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다가오는 종강과 몰아치는 시험으로 제 마음도 을씨년스럽지만, 이번 겨울에 읽을 만한 책을 찾다 보니 기대가 차오르네요. 12월에 읽을 만한 11월 신간을 모아봤습니다.

 

  1. 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민음사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사회과학 논의는 서구 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완전히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서구 사회에서 나온 사회과학 이론들로 사회를 분석하면서, 때때로 우리나라 사회의 모습은 왜곡되어 나타났습니다. 사회학자 송호근이 35년간 연구한 '우리 시대의, 우리 나라의 사회과학'을 묶어 내놓은 이 책이 특히 가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와는 동떨어진 서구 사회의 딱딱한 사회과학으로 사회를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사회과학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책일듯 합니다. 11월에 나온 책 중 가장 기대되는 책입니다^^!


 

 

2. 명랑철학 - 니체를 읽는 아홉가지 키워드 이수영 지음/동녘

 

니체. 인문학을 배우지만 철학은 '너무 먼 그대'인 제게 이 현대 철학자의 이름은 너무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런 니체와 명랑이라니?! 현실의 모든 가치에 의문을 던지고, 관습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니체의 철학을 안고 살아가자는 저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제목입니다. "모든 가치의 전환"이라는 니체의 큰 주제를 바탕에 깔고, 아홉 가지 주제를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니체 철학을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지 통찰하는 이 책, 삶 속의 인문학이라는 최근 인문학 저자들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는 듯합니다. 이번 겨울을 니체와 함께 명랑하게 보내 보는 것도 좋겠네요.

 

 

 

 

3. 감히, 아름다움 김병종 외 지음/ 이음

 

이제까지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미학에서 다루는 아름다움도 물론 아름다움이겠지만, 아름다움이 꼭 그런 거창하고 어려운 개념일 필요는 없겠지요. 각계각층을 아우르는 저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찾아낸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분야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두고, 삶의 여러 영역에서 찾아낸 아름다움에 다한 다양한 이야기. 일상적이고 소소하지만, 혹은 새로운 분야의 이야기지만  '감히'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을 기대합니다. 멋진 표지나 세심한 본문 디자인도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줄 것 같습니다!

 

 

4.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 토니 클리프 지음/정성진 옮김/책갈피

 

2008년의 세계 경제 위기나 최근 일어난 월 스트리트 점거 운동, 유럽 각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99%'들의 운동은 지금의 자본주의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운동의 확실한 대안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전에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여겨졌던 사회주의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의 몰락으로 힘을 잃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과연 소련의 몰락을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소련의 정치/사회/경제를 분석함으로써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니었음을 밝히고,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를 모색하려고 합니다. 한때 미국과 함께 세계의 한 축이었지만 이제까지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소련이라는 국가를 알기에도 좋은 책일듯 합니다.

 

 

 5. 법에 갇힌 자연 vs 정치에 갇힌 인간

 클라우스 보셀만 지음/진재운 옮김/도요새

 

환경오염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시민단체부터 국제 협약까지 다양한 수준과 종류의 노력들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 노력들이 과연 정말로 보호의 대상인 '자연'을 고려한 것이었을까요? 지은이는 인간의 시점에서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주체를 '자연'으로 설정함으로써 이제까지의 환경 문제 논의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 그 중에서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인듯 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0월 출간된 책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다섯 권을 모아봤습니다. 사회과학 쪽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많이 나와서 고르는데 좀 애를 먹었네요ㅎㅎ  

 

 1. 과학철학 송상용,신중섭 외/ 창작과비평사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과학은 인간의 삶에 더더욱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과학이론의 체계, 본성, 과학기술의 가치 등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과학철학이 필요한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이 책은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19명의 학자들이 4년간 기획하고 써낸 책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현대 과학까지 역사와 철학을  넘나들며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요, 이제까지의 논의들보다 한층 더 깊고, 한층 더 넓은 관점에서 과학철학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2. 세상 끝 천개의 얼굴 웨이드 데이비스/ 김훈 옮김/ 다빈치 

세계적인 인류학자인 웨이드 데이비스가 40년 동안 세계 곳곳의 '오지'들을 찾아다니면서 남긴 글과 사진을 모은 책입니다. 저자는 작지만 소박한 문명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삶에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책 속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점점 사라져가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 '세상 끝'의 여러 문화적 다양성을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책에 실려 있는 멋진 사진들도 책 읽는 즐거움을 한 층 더해줄 것 같습니다.  

