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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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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란 정말 되풀이 되는 것일까?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인류의 잘못된 행동들이 어떤 결과들을 초래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똑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처음 출간 되어 전 세계에 환경을 이슈로 전폭적인 사회 운동을 촉발시킨 지 먼 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과역 역사적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고 있다고 떳떳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그녀의 분노의 목소리에 우리는 여전히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당시 카슨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며 동시에 가장 큰 환경 문제는 'DDT' 이었다. DDT란 [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의 약자로 유기염소 계열의 말라리아와 티푸스를 방지하는 살충제이자 농약인데, 그 효과가 뛰어난 평가를 받아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이다 못해 무분별하게 사용되었다. 그 결과로 생태계가 큰 위험에 처하게 됐음을 보고 카슨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녀의 주장은 단순히 DDT가 나쁘니까 금지시켜야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더 돌아가면 더 안전한 방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효율성만을 다지며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비판한 것이었다. 효율성만을 따지기엔 자연은 인간에게 너무 소중하고 두렵기도 한 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라고 카슨이 말했다. 그녀는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지배 집달들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열분을 토했다. 당시 시민들은 아무 평가 없이 정부의 태도를 덩달아 취하는 수동적인 모습이었다. 카슨은 이런 시민들에게 주인 의식을 일깨우고자 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 환경은 우리가 보살펴야 하는 것이고, 지배 집단들은 단지 시민들이 잠시 권력을 맡긴 관리들일 뿐이다. 그녀는 철저한 자료와 사례로 관리들을 반박할 때 절제된 말투로 하였는데 바로 시민들이 능동적이어야 함을 모범으로 보인 것이다. 카슨 이후로 시민운동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은 크나큰 다행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더 큰 열정으로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역사 속 실수의 굴레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역사적 실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치유할 수 없는 선천적인 어리석음 따위가 아니라, 반성하며 발전을 도모할 디딤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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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하지 않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왜 분노하지 않는가 -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
존 커크 보이드 지음, 최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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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나의 장래희망은 대통령이었다. 정치에 자도 모르는 풋내기였지만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장래희망란에 자로 끝나는 직업들을 써내려 가는 초등학생과 같지는 않았다. 나는 대통령이 되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의 모든 군무기를 버리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각 나라가 군무기를 소유한 채로는 어떠한 동맹 및 관계로도 진정한 세계 평화는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꽤나 진지하였는데, 만약 대한민국이 세계평화의 길에 첫 발걸음을 내딛기만 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분명 도전을 받아 줄줄이 그 뒤를 따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머리가 커가며 나의 진지하고도 순수했던 그 꿈은 내가 설령 진짜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는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나는 마치 오래 전 땅속에 묻어 놓았던 타임캡슐을 꺼내 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의 저자인 존 커크 보이드는 함께 타입캡슐을 땅에 묻으며 우리의 꿈을 약속하던 소꿉친구라고나 할까? 