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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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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눈길을 끌었던 <굿바이 동물원>이었다. 고릴라복장의 탈을 벗은 한 사내의 모습을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란 것만으로도 충분히 믿고 읽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밀려난’ 주인공이란 말에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맹렬하게 읽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저 이야기를 통해 별다른 것 같은 평범한 삶에 자족하고, 공감하며 단순한 위로 차원이었다.

 

직장을 잃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공무원급 동물원에 취직을 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 자체가 연신 호기심을 자극하며 재미를 더해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전개는 신선한 만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있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왠지 모르게 내 몸을 두르고 있는 두툼한 털옷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 기막힌 판타지가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내몰린 이 시대의 많은 이의 모습, 그 우울하고 참담한 상황은 결코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막다른 길에서 동물원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마운틴고릴라 ‘앤, 만딩고, 조풍년’ 그들의 면면의 삶은 오히려 인간이길 포기한 순간 더욱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열망에 빠졌노라고 외치며 내게 강펀치를 날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꿈틀되면서 또한 진정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며 되묻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돈’이라며 돈 때문에 인간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삶에서 오히려 ‘돈’ 이상의 또 다른 가치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은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와 친밀감으로 오히려 ‘사람답게’라는 진면목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재미있다며 낄낄거리다가, 섬직 놀라며 하얗게 질리다가도,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삶의 희열에 박수를 보내며 나 스스로에게 격려와 용기를 보내게 되었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고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불편하였다. 소설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 그것은 고스란히 바로 내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였다. 하지만 결코 현실적일 수 없는 판타지 속에서 그 어떤 이야기보다 노골적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 이야기를 재미있다며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미더운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쓴웃음을 지으며 자꾸만 자신의 모습을 비추게 된다. 그리고 내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꾸만 외면하고 싶은 밑바닥, 그 깊은 수렁에서 한 가닥의 희망을 찾아 활자 사이를 방황하고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밀려난’ 주인공이란 말에 뜨끔했다.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솔직히 외면하기 바빴던 나의 진짜 모습, 나 스스로조차 인정할 수 없는 지금의 나의 현주소와 대면할 시간이 바로 <굿바이 동물원>에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읽는 내내 심히 불편했다. 웃고 즐기면서도, 그 희극 속에 내재한 통렬한 비극이 온몸에 날을 세웠다. 그런데 씁쓸한 뒷맛이 강렬한 만큼, 충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시간이었다. <굿바이 동물원>과 함께 나 역시 기나긴 방황을 끝내야 할 것 같다. 보약 한 채 든든히 마련하였으니, 이제 슬슬 약발을 받아 더욱 가열차게 한 걸음 내디뎌야 할 것 같다. 칭칭 감기다 못해 내 살이 되어버렸을지 모를 고릴라 털옷으로 무장한 밥벌이일지라도 그 속에서 더욱 사람다운 삶을 위해 열심히 '우우우우' 포효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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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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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요즘, 따뜻한 무언가가 간절해질 때이다. 바로 이 때, <따뜻함을 드세요>란 제목의 이 소설은 절로 눈길이 머문다. 그런데 ‘오가와 이토’의 이야기란다. ‘오가와 이토’는 요즘 내겐 ‘핫’한 작가다. <달팽이 식당>과 <초초난난>을 통해 만난 그녀의 이야기는 훈훈하고, 잔잔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잔잔함 속의 그 평온함은 묘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지막까지 이야기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오감으로 느끼다보면, 절로 가슴 속이 따뜻함으로 가득 차, 마음이 후덕해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번엔 대놓고, 맛있는 이야기를 따뜻함을 드시라고 하니,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기분 좋게 책을 받아들 때의 설렘을 잠시 뒤로 하고, 며칠 묵혀두었다. 왠지 당장 읽기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잠시 기다림의 시간을 즐겨 보았다. 그리고 책을 펼쳤을 때, 내침걸음으로 달렸다. 총 7편의 이야기는 찬찬히 음미하면서 또 즐기면 되는 일이지만, 7편의 이야기 모두가 궁금증을 자아내었고, 어떤 맛난 음식과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 기대에 기대를 더해갔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다정다감하게 바로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친근하고 따뜻했다. 책을 읽는 내내 입 안 가득 달콤함이 감돌고, 향긋함이 온몸을 감싸주는 듯했다.