 

  3.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데이비드 버사미언, 노엄 촘스키, 에드워드 사이드, 하워드 진 외/ 강주헌 옮김/ 시대의창 

노엄 촘스키, 에드워드 사이드, 하워드 진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지성인들과 데이비드 버사미언의 대담을 모은 책입니다. "더 프로그레시브(The Progressive)"라는 잡지에 실린 인터뷰를 모은 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구 곳곳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들에 대한 지식인들의 안타까움, 그리고 폭력적인 세상에 대한 비판이 잘 드러나 있는 듯함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만 보아도 한 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이네요.

  

 4. 인종주의는 본성인가 알리 라탄시/ 구정은 옮김/ 한겨레출판 

많은 사람들이 인종주의를 제국주의 시대나 홀로코스트 때 나타났던 '낡은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극우주의자들의 테러부터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소소한 일화들까지, 다양한 사건에서 인종주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인종,인종주의,인종주의자의 오랜 역사를 살펴보면서 인종주의 자체가 특수한 역사적 배경에서 성장한 하나의 프레임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간, 그리고 '인종'간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진 오늘날의 사회에서 인종주의라는 프레임 자체를 깨트려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새로우면서도 의미있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5. 전쟁, 총, 투표 폴 콜리어/ 윤세미, 윤승용 옮김/ 21세기북스 

많은 아프리카의 나라에서는 여전히 독재, 폭력, 내전과 같은 정치적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주적인 선거 절차에 따라 대표자가 선출됩니다. 저자 폴 콜리어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난 이유를 '세계 최빈국'인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을 분석하여 밝힙니다. 형식적으로는 '선거'라는 지극히 민주적인 정치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실제 정치상황은 군사독재인 아프리카의 정치상황.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제 현실의 괴리는 비단 아프리카 나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기 신간평가단 활동 안내
<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책 읽기 좋다는 가을, 그것도 10월입니다! 9월 출간된 인문/사회/과학 분야 책 중에서 주목할 만한 책들을 골라 보았습니다^^  

 

 1.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1973년 9월 11일의 칠레,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록. 아리엘 도르프만, 파블로 네루다, 피델 카스트로, 살바도르 아옌데, 빅토르 하라 등 칠레 근현대사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1973년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를 재구성한 책이다. 1973년의 9.11과 2001년의 9.11을 미국의 역할과 관련해 함께 다룬 것도 인상적이다. 칠레의 역동적이면서도 우리나라와 닮아 있는 근현대사를 그 당시를 살아갔던 주요 인물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보고 싶은 책. 개인적으로는 지난 학기 라틴아메리카 문학 강의에서 들은 이름들이 전부 나와 있어서 신기했다^^ 

 

2. 맹신자들 

최근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극우 민족주의자의 테러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어떤 신념을 광신하여 극단적 행위까지 저지르는 맹신자들은 역사 속에서도, 현대 사회에서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지은이 호퍼는 종교운동, 사회혁명운동, 민족운동 등 여러 대중운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속성, 특히 광신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나 서구의 일부 극우 민족주의자처럼 아직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많은 맹신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한번 읽어보아야 할 책. 대중운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책의 마지막 부분은 오늘날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3. 아이콘  

나는 진중권을 좋아한다. 그는 현실의 문제를, 깊은 철학적/미학적 사유를 통해, 날카롭고 때로는 신랄하게 풀어낸다. 씨네21에 연재되던 칼럼을 묶어 펴낸 새 책 <아이콘>도 같은 맥락의 책이다. 진중권은 이 책에서도 사회적 이슈를 철학적 방법으로, 그것도 '사건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철학적 개념'을 통해 해석한다. 해석에 사용된 철학적 개념들을 이해하기 조금은 버거울 테지만,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더 깊이 볼 수 있는 시각을 기를 수 있을 듯하다.   

