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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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떠나라!'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져버렸다. 매년 10월 둘째주 목요일, 스웨덴 한림원을 향하는 우리들의 작은 기대의 대상이기도 한 노시인을 향한 이런 비난, 비아냥이 들려오는 요즈음이다. 떠나라고 외치는 이들의 마음도 알겠고, 문학도시를 꿈꾸는 지자체의 의지도 알겠지만, 이런 비난에 상처받은 노시인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어루만질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를 노벨상이라는 커다란 빛으로 드리워줄 노시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 거기에서 쏟아져나올 아름답고 영롱한 시어들에 대한 기대는 아마도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든다.


오에 겐자부로!

'20대부터 60년 가까이 소설을 써왔지만 소설은 이제 그만 쓰겠다. 앞으로 평화문제, 삶의 문제 등에 대해 쓰며 평화를 지켜가겠다.' 2년여전 국내에서 작품 출간기념회에서 밝힌 오에 선생의 말이다. 현재 일본에서 진행중인 우경화, 우편향 움직임에 대한 문제인식에 바탕을 둔 문학인으로서 절필 선언인 셈인것이다. '익사'라는 작품의 기자간담회에서 나왔던 그의 말인데, 이 작품은 요즘에도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진 지식인이 바로 오에 선생과 같은 인물이 아닐까싶다.


이와는 정반대로 국내에서 말 한마디에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작가도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작가, 츠츠이 야스타카! 소녀상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한 망발을 서슴치 않았던 그에게 우리 국민들은 너무 실망하고 분노하지 않을수 없었다. 문학에는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편협한 시각, 그리고 내가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는 식의 표현과 정치와 역사가 개입된 옳바르지 않은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사고방식이 아닐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문학인으로의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 자긍심을 가질 만한 작가로서 박수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만엔 원년의 풋볼>은 그런 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온전히 담겨진 작품으로 말할 수 있을것 같다. 1994년 노벨상 시상식에도 언급되었듯 이 작품은 그의 작품중 최고의 작품으로 노벨 위원회의 평가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근대문학의 최고 작품으로 단연 손꼽히는 이 작품은 일본의 패전 후 15년이 지난 19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하려는 일본 정부에 반대 투쟁을 펼쳤던 '안보투쟁'의 해인 1960년의 시간이 그려진다. 학생운동가 다카시와 그의 형 미쓰사부로의 이야기가 전반을 이룬다. 전향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되는 학생운동가, 머리에 혹이 달린 아이로 인해 정신적 공황을 겪는 미쓰사부로. 한쪽 눈이 멀고, 추한 외모, 거기에 아이까지... 이 형제가 가진 아픔과 상처에 대해 치유의 손을 내미는 작품이 바로 <만엔 원년의 풋볼>인 것이다.





'눈뜰 때마다 잃어버린 뜨거운 '기대'의 감각을 찾아 헤맨다. 결여감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적극적인 실체인 뜨거운 '기대'의 감각. 그것을 찾아낼 수 없음을 깨닫고 나면 또다시 수면의 비탈길로 자신을 유도하려 한다. 잠들어라, 잠들어라,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 P. 8 -  


이 작품은 백년에 걸친 세 세대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그린다. 1860년에 일어난 농민봉기가 그 첫번째 시점이다. 마을 유지들의 입장에 섰던 증조부와 반대편에 섰던 그의 동생의 투쟁이 그려진다. 1945년 세계대전 패전의 시점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쟁에서 돌아온 S형과 조선인들과의 기억이 그려진다. 마지막으로는 일미안보조약이후 안보투쟁이 격렬하던 1960년대, 1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다카시 형제의 폭력성과 수치심, 기억의 혼돈과 역사의 순환 그리고 치유라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인들에게 그리 높은 평가는 받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의 또 다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카와바다 야스나리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호응을 보이는 이들도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알려진다. 국수주의, 극우파의 득세,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없는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들. 천황제에 대한 맹목적 신봉을 하는 그들에게 오에 겐자부로는 그리 탐탁스런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보편적 관점에서 일본의 역사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런 사상과 언행으로 일본의 근대문학을 이끌어온 작가가 바로 오에 겐자부로이기 때문이다.


