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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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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지금 『맹신자들』을 읽어야 하는가?
 

“맹신자는 도처에서 행군하면서 전향하고 저항함으로써 자기 형상대로 세계를 빚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와 한편이 되건 반대편이 되건 그의 본성과 잠재력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 서론 중에서 


   1951년. 전체주의와 2차 세계대전의 광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세계에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 새로이 시작되고 있었다. 떠돌이 노동자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는 20세기 전반의 세계를 이끈 대중운동의 본질적 특징과 그 전개 과정을 냉철하게 통찰한 책을 써냈다. 대중운동에 대한 간명하고 독창적인 분석이 가득한 그 책이 바로 『맹신자들』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1951년 즈음처럼 광신적 대중운동이 사회 전면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2011년 지금의 이 세계에서도 여전히 ‘맹신자들’의 대중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멀게는 노르웨이 테러 사건으로 서구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모습이 불거졌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는 여전히 종종 신문 국제면을 장식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민주화 운동 등 대중운동으로 인해 혁신적 사회 변화를 이루었고, 한때는 이념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대중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촛불 시위나 SNS의 확산 등 대중정치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동시에 포퓰리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점점 대중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지만 대중의 정치적 수준에 대한 논란이 많은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대중운동을 다룬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 저자 에릭 호퍼는 대중운동의 특성과 작용 방식에 나타나는 본질적 유사성을 파헤친다. 대중운동은 현재 사회에 분노한 사람들이 품고 있는 변화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는데, 이들은 미래에 대한 무모한 희망과 권력의식 때문에 대중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저자는 ‘좌절한 사람들’을 대중운동의 주요 참여자로 언급한다. 본래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집단이 무너지면서 갑자기 소속감을 잃은 고립된 개인들, 자신을 보잘것없게 여기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중운동은 권력에 대한 확신과 소속감을 제공하고, 이에 따라 대중운동의 주요 특성은 단결, 자기희생, 광신으로 나타난다. 대중운동을 부추기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는데, 이들은 개인에게 좌절한 사람의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독립성을 제거한 뒤 열광적으로 집단의 목표에만 매달리게 한다.

   에릭 호퍼는 이 책에서 1951년 당대의 사건과 역사적 사건을 두루 고찰하여 대중운동의 특성과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대중운동에 대한 통찰은 상당히 날카로우면서도 참신하다. 저자는 단순히 대중운동 자체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나타나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 사회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고도 새로운 분석을 보여준다. 급진주의자나 보수주의자 등 특정 성향의 사회 구성원이 사회 상황에서 보여주는 성향이나 빈민층의 보수성에 대한 언급,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는 지식인의 동력이나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양 극단의 사람들이라는 분석 등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대단히 흥미롭다. 인간이 갈망하는 것에 대한 분석이나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에 대한 개인의 도피 등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도 참신하다.

   그러나 저자가 스스로 밝혔듯(94쪽) 이 책에 드러난 저자의 생각이나 역사를 분석하는 시각에는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고 사실을 간과한 부분도 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말하는 경우도 있고, 글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다. 논리적으로 명쾌한 연구 논문이라기보다는 저자가 깊이 고찰한 대중운동의 단상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러한 글의 형식적 한계가 『맹신자들』의 가치를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저자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했듯이, 대중운동은 변혁과 발전의 주된 계기가 된다. 대중운동은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중요한 동력이 되었고, 새로운 형식의 대중운동이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도 다시금 일어나고 있다. 『맹신자들』대중운동의 휘몰아치는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든 그에 반대하는 사람이든 대중운동은 하나의 흐름이며, 대중운동 자체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것은 그 흐름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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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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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현실과 소통하다 - 칠레 현대사와 민중가요, 시, 문학" 

<"영혼의 집"- 이사벨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의 시, "칠레의 밤""부적"- 로베르토 볼라뇨> 

