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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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무협지 소설 느낌의 표지라 처음엔 무심코 지나칠 ‘뻔’하였다. 다행히 저자 ‘김탁환’의 세 글자가 크게 다가오면서, 다시금 설레고 기대감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소리 소문 없이 언제 또 이야기를 풀어놓았단 말인가! 자칭 ‘소설 노동자’답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 우리내야 반갑게 맞으면 정신없이 읽고 즐거움에 취하면 그 뿐!

 

개마고원 밀림의 주인인 백호, ‘흰머리’와 포수 ‘산’의 숨 막히는 추격전을 다루고 있다는 말에 문득, <잘 가요, 언덕>(차인표, 살림)이 떠올랐다. 옛날 옛적부터 우리의 전설, 전래동화 속에는 ‘호랑이’가 영물로, 또는 희극의 대상으로 우리 민족과 삶을 함께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잘 가요 언덕>에 등장하는 포수와 호랑이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가슴을 뛰게 하면서 강한 여운을 남기며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살짝 아쉬움과 큰 여운을 남겼던 호랑이(백호였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아리송하다)와 인간의 승부의 마지막 종착지가 바로 <밀림무정>처럼 느껴져 부푼 기대감으로 들떴다.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란 수식이 붙는 ‘김탁환’이 풀어낼 호랑이와 포수, 그 극한의 긴장과 흡입력을 즐기기 좋은 겨울이 아닐까?

 

쫓고 쫓길 수밖에 없는 호랑이와 인간의 대립이 개마고원을 배경으로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눈 덮인 개마고원, 울창한 나무들 사이 백호 ‘흰머리’와 포수 ‘산’이 마주하고 있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온몸이 짜릿해지는 기분, 하지만 너무도 처절하게 다가오면서, 동물원에서 보던 그런 호랑이가 아닌 야생의 혼을 지는 흰머리와 다른 호랑이들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직 상상도 하지 못했다. 팔다리가 뜯겨 나가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운명의 팽팽한 줄다리가가 온몸의 세포들을 날 서게 만들었다. 또한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리고 애증의 관계로 발전하면서 호랑이와 포수 사이가 더욱 흥미로웠다.

 

포수 ‘산’의 묵직함, 7여 년 간의 집념, 호랑이를 목숨처럼 지키고자 하는 ‘주홍’의 애절함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가슴 속엔 어떤 뜨거움이 용솟은 치는가? 벅찬 박동 소리를 들으며 삶과 마주했던 적은 언제인가? 빽빽한 빌딩 숲 사이에서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밀림의 처절함과 뜨거움이 아닌지, 총에 새겨진 ‘밀림무정-거칠고 단순하고 치열한 본능만이 존재하는 밀림에는 사사로운 정 따위는 없다-’에 담긴 의미가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생을 오롯이 건 한 판 승부, 그 승부에 대한 열망과 ‘무정’하다지만 오히려 더 뜨거운 정이 넘치는 밀림 숲의 하얀 눈보라 속으로 성큼 걸어가고 싶어진다. 눈 덮인 산을 훈훈하게 데어줄 우리 안의 어떤 갈망을 찾아서 말이다. 이 연말 나태해지려는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사람냄새 풀풀 맡으며, 땀과 열정으로 가득한 ‘생에 대한 뜨거움’을 처절하게 느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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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서 배우는 마음경영 CEO가 읽는 클래식 2
홍상훈 지음 / 새빛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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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시의 매력이나 운치를 느꼈던 것은 몇 해 전 겨울 어느 온돌방에서였다. 흘리듯 일필휘지의 맛깔스런 한자들에 호기심을 느끼면 그 속에 깃든 사연을 듣다보니, 참으로 멋스럽고, 깊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모두가 공감하며 한 구절 한 구절 읊조리며 이야기꽃을 피웠을 정겨운 시간을 상상하다보니,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 흥미로웠다. 그 때의 추억을 떠올리다보니, ‘한시’를 소재로 한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 경영>을 지나칠 수 없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삶을 담아낸 옛사람들, 그 속에서 우러나는 진한 삶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다고나 할까? 그렇게 설레는 마음과 두려움으로 책을 펼쳤다.

