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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아저씨 제르맹
마리 사빈 로제 지음, 이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마흔 다섯, 189센티에 11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진 제르맹.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과히 빈 깡통이란 말이 어울릴만큼 빈약?하다. 여든 여섯, 제르맹보다 한참이나 작고, 왜소하기만한 할머니 마르게리트. 박사 출신의 이 인텔리 할머니는 가방에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는 문학소녀! 사생아로 태어나 사랑이라고는 받아보지 못하고 다른이들의 눈총과 따가운 시선속에 몸집만 커져버린 제르맹은 바보 아닌 바보로 살아왔다. 글도 모르고, 친구도, 연인과의 진정한 사랑과 우정도 모르던 거구의 꼬마 아저씨 제르맹이 꿈속에서 내려온듯 작은 천사 할머니 마르게리트 에스코피에를 만난다.
'나는 마르게리트를 '입양'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런 글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지함이라고는 없던 제르맹은 우연히 공원에서 가녀린 금발의 할머니 마르게리트를 만나게 되고 그날부터 그녀는 제르맹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알베르토 카뮈의 '페스트',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책이라고는, 아니 글씨조차 모르던 제르맹은 마르게리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조금씩 귀를 기울이게 되고, 문학속에 담긴 깊이있고 진정한 삶과 삶의 이야기에 새로운 시간들을 꿈꾸게 된다. 제르맹에게 사전을 선물한 마르게리트의 말중에서 사전이 단어에서 단어로 여행을 하게 해준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단어를 찾아 사전여행을 시작한 바보 제르맹.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다.
마르게리트는 바보 제르맹의 마음을 어떻게 훔쳐버린것일까? 그것은 바로 진심으로 그를 대했기 때문이다. 바보라는 이름이 수식처럼 따라다니지만 제르맹은 여전히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몫을 다해가고 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어린시절의 상처, 사랑이라고는 전혀 받지 못하고 성장한 꼬마 아저씨 제르맹에게 마르게리트는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바라보고 대해준다. 제르맹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려 하고, 그것을 찾아 칭찬하고, 삶에서 그가 놓치고 살아가는 것들을 책이라는 것을 통해서 발견하게 해준 책 읽어주는 여자 마르게리트의 진정성이 제르맹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날아왔다. 일본이나 미국 작품들에 익숙했던 독자들에게 <바보 아저씨 제르맹>은 유럽 문학의 진한 감동을 선물한다. 이 작품은 '마거릿과 함께한 오후'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유명 배우인 제라르 드빠이유 주연으로 2010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직 영화로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예고편에 담긴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책에 담겨져 있는 그 따스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내내 화자로 등장하는 제르맹의 모습에 제라르 드빠이유가 느껴져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었던것 같다. 또한 지젤 카자드주가 연기한 마르게리트의 모습도 따스함속에 더 가까이 다고오는 듯했다.

책 읽어주는 여자 마르게리트
<바보 아저씨 제르맹>을 읽다 보니, 열다섯 남자 아이에게 다가온 서른 여섯살의 성숙한 여인 한나, 그리고 그들의 짧은 사랑과 비밀을 담아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더 리더' 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여기에서도 '책'은 나이 차이를 극복하는 대화의 통로이자, 그들 나름의 소통의 방식으로 등장한다. <바보 아저씨 제르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제르맹과 마르게리트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써 '책'이라는 소재는 톡톡히 제 몫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책이라는 소재와 함께 책 속의 책을 만나는 즐거움! 그 기쁨이 가득하게 느껴진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에 누구나 관심이 가고 반응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바보 아저씨 제르맹>처럼 그 속에 담겨진 작지만 따스한 이야기들은 조용히 마음의 호수속에 돌맹이 하나를 떠러뜨리듯 오랜 감동과 여운을 남겨준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제르맹 아저씨, 문학소녀와 같은 감수성과 진심어린 시선을 가진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나이를 초월한 따스한 우정과 사랑 앞에 왠지 들떠있고 흥분되어 있던 삶의 모습과 긴장된 마음들이 안정감을 되찾듯 편안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다보니 작은 관심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작은 책 하나가 삶을 바꾼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마르게리트는 내게 말을 걸어주고, 게다가 내 말을 들어주기까지 한다. 내가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녀는 내게 대답을 해준다. 그녀는 언제나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준다. 그녀와 함께할 때 나는 아직도 채워넣을 게 한참 많은 깡통머리가 아닌 그녀가 살뜰히 알려준 어떤 충만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마르게리트는 나의 요정이다. 요술 막대를 한번 휘두르는 것으로 그녀는 나를 풍성한 텃밭으로 바꾸어주었다.' - P. 251 -
'문학의 힘은 단순한 언어적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독자의 정서에 울림을 주는 파도와도 같은 것이다. 단순한 언어의 힘이 순간적이라면 문학의 힘은 오래 오래 지속되는 정서적인 힘인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힘! 그것을 이 작품 <바보 아저씨 제르맹>속에서 느낄 수 있다. 재치있는 언어와 제르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들, 책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마르게리트와 제르맹 사이를 이어주는 따듯한 감동이 어우러져, 문학이 전해줄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책속에 가득 녹아있다. <바보 아저씨 제르맹>는 오래도록 깊이있는 감동과 울림을 전해줄 따뜻한 작품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문학 작품들이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낯설다. 하지만 그런 낯설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재치있는 웃음과 감동이 가득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남자와 책 읽어주는 여자, 마르게리트 할머니가 전해준 이 기분 좋은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 만들어진 <바보 아저씨 제르맹>도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한다. 무르익은 봄과 어울릴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겨울 동안 얼어있던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에 따스함을 전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