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직장인 콤플렉스

[한겨레] 미래를 여는 한겨레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비즈니스심리학


3년 전 어느 회사의 스트레스관리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각자가 효율적인 자기관리를 위해 스스로와 약속한 사항들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일과를 마친 후에 수영을 배우겠다, 커피를 줄이겠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거기에 집중하겠다 등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김 대리가 이런 다짐을 말하자,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저도 제 시간에 퇴근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무조건 통근버스를 타고 집에 갈 거예요.” 왜 그런 목표를 세우게 되었느냐고 물어봤다. 사연인즉, 김 대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누가 무슨 일을 부탁해도 거절하는 법이 없다.

자기 일이 늦어지더라도 항상 웃는 얼굴로 도와주니, 여러 사람의 부탁을 도맡곤 했다.

하지만 김 대리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남들이 착하다고 자꾸 치켜세우니,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던 것이다. “꼭 퇴근 시간 다가오면, 이 사람 저 사람이 부탁을 해요. 내일 아침까지 필요한데 이거 좀 해달라, 내가 오늘 저녁에 사정이 있으니 저것 좀 해달라… 사실 제가 거절을 잘 못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소위 이런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속으로 골병을 앓고 있다. 왜 착한 사람이 돼야 하는가. 나만 착해야 하는가. 나는 내가 착하지 못할까 봐 늘 걱정인데, 왜 당신은 남이 착하지 않을까 봐 걱정인가.

주변의 수많은 김 대리들이여, 이제 그만 착해도 된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 원하는 것을 정확히 요청할 수 있는 능력, 원하지 않는 요구는 거절할 수 있는 능력,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자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남들이 시키는 일, 부탁하는 일이라고 무조건 들어주다가는 결국 쓰러지거나 일이 펑크가 나거나 둘 중 하나다.

대체로 이런 경우, 거절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할 때, 그들을 비난하거나 거칠게 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가급적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고 직접적인 표현으로 자기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령 외판원들이 좋은 물건이 있으니 저렴하게 주겠다며 구입을 재촉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당신에게 돈은 있지만, 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럴 때 김 대리처럼 소극적인 사람은 머뭇거리다가 “저… 돈이 없어서요” 이런 식으로 답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지금 당장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되니 주소만 알려달라고 계속 접근할 것이 뻔하다. 반대로 바쁜 사람 붙잡고 왜 이러느냐고 공격적으로 대꾸하면, 저쪽에서도 사기 싫으면 그만이지 왜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오히려 화를 내기 일쑤다. 결국 김 대리처럼 했다가는 괜히 미안해져서 필요 없는 물건을 사게 되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간단하게 “저는 사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구구절절하게 사족을 붙이거나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상사가 부탁할 때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술 기운을 빌려서 담판을 짓기 전에 미리 할 수 있는 몇 가지 지침이 있다.

우선 무조건적인 예스맨은 되지 마라. 아니라고 판단되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하라. 독재자일수록 막상 단호하게 ‘No’ 하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낮추면서 말하라. “부장님은 왜 그러느냐”는 식보다는 “제가 보기에는”이라고 말을 꺼내는 게 좋다. 주어도 가려 써라. 좋은 이야기는 “부장님이 잘했다”고 말하고 나쁜 이야기는 “제가 느꼈던 바로는”이라고 이야기를 꺼내라.

흥분했을 때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마라. 항의할 때는 상사의 행동을 평가하지 말고 객관적 사실만 전달하라. 마치 자신의 말이 진리인 것처럼 말하지 말고 자신의 입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라. “당신은 왜 그러느냐?”보다는 “제가 보기에는”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하기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종민 /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drwoo@freecha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