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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이 시간을 잊게 해주었듯이, 이번에는 시간이 사랑을 잊게 해줄 거에요!'
얼마전 만났던 책 한켠 에 담겨져 있던 작은 구절이다. 사랑에 목말라하고, 사랑때문에 가슴 시린 아픔을 겪는 그런 나이가 지난지 한참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사랑에 대한 가슴떨림은 단순히 나이의 많고 적음에 국한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어찌되었건 나의 청춘을 잠시 되돌아보면서 왠지 이 말이 가슴 한 구석을 싸늘하게 감싼다. 사랑, 그리고 시간! 시간, 그리고 사랑!
<다시, 만나다>는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만났던 모리에토와 '재회'하는 작품이다. 6년여 전이었던가? 그녀를 나오키상 후보에 올리기도 했던 작품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를 통해 처음 만났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작품을 평가한다는건 참 여렵겠지만 그때 그 작품을 그냥 짧게 말해보자면, 추억, 흔적, 기억, 그리고 그리움! 정도로 말해볼 수 있을까? 아무튼 나오키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오랫만에 그렇게 다시, 만났다! 모두 여섯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다시, 만나다>는 어떤 화려하고 특별한 '다시 만남'을 그려내는 작품은 아니다. 어쩌면 그저 단순히 우리의 일상속 만남과 이별, 우연 혹은 다시 만남을 모리 에토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다시, 만나다'에서는 일러스트 작가와 편집자의 계속되는 만남을 그리기도 하고, 다른 단편들에서는 아내, 친구, 연인 등 만남의 반복을 그려내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관계속에서의 지속된 만남이 있는 반면, 영혼과의 만남 같은 약간의 판타지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단편도 있다. 환생이라는 프레임을 통한 운명적 만남을 그려내기도 한다. 어쨋든 모리 에토가 그려내는 재회의 틀속에는 다양한 군상들의 감성 가득한 이야기들이 가득해보인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아마도 '매듭'이 아닐까 생각된다. 과거의 상처, 어두운 기억의 꼬여버린 매듭을 풀기 위해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가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그가 여기 있다는 것도, 내가 여기 있다는 것도. 벌써 오래전에 끊겼다고 생각했던 인연의 끈이 아직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도.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거짓말 같았다. 그를 마지막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거짓말 같았다.' - 다시, 만나다 中에서 -
얼마전 TV 프로그램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는걸 들었다. 만약 돌아가신 분들중에 한 명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느냐고? 많은 이들이 '아버지'라는 이름을 꺼내들었다. 아마 그 질문의 대상자들이 대부분 남자, 아빠들이다 보니 그럴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젊은 층의 남녀, 혹은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답에 담긴 이미지의 결과물은 아마도 '후회' 그리고 '그리움'일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 의미없는 만남이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연과 필연이라는 말을 제쳐두더라도, 잠시 스쳐지난 만남 혹은 정말 소중했지만 아쉬움 이별로 마무리 된듯했던 만남 등 그 어떤 만남이든 간에 그것은 온전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만남은 이어질 수 있다. 소설이나 영화속에서가 아닌 우리의 현실속에서도 그런 만남은 우연찮게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혹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펜과 영상속에서 그런 만남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린 즐거운 상상속에 가슴 따스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랑, 이별, 오해, 상처, 그리고 다시 만남! 아쉬움과 안타까움, 애틋함으로 다시금 만남을 통해 사랑을, 우정을, 또 다른 삶의 가치를 깨닫게 만드는 힘이 바로 <다시, 만나다>속에 담겨있는듯 보인다. 오랫만의 다시, 만남이 즐거웠고, 더할 나위없었던 김난주 작가의 번역도 참 좋았다. 차가운 이 계절에 왠지 가슴 따스해지는 평범하지만 그 특별한 만남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