 

4. 사회생물학 대논쟁 

'통섭'이 대세라고 많이들 말한다. 그 중에서도 중심은 생물학의 방법으로 인간사회를 설명하려는 사회생물학이다. 그러나 '통섭'이 정확히 무엇인지, 사회생물학은 어떤 개념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각 분야의 석학들이 모여 논쟁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사회생물학자와 진화심리학자, 사회학자와 문화인류학자, 그리고 과학기술사회학자 간의 대담이라니! 논쟁에 참여한 학자들의 이름만 봐도 기대가 되는 책.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5.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또다시 철학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시 읽기다! 인문학을 공부한다고는 하지만 철학의 깊은 사유는 따라가기 벅차고, 문학의 감성에도 잘 공감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제일 어려운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 책은 읽어볼 만 하다. 삶을 그려내는 시의 아름다운 세계에 삶을 파고드는 철학의 깊이가 더해졌을 때, 보다 의미있게 시를 이해할 수 있을 듯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때의 기계적인 시 읽기에 익숙해진 사람들도 시를 읽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strella 2011-10-0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라. 맹신자들이 저런 내용이었구나. 상당히 재미있어 보이는데...

사티로스 2011-10-03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맹신자들을 꼭 이번 서평에서 읽어보고 싶네요.. ㅎ

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류와 비주류, 사회 속 경계짓기" 

  

 

 

 

 

 - 비주류의 감성을 잘 다룬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최근 ‘비주류’라는 말을 듣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비주류 정치인과 비주류 경제학자부터 비주류 예술가까지 사회의 수많은 분야에서 비주류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다. 많은 인디 음악가들은 자신이 비주류라고 외치며 비주류의 감성을 노래한다. 그러나 비주류라는 말을 정확히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단어 그대로의 의미를 따져 보자면 비주류는 주류(mainstream)가 아닌 것, 즉 큰 흐름에서 한 발짝 비켜 서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 개념 역시 모호하고 상대적이다. 비주류를 정의하기 위해 필요한 주류라는 개념 자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수가 적다고 비주류가 되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수가 많은 사람이 주류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경계짓기는 정치사회적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사회 속에서 주류와 비주류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형성된다. 우선 비주류를 주류에서 소외된 사람들로 보는 일반적 인식이 있다. 이 관점에서 소외당한 비주류 집단은 주류 사회에 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서글픔과 열등감을 느끼며, 기회를 노려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한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인공 혜주는 이와 같은 비주류 집단을 대변한다. 인천의 한 여자상업고등학교 출신인 혜주는 자신의 배경의 서글퍼하면서 서울 중심부의 큰 회사에서 일하는 엘리트 상사를 동경한다. 지금은 인천에 사는 고졸 사원이라는 비주류의 집단에 있지만 언젠가는 서울에 있는 회사의 높은 지도부라는 주류 집단에 속하기를 꿈꾸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오히려 비주류를 주류 사회를 박차고 나온 저항 집단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있다. 이는 주로 비주류 사회 내부에서 나타나는 인식이다. 이 관점에서 비주류는 자신이 비주류임에 자부심을 느끼며 자신들을 주류 사회를 보수성을 비판하는 집단으로 파악한다. 이와 같은 인식은 정치나 문화 영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인디 음악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인디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주류 대중음악의 상업성과 몰개성을 비판하며 자신들만의 감성을 담은 음악을 만든다. 대중음악에서 ‘독립된(independece) 음악’이라는 명칭 자체에도 주류 음악에 대비된 자신들만의 고유성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때때로 이러한 자부심은 주류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나타난다. 실제로 ‘브로콜리너마저’라는 한 인디 밴드는 지상파 방송이라는 ‘주류 무대’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다른 인디 음악가들에게 “상업주의에 물들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두 번째 인식은 때로 주류 사회에 대한 비주류의 직접적인 대항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비주류가 주류에 대비되는 자신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서술하면서 주류 사회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할 대안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많은 여성주의 운동은 남성 중심의 주류 사회에서 나타난 폭력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여성의 부드러운 포용 정신을 강조한다. 라틴아메리카 문학 역시 환상적 표현을 이용하여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을 통해, 침체되어 있던 이성 중심의 서구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인디 음악 역시 중독성 강한 가사와 전자음으로 가득한 주류 음악의 대안으로 진정성과 개성이 있는 음악을 추구했다. 주류 사회에 대한 비주류의 이러한 대항은 실제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이 이용된 많은 라틴아메리카 작품들은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으며 노벨 문학상을 휩쓸었고, 인디 음악계도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브로콜리너마저’, ‘10cm’ 등의 스타를 배출하면서 전례 없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주류 사회의 대안으로서 비주류의 특성을 강조하는 비주류의 대항은 언뜻 보면 비주류의 힘을 긍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관점에도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비주류 사회 역시 자신들의 ‘비주류적인’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주류 사회의 존재와 그들의 사회 주도를 인정하고 주류 담론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비주류적 가치에 대한 ‘인정’ 역시 주류 사회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비주류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다시 한 번 타자화를 겪는다.  