우선 제목에 대한 변명부터 시작해야겠다. 이 글의 ‘노래’는 보통 말하는, 가락이 붙은 노랫말을 가수가 부르는 형식의 노래만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문학 작품은 결국 ‘노래’이다. 작가는 현실 상황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노랫말로 전하고 자신만의 문학적 변주를 통해 가락을 붙인다. 노래는 현실 속에서 태어나고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민중의 힘을 더해주고 역사의 슬픔을 위로한다. 사회주의 아옌데 정부의 집권부터 1973년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 그리고 이후 이어진 17년간의 군부 독재까지. 역동적이면서도 슬픈 현대사를 간직한 칠레의 노래들이 유독 깊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칠레 현대사의 흐름에서 탄생한 노래들을 민중가요, 시, 문학의 순서대로 범위를 확장시키면서 다루려 한다.

  거듭 강조하듯, 노래는 현실에서 태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칠레 현대사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류의 노래들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굴곡진 역사를 명확히 반영하고 있다. 1970년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의 아옌데 정권이 집권하고,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 정치를 선언한다. 이는 사회주의의 확산을 우려한 미국과 이전까지의 기득권층의 반발을 부른다. 결국 1973년 피노체트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죽는다. 이후 17년 동안 군부 독재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고 고문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등 인권유린이 자행된다. 야만적인 억압의 시대는 1990년이 되어야 끝이 난다.

  칠레의 노래들 중 대부분은 앞서 말한 사건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가장 작은 범위로 민중가요가 있다. 아옌데 정부가 집권한 ‘칠레 혁명’부터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까지 역동의 세월을 직접 관통한 빅토르 하라(Victor Jara)의 노래들이 대표적이다. 사회의식이 강한 노래를 통해 민중과 소통하고 사회주의 운동에 실제로 참여한, 그리고 쿠데타 직후 군부에 의해 살해당한 빅토르 하라는 쿠데타 아래 스러져 간 저항 세력들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빅토르 하라가 살해당하기 직전 국립 경기장에서 쓴 노랫말은 당시의 비참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마지막까지 불렀다는 ‘우리 승리하리라(Venceremos)’는 아옌데 정부,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칠레 민중가요이기도 하다. 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의 소설 『영혼의 집』에 등장하는, 블랑카의 연인 페드로의 모습에서 기타 하나를 들고 민중의 편에 서서 노래하는 저항 가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민중가요 곡에서 가락을 떼고 보면 한 편의 시가 된다. 칠레 시의 중심에는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가 있다. 그 자신이 공산주의자였던 네루다는 다양한 민중시를 자신만의 아름다운 문학적 감수성으로 써냈다. 네루다의 시 세계는 사랑을 노래하는 시부터 삶에 대한 회의를 담고 있는 시, 그리고 정치적 신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시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네루다의 정치적 신념과 민중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뛰어난 문학성은 네루다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칠레의 ‘국민 시인’으로 만들었다.

  시에서 함축적으로 전하고자 했던 말을 구체적으로 풀어 놓은 것이 소설이다. 이 시점에서 노래는 문학 전반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나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이 칠레의 현실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볼라뇨는 그의 소설 『부적』과 『칠레의 밤』등에서 군부독재 하의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부적』에는 억압적인 현실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고, 『칠레의 밤』에는 군부 체제에 유착하거나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칠레 문인들에 대한 비판이 드러난다. 그 자신이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친척이며 망명자인 아옌데는 소설 『영혼의 집』에서 페미니즘적 시각과 마술적 사실주의의 기법을 통해 칠레의 역사를 그린다. 특히 사회주의 대통령의 탄생에서 쿠데타 직후까지를 그리는 작품의 후반 부분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보수파의 대표자 격인 에스테반 트루에바나 사회주의 혁명가인 페드로, 그리고 학생운동을 하는 미겔은 당시의 사회를 명확히 반영하는 인물이다.