 

고리타분하고 어렵게 느꼈던 한시의 깊은 맛과 보편적인 삶의 통찰력에 깜짝깜짝 놀라고, 천 여 년 전에 쓰인 시구 하나에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듯 ‘띵’하니 울렸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아픔 곳과 가려운 곳을 어찌 그리 잘 알고 살펴 주는지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깊이에 숙연해진다. 깊은 울림은 손끝으로 전해져 온몸을 뒤흔들었다.

 

쉽게 뜻을 헤아리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의역 풀이로나마 한 구절 한 구절 읊조리며 오늘의 나를 뒤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해석과 단상이 더해져, 현실의 삶을 관통하는 진솔하고 날카로운 시선에 오히려 마음은 정결해지고 차분해진다. 깊은 밤 벗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에 제법 어울리는 단짝을 만난 기분이랄까? 그렇게 행간에 숨어있는 풍부한 삶의 철학, 정신을 음미하고 곱씹다보면 그 속에 담긴 지혜와 교훈도 소리 없이 다가온다. ‘얼, 흥, 정, 멋, 맛, 격’의 정신을 오롯이 느끼며 차분히 가슴을 울리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한시와 저자의 단상들에 끊임없이 매혹되었다.

 

유전시작인(有錢始作人) 돈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 노릇을 하게 된다는 문구, ‘가난한 여자’를 통해 자본주의의 비정함을 돌아보고, 사람됨에 대해 깊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과연 나는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지, 삶의 가치, 의무를 부여하고 현실을 견디게 해 줄 이상과 희망은 무엇인지 옛사람들의 삶의 고뇌에 기대어 곰곰이 생각하며 나 역시 깊은 밤 고뇌에 빠져든다. ‘기만이 횡행하고 옳고 그름이 뒤섞여 어지러운 당시의 세태(44)’를 비판하는 글은 바로 우리의 오늘이 아닌가! 사람 사는 그렇고 그런 풍경 속에서 오늘에 대한 풍자로 읽히며 한시의 맛을 혀끝으로 느끼게 된다.

 

여러 한시를 통해 마음을 반추하고 내 안에 도사리며 수시로 얼굴을 들이미는 숱한 감정의 소용돌이, 끝없이 들끓는 욕망들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자,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저자의 바람대로 한시에 대한 낯섦과 거리감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품 자체를 논하기에는 힘겹지만, 한시를 훨씬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도 나름 큰 이미를 지니지 않을까?

 

훗날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 경영>에서 만난 한시 중에서 내 마음을 비추며 음미하고 읊조릴 수 있는 그런 날을 기약해본다. 저자의 해석을 빌렸다는 사실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그러니 먼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그럼에도 또 다시 곱씹으며 깊은 울림과 긴 여운을 즐기고 또 즐기고 싶다. 마음을 고요하게 정화시켜주는 힘이 가득한 한시들에서 위로와 휴식을 또한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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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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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저자가 바로 ‘마이클 샌델’아닌가! 그가 던졌던 화두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고, 나 역시 그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공정 사회’의 기치와 맞물려 전혀 공정하지 않은 사회, 그 사회에 대한 환멸과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양심과 정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자각은 신선하고 또한 놀라웠다. 솔직히 말하면, 결코 쉽지 않았다. 아니 어렵다. 머리가 지끈지끈거리고,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느끼며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은 내게 그랬다. 그리고 무엇인가 커다란 결핍감에 또 다시 ‘마이클 샌델’의 저서를 손에 쥐었다. 마땅히 읽고 그가 던지는 화두들을 곰곰이 생각하고 스스로를 다시금 돌아봐야만 했다.

