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7 - 5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7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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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의 막바지에 이른 느낌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을 알지만...) 1940년경부터 1945년 해방되기까지의 시간을 그리고 있는 토지 ‘5부’의 첫 시작인 <토지 17권>은 다섯 장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0여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그간의 이야기, 각각의 인물들의 속사정을 토해놓는 듯, 여러 인물들의 지난 시간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시간이었다. 영광과 혜숙의 관계, 서울로 돌아온 명희, 4부의 많은 이야기 중 ‘산사람들의 결혼’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강쇠의 아들 ‘휘’와 관수의 딸 ‘영선’, 그리고 조준구의 아들, 곱새 소목장이 병수와 해도사, 소지감의 인연들, 그리고 한복의 아들 영호과 숙이, 그리고 숙이의 동생 몽치, 그리고 숙이와 영선의 인연 등, 각각의 인물들의 애잔한 삶, 그들의 팍팍한 삶, 그 속의 애증, 갈등 등의 이야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만주, 서울, 진주, 통영 등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다시금 ‘평사리’를 구심점으로 한데 모이며, 그간의 한을 풀어놓는 시간인 듯하다.

 

그 중에서도 송관수와 그의 아들, 영광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간간히 등장했던 관수, 백정의 사위가 되어 그 역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그보다는 억세고 강한 인물처럼 느껴져 아슬아슬하면서도 든든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만주로 거처를 옮기면서 그의 삶, 부자간의 골이 깊어지면서 많이 어긋난 삶, 그리고 불현 듯 찾아든 그의 죽음은 월선의 죽음만큼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그동안 숱한 죽음을 봤지만, 역시 남의 일처럼 요원하게 느껴졌는데, <토지>을 읽는 동안 만났던 죽음들은 그 어떤 이의 죽음보다 피부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월선과 관수의 죽음은 조금은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면서, 이번에는 아비의 죽음을 통해 어떤 애잔한 설움을 밀려든 것인지, 내내 애달프고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죽음을 풀어낸 방법이 그저 슬픈 것만은 아니었고, 무척 인상적이다. 죽음을 앞두고 남긴 관수의 유서, 길상이 되새기듯, 나 역시 되새기게 된다.

“(...) 자손한테 물리줄 전답 한때기 없는 처지에 무신 놈의 유서인가 할지 모르겠다마는 이대로 내가 가믄 남은 사람들 가심에 한을 심을 것 같애서... 와 이렇게 맴이 담담한지 참 내가 생각해도 이상타. 내가 죽으믄 모두 고생만 하다가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는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고 생각하고. (...) 새삼시럽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이 정말 괜찮기 살았구나 싶다. (...) 고향 산천이 보고 싶고 작별하고 싶은 얼굴도 많다마는 어차리 사람은 혼자 가는 거 아니겄나.” (194쪽)

 

또한 영광과 양현의 슬픈 사랑이 이미 예견되어 있는데, 그들의 짧은 만남이 잠시 스쳐 지났다. 과연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그들의 인연이 어떻게 전개되지 더욱 기대된다. 신분의 한계를 온몸으로 자각하며 방황하는 영광, 서희의 품에서 나름 평안한 삶을 살아낸 듯하지만, 가슴 깊이 슬픔이 자리하고 있을 양현, 그 둘의 관계에 마음을 졸이게 될 듯하다. 벌써부터 왠지 모를 아련하고 절절한 사랑의 기운이 가득하다.

 

많은 이들 중에서, 또한 ‘서희’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그녀는 자신을 사모했던 박 의사(박효영)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흘린다. 별당에 앉아서도. 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비로소 어미와 구천(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서희를 통해 마음이 절로 뜨거워지고 애틋해졌다. 그리고 길상과 함께 한 자리에서 맥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과 대화 속에서 왠지 모르게 마음을 든든하게 하였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인사(人事)는 음산하고 각박했으나 가을은 찬란하고 자연은 풍요로웠다. 다만 인간만은, 조선땅에 태어난 사람들만은 날로 찌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조선땅뿐이랴, 조선사람뿐이랴. (308)

