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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왜 지금 『맹신자들』을 읽어야 하는가?
“맹신자는 도처에서 행군하면서 전향하고 저항함으로써 자기 형상대로 세계를 빚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와 한편이 되건 반대편이 되건 그의 본성과 잠재력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아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 서론 중에서
1951년. 전체주의와 2차 세계대전의 광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세계에는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 새로이 시작되고 있었다. 떠돌이 노동자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는 20세기 전반의 세계를 이끈 대중운동의 본질적 특징과 그 전개 과정을 냉철하게 통찰한 책을 써냈다. 대중운동에 대한 간명하고 독창적인 분석이 가득한 그 책이 바로 『맹신자들』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1951년 즈음처럼 광신적 대중운동이 사회 전면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2011년 지금의 이 세계에서도 여전히 ‘맹신자들’의 대중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멀게는 노르웨이 테러 사건으로 서구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모습이 불거졌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는 여전히 종종 신문 국제면을 장식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민주화 운동 등 대중운동으로 인해 혁신적 사회 변화를 이루었고, 한때는 이념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대중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촛불 시위나 SNS의 확산 등 대중정치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동시에 포퓰리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점점 대중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지만 대중의 정치적 수준에 대한 논란이 많은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대중운동을 다룬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 저자 에릭 호퍼는 대중운동의 특성과 작용 방식에 나타나는 본질적 유사성을 파헤친다. 대중운동은 현재 사회에 분노한 사람들이 품고 있는 변화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는데, 이들은 미래에 대한 무모한 희망과 권력의식 때문에 대중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저자는 ‘좌절한 사람들’을 대중운동의 주요 참여자로 언급한다. 본래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집단이 무너지면서 갑자기 소속감을 잃은 고립된 개인들, 자신을 보잘것없게 여기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중운동은 권력에 대한 확신과 소속감을 제공하고, 이에 따라 대중운동의 주요 특성은 단결, 자기희생, 광신으로 나타난다. 대중운동을 부추기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는데, 이들은 개인에게 좌절한 사람의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독립성을 제거한 뒤 열광적으로 집단의 목표에만 매달리게 한다.
에릭 호퍼는 이 책에서 1951년 당대의 사건과 역사적 사건을 두루 고찰하여 대중운동의 특성과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대중운동에 대한 통찰은 상당히 날카로우면서도 참신하다. 저자는 단순히 대중운동 자체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나타나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 사회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고도 새로운 분석을 보여준다. 급진주의자나 보수주의자 등 특정 성향의 사회 구성원이 사회 상황에서 보여주는 성향이나 빈민층의 보수성에 대한 언급,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는 지식인의 동력이나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양 극단의 사람들이라는 분석 등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대단히 흥미롭다. 인간이 갈망하는 것에 대한 분석이나 갑작스럽게 주어진 자유에 대한 개인의 도피 등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도 참신하다.
그러나 저자가 스스로 밝혔듯(94쪽) 이 책에 드러난 저자의 생각이나 역사를 분석하는 시각에는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고 사실을 간과한 부분도 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말하는 경우도 있고, 글 자체가 하나의 완결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다. 논리적으로 명쾌한 연구 논문이라기보다는 저자가 깊이 고찰한 대중운동의 단상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러한 글의 형식적 한계가 『맹신자들』의 가치를 떨어트리지는 않는다. 저자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조했듯이, 대중운동은 변혁과 발전의 주된 계기가 된다. 대중운동은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중요한 동력이 되었고, 새로운 형식의 대중운동이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도 다시금 일어나고 있다. 『맹신자들』대중운동의 휘몰아치는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든 그에 반대하는 사람이든 대중운동은 하나의 흐름이며, 대중운동 자체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것은 그 흐름에 대처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