 

얼마 전 기가 막히는 공금횡령사건이 있었다. 공금횡령이야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국민의 성금을 관리하는 ‘공동모금회’의 횡령 사건은 무척 당혹스럽기까지 하였다.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도덕적 해이, 거짓말, 부패, 도덕 불감증 등,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이 연말 뼈저리게 느낀다. 대통령이 내걸은 ‘공정사회’의 기치! 그런데 공정사회라는 화두가 우리에게 가져온 불신, 실망, 좌절, 환멸은 우리 스스로 ‘정의’와 ‘도덕’을 논하게 한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 왜 도덕이 화두일 수밖에 없는지 고민하며, <왜 도덕인가?>를 펼쳐, 다함께 성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했다. 절묘한 시기와 맞물려, 그가 던지는 숱한 질문들을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숙제 아닐까?

 

민주 사회에서 도덕성의 의미와 본질,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다루며, 여러 도덕적, 종교적, 정치적 딜레마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다방면에서 공정한 사회를 위한 도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많은 사례를 통해 도덕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된다. 여지없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파고들며 적나라하게 오늘을 비판하고 있다. 욕망의 충동을 부채질하는 자본주의, 대량 소비 사회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무시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를 고찰하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도덕, 양심이 밑바닥으로 떨어진 오늘, 지금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돌이길 수 없다는 한탄을 쏟기 이 전에 말이다.

 

최근 ‘강남몽, 허수아비춤, 비즈니스’와 같은 소설들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 중심의 우리 사회의 비열하고 추한 단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경제적 풍요 속에 감춰져 있던 사회 제도의 모순과 비인간적인 행태들을 생생하게 들여다보면서, 천민자본주의, 부정축재로 일구어낸 모래성 같은 허상과 마주한 느낌! 그렇게 어떤 허기와 갈증을 다소 나마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제의 핵심을 찌르며 사고할 수 있는 시간, 우리가 놓치고 외면했던 문제들의 근본을 파헤치며,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했다.

 

용어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논쟁의 핵심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번 <왜 도덕인가?>역시 만만치 않게 어려웠다. 칸트, 듀이, 롤스 등과 같은 위대한 학자들의 주장과 논쟁 속, 실례 중심의 전개 방식은 논쟁의 중심으로 훨씬 쉽게 다가가도록 도왔다.

특히,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인 ‘자유’에 대한 상실과 불안에 대한 논지는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미국의 실례 중심임에도 그 속에서 우리 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가 있었다. 미국의 70년대는 마치 오늘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느낌이랄까! 10년에 걸친 인플레이션과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미국민들의 자신감을 무너뜨렸다는 지적은 우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일으킨 한강의 기적, 그 놀라운 경제 발전과 풍요를 맛보려는 찰라, IMF 경제 위기는 우리 안의 자부심과 열정을 무참하게 무너뜨리지 않았는가! 그리곤 이젠 불안과 좌절의 노예가 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하였다.

진정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로 이 세상에 당당히 서 있는지, 또한 양심과 도덕적 가치 앞에 떳떳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곱씹고 또 곱씹으며, 한 번 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도덕’, ‘도덕적 가치’에 대해 고찰하고, 문제의식과 대안을 통해 한 걸을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삼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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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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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적잖이 신성한 충격에 휩싸이게 하였다. 삶을 조망하는 시선, 가치에 대한 일대 변화를 일으키며, 진정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이 던진 화두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그가 말하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 윤리란 화두에 대한 담론에 한 번 끼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에 주목하였다.

