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마일 브러시, 오래된 사진
와루 글 그림 / 걸리버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가끔씩 책장 모퉁이에 자리한 먼지낀 앨범을 꺼내어보곤 한다. 디지털 카메라가 세상을 지배해버린 요즘 세상에 사진을 뽑아서 앨범에 간직하는 습관이 가당치도 않다보니 최근 사진들은 흔적도 없지만 아주 오래전, 어릴때부터 학창시절, 군대 사진과 사회 초년병 시절의 사진들이 3개 정도의 앨범에 가득 차있다. 그리고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은 부모님의 앨범들도... 오래전 사진을 보다보면 공통적으로 갖게되는 느낌이란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살며시 미소가 띄어진다거나 박장대소를 한다거나... 그렇게 그 시간, 그 찰나의 순간으로 잠시 마음을 내어준다는 사실일 것이다.
군대에서 첫 휴가나오기전 뺑뺑이 도는 사진, 졸업 사진에서 처음 양복이란걸 입고 어색한 포즈를 취하는 나, 그리고 학사모를 쓰신 엄마의 모습이 있다. 아쉽게도 정말 어릴때 사진은 없지만... 쬐끄만 양복을 입고 꼬마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나, 학창시절 수학여행때 찍은 장난꾸러기의 모습과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저녁녘에 찍은 시커먼 사진들도 자꾸 시선이 간다. 짝사랑했던 아이와 수줍게, 아무도 모르게 곁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아직도 꼬맹이인 내가 서있는 누나의 결혼식 장면도 그 속에 담겨져 있다.
아버지의 너털웃음도, 엄마의 수줍은 미소도... 그 오래된 사진을 보다보면 어느새 시간을 거슬러 달콤한 미소와 함께 과거를 추억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어느 사진관련 책에선가 이런 글귀를 본적이 있다. '그림은 작가가 생각한대로 생략이나 추가할 수 있지만, 사진은 카메라 렌즈 앞에 펼쳐진 세상을 그대로 옮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사진은 그 추억의 시간속에서 사람들을 웃게, 울게 만드는지도 모를일이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옮겨진 추억의 시간들! 그 찰나의 시간이 그래서 더 황홀하고 행복한지도 모른다.

<스마일 브러시 오래된 사진> 은 우리를 그렇게 추억속 사진 앞으로 불러 세운다. 물론 이 작품은 추억속 사진이 담겨진 책은 아니다. 네이버에서 연재되었던 웹툰이 한권의 책으로 독자들을 찾아온 것이다. 실제 사진은 아니지만, '와루'라는 작가가 자신의 추억속 한페이지를 꺼내어 우리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학창시절에서 청년으로 이어지는 시간속에서 한장의 사진을 꺼내어 놓고 그 사진과 연관된 작은 사건, 혹은 작가의 느낌들을 들려준다. 한장의 사진, 그 속에 담겨진 이야기는 단지 작가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독자들의 추억속 한페이지로 그렇게 이어진다.
'기억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왜 그렇게 ..... 이상하게 변해 가는지 .....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가슴 아픈 기억들이 어느 샌가 한번에 웃어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변해 있곤 합니다. 그래서 살아갈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웃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 하지만 가끔씩 .... 아주 가끔씩 ... ...... 가끔 그런 날이 있습니다. 방안에 누워 오랫만에 뜬금없이 생각난 기억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 날이 ...' - 이야기 하나, 기억 中에서 -
첫사랑의 설레임, 친구들과의 우정과 추억 여행, 학창시절의 풋풋함과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에 관한 기억들, 그리고 일상의 즐거운 에피소드들이 가슴설레이고 따스한 느낌을 전해준다. 기존 웹툰들이 전해주는 웃음과 유머는 물론이고 이 작품속에는 보다 뜨겁고 가슴 찡한 깊은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부드럽고 뛰어난 그림이 한몫을 차지하겠지만 웹툰 중간중간 자리하는 작가의 짧은 에세이들이 작품을 깊이 있게 만들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우리의 추억을 되뇌이게 만드는 가슴 뜨거운 웹툰이 바로 <스마일 브러시 오래된 사진>이 아닐까.
추억속 앨범을 꺼내듯 수학여행에서 친구들 얼굴에 낙서하는 모습, 주번 완장에 얽힌 권력남용?, 화장실이 급해 버스에서 내려 수풀을 뚫고 달려가던 친구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정말 어디선가 본듯한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준다. 동네 바보형이 건네준 100원, 크리스마스 새벽에 구슬피 울던 고양이 한마리, 졸업과 함께 얻게된 자유 하지만 그 자유가 행복이 아님을 깨닫게되는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 고물을 모으는 할아버지의 핸드폰속 전화번호를 지워달라는 부탁... 그 속에 담겨있던 '할멈'이란 이름, 아이를 잃어버린 친구와의 통화... 한참을 웃다가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눈물이 눈가를 적신다.

'와루'에게 다가온 서툰 사랑도 꽤나 가슴 아프게 만든다. 친구때문에 잃어버린 첫사랑이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면 중간 중간 등장하는 놓쳐버린 청춘시절의 사랑 또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애도 아닌 것이, 어른도 아닌 것이, 마음은 아이인데 어느 샌가 덩치만 커져서 점점 어른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던 우리들...' 그렇기에 아쉽지만 젊음이 더 아름답고 오래 추억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의 시행착오와 아련한 추억들이 있어 지금 우리의 모습들이 있는 것이리라. '와루'의 오래된 사진을 통해 우리 자신의 아련한 추억들을 꺼내어본다.
'21년동안 2주에 한번씩 머리를 잘라 주셨던 아버지.. 이발사 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내 머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요일 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하고 왔습니다.. 바람이 시원하더군요.' - Behind Story 中에서 -
감성적인 그림으로 감동의 깊이가 더더욱 깊어진다. 중간중간 자리한 에세이들이 툭툭 단절될 수 있는 웹툰의 단점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울 아버지, 이발하셨네' 하던 와루의 말속에서 어느새 '공감'하게 된다.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추억속 이야기들을 꺼내게 되고, 그의 추억속 한페이지가 어느새 나의 사랑이, 청춘이, 설레임이, 감동이 된다. 자신의 꿈을 통해 행복해지라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깎이고 다듬어지고 내가 아닌 내어되어가지만' 세상과 당당히 맞서라고... 청춘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는다.
<스마일 브러시 오래된 사진>은 그 어떤 소설보다,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보다 더 유쾌한 재미와 진한 감동, 깊이 있는 교훈을 전해준다. 긴 이야기로 전하는 것, 그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몇 컷의 그림들로 써내려가는 작가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그림언어들이 독자들을 오랜 시간동안 즐거운 추억여행으로 안내할 것이다. 오랫만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아쉬운 작품과 만난것 같다. 책장 모퉁이에 자리한 먼지낀 사진첩을 꺼내어보려한다. 이번 주말엔 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하러 다녀와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소리쳐야겠다. '울 아부지, 이발하셨네~' 하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