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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소로가 말한 것처럼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p284, 맺음말 '훌륭한 국가를 생각한다' 중에서
국가, 그리고 국민. 단적으로 정의를 내리려고 할수록 난해한 문제가 되어버리겠지만, 한편으로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이들이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뭐라고 선명하게 표현하지 못할지라도, 어떤 국가에 소속된다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의 일부를 차지하고, 우리가 필요할 때 의지할 곳이 있으며, 국민인 우리들의 보호와 안전을 책임지고, 그 국가는 우리에게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부여한다는 것 등의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우리의 피상적이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듯이, 이 책의 제목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도 그렇듯 막연한 생각의 틀 속에서 국가를 생각하던 평범한 우리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입니다. 좀더 진지하게 들여다 보고 싶은 열망과 함께 말입니다.
저자는 크게 네 가지 국가론을 중심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첫번째 물음을 헤쳐 갑니다. 첫째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표현되었던 국가의 형태로, 국가를 사회계약에 근거하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받은 주체로 생각하는 '국가주의 국가론'입니다. 둘째는 로크에서 애덤 스미스를 거쳐 소로에까지 이르는 사상으로, 국가를 공공재 공급자로서 국한하여 시장경제와 대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한 '자유주의 국가론', 셋째는 국가란 단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 국가관', 그리고 넷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선과 정의를 펼치는 국가를 이상국가로 상정했던 것과 같은 '목적론적 국가관'입니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진 국가관에 대한 정리하고 할 수 있겠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네 가지 국가론에 바탕을 두고 저자가 자신의 생각- 독자들에게 국가라는 주제와 연관시켜서 현실 정치인으로서 하고 싶었을 이야기- 을 펼쳐 나가고 있다는 사실일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순수한 학문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라기 보다는 현실 정치인인 저자가 자신이 처한 현실 정치를 고민하고 그 안에서 이끌어 낸 논지를 펼치고자 한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를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뒤에 네 가지 국가론을 펼쳐 설명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연이어 던지며 국가와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갑니다.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어떻게 국가를, 국가의 기본 질서를, 국가권력의 기능과 작동방식을 바꿀 것인가?',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다르며, 진보정치란 국가를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 것인가?', '진보 정치가 국가로 하여금 실현하게 하려는 선은 어떤 것인가?', '정치인이 지켜야 할 윤리 또는 도덕법은 무엇인가?' ...... 순수하게 접근하더라도 관심이 가는 주제들이지만, 저자가 현실 정치인임을 주지한다면, 앞의 네가지 국가론을 바탕으로 물음을 하나씩 더해가면서 국가와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저자의 의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처한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서 이 책이 말하는 지향점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 아니 역으로 현실정치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곳을 이 책을 통해서 미래의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첫머리의 인용문에서와 같이 현실의 때를 깨끗이 표백한 이상을 담은 멋진 문장으로 치장-물론 마음 속의 진심이 담긴 표현이기는 하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심하게 왜곡되기가 쉬운 감성적인 표현이기에 하는 말입니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생각을 이리 대담하게 세상에 드러내어 놓고 평가를 기다린다는 점은 우리가 이전에 대하지 못했던 현실 정치인-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의 모습인 듯 합니다.
정치를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으로, 진보정치를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는 정치'로 규정하는 저자의 생각은 처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현재 우리 정치세력의 판도 안에서 진보세력의 연합의 필요와 당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국가에 대한 고찰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자신이 정치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이러한 진보연합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전하고 그 당위와 필요에 대한 이해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었을 듯 싶습니다. 그런 면을 들춰내서 생각한다면, 이 책이 독자에게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멋진 물음을 던지기는 했지만, 결국은 현실 정치인이 현 정치판도에서 진보 세력이 다시 집권할 수 있는 길에 대한 돌파구를 설파하는 방편으로 이용하고자 했다는 면에서 현실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고상한(?) 정치 팜플릿의 한계를 벗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을 밀실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들고 나와서 공론화시키려고 하였다는 점에서는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고, 결국 저자의 주장에 얼마만큼 공감하는지, 또는 유권자로서 저자의 정치행보를 얼마나 지지하고 있는지가 이 책이 가지는 한계와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진보연합에 대한 다양한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