼... 어린 시절 그토록 크고 멋지게, 아름답게 보였던 엄마, 아빠의 모습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하고 아껴주라는 말을 나 자신과 이 작품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기노시타 한타! 참 특별한 매력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든다. 독특한 설정을 즐겨하면서, 언제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힘과 쉽게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즐거움을 전해주는 작가, 그리고 언제나 그 나름의 메세지를 잊지 않는 기노시타 한타, 만나면 만날 수록 그의 매력에 빠져든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악몽의 드라이브'가 빨리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엉뚱함속에 독특하고 특별한 무엇?인가를 감추어놓은 기노시타 한타의 또 다른 악몽과 만난 즐거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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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드
무라카미 류 지음, 이영미 옮김, 하마노 유카 그림 / 문학수첩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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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일본의 'Two 무라카미'라고 불리는 '무라카미 류'의 새로운 작품과 마주한다. 너무나 유명한 작가라지만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류의 작품과는 처음 만나게 되는것 같다. 표지를 살짝 펼쳐보면 강한 인상을 풍기는 아저씨 한분이 독자들을 날카롭게 쳐다보고 있다.(근데 문득.... 축구 해설가 신문선氏가 떠오르는건 나 혼자 뿐인가? ^^) 문학적으로, 사회비판적인 내용으로, 다양한 경력과 활동으로 일본 문학계를 이끄는 작가 무라카미 류의 이 작품이 너무나 기대된다. 하지만... <쉴드>를 펼치자마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아마도 ... 동화??

일본 소설로 분류되어 있는 이 책을 펼쳐보고는 살짝 놀라고 만다. 깜찍한 그림과 함께 등장하는 굵은 글씨들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득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스친다. 책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왠지 그런 느낌이 더 짙어진다. <쉴드>는 아시아 동쪽 끝 어느 섬나라 조그만 마을에 살고 있는 '고지마''가지마'라는 두 소년의 이야기이다.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소년, 고지마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착한 성격이라면 가지마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성격에 그 누구와도 가깝게 잘 지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성향의 그 둘은 이상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사이이다.

 

'국가나 사회에 이용하기 쉽고 이익이 될 성싶은 아이는 머리가 좋다고 칭찬하지. 그렇지만 국가나 사회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아이는 쓰레기라 불리지. 그렇지만 그런 말에는 아무 의미가 없어.' - P. 26 -

 

서로에게 솔직하고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두 소년은 어느날 산속에 혼자 살아가는 이름 없는 노인을 찾아가 자신들의 고민... 둘 중 누가더 머리가 좋은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좋은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고, 노인은 기지마의 애견 콜리와 고지마의 애견 셰퍼드를 통해서 그 답을 전해주려 한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두 소년은 노인이 말하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이후 서로다른 성향 만큼이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소년. 어떻게 하면 '쉴드'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두 소년의 물음표는 계속 이어지고...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두 소년은 드디어 노인이 말하던 '방패, 쉴드가 필요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는데...

 



 

소설이라는 장르적 유혹에 못이겨, 조금은 낯선 이름이지만 그의 인지도에 이끌려 선택한 이 작품 <쉴드>는 전혀 예상치못한 내용과 장르적 모호성으로 당혹스런 첫인상을 남기며 다가왔다. 하지만 동화책 한 권을 읽어 내려가듯 쉽게 눈을 따라 흐르는 내용들에 누런빛을 띠던 표정은 서서히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바뀌게 된다. 이 작품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로 유명한 켄 블랜차드와 그의 작품들은 떠오르게 만든다. 평범한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의미와 소중한 무엇인가를 깨닫게 만드는 자기계발서와 같은 느낌의 작품인 것이다.

