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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개 - 18세기 계몽주의 살롱의 은밀한 스캔들
데이비드 에드먼즈 & 존 에이디노 지음, 임현경 옮김 / 난장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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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와 흄(David Hume, 1711~1776).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철학자들이 역사 속 논쟁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루소와 '공감'으로 유명한 흄이 서로 논쟁을 벌였었다니..! 철학사에서는 분리된 흐름으로 배웠던, 죽어 있었던 두 철학자들이 이 책에서는 마치 우리 시대의 언쟁을 벌이는 지성인들처럼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따라서 독자들은 철학자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철학과 관련된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지레짐작하고 겁먹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은 그런 철학자들도 우리와 다름 없이 화내고 갈등하고 반목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에밀, 사회계약론 등으로 유명한 루소의 사생활을 들여다 보면 그렇게 멋진 인물은 아니다. 가정부 르바쇠르와 한평생 사실혼 관계를 맺고 그 사이에서 자녀를 얻지만 그 자녀들을 매정하게 버리고, 결국 끝까지 결혼은 하지 않는 '나쁜' 남자다. 또한 감수성이 예민해 화를 잘 내고, 의심이 많으며 화가 나면 논리 없는 주장을 펼칠 정도로 빈틈이 많기도 하다.


 '사람 좋은 데이비드'로 이름난 흄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멋진 인물은 아니다. 착하고 도덕적이긴 했지만, 자기 자신의 명성을 떨치기를 좋아하고 사교성이 뛰어나진 않은 면도 있었다. 명예와 신의, 도덕을 매우 중히 여겼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그것에 지나치게 천착했다는 뜻도 되기에 그가 그렇게 고상했을지도 의문이다.


 파리 사교계를 중심으로 대륙 유럽에서 버려지는 루소에게 흄이 도움의 손길을 건네면서 그 둘의 역사적인 만남은 시작된다. 처음에 서로를 매우 배려하고 아끼며,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는 그 둘의 모습은 결말이 대충 짐작되는 독자에게는 우습기까지 하다. 마치 우리 주위의 친구들처럼, 그리고 우리 자신들처럼 이들도 아첨을 하고, 진실을 가장하기도 하며, 서로의 겉모습과 명성에만 끌리기도 한다. 그리고 갈등하며 반목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편을 가르고 거짓말도 한다. 책 전반부에서 그들의 사상을 통해 그들의 심오함을 느낀 독자들은 후반부로 갈 수록 점점 범인들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그들에게 조소를 보낼 지도 모르겠다.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이 논쟁은 끝이 난다. 누가 득을 보았는지, 누가 이겼는지는 독자 여러분 각각이 판단할 일이다. 어쩌면 고상한 철학자들의 찌질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논쟁들이 중요한 이유는, 루소와 흄을 살아있는 인간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대끼고 살면서 갈등하고 반목하고 아옹다옹 살아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느끼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 책은 권위를 허물고 그 뒤에 숨겨진 인간의 모습을 밝혀준다고 할 수 있다. 혹 아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고상하고 한없이 높게만 바라보는 오늘날의 루소와 흄이 어디에선가 논쟁을 벌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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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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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부터 예사스럽지 않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니... 21세기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미국은 예전만큼은 못 하지만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과 같은 나라 아니던가. 그런 나라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니, 이 책은 여타 책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음을 제목에서부터 암시해준다.