  현실을 반영한 노래는 현실 속에서 움직인다. 칠레 역사 속에서 노래는 크게 ‘현실에 대적하기’와 ‘현실을 위로하기’라는 두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노래는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처하는 수단이 된다. 노래는 민중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억압적 현실을 비판하고, 보다 많은 사람의 참여를 위해 민중을 선동하며, 그 힘을 모아 부당한 현실에 저항한다. 볼라뇨의 소설은 군부독재 시절 칠레 사회, 그 중에서도 기득권층을 차지한 문인들을 비판한다. 네루다는 거친 목소리로 “와서 거리의 피를 보라(『제 3의 거처』-「그 이유를 말해주지」)”며 예술성에만 치중하는 문학을 비판하고 현실 참여를 촉구한다. 쿠데타가 일어난 1973년 네루다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시를 읊으며 저항 의지를 다진다. 어디선가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빅토르 하라의 우렁찬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쿠데타 직후 집에 침입한 군인에게 네루다가 한 말은 현실 상황에 대적하는 노래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신들에게 위험한 것이라고는 이 방에 단 하나, 시밖에 없소.”

  노래는 슬픈 현실을 위로하고 그 속에 쌓인 민중의 한을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고통스러운 역사 속 민중들이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하고, 그 한을 위안하고 씻어주며, 끝내는 역사의 앙금을 딛고 화해를 추구한다. 볼라뇨의 소설 『부적』에서 화장실에 갇힌 시인 아욱실리오는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고 과거의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계속해서 시를 읊는다. 군부독재가 끝내 종식된 1990년 3월 혁명가들의 한이 서린 칠레 국립 경기장에는 쿠바 민중가수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노래 “이상한 사람”이 울려 퍼졌다. 빅토르 하라에게 바쳐진 이 노래는 슬픔과 고통의 지나간 시절을 회고하고 희생자의 한을 삭이는 ‘씻김굿’의 역할을 했다. 군부 독재가 끝나고 사회 분위기가 많이 자유로워진 현재의 칠레에서, 노래는 역사적 슬픔을 딛고 대립되는 세력 간의 화해를 찾기도 한다.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보수 세력과 아옌데를 기리는 진보 세력의 대립이 계속되는 ‘한 지붕 아래의 두 집’ 칠레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사회 통합의 상징으로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사랑받는다. 이사벨 아옌데도 『영혼의 집』의 결말부에서 보수파인 에스테반 트루에바와 혁명가 연인을 둔 손녀 알바의 화해를 그림으로써, 보수와 진보 사이의 공존을 모색한다.

  물론 이 역할 분류가 절대불변의 것은 아니다. 현실 상황에 따라 노래의 역할이 달라질 수 있고, 한 노래가 여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는 비단 칠레 역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다. 한국 현대사에서 ‘아침 이슬’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과 같은 민중가요들이 지닌 의미 변화가 대표적이다.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의 한국에는 빅토르 하라와 같은 전설적인 저항 가수는 없었지만, 시대 상황 속에서 대중의 목소리를 내는 민중가요는 존재했다. 시위가 한참일 때 울려 퍼지던 노래들은 참여를 촉구하는 저항과 선동의 노래였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한참이 지난 지금 두 노래는 민주화 운동을 회고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위안의 노래이며, 굴곡진 역사에 대한 한이 서린 노래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마지막 장면에 울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사건 전체를 효과적으로 대표한다. 이와 같이 칠레 현대사 속의 노래들이 맡은 역할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노래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작사자가 가사를 쓰고 작곡자가 음을 붙이지만 결국 노래를 부르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의 입이다. 노래를 만드는 사람, 즉 작가가 사람들에게 정하고 싶은 말을 가사에 담고 자신만의 색채로 가락을 붙이면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민중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꽤 오래 전에 발표된 빅토르 하라의 노래들은, 네루다의 시는, 볼라뇨와 아옌데의 소설은 아직도 그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지구 반대편 국가의,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로 쓰이고 불린 노래들이 무언가 가슴을 울리게 하는 이유는 칠레의 슬픈 현대사가 한국의 현대사와 상당히 닮아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노래 안에 담긴 작가의 생각과 그 노래를 부른 민중의 목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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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찬가 - 정글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
조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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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여기, 지금의 진보를 위하여 - 진보 지식인의 눈으로 현실 읽기" 