<토지>를 읽는 지금, 이곳도 가을빛으로 완연하다. 하지만 1940년대가 아니다. 그런데 드높은 가을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연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기엔 내 마음은 그지없이 팍팍한 것 같다. 과연 나만의 감상일까? 일제의 폭압이 최절정에 이른 시기를 배경으로 개인의 고달픈 삶이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견뎌야지. 모든 것을 다 견뎌야 해. (...) 물밑에 가라앉은 것처럼, 자칫 잘못하면 영광이 저 다리꼴이 된다. 얻은 것은 없고 잃었을 뿐이지.” (219)라고. 우개동의 횡포를 보면서 환국과 윤국의 대화, 그리고 환국의 대답이다. 단편적으로 한 개인의 삶을 통해서도 온몸이 들끓는 분노와 울분이 자리하기 마련인데 많은 인물들을 통해 긴 시간동안 풀어낸 이야기를 접하다보니,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그 팍팍했던 삶이 가까이 다가온다. 지금의 불평, 불만이 무색해질 정도다. 그렇다면 ‘어떻게 견뎌내는가?’란 의문에 앞서 그저 견뎌내는 것의 진실함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어떻게? 그것은 <토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갈등과 번뇌 속에서도 묵묵히, 때론 치열하게 살아낸 삶에서 여지없이 생이 기운이 꿈틀되고, 생이 꽃피고 있었다.

 

많은 인물들의 못 다한 이야기, 그 후일담이 5부, 5권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진다고 한다. 시간을 훌쩍 건너 과연 그간의 일들을 어떻게 풀어내지 호기심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리고 우개동의 행패를 통해 어떻게 그 암담한 암흑의 시대가 그려질지, 이미 17권을 통해 만났지만, 삼수, 조준구, 그리고 김두수를 잇는 우개동의 악행에 벌써부터 몸서리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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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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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일본의 쓰나미를 tv에서 처음 봤을 때, 놀라움에 앞선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어 의아했던 것은 바로 그 ‘시커먼 덩어리’들 자체였다. 끈적끈적한 검은 그 실체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고, 입을 벌린 채, 그 참상, 그 비극을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tv 영상 속, 그 불가사의한 이미지가 바다라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우리가 알던, 때로 그리워하던 바다의 푸른빛이 아니었다. 바다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전부인 냥, 착각 속에 살아왔다는 사실이 지난 해 쓰나미가 몰고 온 첫 번째 충격이었다. 그 심연의 바다 속의 제 빛깔은 상상 조차 못했던 전혀 다른 빛으로 나는 그 심연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아니 우리는 그 심연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였다. 아닌 자각한 적이 있기는 할까? 그래. 설사 알고 있다면?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깊은 심연을 어떻게 넘나들 수 있을까? 심연을 건너 타인에게 오롯이 가닿을 수 있는 마법의 날개가 있다면? 그 희망은 타인을 그리고 자신을 평안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읽으면서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을 해야 한다. 일시적이나마. 마법의 날개가 내 등에. 오늘 앞뒤 정황과 그 사람의 성향에 대한 이해에 앞서, 그저 어떤 문자에 노발대발 화를 낼 뻔했다. 천만 다행이도, 나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들고 있었고, 그래서 그의 마음과 상황을 헤아리고, 마음속의 분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관계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오해는 사람 사이의 심연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심연보다는 드러나는 일부의 외양이 모든 것인 듯 우리는 쉽고 편리하게 많은 것들을 합리화하기 바쁘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 그 감각의 예리함에 앞서 그저 우리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으로 왜곡한다. 동시에 타인에게는 더욱 매서운 잣대로 제단할 뿐이다. 그러나 그 심연의 존재, 그 심연 속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날카로움의 칼끝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또한 가슴 먹먹한 이야기로 나는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여고생 ‘정지은’은 미혼모로 한 아이를 낳았고, 그리고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가 수면 위에 떠 있는 어떤 일부의 사실이다. 그리고 한 여선생은 ‘정지은은 아빠가 자살하는 걸 무력하게 지켜봤지요’라고 증언한다. 하지만 그 날 그녀는 ‘난 최선을 다할 거야’를 외치며 어둠을 달리고 있었다. “거기 고통과 슬픔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 아이의 고통과 슬픔이었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은 고통스럽지 않고, 슬프지도 않다. 우리와 그 아이의 사이에 심연이 있고, 고통과 슬픔은 온전하게 그 심연을 건너오지 못했다. 심연을 건너와 우리에게 닿는 건 불편함뿐이었다.” (286) 그리고 많은 우리들은 늘 그렇게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외면하고 자신의 불편함만을 자각할 뿐이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엉키고설킨 관계의 틈 속에서 과연 타인만의 고통과 슬픔일까? 그렇게 타인만의 고통과 슬픔인 채로 20여년의 시간 속에서 그들은 행복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행복할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푸른빛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도시의 회색빛이 감도는 푸른빛, 그런데 점점 마음은 평온하고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우울의 깊은 수렁이 아닌 차분한 마음으로 이야기 속 여정에 빨려 들어간다.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고픈 호기심에 앞서, 마음 끝을 간질이는 표현들에 설레고, 여러 인물들이 빚어내는 진실의 다른 빛들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내가 작가 김연수의 알게 된 지는 조금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만나 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첫 느낌은 모호한 것이었다. 뭔가 매력적이라면서도 낯설고 애매했다. 그리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란 신간을 접하면서도 ‘음~ 나중에 읽어야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양 갈래머리를 한 소녀의 뒷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그래도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라는 문구에 마음이 조바심을 쳤다.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 가을의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랑살랑 흔들리며 따끈따끈 아련한 연애소설을 탐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로, 그 의아함은 더 큰 호기심을 낳았다. 그리고 ‘카밀라’라는 한 입양아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선 여정, 그리고 미혼모인 엄마를 찾는 과정 속 많은 이야기들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진실들이 고개를 들 때면, 그 이야기 자체에 함몰되었다. 그리고 굉장히 속도감을 느끼면서, 그 어떤 사랑이야기보다 가슴이 시려왔다. 단지 진실을 드러낸 듯 툭 던지고 끝을 맺는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서술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또한 충격적 진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 앞서, 그 드러난 사실 이면의 진실을 원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증언과 이야기 전개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팽팽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이야기를 이끌던 그 힘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그 미지의 심연의 세계를 탐하고자 했다. 그런데 나는 작가가 쓰지 않은 이야기를 읽었을까? 그는 묻지만 나는 대답할 수가 없다. 그것이 아쉬워 나는 다시금 펼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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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추석연휴로 괜시리 들뜬 마음으로 보냈더니,