유명 영화제에서 선택받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영화들은 보통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기 쉽다. 문학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재미를 위주로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한것도 사실이다. <만엔 원년의 풋볼> 역시 최근 출간되는 작품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배제할 수는 없을것 같다. 하지만 그 차이는 문학적 깊이와 그 속에 담긴 작가의 가치관과 감성을 통해 상쇄됨은 이 작품을 통해 실감하게 된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에 겐자부로라는 대문호를 품은 그들에게 조금은 부러운 맘을 숨길 수 없을 것 같다.


오에 선생은 우리 나라 작가중에서 황석영 작가를 극찬했다고 한다. '황선생의 소설은 개인의 내면을 그리면서도 사회적으로 이어져있다.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를 알게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작품세계가 다르다' 평가했다고 한다. 고은 시인의 안타까운 사건때문에 라도 스웨덴 한림원을 바라보던 우리들의 작은 기대가 주춤했던 이 즈음에, 오에 선생의 이런 극찬을 받은 작가를 바라보며 또 다른 기대에 가슴을 조려봐도 좋을 것 같다. 1960년대를 흐르던 일본인들의 수치심과 상처, 아마도 지금 우리 시대의 아픔과 상처와 조금은 닮아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이게 나라냐?'를 외쳐야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 오에 겐자부로는 이런 우리들의 상처도 어루만져주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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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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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어렴풋이 꿈꾸던 한가지가 있었다. 어른이 되면 커다란 창문이 있는, 탁 트인 유리창문이 있는 거실이 있는 집을 짓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작은 시골집에서 여러명의 가족들이 옹기종기 살아가던 나에게 그것은 정말 커다란 꿈이자 목표였을까? 많은 시간이 흐르고... 지금 나는 어린 시절 살던 그 집이 있던 자리에 아직도 살고 있다. 물론 그때와는 다른 새로운 집에, 그때보다 훨씬 큰 유리창문을 가진 거실이 딸린 집에 살고 있다. 유리창문 너머에는 감나무, 단풍나무, 보리수 나무가 초록을 더해가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는 작은 마당도 있고, 우리 가족 멍멍이들도 있고 텃밭에는 고추 오이도 익어간다.


초록의 풍경이 보이는 우리집! 에서 지금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라는 작은 책을 손에 들고 있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작품이다. 익숙하면서도 참 오랫만에 만나는 작가다. '벽장속의 치요', '타임슬립', '콜드게임', '회전목마'....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기와라 히로시와 함께 꽤 많은 작품을 만났던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 그를 만난적은 없었던듯 하니 꽤 오랫만이긴 하다. 간만에 만난 그의 작품은 두둥~~ 2016년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더이상 무슨 수식이 필요하겠는가?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 더구나 이번 작품은 '작가접 입지와 작품성이 더욱 견고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니... 기대하지 않는게 더 이상할 정도가 아닌가?


