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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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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놀라운 것 아닌가요?

살아왔다는 것.

그것도 이 나라에서,

이 시대의, 우리로서.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스위드’는 시모어 레보브의 별명이다. 북구인의 준수한 외모를 타고나 어린 시절 ‘스위드’(스웨덴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운동선수로 활약했으며 나중에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사업가로서 자랑스러운 사회적 위치를 획득하게 된다. 그는 명성에 걸맞게 행동했다. 여유롭고 자신만만하게, 그러니까 품위 있게.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보는 것을 은근히 즐기고 그것을 의식하면서, 이제까지 지나온 인생의 편평한 고속도로를 뒤돌아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한 스위드도 잔혹한 ‘인생의 무작위성’에서 열외된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무장단체에 가입해 가출한 사춘기 딸 메리가 마을 우체국에 폭탄을 설치해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인 사건으로 스위드의 정상적인 생활은 파탄난다. 메리는 도망자 신세가 되고, 스위드의 완벽한 인생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 자리에 위치하기까지, 유대인으로서 미국 사회에 편입하여 뿌리를 내릴 때까지, 이방인이 아닌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믿게 된 그 순간까지, 삼대에 걸쳐 온 간절한 꿈, 그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어찌 이토록 쉬운가. 세상은 왜 이처럼 부조리한가?

 

“야구에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지 않는 속도가 있는데, 그것은 선수가 떠올랐다가 추락하는 속도다.”

 

“누군들 앞으로 벌어질 불가능한 일에 대비가 되어 있겠는가? 누가 비극에, 그리고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고난에 대비가 되어 있겠는가? 아무도 그렇지 않다. 비극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비극 - 그것은 모든 사람의 비극이다.”

 

        스위드는 자신의 아버지에 복종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메리의 반항이 낯설고 두려울 뿐이다. 자신 부부가 메리를 잘못 키운 것은 아닐까 지난날을 반추하고, 여러 원인을 만들어서 합리화해보기도 한다. 스위드는 꿋꿋하게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메리와 대화를 하려고 애쓰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끝에는 회한만이 남을 뿐이다. 열심히, 모범적이게 살아온 스위드의 삶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의 동생 제리 레보브처럼 타인으로부터의 정당화도 없이, 규약 따위는 무시하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면서 살아왔어야 옳은 삶이었을까? 정체성의 혼란, 그것이 필립로스가 천착해온 요소 중 하나인 ‘유대인’을 거들지 않더라도 미국 사회에 편입하기 위한 수많은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부분일 것이다.

    

“스위드는 삶이 가르쳐줄 수 있는 최악의 교훈을 배웠다. 삶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배우게 되면 행복은 두 번 다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없다.”

 

       이것은 완벽하게 미국 사회에 정착했다고 믿는 우월한 스위드도 주저앉게 할 만한 근본적인 것, 그것이 개인의 노력과 역량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넘어서 미국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찾아낸 것이다. 소설은 보편적으로 개인에 대해 다룬다. 그것이 한 명이든, 네 명이든 언제나 주인공이 존재하며 부조리한 -혹은 부조리함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위태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이 소설의 전형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오직 한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단순히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고 감정을 섬세하게 그린 훌륭한 소설들도 존재하지만, 나는 그러한 소설의 깊이를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완전히 신뢰하기는 힘들다. 한 개인은 오직 홀로 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해 개인이 만들어지고, 그 수많은 관계들이 사회를 만든다. 한 개인이 직면한 사회는 개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영향력이 전부일 때도 더러 있다.

 

       미국의 목가의 시대배경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대 초다. 베트남 전쟁, 그에 대응하는 반전운동과 민권 운동, 성 혁명 등의 격변이 일어난 시기이다. 미국 주류 사회에 깊숙이 진입한 인물의 몰락을 이야기하지만, 미국 사회의 몰락이라는 더 큰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온전히 삶의 위기 앞에 놓인 개인의 문제라고 해석할 수 있는가? ‘스위드’라는 인물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였을까? 이 허구적인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는 공감하고, 그때의 시대 상황을 보며 알지 못하는 개인을 상상해볼 것이다. 살아 있다고 믿을 것이다. 실제로 스위드의 실제 모델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스위드’ 메이신. 소설을 읽은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지만, 만일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책에 나오는 것과 거의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의 말은, 주사위 놀음처럼 잔혹하기만 한 인생의 무작위성을 견디지 못하고 너무나도 쉽게 생의 나락을 떨어지는 인간의 근원적인 나약함을 위로해주는 듯하다. 누구나 그 상황에서는 그러했을 것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내가 이제까지 견뎌온 삶은, 그 안에서 가치를 찾기 위해 발버둥친 삶의 노력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은 자기 인생의 아이러니와 불가해성은 도처에 널려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무력할 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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