港口人

2004. 1. 18. 일요일. 강현지 

나는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에  태어났다. 기러기 넘실대는 바닷가에서.

대대로 가업인 ‘고기잡이’운명을 타고 난 내게 가족들은

나를 '항구‘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港口라고.

바다와는 뗄레야 뗄 수 없을 것 같은 이름대로 바닷가에서 내내 가마솥에 눌러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누룽지처럼, 죽을 때까지 바다에서 살라고.

바다 외에는 어디에도 가지 말라고 말이요.

어릴 때부터 바다를 보고 느끼며 컸고, 낮이며 밤이며 바다와 놀았다.

아버지와 나들이를 할 때도 바다였고, 나의 누이들과 놀러 갈 때도 바다에 갔다.

이렇듯 나와 바다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어느덧 청년이 되어서는 아버지를 따라, 이웃집, 옆집 아저씨들을 따라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며 여전히 바다와 함께 지냈다.

그러다가 내륙지방 처녀와 혼인을 하게 되어 나와 바다 사이의 최대 고비가 온 듯 했다.

그러나 나는 우겨대어 겨우겨우 항구에서 살게 되었다.

나는 바다를 보면서 여기를, 나의 고향 바다를 곁에 두고 평생 살며 떠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나의 다짐마냥 바다와 나를 이어주는 이름도 나와 함께 있었지만, 운명은 나의 바램을 거부했다.

그 후 40년이란 세월이 흘러 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순의 나의를 홀딱 넘겨, 종심소욕 불 유거의 나이를 내일로 두는 나이가 되었다.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게 아들이와 같이 살자고 같이 살자고 했다.

나는 절대 여기를 떠날 수 없느니, 절대 떠날 수가 없다.

며 안갈 것이라고 한사코 거절 했지만,

젊은 아들의 힘에,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세상이치에 져 내륙 도시로 갔다.

1급수 물에 사는 고기가 3급수 물에서 살수 없듯이,

고래가 육지에서 살 수 없듯이.

나또한 그랬으니.

아들네에 오던 그날부터 기러기 끼룩 이는 소리와 바닷내를 맡을 수 없었다.

온 시장을 누비며, 나에게 힘을 붇독여 줄 것이라 믿었던 수산시장도 바다에서 떨어져 있는 나에겐 아무런 힘이 되어주질 못했다. 수돗물을 마시는 고기와 이미 생을 다한, 죽은 바닷내를 풍기는 생선뿐이었다. 하루가 흐르고 나날들은 자꾸 자꾸 흘러만 갔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1급수 고기가 3급수 물에서 시들시들 앓듯이,

고래가 육지에서 말라 비틀어져 가듯이 여전히 시들시들하고 여위어 졌다.   나는 걱정하는 아들내외를 위해 힘을 내어 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생명의 원천인 바다와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