 

첫 번째 ‘할머니의 빙수’는 병든 할머니와 그 할머니를 성심성의껏 돌보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마음을 읽고 빙수를 사러 내달리는 아이의 이야기는 뭉클한 감동 그 자체였다. 아주 짤막한 이야기 속 많은 이야기를 그리고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그것을 기억해내고, 그 속에서 서로서로가 아닌 주변까지도 훈훈하고 달콤하게 하는 이야기는 마음 속 깊이 파고들었다.

두 번째는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이다. 한 남자는 ‘주카가이에서 제일 더러운 가게이긴 하지만’이라고 말하며 애인을 식당으로 안내한다. 식당 주인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남자, 그리고 식도락가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남자의 애인인 나 ‘아케미’는 즐겁고 행복한 식사를 하였다. 더러운 가게라고 시작한 이야기, 하지만 이내 잊혀지고 그 어떤 곳보다 근사한 분위기 속에서 프러포즈보다 부러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세 번째, ‘안녕 송이버섯’은 앞선 ‘아버지의 삼겹살 덮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야기였다. 이별을 앞둔 여행, 그곳에서 맛있는 송이버섯을 먹는 이야기는 침체된 분위기에도 먹음직한 음식들로 실연의 아픔 따위를 잠시 잊게 하는 듯하다. 그리고 네 번째 ‘코짱의 된장국’ 속에도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이 전혀 다른 시선에서 아름답게 그려진다. 유치원생이었던 꼬마가 병이 재발한 엄마에게 모질게 배운 된장국이다. 그 된장국을 매일 아빠에게 해드렸던 그 꼬마가 이제 시집을 가게 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위로하는 아빠와 딸의 모습은 애틋하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가족의 정감을 물씬 그려내고 있었다.

이야기는 점점 더 죽음과 이별 등의 우울한 사연을 바탕에 두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며 홀로 찾은 식당, ‘그리운 하트콜로릿’, 동반자살 여행을 다룬 ‘폴크의 만찬’, 그리고 아빠의 49젯날 엄마와 딸의 음식 소동 ‘때아닌 계절의 기리탄포’ 등은 앞선 이야기보다 죽음과 상실의 음산함, 헛헛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첫 이야기부터 이별과 죽음의 장막이 이야기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 이야기 속 훈훈한 사연들은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 그 죽음과 이별, 상실의 아픔 속에도 우리는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의 온갖 시름을 잊게 하는 따뜻한 음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식욕의 본능, 그 욕망이 삶을 반짝이게 하고 온몸을 훈훈하게 데우겠지만 그보다도 더한 이유는 그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 속 음식이 상실의 아픔을 달래고 위로해주는 듯하다. <따뜻함을 드세요>란 영양 간식을 맛나게 먹은 듯하다. 끊임없이 달콤함과 훈훈함을 온몸으로 즐겼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음식들, 낯선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들 속에 담긴 훈훈함은 잊혀진 추억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7편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나만의 추억여행을 떠난 기분이다. 각자의 소울푸드가 간절해질지 모르겠다. 옮긴이의 말처럼 ‘잘 먹었습니다.’라고 역시 인사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나는 ‘오가와 이토’의 또 다른 맛있는 이야기를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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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 - 화훼영모.사군자화, 2013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 1
백인산 지음 / 다섯수레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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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후기 말머리에 ‘많은 사람이 우리 옛 그림을 낯설고 어려워합니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는 많은 사람일 뿐이다. 처음 예술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된 것도 서구의 명화들이었고, 전시회를 찾은 것도 대개는 그러한 그림들이었다. 여전히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서구 미술 쪽에 비중이 큰 것 같다. 스스로 찾아보지 않으면, 왠지 낯선 분야가 아닌가? 그렇기에 이번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 시리즈의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눈에는 익숙하지만 뭔가 허한 갈증을 느끼게 된 후, 조금씩 우리 옛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책 역시 우리 옛 그림에 관한 책에 조금씩 열광하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많은 것을 어렵고 생소하지만, 몸으로 더 가깝게 느끼며 더 큰 감흥을 갖게 된다. 깊은 여운으로 마음속에 깊은 울림은 전해주는 우리의 옛 그림을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를 읽으면서도 여전히 어려운 용어와 그림의 구도들로 힘들었다. 그림의 의미 역시 이해하고 있는가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림은 이해 이전에 전해지는 개개인의 감흥이라지 않는가? ‘화훼영모, 사군자화’를 중심으로 여러 그림들을 만나고, 그림과 저자 그리고 시대상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그림이 조선, 그리고 중후기에 집중되어 있지만, 그 그림들을 통해 역사의 흐림을 읽게 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매화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그림들은 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 개인의 생각이 그 시대, 사회의 흐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점, 그 한계가 고스란히 그림 속에 살아있다는 점이 그동안에 느껴보지 못했던 그림 속 이야기였다.

