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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평전 - 순수함을 열망한 한 유령의 이야기
제이슨 포웰 지음, 박현정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데리다와 해체주의    

  로고스(logos) 중심적이던 서양 철학을 근원적으로 비판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독자적인 사고방식을 해체주의라 일컫습니다.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서구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것들 모두를 상대화시켜 새로운 사상을 구축하려던 시도로서, 비판의 대상은 미리 주어진 것으로 존재하는 '전체성'이라는 사고방식과 그 배후에 있는 신 또는 로고스를 궁극적 존재로 삼는 서구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입니다. 형이상학은 철학만이 아닌 서구 문화와 사상의 바탕이 되는 근간인데, 이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사고방식의 구축을 위해 맞닥뜨리는 해체의 대상은 사물과 말(언어), 존재와 표상, 중심과 주변 등의 형이상학적인 사고에 의해 지탱되어 온 모든 2원론적인 입장들입니다. 하지만 데리다는 자신의 해체주의에 대해서 여러 사상들처럼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공표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가장 큰 이유는 해체주의가 품고 있는 근원적인 특징에서 유래하는 것 같습니다. 해체주의의 가장 큰 목적은 '기존의 권위, 기준에 대한 다시보기'로서 기존에 있었던 것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개선방향을 고민하는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철학의 한 방식이지,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처럼 잘 정리되어 사회에 적용하고자 하는 사상적인 구조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상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결국 해체주의는 사상체계가 아닌 사유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기원(원전)과 대리보충이라는 의미도 해체주의에서 중요한 개념인 듯 한데, 기원(원전)이 순수하게 현전할 수는 없고, 우리가 기원을 대하는 방식은 문자를 통한 대리보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면에서 '순수한 기원은 없고 흔적(문자 또는 텍스트)의 기능만 있다'는 생각은 서양철학의 근간이 형이상학, 로고스에 대해 해체주의가 다가서는 주된 근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체주의 이러한 면을 상기한다면 이 책의 부재 '순수함을 열망한 한 유령의 이야기'에서 유령의 의미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눈앞에 나타나고 스쳐갔지만 결국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산산히 사라지는 유령처럼 해체주의가 대상으로 삼았던 것들은 그리 해체되어 버리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또 다른 체계나 대상이 해체주의를 통해서 생성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구조주의, 포스트 구조주의 그리고 포스트 모던니즘

  구조주의란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안에서 다른 사물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개인의 행위나 인식 등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총체적인 구조와 체계에 대한 탐구를 지향하는 사상적 경향을 일컫습니다. 세상에서 사물은 다른 사물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기 때문에 사물의 의미는 개별적으로 인식되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관계망 안에서 사물이 지니는 위치에 따라 규정되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전체 체계안에서 사물들의 관계를 기술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개개인의 행위나 인식을 포괄하고 그것들의 최종 성격을 규정하는 구조와 체계의 원리를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구조주의의 인간 주체에 앞선 '구조'의 강조는 실존주의 등의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과 대립하며 언어학에서 출발하여 문학, 인류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 거의 모든 인문사회학 분야에 확산되면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포스트 구조주의는 J. 데리다, M. 푸코로 대표되는데, 구조주의를 근간으로 그 안에서 나온 사상이라기 보다는 구조주의가 제기하는 철학적인 의미를 더 철저히 하려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를 중시한 나머지 관계라는 것을 무시했던 실존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등장한 것이고, 존재의 가치를 상대화하여 모든 것을 관계성의 틀안에서 이해하려고만 했던 구조주의의 인간 경시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으로, 구조주의와 다르게 종교와 역사의 역할을 중요시합니다. 포스트 구조주의는 고대 이래의 철학 제도에 의문을 제기한 철저한 자기비판임과 동시에 정치, 윤리적 사상의 새로운 기획으로 이해되며, 포스트 모더니즘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탈근대주의)은 1960년대에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학생운동,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제3세계운동 등의 사회운동과 전위예술, 그리고 후기 구조주의 사상에서 시작되어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 이념적 조류입니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로 부터 시작한 이성 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 말로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을 주장하여 20세기 들어서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여러 도전을 받기 시작합니다. 포스트 모던니즘을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J. 데리다, M. 푸코, J. 라캉에 이르러 시작됩니다. 철학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근대의 이성적 합리주의에 대한 반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탈이념, 광고와 패션에 의한 소비문화, 여성운동, 제3세계 운동 등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현상으로까지 확대되어 나타납니다 

 '데리다 평전 - 순수함을 열망한 한 유령의 이야기'에 대하여  

  '평전'이라 함은 어떤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른 사람이 평가하여 쓴 전기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대했던 다양한 인물들을 다룬 위인전은 자서전을 제외한다면 대다수가 일종의 평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루고 중요한 업적과 사상을 강조하는 식의 내용이 가장 일반적이겠지만, 쓰는 사람의 개성이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형식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대하다 보면 그러한 다양한 형식에서 더 벗어난 듯한 접근방식-난해함이라고 할 수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낯섦은 데리다의 삶을 따라 기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단선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가 삶속에서 형성해가는 사상적인 여정을 탐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듯 합니다. 삶 자체보다는 그의 사상적 여정과 그와 관련된 작품과 작업을 중심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의 독자에게 데리다와 해체주의, 그리고 그와 연관된 현대 철학사상에 대한 상당한 이해와 지식을 먼저 요구한다고 하겠습니다.  

 해체가 '이제껏 우리를 지배해온 전통적인 교의들의 허구성을 폭로하여 그것으로부터 남은 힘을 빼앗는 것이며, 기본적으로 체계나 정식화를 거부한다'고 이해하고, 사상의 체계라기보다는 하나의 사유방식으로서 인정한다면,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방식 - 데리다의 삶과 저작들을 따라서 그의 사상적 변화와 탐구에 담긴 그가 가진 문제의식과 열정에 찬 노력을 추적하는 방식-은 해체의 철학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해체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해체를 통해 새로운 체계를 세우거나 도식화하기를 거부했다는 사실과 모든 기원은 문자를 통한 대리보충만이 가능할 뿐 현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그의 삶과 해체주의는 유령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도 그가 허무주의로 흐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던 것은 해체를 통해 얻어지는 것, 문자를 통한 대리보충을 통해서 도래하는 것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순수함이고 그것에 대한 열정을 일생동안 불사른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의 이해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이 물음표로 남는 것은 현대철학 사상에 대한 짧은 지식과 이러한 방식의 책읽기에 연습되는 않은 연유가 클 것입니다. 데리다와 해체주의, 구조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 후기 모더니즘 등에 대한 관련 지식을 앞에서 처럼 여기 저기를 뒤적여 정리하고 이해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이 책이 저자가 데리다에 대해서 기울였던 포괄적인 고찰의 결과임을 인정한다면, 그런 노력은 주마간산의 효과도 되지 못할 듯 합니다. 결국 이 책은 어떤 이유에서든지간에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완전한 독서를 위해서는 데리다와 그의 사상에 대해 더 많은 대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숙제를 내게 남기는 그런 책이라고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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