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떠나라!'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져버렸다. 매년 10월 둘째주 목요일, 스웨덴 한림원을 향하는 우리들의 작은 기대의 대상이기도 한 노시인을
향한 이런 비난, 비아냥이 들려오는 요즈음이다. 떠나라고 외치는 이들의 마음도 알겠고, 문학도시를 꿈꾸는 지자체의 의지도 알겠지만, 이런 비난에
상처받은 노시인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어루만질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를 노벨상이라는 커다란 빛으로 드리워줄 노시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
거기에서 쏟아져나올 아름답고 영롱한 시어들에 대한 기대는 아마도 잠시 접어두어야 할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든다.
오에 겐자부로!
'20대부터 60년 가까이 소설을 써왔지만 소설은 이제 그만 쓰겠다. 앞으로 평화문제, 삶의 문제 등에 대해 쓰며 평화를 지켜가겠다.'
2년여전 국내에서 작품 출간기념회에서 밝힌 오에 선생의 말이다. 현재 일본에서 진행중인 우경화, 우편향 움직임에 대한 문제인식에 바탕을 둔
문학인으로서 절필 선언인 셈인것이다. '익사'라는 작품의 기자간담회에서 나왔던 그의 말인데, 이 작품은 요즘에도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진 지식인이 바로 오에 선생과 같은 인물이 아닐까싶다.
이와는 정반대로 국내에서 말 한마디에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작가도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작가, 츠츠이 야스타카! 소녀상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한 망발을 서슴치 않았던 그에게 우리 국민들은 너무 실망하고 분노하지 않을수 없었다. 문학에는 다양성이 존재하지만, 편협한 시각,
그리고 내가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는 식의 표현과 정치와 역사가 개입된 옳바르지 않은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사고방식이 아닐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문학인으로의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 자긍심을 가질 만한 작가로서 박수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만엔 원년의 풋볼>은 그런 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온전히 담겨진 작품으로 말할 수 있을것 같다. 1994년 노벨상
시상식에도 언급되었듯 이 작품은 그의 작품중 최고의 작품으로 노벨 위원회의 평가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근대문학의 최고 작품으로 단연
손꼽히는 이 작품은 일본의 패전 후 15년이 지난 196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하려는 일본 정부에 반대 투쟁을 펼쳤던
'안보투쟁'의 해인 1960년의 시간이 그려진다. 학생운동가 다카시와 그의 형 미쓰사부로의 이야기가 전반을 이룬다. 전향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되는 학생운동가, 머리에 혹이 달린 아이로 인해 정신적 공황을 겪는 미쓰사부로. 한쪽 눈이 멀고, 추한 외모, 거기에 아이까지... 이
형제가 가진 아픔과 상처에 대해 치유의 손을 내미는 작품이 바로 <만엔 원년의 풋볼>인 것이다.

'눈뜰 때마다 잃어버린 뜨거운 '기대'의 감각을 찾아 헤맨다.
결여감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적극적인 실체인 뜨거운 '기대'의 감각. 그것을 찾아낼 수 없음을 깨닫고 나면 또다시 수면의 비탈길로 자신을 유도하려
한다. 잠들어라, 잠들어라,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 P. 8 -
이 작품은 백년에 걸친 세 세대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그린다. 1860년에 일어난 농민봉기가 그 첫번째 시점이다. 마을 유지들의 입장에
섰던 증조부와 반대편에 섰던 그의 동생의 투쟁이 그려진다. 1945년 세계대전 패전의 시점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쟁에서 돌아온
S형과 조선인들과의 기억이 그려진다. 마지막으로는 일미안보조약이후 안보투쟁이 격렬하던 1960년대, 1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다카시 형제의
폭력성과 수치심, 기억의 혼돈과 역사의 순환 그리고 치유라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인들에게 그리 높은 평가는 받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의 또 다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카와바다 야스나리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호응을 보이는 이들도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알려진다. 국수주의, 극우파의 득세, 과거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없는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들. 천황제에 대한 맹목적 신봉을 하는 그들에게 오에 겐자부로는 그리 탐탁스런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보편적 관점에서 일본의
역사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런 사상과 언행으로 일본의 근대문학을 이끌어온 작가가 바로 오에 겐자부로이기 때문이다.
유명 영화제에서 선택받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영화들은 보통 대중들에게 외면당하기 쉽다. 문학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재미를
위주로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한것도 사실이다. <만엔 원년의 풋볼> 역시 최근 출간되는 작품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배제할 수는 없을것 같다. 하지만 그 차이는 문학적 깊이와 그 속에 담긴 작가의 가치관과 감성을 통해 상쇄됨은 이 작품을 통해 실감하게 된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에 겐자부로라는 대문호를 품은 그들에게 조금은 부러운 맘을 숨길 수 없을 것 같다.
오에 선생은 우리 나라 작가중에서 황석영 작가를 극찬했다고 한다. '황선생의 소설은 개인의 내면을 그리면서도 사회적으로 이어져있다.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를 알게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작품세계가 다르다' 평가했다고 한다.
고은 시인의 안타까운 사건때문에 라도 스웨덴 한림원을 바라보던 우리들의 작은 기대가 주춤했던 이 즈음에, 오에 선생의 이런 극찬을 받은 작가를
바라보며 또 다른 기대에 가슴을 조려봐도 좋을 것 같다. 1960년대를 흐르던 일본인들의 수치심과 상처, 아마도 지금 우리 시대의 아픔과 상처와
조금은 닮아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이게 나라냐?'를 외쳐야만 하는 우리들의 모습! 오에 겐자부로는 이런 우리들의 상처도 어루만져주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