커다란 창문을 가진집! 앞에서 이런 소재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이 작품의 표제작이기도 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때문이다. 보통 이발소라면 커다란 거울이 전면을 비추는 경우가 많은데 이 특별한 이발소는 푸른 바다를 담은 유리창문이 바로 이발소의 거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작지만 특별한 이 이발소에 한 청년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발사는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 이 이발소에 담긴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숨겨졌던 과거,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가 되어야 했던 이발사 자신의 숨가쁘고 나약했던 삶을 천천히 드러낸다. 그리고 반전처럼 이발소를 찾은 이 청년의 정체가 드러난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와 함께 모두 여섯편의 작품이 담겨진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뭐랄까 읽는 내내 가슴 따스함과 편안한 느낌을 전해준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우리 아이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성인식'에서는 딸을 잃은 아빠의 마음에 완전히 감정이 이입된다. 우리 아이들이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아빠인 나는? 정말 생각만해도 끔찍하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잠은 제대로 잘수 있을까? 밥 한끼 먹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죄책감이 들까? 제발 꿈이길 수도 없이 빌고 빌었을 우리 세월호 가족분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안전하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조심스레 다시금 빌어본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찾아 가는 딸, 멈춰버리 시계를 통해 아버지를 추억하는 아들, 부모로부터 학대당한 아이들의 순수함, 소원해진 부부에게 찾아온 환상과도 같은 이야기...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는 이처럼 다양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 부부...서로 다른 관계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속에 서로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묘한 마력이 책속에 흐르고 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그 가까운 거리가 무색하리만큼 멀어지기도 하는 '가족'이라는 관계, 하지만 가족이 가진 사랑과 이해를 통한 화해의 메세지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거창하고 화려하게 에피소드들을 담아낸것이 아니다. 그저 소소하고 섬세하면서 매력적으로 이야기들을 촘촘히 써내려 간다. 과거와 현재를 살짝씩 넘나들고, 과거 이야기를 조심스레 담아내면서 담겨졌던 속마음, 속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족에게 상처받은 안타까움이 느껴지면서 내재되어 있던 나의 이야기들을 살짝 포개어 볼수도 있고, 언제나 강직하고도 무뚝뚝하기시만 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아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래전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아내의 얼굴, 엄마의 모습 또한 아른거린다.


다섯살 아들녀석은 요즘 아빠에게 매일매일 혼이난다. 물론 귀엽고 예쁘고 착하다. 하지만 밥 먹기 싫어 찡찡대고, 두살위 누나를 지겹도록 괴롭히고, 엄마 말이라면 만만하다고 생각하는지 안듣기 일쑤다. 하루도 혼이 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히기라도 하듯, 오늘 아침 등교 길에도 아빠의 눈총을 받고 말았다. 가끔은 그런 걱정이든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에게 느끼는 우리의 감정, 젊은 시절 그런 생각들을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느낄텐데... 그럼 난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고 해야하지? 반대로 딸바보 아빠에게 딸아이의 성장은 그리 탐탁하지만은 않다. 아니될말로 더이상 자라지말고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아빠는 그런 고민들로 가득하다.


'가족' 이라는 관계로 시작해서 '화해'라는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세상 누구든 가족이 아닌 사람이 없듯,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가족이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관계속의 감정과 상처, 아픔을 추억과 화해로 감동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오기와라 히로시와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오랫만에 만난 반가움에 더해,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써 나의 위치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섬세하고 안정적으로 펜끝에서 흘러나오는 여유로움이, 조금은 상처받고 얼어붙었던 우리 가슴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느낌이든다. 책을 내려놓으며 환한 미소를 가득 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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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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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단어들이 있다. 사랑, 만남, 운명 같은 우연... 영화같은 만남과 운명같은 사랑을 꿈꾸기에 현실에선 없을 듯한, 이런 단어들이 책이라는 허구속 세상에선 설레임처럼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하다. 오늘도 그렇게 설렘 가득한 책 한 권과 마주한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의 표지에는 역무원 모자를 눌러쓴 펭귄 한마리와 어딘지 모를 역을 분주히 오가는 몇몇의 사람들 모습이 눈에 띈다. 펭귄? 그리고 역? 분실물센터? 도무지 매칭이 잘 안되는 이들 조합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지 조심스레 책장을 넘겨본다.

 

"펭귄?"

놀라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지하철 역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유롭게 돌아 다니는 진짜 펭귄이 있다면? 어떻게 펭귄이 여기에? 야마토기타 여객철도 나미하마선 유실물 보관소에 바로 그 펭귄이 있단다. 그 펭귄과 함께 빨간머리를 한 모리야스 소헤이라는 매력 터지는 청년도 그곳에 있다. 눈 동그랗게 만드는 이 펭귄과 빨간머리 청년 소헤이가 지키는? 유실문 보관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만남, 우연, 운명, 그리고 사랑과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들이 펭귄 가슴 녹이듯 따스하게 펼쳐진다.