 

특히 다른 그 어떤 그림보다는 정약용의 <매화병제도>와 남계우의 <군접도>가 기억에 남는다. ‘남나비’란 별칭으로 불린 정도로 나비 그림을 잘 그렸던 남계우의 <군접도>는 눈으로도 화려함, 호사스러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요즈음의 고성능의 카메라로 찍은 듯한 정교함과 색채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린데 저자는 ‘감각적이고 호사스러운 장식성을 중시했음을 보여 준다. 당시 조선 사회는 이 그림처럼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내면은 생기를 잃은 채 박제처럼 굳어 가고 있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내면은 생기를 잃은 채 박제처럼!? 그런데 과연 조선 사회만의 단면일까? 그것은 바로 앞 편의 ‘정약용’의 <매화병제도>과 뚜렷하게 대조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내가 유배지로 보내준 낡고 바랜 치마로 서첩을 만들어 아들에게 주고, 남은 천을 시집가는 딸을 위해 사용했다는 사연이 담긴 <매화병제도>, 낡고 바랜 어미의 치마에 아비의 애틋함을 담아낸 그 정성이 화려함을 쫓으며 물질만능, 소비만능주의의 우리에게 일침이 되는 것 같다. 화려함의 박제된 삶이냐? 조금은 부족하지만 소박한 정감의 삶이냐?라는 화두가 그림 속에서 되살아났다.

 

우리 것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갈증을 풀어 주는 일에 소홀했음을 반성하겠다는 저자, 그러면서 그가 풀어낸 우리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는 시간은 내내 즐거웠다. 앞으로 이어질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의 시리즈를 손꼽아 기다리며 우리 옛 그림에 대한 많은 책을 쉽게 접하며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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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5 - 4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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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들리지 않는 함성은 차츰차츰 도시를 휩쓸어가고 있었다. 추상적이던 가정부(假政府), 상해에 있다는 우리 임시정부, 사람들은 그 존재를 실감하면서 무기력해진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희망의 빛을 보는 것이다. 잃어버린 조국. 그 조국이 내게로 올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남녀노소 빈부와 계급의 차이 없이 누구나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적보다 더 가증스러운 배신자, 반역자, 한겨레의 뿌리에서 나온 친일파 앞잡이들에 대한 응징도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248쪽)