 

대학 전공과도 연관되는 이야기지만 지금껏 생명과 유전학적 접근을 그다지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다소 나와 맞지 않아 큰 좌절을 맛보았고, 몽상처럼 흩어져 나를 휘두르는 생각의 실체를 확인-‘저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어떻게든 제대로 파악해 보려고 한다’(36)라고 말한 그 심리 그대로다- 하고, 깊숙이 자리한 불편하고 거북한 느낌, 생각들을 좀 더 견고히 다듬고 싶은 마음이었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는 제목 그대로 ‘생명 윤리’를 여러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던져졌던 몇 가지 이야기를 되새기며 읽기도 하였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 하에서 소비자의 선택적 선호와 기호가 유전학적 강화로 개별적, 자발적 선택의 문제로 다루어진다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이란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까?’하는 문제가 의미 있었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완전함, 완벽함을 쫓지만 그럼에도 ‘불완전’한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 20세기 우생학의 그림자가 오늘의 생명공학(유전공학과 강화)의 논란 위에 드리워져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자유 시장 경제, 무한경쟁 하에서 우생학의 변주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생명의 윤리’란 화두를 두고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였다. 인간의 욕망의 끝을 헤아릴 수 없거니와, 삶, 생명의 소중한 가치, 인간 존엄성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럼에도 물질만능주의, 외모 지상주의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 그리고 과잉 양육 등의 다양한 문제가 함께 화두로 떠오른다. 진정 어떤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일지를 고민하다보면, 각자의 개성, 고유성을 지키면서 사회적 틀(시선)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는 없는지 자문해본다.

 

자식은 결코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선택권이 부모에게 정당하게 주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이에 대한 선호와 기호가 자발적 선택의 자유에 해당한다면, 아이에게 주어진 삶의 본질이 온전하게 유지될까? 단지 부모의 능력(부와 권력)이란 잣대에 의해 자식의 유무가 다름 아닌 소유의 선택 문제로 전락하는 것을 아닐까? 이런 저런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자녀의 유전학적 우연이 모종의 사회적 약속에 의해 단일화, 획일화되는 듯 아찔한데, 인간의 존엄성이 사회적 틀에 의해 끼어 맞춰진다는 경고의 메시지에 숙고하게 된다. 세상에 맞추기 위해 본성을 바꾸는 것은 자유권을 포기한 극단적 형태란 충고와 우리의 유전적인 능력을 가지고 ‘인간성이 왜곡된 부분’을 곧게 펴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재능과 제한에 좀더 친절하고 사회·정치적인 제도를 만들기 위해 가능한 노력을 해야 한다(144)는 ‘마이클 샌델’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본다. 나는 교정하지 않은 채, 뻐드렁니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치아 교정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때론 우리 부모님은 내게 치아 교정을 ‘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망을 들었던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였다. 왠지 부모로서 마땅한 책무를 하지 않은, 경제적 무능으로 취급하는 뉘앙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물론 뻐드렁니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다곤 할 수 없다. 아니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단연코 내 선택의 문제였다.

그리고 ‘아빠의 뻐드렁니가 아닌 엄마의 고른 치아를 물려받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의 굵은 목을 닮지 않고 아빠의 가늘고 긴 목을 닮아 얼마나 다행인가?’하는 식으로 부모님과 나의 외형적 유사성을 두고 유전학적 분석을 하며 불평 아닌 불평으로 우스갯소리에 웃고,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그런데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내가 나여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런 나의 고유성이 부모의 무작위적 결합에 의해 우연히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란 사실이 가슴으로 다가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자의 다른 이야기는 잊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나란 고유성의 가치가 내 안에서 드높아지면서 생명에 대한 겸손과 경외감에 고취되었고, 생명을 선물로 받아들여 감사하는 마음이 한 가득 내 안에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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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콘서트>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건축 콘서트 - 건축으로 통하는 12가지 즐거운 상상
이영수 외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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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콘서트하면 어떤 이미지를 마음속에 그리는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콘서트의 현장을 한 번 떠올려보자! 후끈 달아오른 열기, 폭발적 에너지가 넘치는 곳, 뜨거운 그 무엇이 가슴 속에 용솟음치면서 절로 한 마음이 되어 그곳에 쉽게 함몰되어 버린다. 즐거움과 흥겨움이 넘쳐나는 곳의 그 생생한 에너지가 일상의 번잡함을 잊게 하지 않던가! 그리고 생활의 활력을 찾기 마련일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 콘서트>는 우리에게 그런 열정과 흥겨움을 선사하고 있을까? 나의 대답은 두말 할 필요 없이 "예스“다. 건축에 대한 문외한인 대다수의 독자에게 흥겨운 건축 콘서트의 장이 펼쳐진다. 누구라도 건축 콘서트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면 될 것이다.