시간은 훌쩍 지났고, 그때의 그 약속을 여전히 품고 살아가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에 마음에 찾아오는 미안함 내지 부끄러움하지만 나의 미안함은 말 그대로 함께 하지 못한 마음에서 피어 오르는 미안함이지 어떤 일종의 죄책감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옛 꿈을 포기하고 나의 발걸음을 옮겨왔을 때는 이미 확실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존 커크 보이드는 2048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책에 나와있는 사이트에 들어가봤지만 연관된 아무 내용도 찾을 수 없었다.) 2048프로젝트란 1948년도에 채택되었던 세계인권선언문을 토대로 100주년을 맞아 2048년도에 새로운, 법적 규제를 갖는 세계인권조약을 만들어 전세계인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환경에 대한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며, 이 모든 인권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세계인권조약은 모든 나라가 참여해야 하는 말 그대로 세계적프로젝트가 된다. 비슷한, 아니 소박하다면 한참 더 소박한 꿈을 꾸었던 나도 현실을 받아 들였는데, 나보다 세상사를 더 꿰뚫어 보실법한 버클리 법대 교수님께서 이 일을 고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서는 인권의 역사와 많은 현실사회의 문제점들을 언급하며 본 프로젝트의 정당성을 설파한다. 하지만 사실 인권의 보호를 외치는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책이 제 몫을 다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정당성만을 늘어놓기 보다는 정말로 독자들의 마음에 분노를 불 붙여 주어야 한다. 정당성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켜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포기한지가 오래다. 마음 속에 그 분노의 불이 거의 다 꺼져가고 있는 중이란 말이다. 책을 읽어가며 저자의 호소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는 이 책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프로젝트의 성공여부에는 굉장히 회의적일지라도 그 시도 자체를 높이 사고 싶다. 나는 이 사회, 세상의 미래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내일은 환란이지 평안이 아닐 것이다. 날로 더 다양해지고 편리해진다고 하지만 그 속삭임들 뒤에 숨겨진 실체들로 하여금 어제보다 오늘 의미 있는 삶을 살기 힘들어졌고, 오늘보다 내일 가치 있는 삶을 살기 더 힘들어 질것이라고 본다. 정치만 바로 잡으면 또는 경제만 살리면 다 잘 될 거라는 말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속아만 온 것이 아닐까? 다만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은 더 악해질 것이고 선한 사람들은 더 선해지지 않을까? 존 커크 보이드와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나마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내 가는 길만 비추기 보다는 다른 누군가의 길도 비춰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아직 많다는 사실에 다시금 힘을 얻고 나도 내 삶을 그렇게 살아내 보겠다고 다짐해 보는 것이다. 자기 배만 불리는 상위2%의 부자들을 보고 분노하는데 힘을 빼기 보다는, 가진 거는 별로 없어도 나 스스로라도 그렇게 살아보겠다는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아닐는지. 물론 2048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야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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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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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살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절이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야지 절을 바꾸려하는가?’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학교를 떠난 사람들, 교회를 떠난 사람들, 국가를 떠난 사람들을 비난한다. 실제로 중이 절을 떠나면 항상 욕을 먹는 것은 절이 아닌 중이다. 국민 다수의 의지가 나라의 의지라는 민주주의국가의 시민들이 이 말을 좋아한다는 점이 씁쓸하다. 한국다움이 사라지고 오직 수입된 의지로 국가가 운영되는 듯 보인다. 수입도 오직 미국산이 아니면 빨간딱지가 붙는다. 아직도 색깔론이 먹히는 나라에서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라는 제목은 위험해보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변호사까지 된 인물이다.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미국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저자가 우연한 계기로 유럽의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미국의 문제점에 대해서 탐구한 것을 기록한 작업이다. 보고서라기보다 마치 일기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진솔할 뿐 아니라 조금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크게 중요시되는 것은 사회보장제도, 전문가제도, 생산 위주의 경제체계가 갖는 안전성과 결과적으로 유용성의 측면에서도 유럽의 체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파리의 여자들이 남자를 고를 때 첫 번째로 고려하는 대상은 돈이 아니다. 이 말이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인간을 그 자체로 대우하지 않고 언제부터 스펙이니, 자산이니 하는 것으로 환원해서 생각하게 된 것일까?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복지제도가 발달한 나라에 있어서 적어도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런 제도들이 없는 나라에서 여자가 남자의 재산을 가장 먼저 본다고 잘못을 물을 수 있을까?