바로 <토지 15 (4부 3권)>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함성의 폭발이었다. 바로 <토지 14>에서 느꼈던 모래알갱이만큼 많은 사람들의 독립 의지, 숨죽여가며 겹겹의 모진 세월을 견디었던 사람들의 함성이 크게 울려 퍼져 전율하였다. 흥분의 도가니! 짜릿한 환희 속에 나 역시 함께 하였다. 그간 관수, 강쇠, 연학, 석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하면서도, 언제나 그 비밀스런 일들, 이야기 소기에서도 항상 쉬쉬하면서 전개되었던 일들이 이번에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물밑에서 조금씩 일렁이던 커다란 파고가 휩쓸고 갔다. 이쯤이서 예전 드라마에서 본 장면, 뇌리에 깊이 각인된 그 장면 속 이야기가 이번에 터질 줄 전혀 알지 못했다. <토지>를 읽은 적이 없었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갑작스런 전개에 깜짝 놀랐다. 명희와 찬하, 인실과 오가다의 이야기로 침울했던 분위기 속의 반전이라 더욱 흥미진진했다. 또한 그간 ‘김환’의 중심으로 했던 여러 사건들은 회상의 형식이었고, 무언가 하고 있지만,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간이 속사정을 알 수 없었던 이야기의 정면 등장은 온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간 길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드디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4권 3권의 차례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산사람들의 혼인과 장례식날 밤이었다. 누군가의 결혼과 죽음! 그 누군가의 이야기가 각각의 사건 속에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미래가 없는 인연’들의 이야기들로 가득 찬 전개 속에서 강쇠의 아들 ‘휘’와 관수의 딸 ‘영선’의 결혼은 그 자체로 활짝 핀 이야기꽃이었다. 그 과정 속의 작은 소동 조차도 기분을 가볍게 해주었다. 그물망처럼 촘촘히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오가다와 인실의 이야기는 그들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일제 시기, 반세기에 걸친 시간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삶, 그리고 개개인의 삶 속 갈등과 좌절 그리고 시대의 모순과 팍팍했던 삶을 외면하기가 이젠 어렵게 되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진실, 스스로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여러 삶의 질문들이 나를 일깨운다.

 

이평의 장례 후, 두만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나 역시 질겁할 정도로 뜨끔하였다. 영만의 이야기는 두만이 아닌, 바로 ‘나 들으라는 소리’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그간 ‘제 앞만 쓸고 사는 인간’이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자꾸만 되묻고 있었지만 여전히 머릿속에서 울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영만이 이야기를 통해 더욱 나를 돌아보면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생각들이 풀어진다. 그동안의 자기모순의 늪에서 방황하며, 자기변명에 급급했던 내 안에, 어떤 지혜와 용기가 조금씩 자리하며 나를 행동하게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즐거운 비명들로 가득 들어차는 기분이다. 바로 이러한 작은 변화가 <토지>의 힘일까? 내가 읽는 이야기 속에서, 잃어버렸던 나만의 빛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을 일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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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4 - 4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4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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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4>의 마지막 장을 엎으면서 가장 첫째로 든 생각은 바로 ‘여러 갈래의 수많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들, 돌고 돌아서 하나의 구심점으로 수많은 인연들이 하나의 띠를 이루고 있구나’ 였다. 그리고 두 번째, 전체적인 14권의 이야기에 대한 인상은 말 그대로 혈기왕성한 젊은 피의 수혈로 이야기가 더욱 싱그러워졌다고 할까? 그 동안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일제시대의 암흑의 기류가 각 개인의 삶마저 한없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속의 무력함이란 절로 회피하고 손사래를 치게 하였다. 그렇게 삼일 만세 운동 후의 방황, 혼란 등을 통해 그 절망의 수렁으로 끝없이 몰아놓은 듯한 느낌. 하지만 4부의 이야기 속, 학생운동의 촉발 등은 팍팍한 삶 속 세대의 교체 그 자체가 희망처럼 느껴진다. 30년대, 일제의 폭압으로 그 어느 때보다 피폐하고 각박했을 삶, 그 핍박의 세월 속에서 잠자고 있던 저항이 다시금 큰 물살을 일으키며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 우리의 광복이 수많은 독립투사들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진실로 깨닫는 시간이라고 할까?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새겨진 그 울분의 시간, 때로는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한 억울한 사연들은 <토지>를 읽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저 하나의 여러 이야기 중에 하나에 불과했었다. 각 개개인의 억울함은 그저 개인의 문제처럼, 하지만 그 겹겹의 시간 속에서 견디고 살아남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죽이며 때를 기다렸던 많은 이들의 독립의지였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장면처럼 ‘각시탈’을 쓴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이 <토지 14>권의 전체 이미지에 투영된다.