(조국, "보노보 찬가", 생각의나무, 2009) 

  제목을 장식한 보노보는 아프리카의 열대 밀림 속에 사는 영장류의 한 종류이다.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와는 서식지도 생김새도 많이 닮았지만, 정작 그들이 이룬 사회의 모습이나 그 속의 생활양식은 완전히 다르다. 침팬지 사회에서는 경제적 이득이나 권력을 둘러싸고 공동체 내부에 경쟁과 권력 싸움이 일어나고, 그 사이에서 구성원들의 권리는 무참히 짓밟힌다. 그러나 보노보 사회는 평화와 상호 공존, 그리고 평등을 지향하며, 구성원들 간의 갈등 해결은 무력 충돌이 아닌 사랑과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폭력적인 ‘침팬지 사회’와 평화로운 ‘보노보 사회’의 대비 구도는 이 책에서 현대 한국의 상황을 표현하는 중요한 비유로 쓰인다.

   조국 교수가 『보노보 찬가』를 쓴 2009년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반쯤 지난 때였다. 그 1년 반 동안 사회 전반에서는 노동, 복지, 평화, 인권과 같은 진보적 가치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기업 친화적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적 ․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졌고,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미덥지 못한 모습은 수많은 시민들을 촛불 넘실거리는 거리로 불러냈다. 저자는 이렇게 인권이나 복지 등 기본적 가치가 경시되고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를 ‘침팬지 사회’에 비유하여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2011년 5월, 이 책이 나온 지도 또 1년 반이 흘렀다. 서울에서 개최된 G20 회의는 한국이 신자유주의를 충실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연달아 터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은 한반도의 평화를 다시금 위협했다. 진보 진영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각 세력 간의 분열도 계속되어 지방선거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두고 많은 논란이 빚어졌다. 결국 그 이후로도 한국 사회는 그리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현재의 진보 진영에 대한 진보 지식인의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다. 현대 한국 사회의 진보는 완전히 새로운 정치 체제를 만들겠다는 너무 큰 목표만을 바라보다가, 혹은 투쟁과 엄숙한 시위라는 너무 낡은 방식과 구호만을 고수하다가 대중과 유리되어 버렸다.

   조국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고 ‘보다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침팬지의 정글 세계, 즉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의 한국 사회 비판이 전반부의 내용이다. 저자는 현 상황의 위기를 다양한 측면에서 진단하고 있는데, 노동과 복지 문제, 평화 문제, 그리고 인권 문제가 주요 쟁점이다. 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고 금융세계화가 진전되면서 한국 사회도 경쟁논리가 지배하는 ‘정글’이 되었고,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 다른 사회적 가치들을 상품화시키고 있다. 노동 문제는 더 심각해서 비정규직은 점점 늘어나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현 정부 하에서 거의 소득이 없다. 청년실업은 점점 늘어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복지 정책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진영이 집권하면서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평화 구도에도 문제가 생겼고, 촛불시위를 진압할 때 등의 상황에서는 이전 두 정부보다 훨씬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배려는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을 가속화시킨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책의 전반을 구성한다.

   모두가 공존하는 보노보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보 진영이 구체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내용이 책의 후반부를 이룬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이전까지의 진보정당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보수당에 대비되어 대안세력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고, 진정한 대안으로서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 진보 진영 자체에서 목적과 행동 방식을 변화시킬 것을 촉구한다. 이전까지 큰 목표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진보적 가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여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복지 정책을 확대하며, 평화를 위해 남북 관계 개선과 탈권위주의를 추구하는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들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유권과 사회권, 그리고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의 인권까지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단순히 현실 한국 사회와 그 사회 기득권층인 보수 세력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서, 진보 진영 내부의 시선에서 현실을 명확히 파악하고 한국 진보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의의이다. 이제까지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은 보통 그 상대편인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때때로 합리적 비판보다는 비합리적 비난만이 오가곤 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현대 한국의 진보를 비판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조국 교수 자신이다. 진보적 가치를 옹호하고 그 가치가 현실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는 사람의 눈으로 진보 진영 내부를 바라볼 때 진정어린 비판과 조언이 가능하다.

