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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두 번 떠난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진정한 사랑은 쾌락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다림에 의해 이루어진다.-사무엘존슨
눈부시도록 푸르른 하늘이 있어 슬픈 날이 있고, 삼일 밤낮을 꼬박 내리는 비에 더
우울한 그런 날이 있다. 항상 만나면 즐거움을 주는 친구들과 있어도 한쪽 가슴은 뻥~
뚤려버린듯 한 날이 있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괜시리 몸이 아파버리는 그런 날도있다.
이별일(日)이 바로 그런 날들이다. 부푼가슴, 끝이 없을것 같던 정열, 바라보기만 하는
시선속에서도 행복이 웃음짓던 시간은 가고 잠시 정차하는 한적한 기차역을 지나온듯한
나의 모습에 씁쓸해지는 그런 날들이 있다.
사랑의 반댓말은 이별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함께 있으면서도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별이 아니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요시다 슈이치, 그의 전작인 [악인]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작품의 장르적
특성을 무엇으로 얘기할 수 있을 지부터 고민이다. 범죄 추리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정작 추리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의 범인은 중반을 흐르면서 밝혀
진다. [악인]은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정말 섬세하고 독특하고
탁월했던, 그래서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그런 작품 이었다.
<여자는 두번 떠난다>도 전작에서 그렇듯 요시다 슈이치가 담아내는 인물들의 작고
작은 행동과 심리적 변화, 흔들림, 잔상... 하나하나의 묘사가 탁월하다. 20대를 갓
지나치는 젊은 남녀들이 그리는 사랑, 아니 만남과 이별, 아니 사랑하지 않음을
그렇게 그려낸다. 젊음의 가장 커다란 특권인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담담하게 그려
나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듯, 나의 이야기를 하고있는듯하다. 11편속에
그려지는 남자와 여자의 만남, 그리고 떠나는 여자라는 스토리구조는 동일하지만
단순히 요시다 슈이치라는 유명작가가 그려내는 통속적 연애소설이 아닌, 완전하지
않은 미성숙한 젊음의 시간을 고스란히 쏟아 놓고있다. 꿈속의 이상형인 여자는 다른
한 남자와 살고있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위해 공중전화의 여자를 협박하고, 자기
파산의 여자는 그의 삶을 흔들어놓고 떠나고, 장대비속의 여자를 3일동안 굶기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평범하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을 남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여자의
모습을 더듬어낸다.
젊음으로 써내려간 여자에 대한 생태 보고서
<여자는 두번 떠난다>를 이렇게 이름붙이고 싶다. 남자들의 눈속에 비친 여자들의
모습이 솔직하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들이 그려내는 젊음의 모습은
단순히 '여자'의 모습이 아닌, '그 자신'의 모습이다. 미성숙한 남자의 눈을 통해
보인 한 여자, 떠나가는 그녀의 모습속에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는 남자, 짝사랑한 이상형에 대한 배신,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여자에세 상처를 주는 남자.... 여자의 모습을 통해 비뚤어진,
아직 미성숙하고 자기 보호적인 남자들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젊음에서 만남, 사랑이라는 것은 도착역이 아니라 잠시 머무르는 정착역이다.
그래서 만남도 쉽고, 욕망도 거대하고, 헤어짐 또한 단순하다. 하지만 젊음이란 가장
찬란한 이 순간에 그려지는 만남과 사랑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나의 모습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기에 ...
평범함 속에서 소름이 돋아날 정도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심리들을 표현해내는 작가의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요시다 슈이치식 통속연애소설로 불릴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여자는 두번 떠난다>라는 제목이 어울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여자와의 이별속에서 발견하는 젊음의 초상, 적나라하게 담아낸 인간 본성의 표현들,
요시다 슈이치가 담아낸 젊음이란 시간, 사랑이란 이름의 가벼움이 고스란히 담겨진
여름 소나기 같은 작품이다. 진정한 사랑은 쾌락이 아니라 기다림에서 이루어진다고
앞서 말했다. 쾌락만이 존재하는 젊음, 하지만 그 젊음은 기다림을 배워가는 또 다른
멋진 시간일 것이다. 청춘 남녀들이 그려낸 11색깔 사랑과 이별의 무지개, 요시다
슈이치가 전해주는 섬세한 감성들속에서 젊음, 그 추억속에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