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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 버락 오바마 자서전
버락 H. 오바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버락 오바마. 이제는 힐러리 클린턴과 자웅을 겨루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서 더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물론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그런 인연에서 입니다. 그가 유력한 후보가 되고 나면서 그 이름이 우리의 매스컴에도 오르내리기 시작하였으니까요. 이번에 그에 대한 책 <내 아버지로부의 꿈>과 <담대한 희망>이라는 자서전이 함께 우리에게 소개된 것도 그런 관심의 연장선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두 책은 아마도 시기적으로나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더라도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담대한 희망>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의 위치에서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문제와 위선들에 대해서 질타를 가하며, 바람직하고 성숙한 민주사회에 대한 저자의 비젼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한다면,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은 그가 아직 유력한 대선후보도 아니고 흑인 상원의원도 아닌 시절에, 자신의 근원과 삶에 대한 그리고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긴 터널을 뚫고 나왔을 때 저술한 책이고, 지금의 그가 있게한 근본들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진솔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흑인이었지만 온전한 흑인도 아닌 혼혈이었고, 미국인이었지만 온전한 미국인이 아닌 아프리카인을 아버지로 둔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과 방황,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가감없는 이야기이기에 읽는 이로서는, 대선은 겨냥한 것 아닌가 하는 값싼(?)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마음 편하게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의 전부를 듣고 나면 결코 간단치 않고, 편안하지 않은 이야기들입니다. 이 안에는 뿌리깊은 인종차별의 이야기가 있고, 이혼과 재혼으로 낯선 이를 아버지로 받아들여야 했던 소년의 이야기가 있고, 방황속에서 마약과 술에 절었던 어두운 청춘의 이야기가 있고, 젊은 흑인 청년들의 삶이 자의에 의해서 또는 타의에 의해서 파괴되어 가는 절망도 담겨 있습니다. 또한 흑인과 백인 사이의 혼혈이라는 이방인의 혼돈이 있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헤쳐나가는 가슴 뿌듯한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이런 방대한 또는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할지라도, 이 책은 오바마 자신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대단한 업적을 이룬 후에 저술한 자서전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힘겨운 삶의 투쟁을 되돌아보며 남긴 회고록이나 가슴 아픈 개인과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가족사 또는 개인사 정도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부 뿌리, 혼란과 두려움의 시작'에서 시작하여 '2부 시카고, 구원을 찾아 나서다'를 거쳐 '3부 케냐, 화해의 땅'에 이르는 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 책이 자서전이든, 회고록이든 그리고 단순한 가족사의 기록이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굳이 자서전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대단해 보이는 업적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오바마는 하와이로 유학 온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내 그의 곁을 떠나 하버드 대학을 거쳐 케냐로 돌아가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함께 하와이에 남게 되는데, 그런 환경은 유년시절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도네시아로 옮기게 되고, 다시 공부를 위해 어머니와 떨어져 하와이의 외가에 보내집니다. 거기서 잠시 자신의 친아버지와 재회를 하지만, 그의 근본에 대한 어떤 답도 얻지 못하고 헤어지는 듯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흑인으로서 또는 혼혈인으로서의 방황과 방탕이 대학생활로 이어지는 가운데, 뉴욕과 시카고로 이어지는 곳에서 아마도 인생의 긴 암흑의 터널의 끝에 도달하는 듯 합니다. 시카고의 빈민가에서의 조직활동을 통한 실패와 성공속에서 공동체를 통한 자신에게 비친 삶의 빛을 깨닫고,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변화 이상을 꿈꾸어야 함을 알고 다시 비상하게 되는 것이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하는 부분이고 이 이야기의 끝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케냐 방문과 친족들과의 만남에서 그는 자신의 뿌리에 대한 큰 원이 완성되어 닫히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하는데, 아마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방황의 마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책의 내용에는 현재의 정치인 오바마로서의 대단한 업적들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시카고에서의 빈민가에서 행한 조직활동의 성공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고 하버드의 법학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자신이 꿈꾸는 공동체 사회의 꿈을 위한 담대한 희망을 품은 선택이었지만, 자신의 선택을 동료들에게 알리는 모습에서는 동료들이 적당한 성공 후에 세상의 유혹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의 시선이 혹여 있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공부를 마치고 다시 시카고로 돌아갔더구요. 자신과 가족에게 약속된 안락한 삶을 뒤로 하고 과감히 그가 약속한 곳으로 돌아간 그 순간이 아마도 이 책의 끝이 되고 또한 새로운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유력한 정치인, 신망받는 정치인으로서의 오바마는 아마 그 지점에서 탄생한 것이리라는 생각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시카고를 떠난 그때도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다른 이들에게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이 책속에 담긴 이야기는 오바마의 그런 사람됨의 과정과 깊이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오바마의 이야기를 보며, 그가 아직은 대통령으로서의 가능성이 다른 이들에 비해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인 듯 하지만, 많은 미국민들에게 희망과 열광의 이유가 되는 이유의 처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이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한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 바랐던 세상에 대한 꿈을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은 우리도 '박수만 치고 말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떠한 연유에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