   저자의 현실 비판은 또한 단순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보노보 사회’라는 하나의 지향점으로 이어진다. 이제까지의 진보 진영이 오래된 구호와 큰 목표만을 바라보고 보수 세력에 투쟁해 왔다면, 저자가 지향하는 진보 진영 모습은 평화와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유쾌한 보노보들이 서로 대등하게 만나 기득권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 보노보 사회에서는 큰 목표나 시대착오적이고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과격한 구호 대신, 지금 여기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 요소들이 저항의 중심이 된다. 이전까지의 진보 진영에서의 주장과는 달리, 비정규직 문제 등 보다 ‘촛불 정국’의 현실에 맞고 융통성 있는 새로운 진보 담론을 제시했다는 것에 이 책의 중요한 의의가 있다.

   물론 이 책의 이러한 성과는 또 다른 한계점을 안고 있다. 우선 조국 교수가 현재의 진보 진영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며 비판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진보주의자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금의 진보 세력의 시각에서 보면 저자는 엄연한 기득권층이며 사회 엘리트이다. 이제까지 사회 진보를 위해 ‘투쟁해 왔던’ 현재까지의 진보와는 다른, 일종의 외부인의 시각인 것이다. 실제로 노동 현장에 투신한 적 없고 복지가 필요할 만큼 빈곤한 상황을 겪어 보지 않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미국 유학파 교수가 현재까지의 진보 진영의 움직임을 얼마나 진정성과 치열함을 갖추고 바라볼 수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사회적 ․ 경제적 배경이 그 사람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설령 저자의 주장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해도, 민중해방운동이나 노동 운동 등 ‘프롤레타리아’가 중심이 된 운동을 펼쳤던 이전의 진보 진영에서 ‘좌파 부르주아’이자 외부인인 저자의 주장을 진정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저자가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교수의 신분이라는 점도 비슷한 문제 요소로 작용한다. 저자가 이 책과 이후의 저서에서 비판과 조언의 진정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사회 현실과 진보 진영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자칫 사회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될 수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자칫 사회와 동떨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딜레마는 이 책의 두 번째 한계점과도 연관된다. 과연 조국 교수가 이 책에서 추구하는 ‘보노보 사회’를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조국 교수는 이 책에서 현재의 진보 진영이 대중에게 생소하고 실천 가능성이 낮은 목적, 즉 ‘크고 낡은 깃발’만 내세운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타당한 비판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노보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 몇 가지 요소 역시 이전에 진보 진영에서 제시한 담론보다는 훨씬 구체적이다. 이러한 주장을 저자가 원래 추구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으로서의 진보 세력(70면)”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제시해 주었지만, 정작 어떤 정치적 방법을 통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 앞서 지적한, ‘직접 행동하는 정치가로서의 조국’이 아니라 ‘비판하고 조언하는 외부 지식인으로서의 조국’의 정체성이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국 교수의 목소리는 현재의 진보 진영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비록 외부자의 시선이라도, 혹은 ‘강남 좌파’라고 때로는 비난받는 기득권자의 비판이라도 한국 진보 진영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상당히 냉철하고 또 유익하다. 저자가 맺음말에서 거듭 지적하듯 “한국 사회는 롤링 같은 부자나 진보나 인권을 위해 뛰는 하버드 졸업생 같은 젊은이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198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조국 교수가 ‘부르주아 좌파’인지가 아니라, 그 “‘위선’과 ‘가식’(198면)”을 지금 행동에 옮기고 있느냐이다. 최근 몇 년간 저자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배신(199면)”을 계속하며 직접 행동하고 있는 저자의 노력은 자신을 위해서도, 한국 사회를 위해서도 헛되지 않은 듯하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피 끓는 혁명가는 물론 필요하지만, 그 과정을 냉철히 지켜보고 따끔히 충고하는 지식인 역시 언제나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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