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이매진>을 리뷰해주세요.
-
-
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가 소개한 40여편 -정확하게는 37편-의 영화 중, 실제 진지하게 끝까지 보았던 영화들을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내가 <슈렉>이라는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보았을 때, 저자가 말한 쿨미디어의 하이퍼리얼리티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이나 해 보았을까?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움직임이 자연스럽다는데서, 그리고 장화신은 고양이를 보며 '쟤가 왜 여기 나오나?' 하는 정도의 물음표를 달았다는 데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의 도입부를 붙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 말한 것만큼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못했고 그냥 아이들과 즐겁게 보며 그럴 듯 하다고 한바탕 웃어주었던 단순한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DVD로 <폴라 익스프레스>를 보았을 때도, 왠지 주인공 소년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서 느껴지던 차가움과 어색함에 대한 기억은 있지만, 이 영화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특성을 지닌 '섬뜩함의 계곡'에 빠져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매트릭스>의 기막힌 장면들 속에서도, 건물들 사이를 누비는 <스파이더 맨>의 우아한 모습을 보면서도, 케이블 TV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는 <터미네이터>의 놀라운 장면들 속에서도, 그 영화만이 주는 독특함에 대한 느낌이 있었지만, 저자가 말하는 주제들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던 듯 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영화 이야기들이 곳곳에 나오는 생소한 용어들과 함께 괜히 영화를 어렵게 뜯어보는 현학적인 글쓰기일 뿐이라는 오해를 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대한 변명일수도, 소개일수도 있는 프롤로그에서마저 그 생소한 용어들이 튀어나오며 나의 지식과 상상력의 빈곤을 자극하니, 그러한 오해와 편견은 첫인상 효과처럼 그리 시작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시네마의 내용과 형식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또 과학과 인문학의 담론이 어떻게 영화적 상상력으로 변용되는지 살펴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한' <씨네21>에 실렸던 글들이 이 책의 시작이었다는 저자의 글을 차분히 읽었다면, 분명 이 책을 대하며 '괜히 영화를 어렵게 본다'는 오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테지만, 처음에는 그런 차분함보다는 명성있는 이의 뭔가 그럴듯한 체계잡힌 영화에 대한 해설이나 분석 -물론 저자는 프롤로그에 이것은 영화 비평이 아닌 인문학적인 상상을 담은 담론의 성격을 가진 글들이라고 밝히기는 하였지만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을 기대했으니, 제대로된 스토리에 대한 설명도 없이 이런 저런 지엽적인 것들로 한편의 영화를 뜯어 분해해 버리는 글들이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저자가 말한대로 더도말고 덜도 말고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적인 담론이 영화와 만나 어떻게 표현되고 변화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는다면, 저자의 글쓰기 방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더 넓혀 줄 수는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글자체가 지닌 난해함에 대한 감정까지 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은 아닐 듯 합니다. 그만큼 저자가 말하는 주제들이 일상적인 소통의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테크놀러지와 인문학적인 용어와 개념들을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그것이 아니라면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나의 지식과 소양 부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영화들을 보면서 느꼈던 미묘한 감정이나 느낌에 대해서 저자는 훨씬 구체적인 용어와 사례들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고, 그런 부분들이 내 앎의 영역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난해하다고 투덜대면서도 굳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낸 이유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내 스스로에게 이런 식으로 영화를 뜯어볼 의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아직까지는 난 그냥 단순한 관객의 한사람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웃고 울며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출하고 싶다는 대답을 하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학적인 지식과 상상력이 가미된 디지털 기술의 변신에 대한 명확한 이해- 책을 읽으며 순간순간 지적 사치와 호기심이 충족되는 만족감을 주었던 -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내 느낌과 감정속에 묻혀서 알듯 모를 듯 모습을 숨길지라도 말입니다.
******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영화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많은 것들을 좀더 세밀하게 관찰한다면 얼마나 색다르고 깊이 있는 곳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한 자각을 준 것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영화를 좋아하는, 하지만 그냥 즐기고 말았던 사람들, 또는 영화 뿐 아니라 실제 삶속에 담긴 다른 의미들을 추구하는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모든 이는 같은 영화를 보면서 각자 다른 영화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