  앞서 언급한 인디 음악이나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한 예이다. 인디 음악이 대중음악의 대안으로 최근 각광받는다고 해도, ‘주류에게 주목받는’ 인디 음악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다. 대중가요의 깊이가 없는 가사에 대비되어 사회의식이 담긴 진지한 가사의 노래가 주목을 받고, 아이돌 그룹들의 전자음에 대비되어 여러 악기를 직접 연주해서 나오는 아날로그 사운드가 환영받는 식이다. 그런 식의 ‘대표적인 인디 음악’의 영역에 속하지 못하는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인디 음악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 역시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라틴아메리카를 현대적인 서구 사회에 대비된 미개하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바라보는 서구의 인식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가치가 인정받은 계기가 ‘주류 중의 주류’인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결국 비주류가 제 아무리 자신들의 대안적 특성을 강조할지라도 주류의 눈에서 보면 여전히 그들은 부차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비주류에 불과하며, 그러한 비주류적 가치의 ‘인정’ 역시 사회 주도권을 잡고 있는 주류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시점에서 주류와 비주류 담론의 본질이 명확해진다. 사회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 틀(frame) 자체가 결국은 사회 속 주류 권력자의 시각에서 형성된 것이다.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류 세력이 존재하고, 그에 속하지 못하는 집단은 비주류라는 관점 역시 사회 주도권을 쥐고 있는 소수의 집단에서 나온 인식이다. 사회 엘리트 집단은 자신들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론 등을 이용하여 자신들을 주류로 포장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나 집단은 비주류로 구분되어 사회 주도권에서 소외된다. 이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주류와 비주류로 사회를 나누는 담론 자체가 오히려 허상일 수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과 정치적 신념이 공존한다. 권력자의 눈으로 사회의 여러 영역을 나눈 뒤 상대적 약자를 소외시키고 타자화시키는 주류 ․ 비주류 담론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것이 주류인지 비주류인지를 따지기보다는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다양한 가치 존중의 담론’이 지금 사회에는 더 어울리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성, 저항을 넘어 전복을 꾀하다"  

