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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가 돌아왔다. 14년만에.

밀란 쿤데라는 어느 작가들보다 삶에 대한 빛나는 통찰력이 특징인 작가라고 생각한다.

여태껏 작품을 통해 밀란 쿤데라가 보여준 삶의 '아이러니성'와 '불가해성',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립은 인간 삶의 거대한 특성은 작품에서 뒷맛이 씁쓸한 '유머'로 승화되곤 했다.

이번 소설의 제목인 무의미'라는 단어와 그의 작품들(밀란 쿤데라 그 자체로서도)은

어찌나 어울리는지!

7월 신간 중 가장 기대하는 책이다.

 

 

 

 

 

 

페소아와 페소아들 / 페르난두 페소아

 

워크룸 프레스 <제안들> 시리즈의 라인업을 처음 봤을 때 페소아의 이름을 발견하곤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불안의 서가 완역되기 전까지는 까치 출판사에서 발췌번역된

불안의 책을 읽으면서 페소아의 숨결을 조금 더 잘 느껴보고자 노력했던 게 떠오른다.

그가 생전에 쓴  글이 3만장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페소아의 다른 글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다. <제안들> 내년에도 계속 출판되길, 흥하길!  

 

 

 

 

신중한 사람 / 이승우

 

이승우 소설가의 꾸준한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 그 결과물을 언어로 옮기려는 애씀은

읽는 이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그의 '꾸준한 독자'로 남도록 유인하는 것 같다.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이승우 소설가의 문장으로 적확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6년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집이라고 하니, 6년 동안 그가 소설을 쓰면서 천착해온

문제 의식과 사유가 담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작가이니만큼, 큰 기대감을 갖고 있다. 

 

 

 

 

 아일랜드 일기 / 하인리히 뵐

 

처음에는 일기 형식의 글인 줄 알았는데, 책에 대한 소개를 읽어보니

일기와 여행안내서가 아닌 아일랜드에 관한 18개의 단편 소설이었다.

시대 배경은 2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50년이라고 한다.

수도 더블린이 아닌 시골지역을 여행하면서 하인리히 뵐이 느꼈을 감정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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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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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놀라운 것 아닌가요?

살아왔다는 것.

그것도 이 나라에서,

이 시대의, 우리로서.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스위드’는 시모어 레보브의 별명이다. 북구인의 준수한 외모를 타고나 어린 시절 ‘스위드’(스웨덴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운동선수로 활약했으며 나중에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사업가로서 자랑스러운 사회적 위치를 획득하게 된다. 그는 명성에 걸맞게 행동했다. 여유롭고 자신만만하게, 그러니까 품위 있게.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보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그것을 의식하면서, 이제까지 지나온 인생의 편평한 고속도로를 뒤돌아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한 스위드도 잔혹한 ‘인생의 무작위성’에서 열외된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무장단체에 가입해 가출한 사춘기 딸 메리가 마을 우체국에 폭탄을 설치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인 사건으로 스위드의 정상적인 생활은 파탄난다. 메리는 도망자 신세가 되고, 스위드의 완벽한 인생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 자리에 위치하기까지, 유대인으로서 미국 사회에 편입하여 뿌리를 내릴 때까지, 이방인이 아닌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믿게 된 그 순간까지, 삼대에 걸쳐 온 간절한 꿈, 그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어찌 이토록 쉬운가. 세상은 왜 이처럼 부조리한가?

 

“야구에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지 않는 속도가 있는데, 그것은 선수가 떠올랐다가 추락하는 속도다.”

 

“누군들 앞으로 벌어질 불가능한 일에 대비가 되어 있겠는가? 누가 비극에, 그리고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고난에 대비가 되어 있겠는가? 아무도 그렇지 않다. 비극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비극 - 그것은 모든 사람의 비극이다.”

 

        스위드는 자신의 아버지에 복종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메리의 반항이 낯설고 두려울 뿐이다. 자신 부부가 메리를 잘못 키운 것은 아닐까 지난날을 반추하고, 여러 원인을 만들어서 합리화해보기도 한다. 스위드는 꿋꿋하게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메리와 대화를 하려고 애쓰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끝에는 회한만이 남을 뿐이다. 열심히, 모범적이게 살아온 스위드의 삶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의 동생 제리 레보브처럼 타인으로부터의 정당화도 없이, 규약 따위는 무시하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면서 살아왔어야 옳은 삶이었을까? 정체성의 혼란, 그것이 필립로스가 천착해온 요소 중 하나인 ‘유대인’을 거들지 않더라도 미국 사회에 편입하기 위한 수많은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부분일 것이다.

