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노 요루의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제목을 듣고는 참 난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공포나 호러 정도와 너무나 잘
어울릴듯한 이름을 가진 이 소설이 청춘의 찬란한 시간을 그려낸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손에 들게 된 <사랑하는 기생충>, 미아키 스가루의 이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작품 역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처럼 그런 달달한 사랑이야기에 제목만 자극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잠시 스친다.
백금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 살짝 탈색된 눈썹, 창백한 피부, 빨려 들어갈 것처럼 검은 눈동자, 짧은 스커트 아래로 뻗어나온 긴 다리,
타탄체크 머플러에 오프화이트 가디건을 걸친, 머리에는 커다란 모니터 헤드폰을 쓰고 있는 입김과도 같은 담배 연기를 내뿜는 열일곱 정도의
소녀! 책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중 한 명인 소녀 사나기 히지리가 눈내리는 공원에 서있다. 만화속에서 튀어나온듯 십대의 반항적 이미지를 품은 소녀!
그렇다면 그런 그녀는 바라보는 것은 누구일까?
'그 겨울, 그는 너무 늦은
첫사랑을 경험했다. 상대는 열 살 남짓 어린 소녀였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실업중인 청년과 벌레를 사랑하는 등교 거부 소녀.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된 것이 없었고, 그렇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랑이었다.' - P. 06 -
바로 또 다른 주인공 코사카 켄코이다. 하루에 100번 넘게 손을 씻고, 집에는 두 대의 공기청정기가 돌고, 소독약 냄새가 떠돌며,
마룻바닥은 새집처럼 깨끗, 빨래건조대에는 일회용 라텍스 장갑과 마스크, 제균용 스프레이와 물티슈가 놓여있는, 소위 말해 결벽증을 가진 남자가
바로 코사카였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가장 고통스러운 고사카! 이런 그에게 사회생활은 온전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동안 저축한 돈을 까먹으며
침대에 누워 그날을 대비하는 심각한 결벽증 백수다!
이즈미의 등장으로 코사카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인터넷상에 바이러스, 멀웨어를 퍼뜨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코사카에게 어느날 협박자 이즈미가 찾아온다. 코사카의 계획,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던 계획을 알고 있다며, 경찰에 알리는 대신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고 말한다. 그 부탁은 바로 앞서 말했던 소녀, 사나기 히지리와 친구가 되는 거라고, 자신의 말을 들어주면 성공 보수를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말이다. 백수인 코사카에게 그 금액은 나름 큰 돈이었고, 자신이 마다할만한 입장도 되지 못했기에 코사카는 그렇게 사나기 히지리를 만날
계획을 실행한다.

스물일곱, 결벽증으로 자신의 공간에 갖혀 살아가는 남자! 반면 공원에서 백조에게 먹이를 주던 헤드폰을 쓴 사나기는 다른 이들로부터
시선공포증을 가진 소녀였다. 결벽증과 시선공포증! 서로 다르지만 나름의 공통점을 가진 외톨이들의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특별한 사랑 정도로만
느껴졌던 이야기는 초반 그들의 독특했던 만남속에서 머물러 있지만을 않았다. <사랑하는 기생충>이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의미, 실질적인
의미가 정말 사람들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벌레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색다른 설정이 이야기를 예상치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인간은 머리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사랑하거나, 귀로 사랑하거나, 손끝으로 사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벌레로 사랑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 그 누구도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 P. 327 -
조금씩 조금씩 그들만의 방식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특별한 사랑을 만들어가던 코사카와 사나기! 하지만 그들의 몸속에 신종 기생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긴장감 있게 진행된다. 기생충이 인간을 지배하고 조종한다는 설정이 참 독특하다. 기생충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인간의 뇌를 조정하고, 사랑마저도 그들의 번식을 위해 조정된 것이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색다른 설정이다. 기생충에 감염된 이들의 선택은
구충제를 먹어 기생충을 죽일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생충에 의한 조정으로 만들어진 사랑조차 잊게되는 원래의 혼자인 나로
돌아가는 선택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것이다.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은 결벽증이나 강박에 시달리다 사회에서 격리되어 혼자가 된다는 설정을 갖는다. 그러다가 자신과 비슷한 감염자들과
반응해 번식을 하거나하는 기생충의 조정에 의해 움직인다. 기생충에 감염된 이들을 보면, 우리 현대 사회에서 보여지는 은둔형 외톨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작가는 기생충이 조종하는 인간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병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꼬집으면서도 사랑이라는 것이 지닌 비이성적인 것의
특별함을 손꼽아 강조하는듯 보인다. 사랑은 바이러스처럼, 버그처럼 우리 인간을 조종하고 반응하게 한다.
사랑이 갖고 있는 순수함과 특별함을 작가 미아키 스가루는 독특한 만화적 발상과 기발한 상상으로 풀어나간다. 우리 사회에서 자의로 혹은
타의로 고립되어 가는 이들마저 사랑으로 치유되고 그런 사랑은 온 인류를 발전시키고 계승시켜 나갈 원동력인 것이다. 그것이 인간을 조종하는
기생충에 의해서건 인간이 가진 자의에서건 그건 중요한것이 아니다. 다만 사랑이 가지는 순수함과 소중함, 그리고 특별함이야말로 <사랑하는
기생충>이 말하려는 바가 아닐까? 꼭두각시 사랑도 사랑 그 자체로 소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