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의 돌
아티크 라히미 지음, 임희근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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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돌'이란 제목도 호기심을 끌지만, 표지가 더욱 인상적인 책이다. 벽돌을 배경으로 한 붉을 색과 파란색의 히잡(부르끄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어떤 배경 속,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짐작하게 하면서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것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아프가니스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탈레반 정부의 여성학대(총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던 그 긴박한 순간들일 것이다. 극단적인 이슬람을 대표하면서, 여성에게 가해진 그 가혹함이란 상상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너무도 충격적인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인내의 돌>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면서 괜리시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다. 
 

기대감에 들뜬 것에 비하면, 처음 책을 펼치고서는 쉽게 집중되지 않았다.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한 여성의 가혹한 현실을 어떻게 풀어갈까하며 상상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리고 사건 전개가 아닌, 독백처럼 담담한 서술은 왠지 무미건조함이 느껴지면서, 거북했다. 그런데, 이 책의 놀라운 효과는 바로 그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던 여성의 독백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힘, 그리고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프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힘이었으리라 생각하였다.

 

'인내의 돌'의 의미가 책 중반에 이야기되면서, 앞뒤 이야기가 한 순간에 풀리면서, 이 여성의 독백, 과거 회상과 현 상황들이 커다란 파도가 되어, 나를 덤쳤다. 의식불명의 남편을 작은 방에 숨겨두고, 정성껏 간호에 힘을 쏟던 주인공은 어느날부터인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지난 과거를 고백하듯, 낱낱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자신이 길들여진 사회적 틀, 체제 속에서 자신의 고백은 위험천만한 것 들뿐.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닌지, 악마가 씐 것은 아닌지 갈등하는 부분에서는 한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고뇌를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내의 돌'의 의미를 알게되면서, 이야기는 이슬람 사회의 한 여성에게 국한되지 않음을 느꼈다. 가혹한 현실에, 온몸과 마음이 부서저라 참아야만 하는 운명 앞에, 최후, 최선의 선택과도 같은 것처럼 느껴지면서, 더욱 흡입력있게 이야기를 이끌었다. 또한, 전쟁이랑 상황과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되는 부분이 전에 읽었던 <카레소시지, 우베 팀, 풀빛>와 겹쳐지면서, 서로 다른 분위기과 상황들임에도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한 여성의 고난, 아픔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작은 위안과 용기를 갖게 되는 책, <인내의 돌>이었다. 진솔한 한 여성의 이야기는 감동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단단하던 돌이 와르르 깨지든, 지난 고통과 인간의 본성을 짓밝는 그 모든 형식들도 역시 와르르 허물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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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령 1
정선영 지음 / 여우비(학산문화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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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로맨스 소설이란 이야기에 끌려, <홍령 1·2>를 손에 쥐었다. 이 가을, 왠지 가볍게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가슴을 훈훈하게 적시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붉은 방울을 뜻하는 <홍령>의 은은하 표지도 한 몫을 하며 눈길을 끌고고, 한지 느낌이 살아있는 표지도 손에 쥐기에 참으로 따스한 감촉을 지녔다. 그런데, 시작부터 괴이했다. 어두운 동굴 속, 피묻은 주먹밥을 먹으며, 살기 위한 극단의 몸부림, 그리고 배고픔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장 한 잠 넘길수록 '무협지'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협지를 즐겨 있지 않았고, 딱히, 무협지라 할 만한 책은 손에 쥔 기억조차 없는 내게, 로맨스 소설를 표방한 무협지란 생각이 드는 순간, 잔잔하게, 하나의 영상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것은 바로 몇 년 전 <다모>라는 드라마였다. 왠지 모르게, <홍령>이란 이 소설과 <다모>라는 드라마가 하나처럼 느껴지면, 애잔한 감동이 온몸을 적셨다. 그만큼 의심의 순간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도 쉽게 빨려들었다. 그러면서, 아슬아슬 외줄타기하듯 팽팽한 긴장감에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졸이며, 숨가쁘게 읽어내렸다. 이것은 난생 처음, 아주 생경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서로 죽이고 죽이는 혈투, 암투 속에서도 잔잔하고 아련한 사랑의 기운이 넘치고 넘치면서 이 책을 감싸고 있어, 분명, 로맨스 소설임에 틀림 없었다.