    

“스위드는 삶이 가르쳐줄 수 있는 최악의 교훈을 배웠다. 삶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배우게 되면 행복은 두 번 다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없다.”

 

       이것은 완벽하게 미국 사회에 정착했다고 믿는 우월한 스위드도 주저앉게 할 만한 근본적인 것, 그것이 개인의 노력과 역량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넘어서 미국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찾아낸 것이다. 소설은 보편적으로 개인에 대해 다룬다. 그것이 한 명이든, 네 명이든 언제나 주인공이 존재하며 부조리한 -혹은 부조리함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위태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이 소설의 전형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오직 한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순히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고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 훌륭한 소설들도 존재하지만, 나는 그러한 소설의 깊이를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완전히 신뢰하기는 힘들다. 한 개인은 오직 홀로 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해 개인이 만들어지고, 그 수많은 관계들이 사회를 만든다. 한 개인이 직면한 사회는 개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영향력이 전부일 때도 더러 있다.

 

       미국의 목가의 시대배경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대 초다. 베트남 전쟁, 그에 대응하는 반전운동과 민권 운동, 성 혁명 등의 격변이 일어난 시기이다. 미국 주류 사회에 깊숙이 진입한 인물의 몰락을 이야기하지만, 미국 사회의 몰락이라는 더 큰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온전히 삶의 위기 앞에 놓인 개인의 문제라고 해석할 수 있는가? ‘스위드’라는 인물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였을까? 이 허구적인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는 공감하고, 그때의 시대 상황을 보며 알지 못하는 개인을 상상해볼 것이다. 살아 있다고 믿을 것이다. 실제로 스위드의 실제 모델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스위드’ 메이신. 소설을 읽은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지만, 만일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책에 나오는 것과 거의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의 말은, 주사위 놀음처럼 잔혹하기만 한 인생의 무작위성을 견디지 못하고 너무나도 쉽게 생의 나락을 떨어지는 인간의 근원적인 나약함을 위로해주는 듯하다. 누구나 그 상황에서는 그러했을 것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내가 이제까지 견뎌온 삶은, 그 안에서 가치를 찾기 위해 발버둥친 삶의 노력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은 자기 인생의 아이러니와 불가해성은 도처에 널려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무력할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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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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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 전부터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이 내게 특별하게 여겨졌던 이유는 '80년 5월 광주'라는 소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5.18광주민주화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 문학사에서 희귀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러 작가들이 저마다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역사적 증언에 힘을 보탰고, 그 행위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깊은 울림을 가진 메시지로 전달되어 왔을 테니 말이다. <소년이 온다>를 기대한 이유는 순전히 한강이라는 소설가의 작품이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작품 전부를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어본 그녀의 장편 단편 소설, 시집 등을 떠올렸을 때 이상하게도 그녀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상상이 되질 않았다. 한강 소설가는 내게 복잡하고 변덕스러운 '감정'의 영역에 깊이 침투해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장으로 표현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작가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강 소설가라면 먼저 5월 광주에 쓴 작가들처럼 객관적인 사실과 자료를 수집한 후 신중하게 글을 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사실적 글쓰기와 감각적 재능을 어떤 식으로 분배하여 한강만의 작품으로 소화시킬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면 얇은 종이 사이로 선연하게 그녀의 슬픈 표정이 비치는 것만 같았는데, 이번 소설에서도 그러할까?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소설이 역사적 진실을 담아낼 때는 더욱 그러하다. 모니터 속 하얀 페이지가 작가 자신의 상상력과 예술적 역량을 맘껏 펼치는 곳이 되기 이전에 사건 인식과 판단의 문제, 진실에 대한 추구, 집요함 등 의식적인 부분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학은 궁극적으로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소년이 온다>의 몇 장은 작가의 문장은 전 작품들 보다 훨씬 물기 없이 단단해진 느낌을 받는다. "나의 목소리를 되도록이면 내지 않으려고 했다"는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 생각날 정도로, 작가는 주관적인 감상을 배제시켰다. 사건과 인물에 깊이를 담고, 실제 일어난 일들을 독자에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능동적으로 '직접' 생각하고 '느끼도록' 유도했다. 어떤 부분은 심연을 떠도는 것처럼 불투명하고 감정적인 카오스를 마주하는 것 같지만, 그럴 때마다 불쑥 틈입하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문장들 (잔혹한 고문과 폭행의 장면 등)

때문에 이것이 '허구'가 아닌 '진실'임을 환기시킨다. 적확한 문장들, 그 아름다움에 목이 메는 것은 독자인 우리들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평온한 시기가 오기 이전, 누군가는 삶을 송두리째 도둑 맞았음을 말이다.