 그런데 책장을 펼치면, 혼란은 가중된다.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은 결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님을 아주 강경한 태도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독자는 이 책을 1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래, 그럼 유럽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한 번 보자!"라는 약간은 아니꼬우면서도 호기심 어린 태도로 말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저자의 경험이 주로 제시되면서 에세이적인 성향을 띠는 1부와 저자가 그 경험을 토대로 구체적인 의견과 주장을 펼치며 일종의 사설과 같은 논조를 띠는 2부(이렇게 획일적으로 나누는 것에 완벽히 부합하지는 않지만)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유럽에 대해서 문외한인 과거의 자신이 어떻게 유럽, 특히 독일을 알아 가는 지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한다. 그동안 무한 경쟁과 과도한 노동 속에서도 자신의 현실을 깨닫지 못 하고 그저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최선이라고 믿으며 살았던 저자는 2달 간 독일로 휴가를 다녀 오면서 의식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스위스의 취리히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미국은 저자에게 더 이상 자유가 보장되는 이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처음에 도시의 이미지에서 받은 그의 의식의 전환은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지를 거치면서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바뀌게 된다. 유럽이 미국보다 살기 좋은 곳이구나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유럽 사회는 미국 사회와 다르게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적인 사회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회민주주의라는 유럽의 독특한 정치경제적 유산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사회민주주의의 장점들을 경험과 연관하여 2부에서 풀어낸다. 구체적인 통계 자료와 함께 풍경화를 그리는 담담하게 유럽 사회를 묘사하는 그의 문학적인 표현이 적절히 어우러져 혹시 저자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서 유럽 사회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하는 독자의 의구심은 곧 풀리게 된다. 독일식 모델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좋고, 문제점은 무엇이며, 개선 방향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저자는 비교적 짧은 유럽 체류 기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분석과 합리적인 사견을 드러낸다. 제조업에 기반한 튼튼한 독일 경제, 숙련공들이 생산하는 우수한 품질의 공산품들, 탄탄한 법적 장치와 역사적 유산에 근거하는 노조의 강력한 권한 등은 미국식 모델에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는 독일식 모델만의 경쟁력과 안정성의 밑천이다. 낙관주의적인 저자는 이제 미국식 모델을 버리고 독일식 모델이 대안임을 역설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미국 역시 독일식 모델을 채택한다면 지금의 미국보다 살기 좋은 미국, 건강한 미국이 될 것이라고 희망찬 미래를 말하면서 말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그들의 길이 곧 우리의 길임을 주지시키며, 무엇을 망설이냐고 반문한다. 이 약간은 선동적이면서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힐책은 비단 미국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미국식 모델의 아류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일본인 그리고 여타 대다수의 개도국과 후진국에게 던지는 뼈 있는 물음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독일식 모델에 가까운가, 미국식 모델에 가까운가? 독일식 모델이 아니라면,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들을 되뇌이고 보면, 우리 삶을 결정짓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그리 합리적이고 안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작가는 어쩌면 이러한 생각을 유도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독일식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그 전에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성찰이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자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다. 미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미국이 누구보다도 잘 되기를 바라는 애국심 강한 미국인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식 모델의 치명적인 결점을 감싸려 들지는 않는다. 누구보다도 미국이 잘 되기를 바라기에, 미국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 역시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아니 오히려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면 더더욱 잘 된 일이다. 대한민국이 정말 잘 굴러가기를 바란다면, 아니 대한민국 안에서 인간답게 먹고 살 걱정 없이 잘 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펴라. 그리하면 앞으로 무엇을 사회에 요구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 조금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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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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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왜 지금 『맹신자들』을 읽어야 하는가?
 

“맹신자는 도처에서 행군하면서 전향하고 저항함으로써 자기 형상대로 세계를 빚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와 한편이 되건 반대편이 되건 그의 본성과 잠재력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 서론 중에서 


   1951년. 전체주의와 2차 세계대전의 광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세계에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 새로이 시작되고 있었다. 떠돌이 노동자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는 20세기 전반의 세계를 이끈 대중운동의 본질적 특징과 그 전개 과정을 냉철하게 통찰한 책을 써냈다. 대중운동에 대한 간명하고 독창적인 분석이 가득한 그 책이 바로 『맹신자들』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1951년 즈음처럼 광신적 대중운동이 사회 전면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2011년 지금의 이 세계에서도 여전히 ‘맹신자들’의 대중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멀게는 노르웨이 테러 사건으로 서구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모습이 불거졌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는 여전히 종종 신문 국제면을 장식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민주화 운동 등 대중운동으로 인해 혁신적 사회 변화를 이루었고, 한때는 이념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대중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촛불 시위나 SNS의 확산 등 대중정치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동시에 포퓰리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점점 대중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지만 대중의 정치적 수준에 대한 논란이 많은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대중운동을 다룬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 저자 에릭 호퍼는 대중운동의 특성과 작용 방식에 나타나는 본질적 유사성을 파헤친다. 대중운동은 현재 사회에 분노한 사람들이 품고 있는 변화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는데, 이들은 미래에 대한 무모한 희망과 권력의식 때문에 대중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저자는 ‘좌절한 사람들’을 대중운동의 주요 참여자로 언급한다. 본래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집단이 무너지면서 갑자기 소속감을 잃은 고립된 개인들, 자신을 보잘것없게 여기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중운동은 권력에 대한 확신과 소속감을 제공하고, 이에 따라 대중운동의 주요 특성은 단결, 자기희생, 광신으로 나타난다. 대중운동을 부추기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는데, 이들은 개인에게 좌절한 사람의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독립성을 제거한 뒤 열광적으로 집단의 목표에만 매달리게 한다.