어느새 10월~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에 새삼스레 깜짝 놀라게 되는 시간인 듯하다.

 

어떤 소설로 마음에 살랑살랑 봄바람만큼 따사로움을 선사해줄지

두두두두~~~

기대감으로 다시 들떠본다.

 

 

 

 

<윤동주 프로젝트> 유광수  

 

9월 초에 출간되었던, 그러나 8월 신간 속에서 탐 냈던 책!

윤동주의 이야기를 두 번째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과연 어떤 시각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한 번 확인해보고 싶은 이야기!

 

 

 

 

 

 

 

 

 

<템테이션> 더글라스 케네디

 

 무척 익숙한 작가의 책! 어떤 이야기일지

그 속도감 넘치는 전개 속에 그저 달리고 싶은 책!

 

 

 

 

 

 

 

 

 

  <어느 유랑극단 이야기> 캐서린 던

 

결코 만만치 않은 이야기일듯,

그저 파란 하늘을 더 많이 올려다볼 수 있게

가볍게 펼치는 있는 책을 찾았지만,

끝내 <어느 유랑극단 이야기>에 발목이 잡힌 듯하다.

 

"우리의 삶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로 바라보며,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해 상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대담하고 도발적인 통찰을 제공하는 " 책이라는데  

 

이 가을, 사색의 늪으로 인도할까?

 

 

 

 

조금은 말랑말랑하고픈 마음이 앞서다보니,

나의 관심을 끄는 책을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욱, 

어떤 책이 선정될지 더욱 기대된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알라딘 서평단 11기 마지막!

