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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1990년대 병석과 명길이라는 두
친구의 학창시절을 배경으로 헐리우드 영화에 열광하던 우리 시대의 모습을 그려낸
이 영화는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완벽하고 치밀한 대사들로 써내려간 시나리오
가 결국은 명화의 장면과 대사들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나도 헐리우드 키드한테 속았어!" 라는 병석의 말이 우리의 자화상이자
꿈을 쫓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했던 정말 멋진 작품으로 기억된다.
영화처럼,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 영화속에 간직된 소중한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영화처럼>은 오랫만에 만난 가네시로 가즈키와 김난주 콤비의 작품이다. 가네시로
가즈키... 재일교포로서 재일동포 사회와 일본사회 간의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작가다. 책속에서도 보여지지만 "극장의 어둠
속에서 우린 재일 조선인도, 재일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인간이 될수
있지."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말처럼 작가는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놓고 대화하는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청춘이라는 방황과 고뇌, 번민의 시간을
자주 그리는 그의 작품들은 아마도 그 숨겨진 벽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생각된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 에서는 세대간, 가족간의 소통을, [Go] 에서는 직접적으로
민족학교를 배경으로 일본사회와의 소통을, 그리고 이 책에서는 영화를 매개로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추억과 그 속에서 새로운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섯가지 영화,
추억, 그리고 사람들....영화를 매개로해서 웃음과 감동, 용기와 사랑, 우정과 가족애
등을 새롭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한다. 다섯가지 영화, 다섯개의 이야기는 동네
구민회관에서 상영하는 영화 [로마의 휴일]과 하나의 연결고리처럼 이어지고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주는 감동과 추억, 그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면서 새로운 이야기들
이 숨가쁘게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가네시로 가즈키가 써내려가는 다섯편의 영화가
동시 상영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추억처럼 간직되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몇 편의 영화
를 꼽는다면 중학교 시절에 처음 극장에서 보게 된 [예스마담] 이란 영화, 노란 트레
이닝복이 정말이지 예술이었던 [정무문], 누구나 한번쯤 아뵤~~~를 외치며 이소룡을
흉내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영화, 따스하고 정말 사랑 스러웠던
영화 [러브 액츄얼리],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했던 [올드보이]...
하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너무나 늦은 나이에 처음 극장을
찾게되어 만났던 첫 영화는 정말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것이다. 더구나 형과 함께
극장을 찾았던 나에게 액션영화의 즐거움보다도 잠깐 스쳐 지나갔던 베드씬이 어린
시절 충격으로 다가왔기에 선명하게 기억되는 영화였다. 요즘에야 컴퓨터를 켜면서
야~~동을 쉽게 외칠 수 있고 어디서고 낯뜨거운 장면들이 서스름 없이 보여지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그 영화를 개인적으로 액션영화라기보다 에로 영화
라고 기억하게된다. ^^ 어쨋든 개인적인 영화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것은 이 책에서
보여지는 다섯편의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와 다시 그 속에 담긴 많은 영화에 대한 작은
이야기들, 에피소드들 때문일 것이다. 영화와 같은 사랑을 만나고,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을 동경하고, 영화처럼 소설처럼 감동과 행복을 꿈꾸게하는 영화같은 작품
이다.
가네시로 가즈키라는 작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김난주의 번역이 언제나 마음을
사로잡는다. 번역된 작품이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언제나 쉽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김난주의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 대신 울어주고, 웃어주고, 불의와 싸워주는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용일의 말처럼 영화는 우리에게 절대 죽지 않은 영원을, 재미와 행복감을, 쉬우
면서도 깊이있는 감동을 전해준다. 이 책 <영화처럼>은 영화가 주는 이 모든 소중한
가치에 추억이라는 멋진 선물까지 더해주는 작품이다. 오랫만에 만난 가네시로 가즈키,
하지만 어색하고 낯설것이라는 우려는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의 전작들중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 졌듯이 이 작품 또한 옴니버스 영화로
만들어 질것같은 느낌을 같게한다. 영화처럼, 영화같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