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녀안나

 안나 파퀸은 1982년 7월 24일 캐나다 위니펙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뉴질랜드인, 아버지는 캐나다인이고 둘 다 모두 교사입니다.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뉴질랜드에서 자랐지요.

도대체 쇼비즈와 인연이 없어보이던 이 아이가 이 인명 사전에까지 올라가게 된 것은 순전히 신문 광고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제인 캠피언은 당시 [피아노 The Piano]에서 주인공 에이다의 딸 역을 할 배우를 캐스팅하고 있던 중이었지요. 오디션에 응모한 친구들을 생각 없이 따라갔던 파퀸은 친구들을 따돌리고 덜컥 그 역을 따내고 말았습니다. 재주도 있었지만 운도 있었지요. 파퀸은 홀리 헌터의 딸 역을 할 만큼 헌터와 외모가 비슷했고 또 그에 맞게 키도 작았습니다.

작은 아트 하우스 용 영화로 끝날 줄 알았던 [피아노]가 전세계적으로 히트하자 파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로 파퀸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뒤로는 더욱 그랬지요.

맨 처음 파퀸은 연기자로서 캐리어를 잇는다는 생각 자체를 거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연기 생활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었는지 [제인 에어 Jane Eyre],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으로 본격적인 연기 생활을 시작했지요. [아미스타드 Amistad], [결혼식의 멤버 The Member of the Wedding], [쉬즈 올 댓 She's All that], [헐리벌리 HurlyBurly]와 같은 영화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요새는 뉴질랜드를 떠나 LA에 살고 있는데 미국 영화계에 완전히 흡수된 듯한 느낌이에요.

2.

 안나 파퀸의 연기 스타일은 조금 당혹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그건 자연인 안나 파퀸과 배우 안나 파퀸의 갭 때문이지요. 자연인 안나 파퀸은 수줍고 소극적인 아이지만 배우 안나 파퀸은 표현적이고 그랜드 오페라처럼 거창한 연기를 자주 하니까요. 특히 [피아노]와 [제인 에어]가 그렇습니다.

파퀸의 이런 연기 스타일은 [피아노]에서 굳어진 것 같습니다. 파퀸의 연기 상당 부분은 헌터를 의식적으로 모방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모녀 역을 하면서 헌터의 판토마임과 같은 연기 스타일을 물려받은 것이지요. 파퀸의 동작과 표정은 종종 발레리나를 연상시킬 정도로 내면의 모든 것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무성 영화 시대였다면 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해요.

[아름다운 비행]과 [결혼식의 멤버]에서부터 파퀸은 독자적인 자기 스타일을 쌓아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수줍고 소극적인 자기 캐릭터를 자신의 표현적 스타일과 연결시킨 것입니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안맞을 것 같지만 사실 잘 맞습니다. 이 배우가 수줍은 사람들이 방패처럼 내세우는 위악과 제스추어에 도통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수줍은 사람들이 오히려 사교적인 사람들보다 더 눈에 뜨일 때가 많잖아요?

3.

 [결혼식의 멤버] 이후 파퀸은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쪽으로 관심을 돌린 것 같습니다. [쉬즈 올 댓 She's All That]의 패션 애딕트, [헐리벌리 HurlyBurly]의 가출 소녀, [올 더 레이지 All the Rage]의 성질 사나운 틴에이저는 모두 이 배우가 전에 연기했던 역과는 전혀 다르지요. 심지어 파퀸은 이번 [엑스 맨] 영화에서 만화책 수퍼 히로인 역까지 할 예정입니다! 열성적인 파퀸 팬들은 이런 행보가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지만, 전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손해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파퀸의 연기 경력에 대해 언급할 때 늘 따라다니는 건 '악센트' 문제입니다. 파퀸은 지금까지 한 영화에서 쓴 악센트를 다른 영화에서 반복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피아노]에서는 스코틀랜드 악센트, [제인 에어]에서는 영국식 악센트, [아름다운 비행]에서는 뉴질랜드 악센트, [결혼식의 멤버]에서는 남부 악센트, [아미스타드]에서는 스페인 어 악센트, [워크 온 더 문 A Walk on the Moon]에서는 브루클린 악센트... 영어권의 모든 악센트를 다 망라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이것도 다양성에 대한 집착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남의 악센트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주변 영어 사용권 국가 배우의 적응 능력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4.

 파퀸은 사생활 노출이 거의 없습니다. 매스컴 기피증이 있고요. 그 때문에 홈페이지를 돌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자료 얻기가 힘들어요. 5년 넘게 연기 생활을 해왔는데도 이 친구가 찍은 잡지 사진은 몇 안됩니다. 가끔 매스컴과의 접촉에 지나칠 정도로 과민 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이렇게 수줍은 성격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쇼비즈 세계에서 버텨왔는지 궁금할 정도예요.

그래도 스캔들에 말려든 적이 한 번 있습니다. 파퀸이 데이브 레터맨 쇼에 출연했을 때 레터맨이 농구공을 골에 던져 넣으면 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한 적 있었지요. 파퀸은 공을 집어넣고 상금을 받았는데 레터맨은 농담이었다며 쇼가 끝나자 그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했답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매스컴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고 레터맨은 허겁지겁 그 돈을 다시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파퀸은 그 돈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고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9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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