   에릭 호퍼는 이 책에서 1951년 당대의 사건과 역사적 사건을 두루 고찰하여 대중운동의 특성과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대중운동에 대한 통찰은 상당히 날카로우면서도 참신하다. 저자는 단순히 대중운동 자체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나타나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 사회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고도 새로운 분석을 보여준다. 급진주의자나 보수주의자 등 특정 성향의 사회 구성원이 사회 상황에서 보여주는 성향이나 빈민층의 보수성에 대한 언급,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는 지식인의 동력이나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양 극단의 사람들이라는 분석 등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대단히 흥미롭다. 인간이 갈망하는 것에 대한 분석이나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에 대한 개인의 도피 등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도 참신하다.

   그러나 저자가 스스로 밝혔듯(94쪽) 이 책에 드러난 저자의 생각이나 역사를 분석하는 시각에는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고 사실을 간과한 부분도 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말하는 경우도 있고, 글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다. 논리적으로 명쾌한 연구 논문이라기보다는 저자가 깊이 고찰한 대중운동의 단상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러한 글의 형식적 한계가 『맹신자들』의 가치를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저자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했듯이, 대중운동은 변혁과 발전의 주된 계기가 된다. 대중운동은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중요한 동력이 되었고, 새로운 형식의 대중운동이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도 다시금 일어나고 있다. 『맹신자들』대중운동의 휘몰아치는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든 그에 반대하는 사람이든 대중운동은 하나의 흐름이며, 대중운동 자체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것은 그 흐름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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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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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 ‘시 읽기’, 그리고 ‘철학적 시 읽기’

이 책은 '시 읽기‘와 ’철학‘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성복, 최승호, 문정희, 김행숙, 채호기 등 우리나라 시인들이 쓴 ’시 읽기‘와 라캉, 짐멜, 이리가레이 등 현대 철학자들의 철학. 현대 사회를 고민하는 동시대의 시인들의 목소리, 그리고 나와 타자의 관계라는 현대 철학의 주된 주제들. 이 둘이 모여 ’철학적 시 읽기‘가 된다. 저자는 현대사회 속 사람들의 주된 정서를 감성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언어로 다룬 ’시‘를, 같은 주제를 보다 자세하고 깊게 설명한 ’철학‘으로 풀어 읽는다. 짐멜의 <문화론>으로 최승호의 시에서 습관에 물들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읽어내고, 나카무라 유지로가 강조한 다양한 감각의 세계를 백석의 시에서 찾아내는 식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도 이러한 ‘철학적 시 읽기’의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문학적 방법으로만 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 안에 담겨 있는 시인의 생각의 단초를 철학의 언어로 풀어 설명하는 것이다. 저자가 다루는 시와 철학이 흔히 다루는 ‘고전 시’와 ‘고전 철학’이 아니라 동시대의 현대시와 현대 철학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지금 바로 이 순간, 현대 사회와 그 속의 인간을 고민하는 현대철학자들의 철학과 그에 대한 정서를 표현하는 현대시를 다룸으로써 ‘철학적 시 읽기’, 나아가서 인문학은 우리의 삶과 더욱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된다. 일반 대중과 소통하는 철학자인 저자의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철학적 시 읽기, 나만의 방법으로 세상 보기