 

 

  전문가제도는 일종의 도제제도로 유럽의 사람들은 자신의 직종에서 마스터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남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강조하고 그로인한 성적을 과시할 때 그 압박으로 직장을 바꾸는 경우가 늘어났지만 유럽은 여전히 살면서 1곳 많아야 2~3곳의 직장을 다닌다. 미국 평균 직장 수가 6개 이상이라는 점과 비교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철학에 기인한 생산중심의 경제체계가 강점으로 보인다. 노동자가 스스로 회사의 의제를 결정하기도 하고, 금융보다 생산산업에 투자가 꾸준하다. 유럽발 금융위기가 실제 유럽적인 것이 아닌 미국적 경제체계를 수입한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 등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물론 미국도 지금은 안전한 상황으로 보이지 않는다. 월가에서는 하루가 멀다 시위가 벌어진다. 실제 GDP는 생산량이지 돈의 액수가 아니다. 실제 생산을 하지 않고 소비만 하고 돈놀이에 열중한 체제는 오래가지 않는다. 실제 경기침체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국가는 미국식 자본주의, 신자유주의경제를 채택한 국가다.

 

 

  책을 읽고 공감했다고 지금의 체제를 완전히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료보장제도의 경우에 있어서 한국의 경우 꽤나 우수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너무 미국적이지도 너무 유럽적이지도 않은 어쩌면 제3의 길로서 한국적인 성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다움만을 하나의 진리로서 추구하는 이 시점에서 유럽다움이 무엇인지, 그것이 미국다움에 비해서 갖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태어날 아이에게 죄가 없다. 한국에서 태어날 아이에게 원죄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읽어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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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루소의 개 - 18세기 계몽주의 살롱의 은밀한 스캔들
데이비드 에드먼즈 & 존 에이디노 지음, 임현경 옮김 / 난장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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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인물은 하나의 책에서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열길 물속을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니 말이다. 이 책은 철학자의 사상에 관해서라기보다 그 인물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특히 역사적 자료로 그들의 주저들보다는 편지들을 엮었는데, 서간문이 가지는 미묘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론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두 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간은 모두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쇠사슬에 묶인 채 살아간다.’ 인간에 대해서 이 만큼 애정이 담기고 감정적인 표현이 있을까? 쇠사슬에 묶인 채 살아가면서도 죽는 그 순간까지 자유를 갈망하는 나약한 존재를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까지 매일같이 해가 떠왔다는 사실이 내일 해가 뜰 것이라는 사실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간 이성에 대해 자만하던 근대의 시대, 확신의 시대에 이성을 사용해 이성을 해체한 철학자가 살았다. 동시대지만 너무 다르게 인간 이성에 대해서 비판을 했기 때문에 과연 두 사람이 만났다는 것도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후원자 관계에 놓여있을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루소는 감정적이고 천재적이며 편집증적 증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감정에 충실했으며 그의 천재성은 그의 글에서 하나하나의 낱말로 드러난다. 그는 시적이었으며, 인간존재에 대해서 신뢰했으며, 자유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의 방광의 질병때문이었을까? 그는 어린시절부터 항상 삶에 대해서 불안을 느꼈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병은 그를 실존적이게 하여 글에서 천재성이 드러나게 도와줬지만, 동시에 그의 편집증적 증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흄은 합리적이고 학자적이며 명예욕이 강했던 것 같다. 그는 그의 이성적 기준에 충족되지 않은 믿음을 갖는 것을 불쾌해했으며 그의 글은 하나하나 미신에 대한 경멸들로 가득찼다.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해서 직감했으며 그래서 신앙적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학자적 기질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했는데 사실 루소를 처음 알게 되었던 그 때부터 루소의 학자적인 면에 있어서 크게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명예욕이 진정한 감정적인 면을 부족하게하고 우정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못하게 한듯 하다.

 

 

 

  루소와 흄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었다고 할까... 흄은 루소를 이용해서 자신의 명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여겼고, 루소 또한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벗어나게 해줄 도구로써 흄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가식적으로 오고 간 서로의 칭찬이 담긴 편지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 같다. 루소가 마지막으로 흄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첫 만남부터의 불만으로 시작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구절 하나하나에 과민반응하는 흄 또한 우정이 있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줬다.

 

 

 

  뛰어난 철학자의 비루한 이야기를 보며, 탁월함이 반드시 훌륭함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이 책은 권위에 대해서 해체하는 책일 것 같다. 과학자들은 뛰어나지만 괴팍하다는 인상을 얻지만, 철학이나 문학의 경우에 있어서 뛰어남이 곧 휼륭함으로 생각하는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풍자적으로 묘사된 두 인물을 통해서 우리는 편견과 선입견을 통해서 알 수 없는 부분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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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수학에서 가장 논쟁이 많이 일어났고, 가장 응용을 많이 하는 분야가 미적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기초적인 내용은 상식수준에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상식수준에서의 미분적분을 알려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드디어 이 책이 백종현 교수에 의해서 번역되었구나!! 꼭 종교뿐만 아니라 칸트의 정치철학적 견해도 포함되어있다고 들었는데 알고 싶어졌다. 칸트는 인간을 이론적, 실천적, 미적 세 부분으로 나눠서 3가지 비판을 했는데, 사실 종교적이라는 것도 포함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이 책의 애칭으로 학자들이 제4비판서라고 부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일정한 종교적인 믿음을 가져야 살 수 있는 인간에게 이성의 한계내에서 종교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고찰은 읽어볼만 한 주제가 아니겠는가? 

 

 

  

 

앨리스를 알렉스로 교묘하게 바꾸면서 패러디한?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수학사에 대해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초중생을 위한 허접한? 수준의 책 혹은 전공자를 위한 책밖에 없어서 아쉬워 하던 시기에 이 책이 있다는 것을 보고 읽고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위와 동일한 이유로 이 책을 읽고 싶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읽고 철학카페에서 시를 읽으려 한다면 너무 뻔한 이야기일까? 김용규씨는 철학을 어렵우면서 쉽게 풀어주는 철학자이다. 분명 내용은 어려운데 쉽게쉽게 읽혀서 머리속에 남는 것이 많은 책을 썼다. 이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철학카페에서 소설 읽기는 정말이지 밤새도록 읽고 또 읽게 만든 책이고 설득의 논리학도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쉽게 풀어줬다. 이 책 놓치고 싶지 않다. 

 

 

 

 

인문학 혹은 사회학 책에만 너무 읽었는데 이번에 과학분야나 수학에서 책이 선정되어 균형있는 독서가 가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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