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나'를 내려놓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또 다른 나로 새로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반복되는
일상, 피로감에 휩쌓인 대인관계, 지우고 싶은 일들, 익숙함의 혼돈에서 벗어난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라는 이름에 덧붙여진
고유명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여행속에 담겨진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새롭고 행복하다. 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싶다.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나에서 벗어나, 기묘하고 혹은 예상치 못한 일들에 빠져들기도 하고, 특별한 '나'의 공간들로 채워가는 시간이 바로 책과의 여행일
것이다.
여행과 책, 나를 잠시 내려놓는 특별한 시간들이다. 그 시간속에는 익숙하고 평범한 나의 시간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아프고 후회스럽고 걱정되고 잊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일상이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기억술사!
어쩌면 이 이름 역시 '여행과 책'과 같은 효과를 지닌 평범한 우리들의 또 다른 바램이자 특별한 소원이 아닐까 싶기도하다. 잊고 싶은 것만 잊게
만들어주는 존재, 기억술사라는 도시전설을 파헤치는 대학생 료이치의 시선으로 그 특별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억술사는 잊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 앞에 나타나서 잊고 싶은
것만을 잊게 해준대. 잊은 사람은 기억술사가 잊게 해줬다는 사실까지 모두 잊고, 나쁜 기억은 전부 없었던 거나 다름없게 된대.' - P. 40
-
남자가 아이를 마주보고 서 있다. ... 도망쳐, 도망쳐! 료이치의 꿈은 늘 거기에서 끝난다. 그게 무슨 의미를 지닌 꿈인지 모른체 그의
꿈은 늘 거기까지만이다. 료이치는 실제로 기억술사에게 기억이 지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 세 명을 알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소꿉친구인 세살
아래 동생 가와이 마키, 그리고 두번째는 그가 좋아라 하는 학교 선배 사와다 교코,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바로... 요시모리 료이치, 자기
자신이다. 기억술사를 믿지 않았던 그였지만, 이들을 통해 그리고 자기 자신 역시 기억술사에게 당하고 나서 그의 존재를 쫓기 시작한다.

<기억술사1> '기억을 지우는 사람'은 기억술사라는 미스터리한 도시괴담과도 같은 존재를 찾아가는 요시모리 료이치의 시선으로
시작해서, 그와 관련된 몇몇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하지만 결국 중간중간 등장하는 '현재 이야기'를 통해서 료이치의 시점에서 기억술사를
찾아가는 여정을 미스터리하게 담아낸다. 누군가의 기억을 지워주는 존재, 기억술사! 기억술사의 첫번째 이야기, 로맨틱한 표지가 인상적이다.
료이치와 마키일까? 아니면 교코? 얼마전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표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표지가 마음에 쏙든다.
기억술사는...
·기억술사는 해 질 녘에 나타난다.
·기억술사는 녹색 벤치에서 기다리면 나타난다.
·기억술사의 얼굴을 본다 해도 그 기억조차 사라지기 때문에 그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기억술사는 사람의 기억을 먹고
산다.
·기억술사가 한번 지운 기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기억술사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
나타난다.
잊고 싶은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그를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 라는 표현이 너무 단정적인가? 어쨌든 잊어버리고 싶은,
아니 없애 버리고 싶은 기억 한 두개쯤은 모두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기억술사에게 그런 기억을 지워달라고 말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부끄럽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억, 되돌리고 싶은 잘못... 등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를 기억술사에게 맡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들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억을 지워달라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잘못된 것일까?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것 같다. 기억술사를 쫓는
료이치의 말에서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 하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도 어쩌면 몇 년쯤 뒤에는
좋은 추억으로 바뀌거나 싫은 기억인채로 있더라도 그게 계기가 돼서 변할 수 있거나... 할지도 몰라, 그렇지 않아? 하지만 지워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야... 기억을 지우는 것이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그 순간만으론 알 수 없다는 얘기야. 그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야... '
기억을 지우는 존재, 기억술사라는 색다른 캐릭터가 돋보인다. 기억술사라는 존재를 쫓는 료이치,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통해서 긴장감을
더해주고, 그 속에서 기묘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감성 돋는 드라마를 선보인 문체 역시 마음을 사로잡는다. 단순히 독특한 캐릭터와 이야기들로
풀어나간 작품을 넘어 '기억' 넘어의 진실과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된것도 커다란 기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오리가미 교야! 처음
만나는 이 작가, 앞으로도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름만큼 낯선 번역가의 활약 역시 기대를 훨씬 넘어선다.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나는 어떤가? 책을 내려놓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기억술사를 소환해야 할 잊고 싶은 기억이 있었던가? 물론 당연히 있을테지만,
료이치가 말했듯 지우고 싶은 기억은 역시 그 순간에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시간이 치료해줄 수
있음을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우리 삶의 기억술사는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그 다음의 '시간'이 아닐까? '지혜는 듣는데서 오고,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는 말이 있다. 말을 줄이고 귀를 연다면, 아마도 우리 삶에서 기억술사가 할 일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기억술사>와의 화려했던 첫만남, 이제 더 기대되는 그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들을 기꺼이 준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