<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 문학과 천운영의 '바늘' >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 여성은 언제나 비주류였고 나약한 소수자였다. 보수적인 스페인 문화가 이식되고 식민 시대를 거치면서, 또 지난한 혁명과 전쟁의 시기를 지나면서 여성은 점점 더 타자화되고 사회의 영역에서 소외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가정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만 활동을 ‘허락받았으며’,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 여성들은 자신을 ‘가장 형편없는 여성’이라고 공개적으로 폄하해야 했던 소르 후아나 수녀처럼 주류 남성들에 의해 탄압 당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남성중심주의가 가장 잘 나타난 부분이 문학이었다. 많은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여성은 가부장적 질서에 순응하는 부차적이고 전형적 인물로만 등장했고, 1970년대가 오기 전까지 문단에서는 여성 작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랜 침묵의 시간 끝에 나타난 여성 작가들은 남성중심주의 사회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 가치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전통적으로 여성적 가치나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많은 요소들을 재해석하고 그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여성 문학의 큰 흐름이자 라우라 에스키벨이나 로사리오 카스티야노스로 대표되는 “요리 문학”에 이러한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에스키벨의 작품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나 카스티야노스의 작품 「요리 강습」에서는 요리와 부엌이라는 지극히 ‘여성적인’ 행위와 공간을 새롭게 해석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주인공 티타의 요리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억눌려 있던 여성 인물들의 욕망을 해방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요리 강습」에도 주인공이 요리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으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인지하고 가부장제의 모순을 자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통적 여성상을 대변하던 요리라는 행위를 새롭게 해석하여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역시 여성 인물이 현대사의 비극을 용서하는 결말을 그림으로써 사회와 가정의 폭력으로 나타나는 남성적 가치에 대비하여 포용과 부드러움 같은 여성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요리 문학”처럼 여성의 전유물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으로는 한국 작가 천운영의 「바늘」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지독히도 못생긴’ ‘여성’이라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여성처럼 이중의 타자화를 겪고 있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외모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성적 욕망을 억압당하지만 남자들에게 문신을 해 주면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한다. 여성의 성적 욕망과 그 표출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페미니즘 문학의 궤도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작품에서 전통적 여성상의 상징적인 사물인 ‘바늘’의 의미를 전복시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집에서 바늘을 쥐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던 전통적 여성이지만, 주인공은 그 바늘을 쥐고 남성들에게 문신을 해준다. 어머니의 바늘이 섬세하고 고운 옷을 만드는 지극히 여성적인 활동을 수행했다면, 주인공의 바늘은 나약한 남성들에게 문신으로 대표되는 ‘당당함’을 선사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여성 문학에서 흔히 상상되는 섬세한 감정 표현이나 문체를 배제하고 거칠고 직설적인 문체가 사용되고 있다. 문학에서 여성과 남성의 언어 차이는 없고 오직 경험에 바탕을 둔 주제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 여성작가 로사리오 페레의 문제의식과도 맥을 같이 하는 대목이다.