 

모두 네가지 에피소드들이 그려진다. 일년동안이나 죽은 애완묘 유골함을 가방속에 넣고 다니는 여자,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온 고등학생이 펼치는 일년만의 모험과 같은 외출, 거짓말을 밥 먹듯 빵 먹듯 해버리는 어느 주부,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는 펭귄과 빨간머리 쇼헤이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등장하면서 앞에서 펼쳐졌던 에피소드들의 작은 연결고리가 이어진다. 무슨 판타지처럼 분실물센터에서 펭귄이 펼치는 환상적인 이야기라기보다, 우연히 펭귄을 발견하고 펼쳐지는 운명같은, 혹은 판타지 같은 그들의 작은 변화가 이 작품의 전반적인 라인이 아닐까싶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있을 자리라 생각하는 게 마음이 홀가분하고, 마음으로 이어진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면 그 순간부터 혼자가 아닌거야." - '팡파르가 들린다' 중에서'  ,  P. 169 -

 

누군가는 가슴에 작은, 혹은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스스로 그것을 조금씩 꿰메어 가기도 하지만, 그냥 아픈 채로 그렇게 살아가기도 한다. 영화나 소설속에서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전후 사정을 알거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전지적 시점에서 나의 반대편에 혹은 옆에 서있는 이들의 마음을, 상태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상처받고, 후회하고, 아파하고, 당연히 눈물 흘린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소헤이와 펭귄이 있는 그 유실물 보관소처럼 우리의 것들을 찾아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의 소중한 것, 추억 가득한 것을 잠시 내려놓을 그런 곳이 있다면 어떨까? 이렇게 힘들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소헤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그런데 도대체 그 분실물 보관소에 펭귄은 왜 있는거야? 이런 의문이 드는 분들이라면 책의 마지막까지 그 물음표를 들고 읽어 나가시길 권한다.

 

요즘 '윤식당'이라는 TV프로그램을 즐겨 만난다. 정말 별것 없고 특별한 재미 역시 찾을수 없지만, 그걸 보고 있노라면 왠지모를 안정감과 여유 그리고 나도 모르게 편한 미소가 그려짐을 느끼게된다. 식당을 찾는 외국 손님들의 말과 행동속에서 드러나는 여유와 편안함이 우리의 마음 역시 그렇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그리고 그들과 이 프로그램이 만날 확율, 그 우연같은 운명 역시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음에도 사랑받는 비결을 알고 있는 듯한 윤식당의 나PD! 정말 대. 다. 나. 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의 작가 나토리 시와코 역시 그와 같이 위로와 평안을 전해주는 방법을 아는 작가란 생각이든다. 그 어떤것 하나 자극적이지도, 찐~한 색깔을 내어 놓지도 않지만, 깊이 있는 격이 다른 감동을 내어놓는 이 작품에 가슴 따스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상처와 아픔을 보듬을 줄 아는, 재미와 감동 가득한 특별한 매력이 담긴 작품이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를 통해 상처를 안고 걸어가는 많은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건네 지기를 기도해본다. 그리고 나 자신도 토닥토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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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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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나'를 내려놓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또 다른 나로 새로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반복되는 일상, 피로감에 휩쌓인 대인관계, 지우고 싶은 일들, 익숙함의 혼돈에서 벗어난 시간들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라는 이름에 덧붙여진 고유명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여행속에 담겨진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새롭고 행복하다. 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싶다.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나에서 벗어나, 기묘하고 혹은 예상치 못한 일들에 빠져들기도 하고, 특별한 '나'의 공간들로 채워가는 시간이 바로 책과의 여행일 것이다.


