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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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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부터 예사스럽지 않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니... 21세기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미국은 예전만큼은 못 하지만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과 같은 나라 아니던가. 그런 나라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라니, 이 책은 여타 책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음을 제목에서부터 암시해준다.


 그런데 책장을 펼치면, 혼란은 가중된다.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은 결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님을 아주 강경한 태도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독자는 이 책을 1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래, 그럼 유럽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한 번 보자!"라는 약간은 아니꼬우면서도 호기심 어린 태도로 말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저자의 경험이 주로 제시되면서 에세이적인 성향을 띠는 1부와 저자가 그 경험을 토대로 구체적인 의견과 주장을 펼치며 일종의 사설과 같은 논조를 띠는 2부(이렇게 획일적으로 나누는 것에 완벽히 부합하지는 않지만)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유럽에 대해서 문외한인 과거의 자신이 어떻게 유럽, 특히 독일을 알아 가는 지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한다. 그동안 무한 경쟁과 과도한 노동 속에서도 자신의 현실을 깨닫지 못 하고 그저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최선이라고 믿으며 살았던 저자는 2달 간 독일로 휴가를 다녀 오면서 의식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스위스의 취리히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미국은 저자에게 더 이상 자유가 보장되는 이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처음에 도시의 이미지에서 받은 그의 의식의 전환은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지를 거치면서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바뀌게 된다. 유럽이 미국보다 살기 좋은 곳이구나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유럽 사회는 미국 사회와 다르게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적인 사회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바로 사회민주주의라는 유럽의 독특한 정치경제적 유산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사회민주주의의 장점들을 경험과 연관하여 2부에서 풀어낸다. 구체적인 통계 자료와 함께 풍경화를 그리는 담담하게 유럽 사회를 묘사하는 그의 문학적인 표현이 적절히 어우러져 혹시 저자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서 유럽 사회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하는 독자의 의구심은 곧 풀리게 된다. 독일식 모델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좋고, 문제점은 무엇이며, 개선 방향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저자는 비교적 짧은 유럽 체류 기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분석과 합리적인 사견을 드러낸다. 제조업에 기반한 튼튼한 독일 경제, 숙련공들이 생산하는 우수한 품질의 공산품들, 탄탄한 법적 장치와 역사적 유산에 근거하는 노조의 강력한 권한 등은 미국식 모델에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는 독일식 모델만의 경쟁력과 안정성의 밑천이다. 낙관주의적인 저자는 이제 미국식 모델을 버리고 독일식 모델이 대안임을 역설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미국 역시 독일식 모델을 채택한다면 지금의 미국보다 살기 좋은 미국, 건강한 미국이 될 것이라고 희망찬 미래를 말하면서 말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그들의 길이 곧 우리의 길임을 주지시키며, 무엇을 망설이냐고 반문한다. 이 약간은 선동적이면서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힐책은 비단 미국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바로 미국식 모델의 아류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일본인 그리고 여타 대다수의 개도국과 후진국에게 던지는 뼈 있는 물음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독일식 모델에 가까운가, 미국식 모델에 가까운가? 독일식 모델이 아니라면,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들을 되뇌이고 보면, 우리 삶을 결정짓는 우리 사회의 구조가 그리 합리적이고 안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작가는 어쩌면 이러한 생각을 유도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독일식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그 전에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성찰이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자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다. 미국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미국이 누구보다도 잘 되기를 바라는 애국심 강한 미국인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식 모델의 치명적인 결점을 감싸려 들지는 않는다. 누구보다도 미국이 잘 되기를 바라기에, 미국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 역시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아니 오히려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면 더더욱 잘 된 일이다. 대한민국이 정말 잘 굴러가기를 바란다면, 아니 대한민국 안에서 인간답게 먹고 살 걱정 없이 잘 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펴라. 그리하면 앞으로 무엇을 사회에 요구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 조금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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