 

<쉴드>는 두 소년, 가지마와 고지마의 성장을 통해 그들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삶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깨달아가는, 독자들에게 인생에 있어 삶의 진행 방향에서 꼭 찾아야하는 보물을 마음속에 간직하게 만드는 특별함을 선물하는 작품이다. 이름없는 노인이 말하던 '소중한 인생의 보물'을, 독자들은  책을 내려놓을때 두 손에 부여 쥐고 있을 줄 믿는다. 앞서 이 작품을 자기계발서 쯤으로 이야기했지만... 다르게 말하면 어른들을 위한 또 다른 '어린왕자'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아나서는 '두 소년의 지구별 여행기'가 바로 <쉴드>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 중심에는 아주 중요한게 있지. 그것은 마음이라고도 불리고 정신이라고도 불리지. ... 과일과는 반대로 너무나 부드럽고 약해. ... 인간은 몸 중심에 있는 부드럽고 연약한 그것을 어떻게든 지켜내야 해. 지키지 못하면 소중한 그것은 차츰 딱딱해지고 줄어들어서 결국에는 말라비틀어진 개똥처럼 변해 버리지. 그렇게 되면 인간은 화석처럼 굳어서 감정도 감동도 경이로움도 생각하는 힘도 다 잃고 말아.' - P. 30 -

 

'방패, 쉴드가 필요해!'

누구에게나 삶의 방패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조차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들. 이름없는 노인이 말하던 우리 몸 중심에 있는 그것, 인생의 보물이 이미 딱딱해지고 말라 비틀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 그것을 지킬 자신이 있다면, 아니 그것을 꼭 지켜내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느끼고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시간과 당당히 마주서야 할 것이다.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무엇인지 모를 삶의 힌트를 손에 거머쥔 것 같은 뿌듯함이 책을 내려놓는 이 시간에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도 좋고, 우리 삶을 변화시킬 자기계발서라 해도 좋다. 아니 또 다른 어떤 이름이라해도 상관없다. 두 소년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우정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은 이미 자기 자신만의 '쉴드'를 발견하고 그것을 두손에 거머 쥐게 되었을 것이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선사해준 무라카미 류의 또 다른 작품들과의 만남을 계획해야 할 것 같다. 표지를 열었을때 느껴지던 강한 인상과는 전혀 다른 따스함을 간직한 옆집 아저씨같은 그의, 그만의 다양하고 독특한 이야기들을 함께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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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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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안해, 고지마 그리고 '나'!

대왕고래를 닮은 커다란 고래 등 위에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소년 소녀. 상처를 보듬듯 소년의 얼굴을 향하는 소녀의 손, 수줍은듯 아래로 내린 고개는 순수함 그 자체이다. 너무나 예쁜 표지를 가진, 제목조차 환상적인 <헤븐>이란 책 한권이 앞에 놓여있다. 문득 아이들의 예쁜 성장소설이 아닐까 기대를 해보며 손 자욱을 낸 그 속에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교복을 입은 두 소년 소녀의 그림속 간격! 그 거리의 의미는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우리는 같은 편이야!'

'나'의 표현에 의하면 흐릿하고 작은 생선 뼈 같은 글씨로 쓰여진 종이가 필통속에 보인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은 다른 눈, 사시로 표현되는 눈 때문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중학생이다. 그런 나에게 던져진 이 작은 쪽지의 주인공은 바로 왕따의 폭력에 시달리는 같은 반 소녀 '고지마'였다. 고지마 역시 다른 이유로(지저분하고 더럽다) 여자 아이들에게 외면받고 폭력에 희생당하는 소녀였다. 왕따로 맺어진 이 소년 소녀의 인연과 안타까운 따돌림의 모습들이 순수함속에 더러움처럼 대비되듯 솔직하고 무섭도록 섬세하게 그려진다.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어'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니노미야가 중심이 된 패거리들이다. 운동도 공부도 잘하고 잘생겨서 언제나 주변에는 아이들이 북적이고 선생님들조차 그 아이를 인정한다. 니노미야 패거리들은 '나'를 사팔뜨기라고 놀리며 분필을 먹게 하고, 온갖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고지마 역시 냄새나고 더럽다는 이유로 갖은 따돌림에 시달리는데... 그런 소녀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작은 쪽지를 시작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하게 된 '나'와 '고지마'는 그렇게 친구!가 되어간다.

 

외로움에 지친 아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듯,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따스한 우정을 키워나간다. '나'는 아이들과 다른, 아니 차이가 나는 '눈'으로, 고지마는 아이들과 다른 '그것?'으로 연결되어 그들만의 비밀을 키워나간다. 방학을 맞아 '헤븐'이란 그림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 몰래 편지와 대화를 주고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 들켜 더 큰 폭력과 상처를 받기도 하는데... 그렇게 지켜오던 그들의 비밀과 우정은 어느 한 순간 또 다른 위기를 맞게 된다. 따돌림이라는 소재를, 작가는 눈을 돌려야 할 정도로 가슴 아프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상처를 주고 받는 아이들의 심리 또한 순수함과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도록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상처입은 그 소년 소녀에게 '헤븐'은 존재할까?