여행과 책, 나를 잠시 내려놓는 특별한 시간들이다. 그 시간속에는 익숙하고 평범한 나의 시간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아프고 후회스럽고 걱정되고 잊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일상이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기억술사! 어쩌면 이 이름 역시 '여행과 책'과 같은 효과를 지닌 평범한 우리들의 또 다른 바램이자 특별한 소원이 아닐까 싶기도하다. 잊고 싶은 것만 잊게 만들어주는 존재, 기억술사라는 도시전설을 파헤치는 대학생 료이치의 시선으로 그 특별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억술사는 잊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 앞에 나타나서 잊고 싶은 것만을 잊게 해준대. 잊은 사람은 기억술사가 잊게 해줬다는 사실까지 모두 잊고, 나쁜 기억은 전부 없었던 거나 다름없게 된대.' - P. 40 -


남자가 아이를 마주보고 서 있다. ... 도망쳐, 도망쳐! 료이치의 꿈은 늘 거기에서 끝난다. 그게 무슨 의미를 지닌 꿈인지 모른체 그의 꿈은 늘 거기까지만이다. 료이치는 실제로 기억술사에게 기억이 지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 세 명을 알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소꿉친구인 세살 아래 동생 가와이 마키, 그리고 두번째는 그가 좋아라 하는 학교 선배 사와다 교코,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바로... 요시모리 료이치, 자기 자신이다. 기억술사를 믿지 않았던 그였지만, 이들을 통해 그리고 자기 자신 역시 기억술사에게 당하고 나서 그의 존재를 쫓기 시작한다.



<기억술사1> '기억을 지우는 사람'은 기억술사라는 미스터리한 도시괴담과도 같은 존재를 찾아가는 요시모리 료이치의 시선으로 시작해서, 그와 관련된 몇몇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하지만 결국 중간중간 등장하는 '현재 이야기'를 통해서 료이치의 시점에서 기억술사를 찾아가는 여정을 미스터리하게 담아낸다. 누군가의 기억을 지워주는 존재, 기억술사! 기억술사의 첫번째 이야기, 로맨틱한 표지가 인상적이다. 료이치와 마키일까? 아니면 교코? 얼마전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표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표지가 마음에 쏙든다.


기억술사는... 

·기억술사는 해 질 녘에 나타난다.
·기억술사는 녹색 벤치에서 기다리면 나타난다.
·기억술사의 얼굴을 본다 해도 그 기억조차 사라지기 때문에 그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기억술사는 사람의 기억을 먹고 산다.
·기억술사가 한번 지운 기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기억술사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 앞에 나타난다.


잊고 싶은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그를 기다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 라는 표현이 너무 단정적인가? 어쨌든 잊어버리고 싶은, 아니 없애 버리고 싶은 기억 한 두개쯤은 모두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기억술사에게 그런 기억을 지워달라고 말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부끄럽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억, 되돌리고 싶은 잘못... 등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를 기억술사에게 맡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들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억을 지워달라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잘못된 것일까?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도 있을것 같다. 기억술사를 쫓는 료이치의 말에서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 하지만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도 어쩌면 몇 년쯤 뒤에는 좋은 추억으로 바뀌거나 싫은 기억인채로 있더라도 그게 계기가 돼서 변할 수 있거나... 할지도 몰라, 그렇지 않아? 하지만 지워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야... 기억을 지우는 것이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그 순간만으론 알 수 없다는 얘기야. 그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야... ' 


