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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주의자의 딸 - 유도라 웰티의 소설
유도라 웰티 지음, 왕은철 옮김 / 토파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유도라 웰티라는 여작가의 첫 한글 번역 소설이다. 작가에 대한 호기심과 신뢰는 작가의 이력이 말해준다. 이 소설의 매력은 우리나라에 첫 소개되는 소설이 1973년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69년으로 더 앞서기도 한다) 2008년, 거의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으면서 번역되기까지 어떤 호소력을 지녔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왠지 모를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다. '낙천주의자의 딸' 낙천주의? 책을 읽으면서 낙천주의라는 말이 맴돌았다.
로렐은 40대중반의 여자로 과부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매켈바 판사(71세)와 그의 젊은 부인 페이(로렐보 한두살 오히려 어리단다)가 주요인물이다. 그리고 로렐의 어머니 베키- 베키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와 의사 코트랜드 이외의 이웃사람들이 있다.
시카고에서 갑자기 아버지를 만나러 뉴올리언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아버지의 눈수술,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장례식, 그리고 로렐의 회상으로 크게 3개의 구도를 갖고 있다. 낙천주의자의 딸은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 자체는 아니지만 죽어가는 과정과 그리고 그로인한 헤어짐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는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솔직히 제목, 표지등을 통해 나는 쾌할하고 밝은 소설을 기대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책은 죽음,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다. 우리의 풍습과는 색다른 장례문화를 기억하며, 그리고 1970년대의 미국을 상상하면서 로렐의 입장이 되어 책을 읽게된다. 그리고 매켈바 판사, 베키를 기억하는 이웃사람들, 그리고 불청객같은 사람들, 죽음을 하나로 사람들이 모이고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무겁기만 한 죽음을 주제로 한 소설, 하지만 너무도 섬세하고 차분하게 차곡차곡 이별을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살지 않지만 이 소설을 통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던 날의 어릴 적 풍경, 죽음이 무언지 모르고 막연한 슬픔에 잠겼을 뿐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추억하기에는 남겨진 기억이 없었다(오히려 그것이 이제는 가슴아프다. 사진속에 할아버지와 내가 있는데 나는 할아버지를 추억하지 못한다.) 로렐, 남편도 이미 죽었고 어머니도 10년전에 이미 그리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혼자 남겨진 로렐, 남은 이웃들이 그의 아버지, 어머니를 추억하며, 공유할 수 있겠지만 왠지 로렐, 측은하고 슬프기만 하다. 그녀의 슬픔이 너무도 냉담하게, 오히려 슬픔이 없는 듯 그려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절절한 슬픔으로 다가올 뿐이다.
"로렐은 기억이 봄처럼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기억은 봄과 같은 성격을 지녔다. 어떤 때는 꽃을 피워내는 건 늙은 나무였다."(164쪽)
"기억은 소유가 아니라 자유로워진 손 안에, 용서받고 자유로워진 손 안에, 비어 있지만 꿈들에 의해 복구되는 방식으로 다시 채워질 수 있는 가슴 안에 살았다."(251쪽)
겨울비 내리는 날의 장례식처럼 그렇게 천천히, 무거운 소설의 분위기 속에서도 추억, 기억이란 것이 있어 조금의 위안을 받으며, 그렇게 미래를 향해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 글쎄, 이 책을 통해 하나의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다. 책을 덮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금후에 한 영화가 떠올랐다. 자세한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이 책의 소소한 분위기, 메시지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우리영화 그런데 제목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