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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 -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
오세정.조현우 지음 / 이숲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 ‘고전 읽기’는 내 독서 생활에 새롭게 등장한 화두다. 언제부터가 조금씩 느껴지는 책읽기의 갈증, 그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인문과 고전 읽기’로 해소해야겠다고 다짐을 해왔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지가 않아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바로 ‘고전’ 이었다. 그럼에도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는 한 눈에 들어왔다. 대중문화와 고전의 만남, 알게 모르게 우리 문화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어 숨 쉬는 고전, 그 고전을 좀 더 쉽고 친숙하게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책을 펼쳤다.
고전 읽기를 통해 더욱 긴밀히 우리 현실을 반추하고 삶의 지혜를 강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생각했던 고전 읽기에 우리 고전 문학은 배제되어 있었다. 일련의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출판사별 서양 문학서가 책장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을 뿐!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를 읽으면서, 나의 어리석음이 심히 부끄럽고, 또한 깊이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고전에 대한 편견과 오해, 더 나아가 우리의 옛이야기에 대해 무신경, 소홀함을 인식하고 반성하다보니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또한 <프로그>와 <컬처 파워>라는 책은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를 다시 보게 하였다. ‘스토리텔링’은 우리 시대 새롭게 부각된 화두이다. 어디서나 ‘스토리텔링’을 부르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제야 겨우 그러한 변화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문제의식-책 속 12가지 주제-을 내포하고 있는 우리의 옛이야기를 다시 보고,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 <옛 소설에 빠지다>(조혜란, 2009, 마음산책)이 들려있다.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는 영화, tv드라마,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어우러져 우리의 고전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그리고 ‘오세정’과 ‘조현우’라는 두 명의 저자가 쓴 책-물론 두 저자가 쓴 이야기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이기에 더욱 다양한 시선에서 고전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읽으면서 어느 저자의 내용일지를 생각하는 것 역시 끊임없이 어떤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언젠가 <구운몽>을 읽으려다 포기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특히 한문체의 문장들에서 오는 난해함은 우리 고전에 대한 거부감으로, 내겐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그런데 그런 고전에 대한 편견을 깨졌다. 그리고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홍길동전, 춘향전, 선녀와 나무꾼 같은 친숙한 이야기는 유년의 시간적 한계를 벗어났다.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는 무척 특별하고 참신하게 다가와 우리에게 숨은 옛이야기보따리를 한 가득 풀어놓았다.
예전 한창 읽혔던 ‘동화 비틀기’에 이은 ‘고전 비틀기’라고 할까? 기존의 틀에 박힌 교훈들을 ‘신나게’ 뒤집어버림으로써 우리 고전 문학에 숨어있던 다양한 화두, 문제 제기는 기발하고 흥미로웠다. 일단, 고전을 쉽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 신나게 읽었고, ‘우리 고전도 쉽고 재밌다’는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였다. 특히 고전 속 다양한 이야기가 다양한 영상 매체로 재탄생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고전 속에 담긴 인류 보편적 가치가 동서양의 문화 콘텐츠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향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다양한 영상 매체-특히 우리의 고전과 서구 문화 콘텐츠의 절묘한 조화-와 어우러져 여러 질문들을 툭툭 던지는 전개 방식이 뇌세포를 수없이 자극하였다. 인류 보편적 가치, 자아·성정체성, 여성의 사회적 지위, 선과 악, 사랑 등 12가지의 주제로 폭넓은 사고의 장을 펼쳐주었다. 우리 고전 문학 12편의 새로운 접근방식은 편협한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 훨씬 다양한 의미들을 이끌어내었다.
어린 시절 <옹고집전>은 ‘어느 날 갑자기 또 다른 내가 나타나 진짜 내가 쫓겨나게 된다면?’을 상상함으로써 아찔한 공포 그 자체였다. 가짜로 인해 진짜인 내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그 순간만큼은 부모님말씀을 잘 들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을 나왔다. 어렴풋했던 ‘나란 실체?’에 대한 고민을 이 책은 첫 번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심청가>를 통해 심청을 죽음에 이끈 자살 또는 타살 방조 용의자를 거론하고, <홍길동전>에 대한 ‘허균저자설’에 대한 반론과 율도국에서의 착취, 식민주의적 관계가 내포한 다양한 의미로의 재해석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수정전> 성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였지만 <여성영웅설화>와 연계되어 유교적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의 적극성, 진취성을 풀어낸 우리의 생소했던 고전 또한 무척 유쾌하고 흥미로웠다. <사씨남정기>를 통해 ‘사랑의 정의 속에 숨겨진 사랑이란 이름의 권력’과 <유충렬전>과 <주몽신화> 속 만들어진 절대 악과 영웅의 이야기도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창세기> 즉 창세신화를 통해 앞으로 도래한 사회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질, 능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무척 의미가 있었다. 새로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은 역시 ‘선한 품성’과 ‘자연과의 소통 능력’이었다. 뉴스를 접하다보면 지금이 바로 혼돈, 혼란의 시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스친다. 이상 기후, 화산 폭발, 지진, 많은 질병과 기아,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바라보며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의 선택과 결단, 그리고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도덕, 정의가 살아있는 평화, 공존이라는 희망을 염원하게 된다.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는 우리 고전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는 동시에 고전을 과감하게 비틀면서 옛이야기를 새롭고도 신선한 시각으로 제시하였다. 그 속에서 오늘의 화두를 던지며 사고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스토리텔링이 강조되는 시대, 창의성과 우뇌의 시대, 그리고 문화강국, 문화주권 등이 화두인 시대에 우린 안에서 세계인과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의 원천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옛이야기가 담고 있는 동서고금을 망라할 수 있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대중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재창조함으로써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서 우리의 옛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 ‘지금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옛이야기를 즐기고 있으며, 또 즐겨야할 때이다.
또한 문화 콘텐츠의 보고, 우리의 자산인 옛이야기를 더욱 발굴하고 그 가치를 우리 스스로 소중히 여길 때, 비로소 우리는 문화강국이 되지 않을까?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는 문화강국의 잠재력, 그 가능성에 대해 문화산업적 가치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에너지를 생생하게 느끼고, 우리의 옛이야기를 활용할 수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