   분명 일련의 “요리 문학”과 천운영의 「바늘」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사회를 대하는 주인공의 관점에서 두 부류의 작품은 크게 구분된다. 라틴아메리카의 “요리 문학” 작품들은 어디까지나 소극적 해방을 추구하고 있다. 아무리 이 작품에서 부엌과 요리의 긍정적 면모를 강조하면서 여성의 가치를 부각시킨다고 해도, 이는 애초에 남성들이 나누어 놓은 사회의 구획이다. 여성을 요리와 같은 가사 노동을 하는 존재로 여기고, 부엌으로 대표되는 집 안에 여성을 가두어 놓은 것 역시 사회의 주류인 남성인 것이다. 실제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여성 인물들은 가부장적인 사회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를 깨기 위해 적극적으로 맞서기 보다는,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여성의 울부짖음이나 정체성의 자각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여성 인물이 기존 사회구조 안에서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소극적 저항’만을 계속할 때, 요리와 부엌이라는 기존의 여성적 가치를 강조하려는 노력은 단순한 자기 위안에 그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바늘」은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단편 「무기의 교환」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두 작품은 욕망을 지닌 하나의 주체로 여성을 그린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의 기본 이념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소극적 저항을 넘어 적극적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주도권을 전복시킨다. 「바늘」에서 남성 인물들은 여성 주인공에게 와서 문신을 받고, ‘더욱 당당해진 모습’으로 나간다. 자신을 더욱 화려하고 강하게 꾸며주는 문신의 도움 없이는 강인함에 다가갈 수 없는, 나약하고 겁 많은 인물들인 것이다. 하얀 피부에 호리호리한 몸, 곱상한 외모를 지닌 801호 남자 역시 기존 문학의 남성성을 완전히 비튼 인물형이다. 반면 여성은 바늘을 쥐고 그러한 남성들에게 문신을 그려 줌으로써 남성을 보다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바늘이라는 기존의 여성적 소재, 그리고 수동적인 여성상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며 남성성을 더해주는 여성의 모습으로 완전히 뒤집어져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어머니가 스님을 죽일 때 쓰이기도 한, 그 가늘고 얇은 바늘은 이 과정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가 된다. 여성의 손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가 들려 있고, 남성은 수동적으로 그 여성이 창조하는 문신을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남성 중심적 질서는 전복된다.

  발렌수엘라의 단편 「무기의 교환」에서도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되찾고 마침내 주도권까지 잡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라우라는 게릴라 활동을 하는 인물로, 로케 대령을 암살하려다가 오히려 발각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더러운 전쟁‘시기 아르헨티나의 군부를 대표하는 로케 대령은 라우라를 자신의 아파트에 가두어 놓고 성적 노리개로 삼는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계속될수록 라우라는 점점 자신의 의식을 되찾게 되고, 나중에는 로케 대령과의 성적 관계를 주도하게 된다. 남성적 폭력성으로 상징되는 군사 독재 시기, 그것도 고위직 군인과의 관계에서 여성이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무기의 교환」의 결말 부분에서, 로케 대령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완전히 자신을 되찾은 라우라의 손에 총을 들려준다. 이 총은 「바늘」의 여성이 손에 들고 있는 바늘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바늘」의 여성 인물이 오히려 전통적 여성상의 상징이었던 바늘을 쥐고 주도적으로 남성 위주의 세계를 전복시킨다면, 라우라 역시 그 총을 들고 독재 군부의 폭력성이나 대령 같은 인물을 통해 대표되는 남성적 가치의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존 질서의 재해석과 전복의 미학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등장하는 식인종 ‘칼리반’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인식 변화와도 연결된다. 이 시점에서 발렌수엘라의 페미니즘 문학은 현실성과 사회성을 획득한다. 쿠바 혁명 이후 탈식민주의가 확산되면서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은 칼리반의 이미지를 주인에게 저항하는 원주민 ․ 식인종으로 새롭게 생성해냈다. 서구의 지배자 ․ 주인을 먹어치우는 식인종의 모습을 상정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야만적으로 보는 서구의 식인문화담론을 도발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칼리반의 모습은 동시에 서구 식민주의의 역사와 남아있는 서구중심주의의 잔재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남성중심주의를 주도적으로 전복시키는 발렌수엘라의 단편을 적용시킬 수 있는 대목이다.

  발렌수엘라는 자신의 에세이 「인류학과 페미니즘」에서 남성중심적 질서의 확립 과정을 밝히고 있다. 태초에 여성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가면’을 만들 수 있는, 또 언어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였지만, 그것을 시기한 남성들이 여성들을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을 중심으로 권력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바늘」과 「무기의 교환」에서 나타난 여성상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집 안에서 한숨만 쉬면서 애써 가사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소극적 저항에서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바늘을 쥐고, 또 가끔은 권총을 쥐고 적극적인 전복과 반역을 꾀함으로써 이 여성들은 예전에 잃어버렸던 자신들의 가면과 언어를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