 



 

'이지메', '따돌림', '왕따',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GO'에서는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가, 미나토 가나에의 미스터리 '고백'에서도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보이지 않는 따돌림이, 그리고 하야시 미키의 '미안해, 스이카'에서도 장난처럼 시작된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이 가져온 충격적인 이야기가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왕따, 따돌림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이로 인한 아이들의 정신적 피해와 자살로 이어지는 폭력들이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복을 찢어 알몸을 찍은 동영상을 유포하고, 잔혹한 폭력에 상상하기 힘든 치욕까지 서슴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폭력에 희생된 아이들은 어린시절의 이런 상처를 안고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이들의 경우 피해자, 가해자 모두 상처를 안고,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는 데에서 그 문제의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죽음까지 불사할 정도로 커다란 상처를 갖게된 아이들, 자신들의 이런 잘못조차 대수롭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아이들... 모두가 이 사회의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연인들한테는 말이야, 아주 힘든 일이 있었어. 아주 슬픈 일이 있었거든. 굉장히. 그렇지만 말이야. 두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지금 두 사람은 최고의 행복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어다는, 그런 이야기야. 둘이 극복하고 도달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그 방이 사실은 헤븐인거야.' - P. 62 -

 

'헤븐'을 바라보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지마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찬 소녀의 바램이 온전히 유지되고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된 입장에서 이런 상처를 가진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그리고 아이들이 앞으로는 이런 아픔에 노출되지 않게 하려면 어떤 노력들을 해야할지, 그들의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져 주어야할지 걱정스럽다. 아프지 않고,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어른들이 해야될 일은 무엇일까? 어디에서부터 무엇부터 만들어 가야할까?

 

'사람은 결국 '사랑'을 위해서 태어나는 법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언젠가 그 사랑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 '미안해, 스이카'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 사랑받지 않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지금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때가 올것이고, 언젠가 누군가 너를 사랑해 줄 사람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일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 사랑스럽지 않은 아들, 딸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소중한 것처럼 반대편에선 '너'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어른들의 불신과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선과 물질 만능 풍조 또한 아이들의 눈과 행동속에 고스란히 비쳐진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상처와 아픔이 없는 '헤븐'을 선물하는 일, 이 작품을 통해 그 작은 실마리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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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
구효서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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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랫만에 '소설'이란 장르에서 벗어나 '인문학'이란 이름을 가진 작품을 손에 집어든다. 너무나도 잘 짜여져,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어느 한순간 한눈 팔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게 촘촘히 쓰여진 이야기에서 잠시 벗어나, 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인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중 하나는 바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로 대변되기도 한다. 먼저 '인문학(人文學)이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 인간의 조건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따라서 인간과 관계된 철학, 문학, 역사학, 언어학, 종교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들이 모두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위기란 무엇일까?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대학 진학이라는, 구직과 사회 생활로 이어지는 하나의 맥락 아래에서 비롯된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위해 특정 과목만을 공부하고, 대학이란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취업자리를 따라 인기 학과, 인기 과목에만 집중되는, 취업을 위해 필요한 지식에 인문학이란 장르는 철저하게 배제되는 현실이 바로 인문학의 위기라 통칭되는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빨리 빨리, 앞으로만 돌진을 외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더라도 이런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또한 인문학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무관심 혹은 무감동이란 말로 대변된다. 이렇듯 일반 대중과 약간은 괴리되어 있는,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작은 첫걸음을 기록한 작품이 바로 <길 위의 인문학>이다.

 

'일상생활 속에 인문학을 심고, 대중과 인문학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취지'로 시작되었다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강의와 답사의 결과물을 정리해놓은 작품이 바로 이 책 <길 위의 인문학>이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 되었다는 이 인문학 대중화 사업은 이제 이 작품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함으로써 인문학의 나아갈 길, 인문학의 방향과 조금은 더 인문학을 가깝고 재미있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이상 인문학의 위기를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사람을 통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통해 느껴보는 뜻깊은 시간이 책 속에 그려진다.