기억을 지우는 존재, 기억술사라는 색다른 캐릭터가 돋보인다. 기억술사라는 존재를 쫓는 료이치,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통해서 긴장감을 더해주고, 그 속에서 기묘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감성 돋는 드라마를 선보인 문체 역시 마음을 사로잡는다. 단순히 독특한 캐릭터와 이야기들로 풀어나간 작품을 넘어 '기억' 넘어의 진실과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된것도 커다란 기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오리가미 교야! 처음 만나는 이 작가, 앞으로도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름만큼 낯선 번역가의 활약 역시 기대를 훨씬 넘어선다.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나는 어떤가? 책을 내려놓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 기억술사를 소환해야 할 잊고 싶은 기억이 있었던가? 물론 당연히 있을테지만, 료이치가 말했듯 지우고 싶은 기억은 역시 그 순간에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시간이 치료해줄 수 있음을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우리 삶의 기억술사는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그 다음의 '시간'이 아닐까? '지혜는 듣는데서 오고, 후회는 말하는 데서 온다'는 말이 있다. 말을 줄이고 귀를 연다면, 아마도 우리 삶에서 기억술사가 할 일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기억술사>와의 화려했던 첫만남, 이제 더 기대되는 그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들을 기꺼이 준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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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아야세 마루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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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벚꽃의 계절이 다하고 산과 들이 푸르름을 내달리는 여름의 문턱에 차올랐다. 아직도 새벽녘의 차가움에 아들 녀석은 감기 기운이 있지만, 아빠는 한 낮의 무더위에 연신 땀을 훔치기 일쑤이기도 하다. '어느새' 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그렇게 봄을 잊어가는 계절의 한가운데 서있다.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지나가버린 봄과 어울릴만한 이 책과 만난게 바로 엇그제인데... 또 다른 계절의 문턱에서 약간의 어색함으로 잠시 잠깐 그 화려했던 벚꽃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기차길을 내달리는 신칸센, 그리고 그 주위에 흩날리는 벚꽃들!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는 그렇게 예쁜, 감성 가득한 표지를 담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섯개의 향기로운 이야기라는 수식을 담고 있는 이 책속에는 몇가지 키워드가 함께 한다. 그 첫번째는 그 제목에도 담겨져 있듯 '봄과 기다림' 이다. 목향장미, 유채꽃, 백목련, 그리고 벚꽃에 이르기까지... 다섯편의 단편들의 제목에도 담겨있던 이미지들이 봄의 향기를 더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왠지 아련한 기다림이 감성 가득하게 그려진다.


두번째 키워드는 '고향'으로 쓸 수 있을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그 곳!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서로 다른 다섯가지 이야기들이, 다르지만 그 속에서 또 같은 '고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궁극으로는 고향이라는 이름을 가지지만 그속에 담겨진 또 다른 시간들의 앙금, 흔적, 상처, 그리고 오묘한 감정들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 담고 있는 그 이미지 그대로의 그네들의 그리움이 그려진다.




세번재 키워드는 '기차, 신칸센'이다. '목향장미 무늬 원피스'는 도쿄역에서 우츠노미야역까지를, 그리고 다섯개의 단편들이, 그 뒤를 이어 후쿠시마역, 센다이역, 하나마키역, 그리고 다시 도쿄역으로 돌아오는 기차속 여정을 담아낸다.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공간속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며 나와 다르지 않은 삶의 여정들을 따라가보게 된다.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 그러다 문득, '기차여행하고 싶다!' 는 생각이 스쳐지난다.


마지막 키워드는 바로 '사람 그리고 만남'이다.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라는 제목처럼, 등장인물들은 누군가를 위해 고향을 찾고, 기다리고, 그리워한다. 할머니를, 부모님을, 외할머니댁을 각각 다른 이유에서 찾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들의 삶에서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관계'에 대한 회복을 이루게 된다. 마지막 단편인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속에 나오는 신칸센 이동매점 아가씨 사쿠라를 통해서 이 다섯개의 단편은 하나로 둥글게 연결된다.


"내가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보다는, 편안하게 해 줄테니 누군가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 저 먼 곳에서 신칸센을 타고 와 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발견한 예쁜 것을 함께 보고 즐겨 주었으면 좋겠어. 그런 걸 해 보고 싶어서 가족이 가지고 싶은 걸지도 몰라." - P. 208,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중에서 - 


손안에 잡히는 작은 책이 봄을 닮아있다. 작은 다섯개의 단편들은 서로 나름의 감정선을 숨기며 향기로운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는다. 길지 않으면서도 짧은 감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처음 만나는 아야세 마루의 여행 스케치 같은 작은 이야기들이 소소한 가슴 떨림을 전해준다. 봄에 편안하게 만나는 아주 작은 이야기!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준다면 아마도 작은 가슴 떨림이 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너무나 예쁜 제목과 표지를 담은, 그리고 따스한 감동을 전해주는 이야기와 함께해 즐거운 시간이었다. 또 그런 생각이 스친다. '아~ 아무데나 떠나고 싶다! 무. 작.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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