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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나구 - 죽은 자와 산 자의 고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보름달이 뜬 어느 밤, 하늘에서 동아줄인듯한 긴 줄을 잡고 아래로 내려오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 곁에 <츠나구>란 이름이 보인다. 도대체 '츠나구'가 뭐야? 이런 궁금증들로 이 여름밤은 더욱 깊어간다. '죽음' 이란 단어를 앞에 두고 떠오르는 수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이 작품 <츠나구>가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죽음 그리고 '만남'이다.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 그 고리를 연결해주는 이름이 바로 '츠나구'인 것이다. 죽은 자와 산자의 연결 고리, 츠나구! 그 알쏭 달쏭한 이야기속에 이 여름 밤을 맡겨보자.
'소년이 말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창구. 제가 바로 츠나구 입니다."'
이 작품은 모두 다섯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다섯명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있는 셈이다. 가장 먼저 자살한 아이돌을 만나고 싶어하는 여성,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려하는 가문의 장남, 사고로 죽은 단짝 친구를 만나고픈 소녀, 사랑했던 여인을 기다리던 한 남자, 그리고 마지막 츠나구 자신의 이야기가 앞의 네가지 이야기에 숨겨진 비밀들을 담아내고 풀어낸다. 죽음, 죽은자와의 만남이란 소재가 내어놓을 수 있는 애틋함을 기대한다면 약간은 마음을 접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면서 조금더 이야기를 진행해보자.
그녀는 왜 하필 자살한 아이돌을 만나려 할까? 아이들도 아니고 20대 여성이 말이다.'아이돌의 본분'은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처해있던 아이돌, 그리고 그녀를 통해 삶의 희망을 깨닫게 되었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아이돌은 자살을 하게 되고... 남겨진 그녀는 자살한 아이돌을 따라가려한다. 그녀와 그녀 사이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장남의 본분'은 어머니의 유언때문에 어쩔 수 없이 츠나구를 찾게 된 장남의 모습을 그린다. 츠나구에 얽힌 어머니와 장남, 그리고 그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단짝의 본분'은 미스터리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두 소녀, 한 소녀의 장난같은 질투로 사고를 당해 죽게 된 소녀. 그 소녀를 찾은 단짝 친구는 미안한 마음이 아닌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숨기기 위해 츠나구를 찾는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만다. '기다리는 자의 본분'에서는 사랑하는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 그려진다. 정말 '츠나구'가 이럴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정통 판타지 러브스토리라고나 할까? 그리고 마지막 '사자의 본분'에서는 지금까지 앞에서 등장했던 '츠나구, 사자'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리고 츠나구가 만나게해준 그 사람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츠나구 자신의 고민과 이야기가 그려진다.

츠나구는, '연결하다', '이어주는' 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동사 '츠나구(つなぐ)'를 작가의 상상력을 조합해 '사자'라는 단어로 재탄생시킨 이름이다. 지금 만약 당신이 죽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누구일까? 가끔 이런 상상에 대답해보게 된다. 누가 있을까? 나에게 이런 단 한번의 기회가 온다면 누구의 이름을 떠올리게 될까? 내가 선택하고 반대편에서 요청을 수락할 사람이 누구일까. 아마도 나에게는 '엄마'가 아닐까? 장남은 아니지만 가장 만나고픈 이름이 바로 '엄마'이다. 그리고 엄마도 나에게 기꺼이 OK 사인을 보내주시지 않을까. 믿을 수 없어도 좋으니 그런 기회가 꼭 한번 주어졌으면... 상상해본다.
츠나구라는 존재가 어린 '소년'이라는 설정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사실 책속에 등장하는 의뢰인들이 나보다 더 당황하는듯 하지만... 어쨌든 츠나구의 존재에 대해서 작가는 독자들을 꽤나 궁금하게 만드는데는 성공한듯 하다. 하지만 초반 츠나구가 소년이라는 설정이 왠지 후반 '아유미'라는 이름으로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도 그 이름은 소녀를 떠올리게 만들기때문일 것이다. 뭔가 한참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것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해 줄 사람 어디 없을까? '아유미'는 남자 이름이 아니야! 라거나...
판타지 미스터리를 표방하는 작품답게 각 에피소드들 속에서, 그리고 마지막 '사자의 본분'을 통해 드러나는 사실들이 미스터리의 재미를 들려준다. 또 작품마다 죽음을 통해 깨닫게 되는, 절실한, 진실한, 애절한 이야기들로 진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츠지무라 미즈키'라는 낯선 이름이 어느새 그 진한 감동을 타고 친숙한 이름으로 성큼 다가선다. 메피스토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차세대 일본 문학을 주도할 멋진 작가와의 만남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을 단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이란 가정에서 이 이야기는 출발한다. 하지만 작가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단 한번의 기회' 뿐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기회'를 단 한번 만이라도 소중하게 만들라고 말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죽음 그 이후가 아닌, 삶에서의 즐거운 하루하루, 행복을 위해 오늘을 소중하고 멋지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된다면 아쉬울지도 모르지만 츠나구라는 존재는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당신의 곁에 있는 이에게 '사랑'의 메세지를, 이야기를, 감사를 나누어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