 

<길 위의 인문학>은 '사람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과 '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추사 김정희과 정약용, 허균에 이르는 다양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인문학 이야기와 함께 서울 성곽, 강화도, 남한산성과 양동마을을 아우르는 역사의 흔적들이 녹아있는 길 위의 인문학 등 재미있고 유익한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자극적인 스토리를 뒤쫓던 독자들에게 어쩌면 이 작품은 쉽게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운 작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의 여유를 갖고 잠시 걷던 길을 멈추고 주저앉아 삶의 쉼표 한가운데서 이 작품을 만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 '책'을 즐겨 읽기 시작하던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이야기가 '문사철 500'이란 말이었다. 젊었을때 문학책 200, 역사책 200, 철학책 100권은 읽어야 한다는... 요즘들어 되돌아보면 문학책은 그렇다지만 역사와 철학 분야에선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게 사실이다. 왜 문학책만을 그렇게 편식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재미와 오락 위주의 독서 편식이 불러온 결과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문학을 제외한 역사와 철학은 그렇게 재미가 없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는 조금은 재미가 떨어지는 인문학에 어떻게 그에 접근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문학이 앞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재미와 유익', '감동과 느낌', '여유와 관조'를 아우르는 통찰의 인문학! 이것이 바로 작가가 추구하고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대중들과 더욱 가까이 할 수 있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인문학, 정신적 여유와 풍요를 제공하는 인문학의 길, <길 위의 인문학>은 작가가 말하는 이런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통찰의 인문학을 담아낸다. 선인들의 발자취를 되밟고, 현대의 시간속에 묻혀있던 역사의 시간을 꺼내면서 들려주는 작가의 따스하고 느낌 가득한 이야기들이 화선지에 번지는 붓자욱 마냥 가슴속에 퍼져 흐른다.

 

맹자(孟子)의 가르침중에 이런 말이 있다. '유수지위물야(流水之爲物也)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라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자극적인 재미와 흥미만을 담아낸 문학뿐만이 아니라 깊이있고 감동과 느낌을 담아낸 역사와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 어느 한가지 소홀하고 부족함 없이 가득 채워져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인문학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통찰의 인문학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준 <길 위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요즘 '인문학의 기회'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모든 분야에서 사람 중심으로 재편되는 인문학적 접근의 사회 분위기도 인문학의 기회를 우리에게 확인시켜준다. 선인들을 만나고, 역사의 땅을 걸으면서 여유와 멋을 즐기고 느끼는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인문학 대중화 사업에 한번쯤 참여하고 싶어진다.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귀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멋진 기회를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해도 다시한번 여유있게 <길 위의 인문학>의 첫페이지를 되넘겨 봐야 할 것 같다. 더욱 차분히 더욱 진지하고 재미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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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아저씨 제르맹
마리 사빈 로제 지음, 이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마흔 다섯, 189센티에 11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제르맹.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과히 빈 깡통이란 말이 어울릴만큼 빈약?하다. 여든 여섯, 제르맹보다 한참이나 작고, 왜소하기만한 할머니 마르게리트. 박사 출신의 이 인텔리 할머니는 가방에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는 문학소녀! 사생아로 태어나 사랑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하고 다른이들의 눈총과 따가운 시선속에 몸집만 커져버린 제르맹은 바보 아닌 바보로 살아왔다. 글도 모르고, 친구도, 연인과의 진정한 사랑과 우정도 모르던 거구의 꼬마 아저씨 제르맹이 꿈속에서 내려온듯 작은 천사 할머니 마르게리트 에스코피에를 만난다.

 

'나는 마르게리트를 '입양'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런 글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지함이라고는 없던 제르맹은 우연히 공원에서 가녀린 금발의 할머니 마르게리트를 만나게 되고 그날부터 그녀는 제르맹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알베르토 카뮈의 '페스트',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책이라고는, 아니 글씨조차 모르던 제르맹은 마르게리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게 되고, 문학속에 담긴 깊이있고 진정한 삶과 삶의 이야기에 새로운 시간들을 꿈꾸게 된다. 제르맹에게 사전을 선물한 마르게리트의 말중에서 사전이 단어에서 단어로 여행을 하게 해준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단어를 찾아 사전여행을 시작한 바보 제르맹.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다.