 

아직도 ‘명희’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픈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날 정도이다. 그녀의 아픔, 박제된 삶 속에서 하루 빨리 희망의 이야기, 견디어 낸 삶의 희망을 만나보고 싶어, 다시금 명희의 이야기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또한 이평과 석이 가족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평사리에 잠시 들른 두만, 성공한 사업가로서 두만은 그 어떤 친일앞장이보다 두드러지게 극악무도, 안하무인의 태도로 악의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날을 새우는 가족들, 그리고 아비 이평의 결단에 이어, 평사리에 남겨진 석이네 가족들, 특히 석이 어미, 성환 할매와 딸사위와의 갈등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변화의 거센 흐름, 그 혼란 속에 내재된 가족의 해체, 전통과 인습에 대한 갈등 등은 <토지> 속 이야기만은 아니기에, 많은 생각이 스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가족이란 울타리 속 또 다른 가족 관계의 재설정으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무수한 갈등, 그 도를 지나친 이야기는 반면교사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불안하기론 나도 마찬가지다. 이곳 사람들도, 깨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계속 불안에 쫓기며 산다. 바로 쫓기는 시대에 우리 모두가 살고 있다는 얘기다. 잠들어도 안 되고 힘을 낭비해도 안 된다. 비겁해도 안 되고 바보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 그리고 한발 한발 대딛는 거다.”(247) 지난 13권에서 방황했던 윤국의 이야기는 14권에서도 계속되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평사리에서 정양하고 있던 동생 ‘윤국’에게 ‘환국’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환국의 입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또 다른 메시지가 아닐까? ‘불안’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처럼 느껴진다. 그저 <토지>속 무수한 사람들처럼, 그저 묵묵히 한발 한발 내딛으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머릿속에 자리한다.

 

 

 

 

“인생 초반에서 가장 비극적인 상실을 목도하면서 살아남은 처지, 절망적 삶에의 출발은 비슷할지 모르나 김환은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거나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 강렬한 감정, 그는 존재의 신비를 사랑했다. 부친과 모친을, 그리고 별당아씨를 존재의 신비, 그 대상으로 사랑하였지만, 생명의 배태와 더불어 그의 상실은 예정된 것이었다. 사람마다 상실이 예정되어 있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김환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모친을, 이십 전후하여 부친과 별당아씨를 잃었다. 어느 누구보다 철저하게, 대치가 불가능하였기에 그토록 철저하게 잃은 것이었다. 내세에다 가냘픈 희망의 거미줄을 걸면서, 한 마리 도요새가 되기를 꿈꾸며, 아비 도요새, 어미 도요새, 아아 별당아씨, 그 여자 도요새와 더불어 만경창파 구만리 장천을 나는 것을 꿈꾸며 진달래빛 눈보라, 진달래빛 빗속에서의 처절한 통곡을 거치며 그의 절망적 정열은 그의 불행과 행복과는 상관없이 생동하는 생명의 지속이었던 것이다.” (151-152) 강쇠의 마음속 깊숙이 여전히 살아있는 김환, 그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 강쇠의 이야기는 또 다른 김환과의 재회처럼 느껴진다. 관수, 강쇠의 이야기가 과연 어떤 식으로 길상과 연계될지, 이젠 직접 길상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인지, 아비를 기다리는 윤국, 환국처럼 길상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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