이러한 문제의식은 책의 첫 부분에 나타나는 시와 인문학에 대한 저자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저자는 우리가 철학자나 시인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건 각각의 시와 철학이 그들이 세상을 보고 의사소통하는 고유의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인이나 철학자들이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감정과 생각에 집중했듯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자기만의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라고 말한다. 단순히 유명한 시인이나 철학자의 글을 소개하고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독자 나름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려는 저자의 세심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의 한계도 발견할 수 있다. 철학자들의 철학과 시인들의 시가 그 사람들 나름의 고유한 생각의 결과라면, 각자의 고유성을 단순히 ‘유사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300페이지 남짓의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열네 장, 스물여덟 명의 시인과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시와 철학의 내용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시와 철학을 연관해 설명하다 보니, 자칫 공감이 가지 않거나 연결이 어색한 부분도 있다. 특히 시가 철학의 도입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종종 들 정도로, 철학을 다루는 각 장의 중간 부분은 시인의 시와 유리되어 있다. 철학자의 눈으로 시를 보다 보니 시의 내용을 철학에 끼워 맞추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가 소개하고자 한 철학에 맞는 시를 찾기 위해, 각 시인의 넓은 시 세계 중 극히 일부만을 부각시킨 까닭도 있을 것이다. ‘철학적 시 읽기’를 표방하고 있지만, 시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철학만 남은 셈이다.

 

-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의 시공간에서 시와 철학을 맛보다  

이 책은 현대 철학이라는 보다 깊고 새로운 시각에서 시를 읽는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를 고민한 시인과 철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도 우리 나름의 눈으로 지금 현실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분명 보다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인문학을 펼치기 위한 좋은 도입서이다. 이 책에서 단편적으로 소개된 시인과 철학자들 중 특별히 마음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글을 직접 읽고 그 사상과 시에 대한 자신만의 입장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저자가 더 읽어볼 책에 대해 각 장의 마지막 부분마다 친절히 설명해준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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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타키타니 - Tony Takitani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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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tony_takitani
  

 

"토니 타키타니, 그 중 한 장면."  

 

  그 방 안에 토니 타키타니는 계속 누워 있었다. ‘계속’이란 표현이 맞을는지 모르겠다. 때때로 뒤척이기도 하고 일어나 앉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는 그 방에 그저 멍하니 있었다. 언제일지도 모르는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그렇게 무기력하게 혼자 있었다.

  방은 비어 있었다. 한 때 각양각색의 화려한 옷으로 가득 차 있었던 방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두운 회색의 벽면과 그 벽이 드리운 무거운 그림자만 우두커니 방을 한 구석을 채웠다. 생의 활기로 차 있던 방은, 토니의 아내가 죽은 이후 비어 버렸다.

  그러나 방은 비어 있지 않았다. 원래 그 방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옷들과, 그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와 함께 앉아 있던 벤치의 바람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화려하면서도 구슬픈 색소폰 소리가 울리기도 했다. 그가 남긴 낡은 음반에 배어 있던 퀴퀴한 곰팡이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옷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눈물을 흘리던 한 여자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결국 방은 비어 있었다. 그곳은 먼지 쌓인 회색 방에 불과했다. 방 안에 나타나던, 울리던, 가득하던 형체와 소리와 냄새는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토니는 그 형상들이 한때 어떤 것이었는지 이미 잊어버렸다. 기억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나갔다. 무엇이 자신을 이제까지 그렇게 기쁘게 했고, 슬프게 했고, 또 외롭게 했는지조차 이제는 기억나지 않았다. 방은 원래 비어 있었다. 그 방 안에는, 아니 자신의 삶에는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토니 타키타니는 완전히 혼자였다.

  오직 남은 것은 허공에 울리는 익숙한 금속성의 소리였다. 망치로 철판을 치는 듯한, 그 둔탁한 소리는 어디선가부터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렸을 때, 아내가 사고로 죽었을 때, 그리고 지금. 느릿느릿하지만 쉼 없이, 토니가 홀로 있을 때마다 들려오던 소리는 그 순간에도 예외 없이 들려왔다.

  남자는 계속 그 방 안에 누워 있었다. 스쳐지나간 모든 존재들은 이미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는 그 안에 하염없이 홀로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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