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의 탄생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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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에 젊은 부부가 살았어요.

부부가 사는 마을은 예로부터 물 맑고 인심이 좋았다는 얘기가, 구청 홍보 자료에만 있었죠. 마을 개천은 공장 폐수로 오염이 되었고, 인심은 개천 물만큼이나 더러웠어요."


첫 문단을 읽고 나서, 이 작품이 '아름다운' 동화는 아니겠구나, 하는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랬다. 결혼하고 난 뒤로는 서로의 장점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며 살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부부, 그리고 그들 사이에 어렵사리 태어난 아이 '일수'. 

일수는 "수재 되어 돈 잘 벌고 돈방석에 앉혀다오." "자장 자장 일등 수재" 라는 엄마의 자장가를 들으면서 자라며 아무 꿈을 갖지 못하고, '배고파"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엄마가 밥을 떠먹여주었기 때문에 아무런 욕망이 없는 무색무취한 정확히 중간인 보통 아이로 자란다. 

아... 이런 아이들을 정말 수도 없이 키워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아이가 그저 '보통'이면 '특출난 데가 없어서' 불안해하고, 무언가 남들과 다른 데가 있으면  그것대로 또 불안해하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른 채, 그저 남들이 대세로 만든 어떤 세태에 휩쓸려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왜 보통인 아이에게 보통 이상이기를 강요하고, 특별하고 독특한 아이에게는 개성을 누르고 보통으로 살라고 강요한단 말인가... 답답할 뿐이다.


일수, 일수의 부모님, 일수의 선생님...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정확히 21세기 초반의 한국 사회를 '평균적으로' 반영하는 인물들 같다. 모두들 너무나 전형적이라서 우습다가, 어이없다가, 답답하다가... 했다.


이미 오래전에 꿈을 잃어버렸던 일수의 아버지는 또 어떤가. 일찍 세상을 떠난 일수 아버지의 무기력한 삶이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는다. 어른이 된 일수를 그나마 일으켜 세워 어디론가 떠날 수 있게 했던 건 반면교사로서의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여보, 내가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한테 제일 고마운 게 뭔지 알아?"

"나한테 별 기대를 하지 않은 거. 그래서 내가 대단해지지 않아도 죄지은 느낌 없이 살 수 있는 거."

"일수한테 너무 기대하지 마. 대단해지지 않았을 때, 엄마에게 죄지은 느낌으로 계속 살게 될지도 몰라."

"어머니가 별 기대를 하지 않으니, 당신이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거 아냐! 난 우리 일수를 당신처럼 키우지 않을 거야!"


아, 아버지가 이때 어머니랑 더 열심히 싸워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중에 어른 일수가 "아버지가 남긴 거 뭐 없어요?" 하고 물었을 때 어머니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말은 '일수한테 너무 기대하지 마라.'였다. 그래, 이게 가훈이 되면 안될 게 뭐란 말인가.


유은실의 세태풍자(?)동화 <일수의 탄생>은 지금 사회를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 그대로 반영하고 풍자하고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한 대목 한 대목들이 다 가슴을 콕콕 찔렀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았던 일수도, 그저 정해진 목표만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렸던 일석이도, 결국은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하지만 조그만 문방구에 틀어박혀 한평생을 살다 갔던 일수 아버지의 삶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이 '일수와 일석이가 왜 어른이 다 되어서 몇 년이고 헤매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자기 아이들에게 너무 기대가 많은 엄마들이 이 책을 읽고 무언가 느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미래에 기대가 클수록,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도... <바라지 않아야 바라는 대로 큰다>라는 책 제목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 뭔가 할 말이 많은데, 제대로 익어 나오지를 않아서 리뷰가 엉망이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좀더 많이 생각을 삭였어야 하는데... 느낀 바를 다 표현하지 못한 이 리뷰가 부끄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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