 

      소설은 단지 '집단'만을 탓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들에게 죄를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본다. 도대체 이 세계, 이 세계를 장악하는 인간 존재는 무엇인가? 인간은 근본은 대체 무엇이길래 80년 광주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왜 이 비극은 끝나지 않는가?

 

"그러니까 인간은, 근복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p134

 

그럼에도 불구하고 …….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의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4

 

       그들이 원래부터 '대단한 존재'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완벽하게 여문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하여 가해자의 위치에 서고, 침묵하는 존재들과는 다른 '예외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양심'을 행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그 외침 안에서 당당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학살의 주범의 역할을 도맡은 인간이 있는 반면에, 똑같은 상황이 주어졌어도 전혀 다른 행동으로 가슴 속 '깨끗한 무엇'을 발현시킨 인간 또한 존재했다는 희망 말이다.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 막연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고, 끊임없이 벌어지는 세계의 다양한 비극 앞에서 인간에 대한 증오와 회의를 더욱 견고하게 다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고, 끝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더 이상 낙관적인 바보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우리는 이 무력 앞에서 거짓의 단어가 된 '인간의 존엄'을 일깨워 가야 할 것이다.  잊지 않는 것이 시작이 될 것이다.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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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 - 김훈 기행산문집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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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전염

김훈의 문체를 중심으로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책을 읽는 것이 쉽게 느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환상의 통로로 들어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내심 부러워하면서도 그 말을 믿기 힘들었다. 나의 경우엔 책과 친해지는 시간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지점을 넘어야 작품을 구성하는 문체와 구성 방식 등에 익숙해져서 책을 읽는 속도가 붙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십 페이지, 백 페이지를 넘어갈 때까지 재미가 붙지 않은 경우엔 손바닥은 점점 땀으로 흥건해지고 자꾸만 딴 생각이 들었다. 이쯤에서 포기해야 할까? 조금만 더 읽어야 할까? 물론 마지막 문장을 확인했음에도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책도 있었다. 그런 책들은 ‘왜 의미도 없이 이렇게 어렵게 썼어?’ 라고 볼멘소리를 유발시키기도 하지만, 다시 읽어 봐야겠다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대부분이었다.

     보르헤스의 문학을 두고 어느 학자는 “다양한 영역을 경쾌하게 넘나드는 특유의 현학성과 단 몇 줄의 글귀에 우주를 탁월하게 담아 내는 엄밀한 내적 논리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평했다. 이 훌륭하고도 적확한 문장을 변형해 김훈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영역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특유의 탐사정신과 단 몇 줄의 글귀에 우주를 탁월하게 담아 내는 김훈의 엄격한 사실적 글쓰기는 책 넘김의 즐거움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김훈의 책을 속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보르헤스와는 다른 어려움이다. 현학적이고 난해한 탓에 종이에 메모를 하면서 따라 읽어야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훈의 글은 대상을 왜곡하거나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서 대상의 본질을 재해석하지 않는다. 사실적 글쓰기를 추구하되 대상으로부터 얻는 자신의 심상을 존중한다. 그것을 어떤 과잉의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절제하면서 서술한다.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인 정서를 섞는 것이다. 이것이 김훈의 문장을 시적인 문장이라고 함부로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다.

 

     나는 바닷가 호텔 방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저무는 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흐린 날의 그 큰 바다는 한마디로 불가해했다. 그 너머의 대안에 또다른 인간의 흔적이 있으리라는 추측이 남태평양의 흐린 바다 앞에서는 불가능했다. (…) 물결 높은 해안선 호텔의 유리창 밑까지 바짝 달려들고 있었고 파도가 인간의 생각의 화살을 튕겨내 버리는 것이어서, 생각의 화살들은 해연의 캄캄한 깊이에까지 닿지 못하고 바다의 표면에 부딪쳐 무참히도 꺾어져버리곤 했다. (…) 그 여자가 내 시선의 안쪽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옴에 따라 나는 저 저 낯선 바다, 그리고 시선과 생각의 화살이 가 닿지 못하는 해연의 캄캄한 깊이와 해풍이 멸렬하는 낯선 시간들이 마침내 나에 의하여 감지되고 인식될 수 있는, 그리하여 그 위에다 내가 하나의 삶이나 의미를 세울 수 있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조용히 그리고 분명히, 계절이 바뀌어오는 것을 느꼈다. <풍경과 상처p13>

