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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평점 :
기사를 통해 개작한 그의 신간 소식을 접하고, 조정래 작가의 작품들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손길을 이끈 것이다. 우리 현대사의 어떤 모습을 이번 작품을 통해 펼쳐줄지 그저 일단 펼쳐들기 바빴다. 그런데 정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차라리 모르고 지나쳤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불편하고 저리다.
“카알 가아씨요~” 외치는 복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내내 궁금했다.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 이야기이려니,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의 하소연, 울분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머슴 생활을 하다 무일푼으로 쫓겨나기도 했고 일가를 이루면 생활이 풀리는 듯하더니, 아내는 긴 투병 끝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큰 아들은 객지로 나가 소식이 없다. 그리운 고향을 등지고 야반도주하게 된 사연, 그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속 몰인정한 서울살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이 정말 놀랍고 안타까웠다. 또한 떡장수 아주머니, 동향의 식모 아가씨, 복권 파는 소녀 등 복천 할아버지의 주변 인물들의 사연, 그 기구한 운명 등이 서로 얽히고 얽혀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침을 삼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불편하였다.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의 현장 속으로 덩그러니 떨어져 그 힘겨운 삶과의 사투를 현장에서 지켜보는데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외면하고 싶지만,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그것은 바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아니, 더 나아가 우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지금도 여전한 여러 사회 문제들은 <비탈진 음지> 속 이야기의 뿌리가 되고 있었다. 그저 삶의 고단함, 힘겨움에 버둥거리는 이들, 그럼에도 쉽게 놓칠 수 없는 삶의 이유들이 책 속에 녹아 있었다.
1960년대의 ‘무작정 상경 1세대’의 이야기를 엮은 <비탈진 음지>는 새롭게 옷을 입고 우리와 만나게 되었다. 세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읽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는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이어주면서 이해의 폭의 넓혀주었다. 복천 할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고단한 삶, 그 치열함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의 인생이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참으로 만날 이유가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스쳤다. 직접 대면하기 불편한 진실들을 현미경으로 세세하고 관찰하듯, 내밀하게, 깊숙이 파고들며 나태한 나의 삶에 일침을 가했다.
그간 부모님의 희생, 그 치열했던 삶과의 투쟁의 역사가 아로새겨졌다. 한편으로 벼락 끝에서 결국 끝없이 떨어지는 듯한 복천할아버지의 삶, 그런데도 울분을 토하며 희망과 다짐을 외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그 울분의 마지막 메시지가 오래도록 가슴 속에서 울릴 듯하다.
요즘 한창 서울역 노숙자들의 이야기가 뉴스를 많이 타고 있다. 그들도 한때는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어떤 사회 운동가의 말이 왠지 짠하게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물론 앞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희망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큰 시련 앞에 좌절하고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어 삶의 의지, 희망을 내팽개쳐 버리는 나약함을 드러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복천 할아버지를 비롯한 이들의 치열함을 통해 그간의 혐오와 편견을 뒤로하고, 그 불편함을 직시하게 되었다. 이제 고민과 나름이 작은 실천이 필요한 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