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4 - 4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4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14>의 마지막 장을 엎으면서 가장 첫째로 든 생각은 바로 ‘여러 갈래의 수많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들, 돌고 돌아서 하나의 구심점으로 수많은 인연들이 하나의 띠를 이루고 있구나’ 였다. 그리고 두 번째, 전체적인 14권의 이야기에 대한 인상은 말 그대로 혈기왕성한 젊은 피의 수혈로 이야기가 더욱 싱그러워졌다고 할까? 그 동안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일제시대의 암흑의 기류가 각 개인의 삶마저 한없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속의 무력함이란 절로 회피하고 손사래를 치게 하였다. 그렇게 삼일 만세 운동 후의 방황, 혼란 등을 통해 그 절망의 수렁으로 끝없이 몰아놓은 듯한 느낌. 하지만 4부의 이야기 속, 학생운동의 촉발 등은 팍팍한 삶 속 세대의 교체 그 자체가 희망처럼 느껴진다. 30년대, 일제의 폭압으로 그 어느 때보다 피폐하고 각박했을 삶, 그 핍박의 세월 속에서 잠자고 있던 저항이 다시금 큰 물살을 일으키며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 우리의 광복이 수많은 독립투사들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진실로 깨닫는 시간이라고 할까?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새겨진 그 울분의 시간, 때로는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한 억울한 사연들은 <토지>를 읽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저 하나의 여러 이야기 중에 하나에 불과했었다. 각 개개인의 억울함은 그저 개인의 문제처럼, 하지만 그 겹겹의 시간 속에서 견디고 살아남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죽이며 때를 기다렸던 많은 이들의 독립의지였다.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장면처럼 ‘각시탈’을 쓴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이 <토지 14>권의 전체 이미지에 투영된다.

 

아직도 ‘명희’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픈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날 정도이다. 그녀의 아픔, 박제된 삶 속에서 하루 빨리 희망의 이야기, 견디어 낸 삶의 희망을 만나보고 싶어, 다시금 명희의 이야기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또한 이평과 석이 가족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평사리에 잠시 들른 두만, 성공한 사업가로서 두만은 그 어떤 친일앞장이보다 두드러지게 극악무도, 안하무인의 태도로 악의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날을 새우는 가족들, 그리고 아비 이평의 결단에 이어, 평사리에 남겨진 석이네 가족들, 특히 석이 어미, 성환 할매와 딸사위와의 갈등은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변화의 거센 흐름, 그 혼란 속에 내재된 가족의 해체, 전통과 인습에 대한 갈등 등은 <토지> 속 이야기만은 아니기에, 많은 생각이 스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가족이란 울타리 속 또 다른 가족 관계의 재설정으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무수한 갈등, 그 도를 지나친 이야기는 반면교사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불안하기론 나도 마찬가지다. 이곳 사람들도, 깨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계속 불안에 쫓기며 산다. 바로 쫓기는 시대에 우리 모두가 살고 있다는 얘기다. 잠들어도 안 되고 힘을 낭비해도 안 된다. 비겁해도 안 되고 바보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 그리고 한발 한발 대딛는 거다.”(247) 지난 13권에서 방황했던 윤국의 이야기는 14권에서도 계속되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평사리에서 정양하고 있던 동생 ‘윤국’에게 ‘환국’이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환국의 입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또 다른 메시지가 아닐까? ‘불안’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처럼 느껴진다. 그저 <토지>속 무수한 사람들처럼, 그저 묵묵히 한발 한발 내딛으며,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머릿속에 자리한다.

 

 

 

 

“인생 초반에서 가장 비극적인 상실을 목도하면서 살아남은 처지, 절망적 삶에의 출발은 비슷할지 모르나 김환은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거나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 강렬한 감정, 그는 존재의 신비를 사랑했다. 부친과 모친을, 그리고 별당아씨를 존재의 신비, 그 대상으로 사랑하였지만, 생명의 배태와 더불어 그의 상실은 예정된 것이었다. 사람마다 상실이 예정되어 있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김환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모친을, 이십 전후하여 부친과 별당아씨를 잃었다. 어느 누구보다 철저하게, 대치가 불가능하였기에 그토록 철저하게 잃은 것이었다. 내세에다 가냘픈 희망의 거미줄을 걸면서, 한 마리 도요새가 되기를 꿈꾸며, 아비 도요새, 어미 도요새, 아아 별당아씨, 그 여자 도요새와 더불어 만경창파 구만리 장천을 나는 것을 꿈꾸며 진달래빛 눈보라, 진달래빛 빗속에서의 처절한 통곡을 거치며 그의 절망적 정열은 그의 불행과 행복과는 상관없이 생동하는 생명의 지속이었던 것이다.” (151-152) 강쇠의 마음속 깊숙이 여전히 살아있는 김환, 그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 강쇠의 이야기는 또 다른 김환과의 재회처럼 느껴진다. 관수, 강쇠의 이야기가 과연 어떤 식으로 길상과 연계될지, 이젠 직접 길상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인지, 아비를 기다리는 윤국, 환국처럼 길상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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