 

건축은 명사로써,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흙이나 나무, 돌, 벽돌, 쇠 따위를 써서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그 의미가 쉽게 다가오는가! 솔직히 책이 아니더라도 사전적 의미에 함축된 건축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매일 접하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방대하고 복잡하였다. 현대의 최첨단의 기술이 접목되고, 예술의 범주까지 확대되고, 오늘날의 자본주의, 소비 체제 속에서 건축의 영역은 끝없이 확대되어, 쉽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건축은 뒤로하고, 우리의 시야에 머무르는 건물들이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와 생활의 활력이 되어 주었다.

 

건축을 상상, 공간, 빛(색채)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루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기대 이상의 흥미진진하고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한 가득이었다.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인 건축을 한 권의 책 속에 담아내려 했던 저자들의 의지를 느끼며, 훨씬 방대한 영역인 ‘건축’, 그 속엔 인간의 정신, 예술, 문화, 그리고 환경을 아우르며 조화를 꿈꾸는 지난 건축의 역사와 오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곤 무심코 지나쳤던 숱한 건물들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기존의 차창 밖 눈을 어지럽히는 그렇고 그런 건물들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부여된 또 다른 실존으로 다가왔다. 새롭게 의미가 부여되고 해석된 건물들을 바라보다보며 절로 설렘과 뭉클함이 느껴진다. 즐비하게 늘어선 어둡고 우울한 회색빛 도시가 이젠 사람과 세상, 그리고 자연과 끊임없이 소통하길 갈망하고 있었다. 자본의 힘에 의해 지탱되는 거대한 구조물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정신과 이상을 담아낸 건축은 다채로운 무지갯빛이었다. 그렇게 재탄생된 건축, 그것은 또 하나의 자연으로 다가왔다. 인위적이지만 그 인위성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움, 자연과의 어우러짐에 대한 희구는 건축이 한없이 인간적이고 따스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건축이 갖는 한계, 인간의 욕망을 담아낸 건축에 대한 신랄한 자기반성(?)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포스트모던 건축은 대중성을 표방하지만, 실은 대중의 대량 소비에 집중되어 있(231)’다는 자기 고백은 우리가 허구적인 이미지와 단순히 기호만을 소비할 뿐이라고, 그러한 생활에 쉽게 길들어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단적으로 ‘지역성이 상실된 휴양 도시의 실체’는 그렇게 우리는 대중문화와 소비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이 끊임없이 소비와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는 진실을 일깨워준다.

 

‘환경과 인간의 이음매’로써의 건축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공간을 훨씬 더 풍요롭게 해주었다. 건축은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술과 놀이로 형태로 뒤섞여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감성을 자극하며 삶의 유희를 이끌어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가꿔주고 활력을 불어주었다. 다시 한 번 차창 밖 풍경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두 눈에 비치는 풍경, 다양한 건물들에 더 많은 의미가 더해지고, 차가움이란 익숙함이 오히려 생경해진다.

사람을 담아내는 건축,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건축은 설렘과 환상적인 즐거움을 가득 안고,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일상에 유쾌함을 더해주는 건축의 힘을 느끼며, 흥겨운 건축 콘서트를 즐겨보면 어떨까? 차가운 겨울, 이 세상이 더 다채롭고 생동하는 열기로 다가올 것이다.  

 

 

 

오탈자
249 이나라 - > 아니라
330 에술가 - >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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