 

     자신이 바라보는 풍경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인상주의적인 감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풍경에 대해서 말할 땐 독자 또한 풍경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풍경에 대한 ‘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묘사의 기본이 ‘디테일의 힘’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김훈에게는 ‘디테일’은 다른 식으로 적용되는 것 같다. 현상적인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로부터 오는 감정을 ‘도구’를 사용해 어떻게 사실적이고도 정확하게 쓸 것인지를 고민하는 듯 보인다. 김훈에게 ‘도구’란, 한국어다. 그는 형용사와 부사를 자주 사용하지 않음에도 단어 선택과 배치 등 표현의 힘으로도 문장이 큰 힘을 갖도록 한다.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낯선 단어들의 출현은 전혀 이질감 없이 문장 안에 녹아들어서 독자를 동요하게 만든다.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해도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이 온전히 전달된다.

     물론 그의 모든 작품이 이와 같은 성질의 일관성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설은 상황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현상만을 나열해서 마치 사건정황이 확실하게 드러나야 하는 취조서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니 말이다.

      그의 서재에는 독자가 상상하는 것만큼 많은 분량의 책은 없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이나, 애정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따로 소장해두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서재는 작업을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작업에 필요한 ‘도구’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도구’란 앞서 말한 한국어 보다 더 넓은 의미이다. 바로, 사전이다. 다양한 국가의 사전들과 어원사전들, 한자 사전을 서재에 두고 글을 쓸 때 사용하고 있다. 광부가 탄광 맨 끝까지 들어간 곳을 막장이라고 하듯이 그는 광부의 마음으로 갱도 가장 깊은 자리인 작업실이라는 막장에서 단어라는 석탄을 캐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문장은 독자들이 편하게 책을 넘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잠깐 숨을 고르면서 문장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에 홀리게 한다. 그러니까 책 넘김의 즐거움을 쉽사리 허용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한 문장에서 맴도는 즐거움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타 산문집처럼 마음을 풀어놓고 문장을 읽어나가서도 안 된다. 신문 기사 읽듯이 그냥 그대로 따라가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글이다. 그의 글의 진정한 매력은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볼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김훈은 풍경은 필시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고 봤다. 바깥에 있는 풍경은 존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상처를 만남으로써 새롭게 태어나고, 풍경은 상처의 존재를 확인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상처를 글이라는 매개를 경유해 만난다. 실제로 풍경을 만나지 않아도 문장에서 풍경을 느낄 수 있다는 어떤 경이와 마주한다. 이것은 전염에 가깝다. 아픔을 전염시키는 힘, 공명을 만드는 힘, 통각이 발달하도록 읽는 사람의 마음을 추동하는 아름다운 문장은 바로 이곳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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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나는 평일 8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고 있다. 6월과 7월, 8월 모두 휴가를 반납하고

도서관으로 피서를 떠나야 할 듯.. 실제로는 책 정리하느라 먼지와 싸움 중이지만.

각설하고, 6월에는 무엇보다 존 버거의 신간 출간 소식 때문에 들떴다.

하루빨리 읽어보고 싶은 책들.

 

 

 

킹 / 존 버거

 

'킹'이라는 이름의 개가 바라본,

유럽의 어느 도시 근교 노숙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

 

존 버거의 신간이 나왔다. 그의 나이 91세다.

 

 

천사는 여기 머문다 / 전경린

 

아름다운 문체를 가진 소설가 전경린의 소설집이 출간됐다.

그녀의 글은 차분한 호흡을 요구하기 때문에

7월 한 달,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고 싶다.

 

 

 

알로하 / 윤고은

 

윤고은 작가의 등단작부터 첫번째 단편집, 한 권의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서

출간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윤고은 작가는 참 부지런하게 글을 쓴다는 것.

윤고은 작가의 성장과정을 훔쳐보듯, 다음 소설도 기대하며 읽고 싶다.

 

 

 

나의 방랑 / 랭보

 

프랑스 천재 시인 랭보의 시집.

랭보의 시집은 여러 곳에서 나왔지만 좀 더 제대로 된 만듦새로 읽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대산지식총서에서 나오는 랭보의 시집은 소장 가치가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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