휴~ 아쉬움이 가득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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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 - 4부 4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6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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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지>의 이야기를 숨 가쁘게 달린 후, 잠시 숨고르기를 하였다. 무척 흥분하여 열띤 이야기 속에 빠졌다가, 우울하고 절망의 시절과 마주하기가 왠지 거북했던 것인지, 이야기의 흐름을 놓친 듯, 나 몰라라 <토지 16>권을 방치하였다. 하지만, 추석 연휴를 통해 다시금 읽기 시작한 후, 역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번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식자들의 따분한 이야기, 현실성을 잃고 방황하는 장황한 이야기들로 비쳐지면서 자꾸만 마음속이 어지럽기도 하였다. 허나,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만주 일대로 바뀌면서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특히 옥이와 두메의 이야기는 고개를 절로 숙이게 한다. 토지를 읽다보면, 자꾸만 그 혹독했던 일제 강점기를 살아낸 뭇사람들의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게 된다. 교과서나 위인전 속 열사, 투사들의 범접하기 힘든 이들의 크나큰 노고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절절하게 그 시대를 생생하게 낱낱이 증명하고 있었다. 독립은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는 김두수(거복) 같은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이름 한 자 남겨진 일 없이 살다갔지만, 소리 없이 자신의 삶의 일부를 희생하며 숨죽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피부로 와 닿는다. <토지>의 가장 큰 힘은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숭고한 삶의 증명이 아닐까?

 

첫 시작인 7장 ‘중매’의 영호와 숙의 중매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였다. 한복의 아들 ‘영호’의 학생 운동과 그로 인한 한복과 평사리 사람들의 화해로 영호에 대한 기대가 내심 컸던 것일까? 그의 행동은 예상 밖으로 너무도 빗나가 있었고, 그로 인해 한복의 삶의 진정성, 그가 원하고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모로서 자신의 삶을 항시 자각하고, 굳은 심지로 바른 길을 가고자 한 한복의 삶, 그가 살아낸 그 끈기와 인내의 시간들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내 한은 옷으로도 못 풀고 밥으로도 못 푼다. 다른 사람하고는 다르다. 나라에 대한 충절심이 남달라 그러는 것도 아니다. 내 자식놈이 또 한을 냄길까봐 그기이 무서븐 기다. 자자손손 얼굴 치키들고 살 수 없게 될까 싶어서 두려븐 기라. 형이 그러는 것도 부끄러버서 시시로 가심이 철렁철렁하는데, 니 할무이가 우떻게 돌아가싰노. 자식 놔두고… 세상에 얼굴 들 수 없어이.”

“남자의 뜻이 멋꼬?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남자의 뜻이란 대로(大道)를 걷는 기지 잔재주 부리감서 지름길로 가는 거 아니라 하싰다. 길이 아니믄 가지 마라, 그런 말도 하싰다.”(163)

 

이야기의 배경은 평사리에서 만주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 홍이가 떠난 시간을 기점으로 만주의 이야기는 그저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접해 들을 수 있었고, 궁금했던 홍이는 등장하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홍이 등장하였고, 그것은 김두수와의 만남으로 시작하여 더욱 마음을 간질였다. 그러면서 또한 임이의 등장, 언젠가 조선으로 돌아왔던 임이가 소문을 타고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다시 만주로 돌아온 임이, 송애 그리고 김두수의 악행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슴을 졸이며 애를 태우게 된다. 그에 비례하여, 홍과 석이, 그리고 길상을 기다리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에 열렬한 응원을 보내면서 다음을 기약한다. 암울한 시기, 그 처절한 속살과 마주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기대하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에서 삶의 열의를 느끼게 된다. 잔인함에 비례하여 삶의 뜨거움이 나의 손 끝에 오롯이 전해진다고 할까?

 

“옛날, 한창 혈기 왕성했을 때 헌병대에 잡혀가서 반항하다가 겪은 고통을 홍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오는 동안, 분노를 자제하는 힘은 그 고통스런 기억에서 온다. 바보짓 하지 마라! 해서 홍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5)

바보짓 하지 마라! 스스로 겸손한 마음가짐을 갖고, 한복의 그 마음을 지향하면서 내 살아온 삶의 여정을 수시로 자각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깊숙이 자리하였다.

