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까뮈]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르트르와 카뮈 - 우정과 투쟁
로널드 애런슨 지음, 변광배.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13.11.07 ~ 1960.01.04]

  카뮈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은 <시지프의 신화>를 통해서 대했던 부조리와 맞선 인간의 숙명적인 반항을 찬양했던 철학자로서의 모습입니다. 많은 이들은 그를 실존주의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고자 했지만, 그는 '실존주의가 끝나는 곳에서 나는 출발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다룬 '세상과 존재의 부조리함'과 인간의 그에 대한 '반항'을 실존주의의 한 줄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카뮈 본인은 실존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더 적극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한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 여하튼 젊은 시절의 독자들에게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와 이에 반항하는 '시지프(or 시시포스)의 모습은 철학적인 깊이를 떠나 매우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의 작품 <이방인>이나 <칼리쿨라> 등도 그가 천작한 '부조리의 사상'을 펼쳐 보이고 또한 부조리한 조건에서 벗어나기 위한 험난한 과정을 표현한 작품들입니다. <페스트>의 경우도 부조리에 대한 반항과 인간의 지성에 근거한 연대를 표현한 것인데, 아마도 점령군에 대한 저항을 암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더욱 더 인기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카뮈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콩바>지의 주필로서 대독일 저항운동에 활발하게 관여했던 사실일 것 같습니다. 그의 삶의 위치는 좌파적이고 정치 참여적인 모습이었지만, 결국은 유물사관이나 혁명에 의한 과격한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에서 등을 돌리고 점진적이고 개량적인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민주주의 진영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 사르트르의 혁명과 과격한 개혁도 마다하지 않았던 자세와 대조를 이룹니다. 그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아쉽게도 1960년 1월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1905.06.21~1980.04.15]   

  무신론적 실존주의 작가이자 사상가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 사조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아직도 많은 호사가들에게는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관계가 더 관심을 끌 듯 합니다. 카뮈가 식민지 출신에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과는 달리 비록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외조부 슬하에서 자라면서 명문교육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아프리카에서의 봉사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A. 슈바이처가 사르트르의 어머니의 사촌이라고 합니다. 비록 사르트르는 부르조아 출신의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평생동안 그의 출신 계급에 각을 세우고 살았습니다. 사르트르가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존재론적 체험의 우연성을 표현한-그리고 실존주의 소설의 첫장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소설 <구토>를 통해서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하였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기도 하였지만, 전쟁 당시에는 카뮈 만큼 적극적인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지는 않았던 듯 하고, 실제로 활발한 사회 참여는 전후에 잡지 <현대>를 창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르트르는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니힐리즘의 색채가 담긴 세계관에서 벗어나 개인주의적 실존주의에 의한 사회참여의 한계를 인식하고 더 적극적이고 과격한 경향성을 띠게 됩니다. 즉 공산사회주의적인 과격한 혁명과 폭력도 용인하는 태도를 취하는데, 이러한 사상의 변화가 아마도 카뮈와의 결별에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세기 지성계의 거인, 카뮈와 사르트르  

  카뮈와 사르트르가 처음 만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사르트르의 극작품 <파리떼> 공연 때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후 선의의 경쟁과 우정을 나누던 그들은 1951년 카뮈의 <반항적 인간>이 출간되면서 파국을 맞습니다. '프랑스 해방 이후 반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정의'와 '중용'을 추구했던 카뮈와 한때 공산주의 동반자가 되어 '폭력'과 '혁명'을 주창했던 사르트르의 이념적 성향'의 차이가 <반항적 인간>의 출간을 통해서 명확해졌고,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둘 사이의 간극은 메울 수 없는' 차이를 낳게 됩니다.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누던 시기에도 자신들 고유의 사상적인 형식과 내용을 다듬어 가는데 사르트르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이 되지 않고서는 이미 폭력과 억압이 난무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관점에서 공산주의에 접근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살인이라도 주저하지 않을 '혁명가'로 변해가지만, 카뮈는 폭력에 의지하는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을 완강히 반대하는, 폭력을 절대로 정당화하지 않는 '반항인'을 창조해 냅니다. 저자는 일관되게 '혁명가'와 '반항인'이라는 이 두 인간형이 지니는 차이가 두 사람이 결별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으로 파악하며,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때로는 얼굴을 마주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서, 그리고 때로는 자신들이 몸담고 있던 잡지의 기사를 통해서 교환하던 우정과 논쟁의 궤적을 따라가다 <반항적 인간>의 출간을 계기로 폭발하여 열띤 논쟁의 소용돌이를 거쳐, 갈등과 견제 속에서 두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저자는 카뮈와 사르트르 두 명 가운데 카뮈가 더 호감이 가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카뮈와 사르트르의 논쟁은 궁극적으로 두 사람 사이의 문제라기 보다는 폭력과 혁명, 정의와 중용이라는 시대적인 가치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의 논쟁에 대한 승자를 논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사르트르일 수도 있고, 카뮈일 수도 있다"는 양시론적 입장을 취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한 현재-공산주의가 몰락한 현재-의 대답은 '카뮈가 오늘날의 승리자'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승리자라는 표현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에 어울리는가 거스르는가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카뮈와 사르트르를 분리시켰던 공산주의와 거의 모든 식민지가 사라지고 냉전의 막이 내리기는 했지만, 현시대에도 여전히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부추겼던 '폭력'이라는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두 사람의 논쟁의 역사를 통해 취할 것과 버릴 것을 배우는 지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독자로서는 카뮈와 사르트르를 각자 개인으로 만나는 것을 넘어, 우정과 갈등을 나눈 두 사람 사이의 사상적인 대화가 그들의 작품에 담겨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두 사람의 작품을 좀더 깊이 있게 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출판사 제공도서 서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