 

마르게리트는 바보 제르맹의 마음을 어떻게 훔쳐버린것일까? 그것은 바로 진심으로 그를 대했기 때문이다. 바보라는 이름이 수식처럼 따라다니지만 제르맹은 여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몫을 다해가고 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어린시절의 상처, 사랑이라고는 전혀 받지 못하고 성장한 꼬마 아저씨 제르맹에게 마르게리트는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바라보고 대해준다. 제르맹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려 하고, 그것을 찾아 칭찬하고, 삶에서 그가 놓치고 살아가는 것들을 책이라는 것을 통해서 발견하게 해준 책 읽어주는 여자 마르게리트의 진정성이 제르맹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날아왔다. 일본이나 미국 작품들에 익숙했던 독자들에게 <바보 아저씨 제르맹>은 유럽 문학의 진한 감동을 선물한다. 이 작품은 '마거릿과 함께한 오후'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유명 배우인 제라르 드빠이유 주연으로 2010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직 영화로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예고편에 담긴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책에 담겨져 있는 그 따스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내내 화자로 등장하는 제르맹의 모습에 제라르 드빠이유가 느껴져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었던것 같다. 또한 지젤 카자드주가 연기한 마르게리트의 모습도 따스함속에 더 가까이 다고오는 듯했다.

 



 

책 읽어주는 여자 마르게리트

<바보 아저씨 제르맹>을 읽다 보니, 열다섯 남자 아이에게 다가온 서른 여섯살의 성숙한 여인 한나, 그리고 그들의 짧은 사랑과 비밀을 담아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더 리더' 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여기에서도 '책'은 나이 차이를 극복하는 대화의 통로이자, 그들 나름의 소통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바보 아저씨 제르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제르맹과 마르게리트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써 '책'이라는 소재는 톡톡히 제 몫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책이라는 소재와 함께 책 속의 책을 만나는 즐거움! 그 기쁨이 가득하게 느껴진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에 누구나 관심이 가고 반응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바보 아저씨 제르맹>처럼 그 속에 담겨진 작지만 따스한 이야기들은 조용히 마음의 호수속에 돌맹이 하나를 떠러뜨리듯 오랜 감동과 여운을 남겨준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제르맹 아저씨, 문학소녀와 같은 감수성과 진심어린 시선을 가진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나이를 초월한 따스한 우정과 사랑 앞에 왠지 들떠있고 흥분되어 있던 삶의 모습과 긴장된 마음들이 안정감을 되찾듯 편안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다보니 작은 관심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작은 책 하나가 삶을 바꾼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마르게리트는 내게 말을 걸어주고, 게다가 내 말을 들어주기까지 한다. 내가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녀는 내게 대답을 해준다. 그녀는 언제나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그녀와 함께할 때 나는 아직도 채워넣을 게 한참 많은 깡통머리가 아닌 그녀가 살뜰히 알려준 어떤 충만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마르게리트는 나의 요정이다. 요술 막대를 한번 휘두르는 것으로 그녀는 나를 풍성한 텃밭으로 바꾸어주었다.' - P. 251 -

 

'문학의 힘은 단순한 언어적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독자의 정서에 울림을 주는 파도와도 같은 것이다. 단순한 언어의 힘이 순간적이라면 문학의 힘은 오래 오래 지속되는 정서적인 힘인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힘! 그것을 이 작품 <바보 아저씨 제르맹>속에서 느낄 수 있다. 재치있는 언어와 제르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들, 책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마르게리트와 제르맹 사이를 이어주는 따듯한 감동이 어우러져, 문학이 전해줄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책속에 가득 녹아있다. <바보 아저씨 제르맹>는 오래도록 깊이있는 감동과 울림을 전해줄 따뜻한 작품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문학 작품들이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낯설다. 하지만 그런 낯설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재치있는 웃음과 감동이 가득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남자와 책 읽어주는 여자, 마르게리트 할머니가 전해준 이 기분 좋은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 만들어진 <바보 아저씨 제르맹>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한다. 무르익은 봄과 어울릴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겨울 동안 얼어있던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따스함을 전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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