 

오가다와 인실의 여정이 <토지 16>권의 한 축이기도 하였다. 그들 사이의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내심 궁금하다. 수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서울로 돌아온 찬하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다. 또한 4부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조용하의 자살’은 그저 그간의 그의 행적만큼 날선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많은 일본인들의 만주에서의 삶의 단면이 그려졌다. 그 속에서는 전체 일본인으로 매도할 수 있는 왜곡된 시선에 대한 날선 비판이 함께 있어, 오늘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하였다. 일본의 우경화, 독도 문제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우리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 내재한 분노, 그 일시적이고 감상적일 수 있는 애국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고, 오가다와 인실의 사랑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많은 것들이 궁금해 다음 이야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진다. 또한 상현을 집을 찾은 길상과 환국, 윤국, 그리고 양현의 이야기는 잠시 그대로 멈추었다. 그것도 쌍둥이같이 닮은 남매 양현과 민우, 양현을 단박에 알아본 상현의 아내, 그리고 만주를 떠돌고 있는 상현의 이야기가 내심 궁금해진다. 항상 우울과 좌절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상현, 그래서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그의 이야기가 이젠 궁금해진다. 그 기나긴 수렁에서 벗어나있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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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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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어느 9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나요?”라는 표지의 광고 문구가 나를 매료시켰다. 그 당시 이 하나의 문구는 내게 호의보다는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왜? 나는 결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 허덕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의 바다>의 주인공처럼 시험에 낙방한 채 백수, 취업준비생의 신분으로 기나긴 하루하루의 시간에 함몰되어, 현실과 이상의 커다란 간극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꿈만은 여전히 꾸고 싶어 아우성치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이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7) 그렇게 나는 상처투성이로, 나의 현실을 거부하고 또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방향선회를 해야만 했다.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버틸 재간도 없었다. 절묘한 시기, 나와 같은 처지의 주인공 ‘은미’와 그녀의 고모 ‘순이’의 이야기는 자극이 되었고, 적절한 방향타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울하고 상처투성이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던 <달의 바다>를 다시금 펼쳐보았다.

 

 

 

신문기사 시험에 매번 낙방하고, 자살 계획을 세울 즈음, 취업준비생 ‘은미’는 할머니의 특명으로 미국에 있는 고모를 만나러 가게 된다. 십여 년 넘게 만나보지 못한 고모는 우주비행사라며 할머니에게 간간히 편지를 보냈었다. 하지만 똑똑하고 당찼던 순이 고모의 삶은 편지처럼 화려하지도 꿈결 같지도 않았다. 은미가 만난 고모의 현재는 간이 간판대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고, 병마와 싸우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고모는 꿈꿔왔던 것에 가까인 가 보았을까?

 

 

 

<달의 바다>의 백미는 고모의 편지다. 고모의 편지는 시선을 사로잡은 채 결코 한눈을 팔 수 없게 하였다. 정말 우주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그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현실을 잊게 하는 환상의 세계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고모의 편지는 많은 것을 들뜨게 하고, 현실의 고달픔을 잊게 하는 듯하다. 그녀의 편지가 할머니의 삶의 청량제였듯이, 누구라도 고모의 우주여행은 다른 차원의 꿈을 긍정하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꿈꿔왔던 삶과는 거리가 멀어질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스스로를 긍정하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야할까? 그저 비관과 회의로 낙심한 채 고개를 떨궈야할까? 아니며, 그래도 꿈을 쫓아야만 할까?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145)라는 고모의 말에 꿈꿨던 일조차 부끄럽지 않을 삶의 해답이 있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이 꿈꿨던 삶의 밑그림조차 희미해진 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 역시 이젠 전혀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단 하나의 꿈이었던 것은 삶의 작은 유희가 되어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달의 바다>가 내게 선사해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최고, 최선이 아닌 차선, 차차선의 선택, 그 선택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발품을 파는 행위, 그 또한 삶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리란 기대가 너무도 큰 힘이 되었다. 지난 꿈과는 거리가 먼 지금의 삶, <달의 바다>를 읽기 전의 시각에서 어쩌면 황폐한 ‘회색빛의 우울한 모래더미’일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순이 고모처럼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라 긍정하려 한다. 지금껏 그려왔던 그림이 아닌, 밑그림조차 희미해진 삶, 그런데 어느 한 귀퉁이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들이 나를 들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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