 

'홍령' 또는 '륜'이란 불리는 살수와 '하난'이란 소녀의 우연한 만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어린 소녀는 '륜'에게 연정을 품게되고, 살수인 홍령에게 사람, 사랑의 기운을 북돋워주면서, 서로 연모하게 된다. 하지만 홍령을 사육한 주인은 홍령을 죽이려는 계책을 부리고, 하난 또한 사육하게 된다. 주인의 뜻에 따를 수 밖에 없는 하난과 륜은 사랑하는 이를 끊임없이 연모하며 죽음을 다해, 지키려 노력하는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커다란 줄기이다. 그리고 주인의 검은 그림자, 황제에 의한 갖은 시련 사이에서, 간계와 피비린내는 혈투, 그리고 또다른 황궁의 암투가 절절한 사랑과 끈끈한 우정(?)이 맛깔스런 양념이 되어,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아낸다.

 

뻔한 이야기라 생각하면서도, 그 이야기의 힘에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예상하지도 못한 독특한 이야기, 생소한 이야기를 만나, 주말내내 정신없이 보냈다. 흡사 무협지 아닌가 했던 생각을 돌이켜보면, 괴이했던 첫장면과 '사육'되면서 인간미를 잃어가는 살수란 소재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이야기 전반을 흐르는 사랑의 힘(하난과 륜의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사제간의 사랑일 수도 있었으며, 부모자식간의 혈육의 정을 포함하며, 넓게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보편타당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사람으로 살기 바라며 갈등하는 살수의 모습이 오히려,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면서, 이보다 더한 로맨스 소설은 더이상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는 너무도 선명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아직도 이야기 속 여러 장면이 살아 끔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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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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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이덕일은 만난 것은 <조선왕 독살사건>이었다. 그것도 지난해! 그리고 이번에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란 책의 출판 소식과 함께,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 그리고 한국사 4대 왜곡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일 일었다. 역사 바로 보기, 그 역사의 진실에 다가가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었다.

 

책을 펼쳤다. 그리고 크게 놀랐다. 얼마나 역사의 근본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례를 조목조목 파헤치고 있기에, 숨가프게 읽으며, 뇌신경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저자의 말'을 읽으면서, 분통이 터지고 답답함을 느꼈다. 이제 아주 조금 시작하였을 뿐인데 왜곡된 역사와 마주하는 것은 잔인하고도 잔혹한 일이었다. 책 속, 한국사의 4대 왜곡 이전에, 역사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우리의 태도가 여전히 식민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그 뼈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최근에 KBS 역사스페셜 특별기획 '만주대탐사'과 '동성왕 피습사건의 전말'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 특히 고조선의 역사가 얼마나 방대하고 드넓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고조선 역사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기에, 1부 '한사군은 한반도 내의 존재했는가?'란 의문으로 시작한 고조선과 한사군의 이야기는 아주 흥미롭고, 더 큰 확신을 갖게 하였다.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해 만든 '동북아역사재단'이 갖는 문제(특히 우리 나라의 구조적 문제라 할 만한 문제로까지 여겨진다)를 지적하고, 식민사관과 중화사상, 그리고 그 후예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2부 『삼국사기』초기기록은 조작되었는가?3부 노론사관은 어떻게 조선 후기사를 왜곡시켰는가?).'이병도'란 사학자를 중심으로한 식민사관의 후예들, 그리고 중화사상과 노론의 후예들이 여전히 현대사의 주류로 자리하고 있다는 현실이 또한 개탄스러웠다. 특히 예전에 이이의 '십만양병설'의 허구를 지적한 문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주도면밀했던 왜곡 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장 인식조차 못한 점이 부끄러워지는 4부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은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는 마지막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했다. 독립운동의 후손들의 궁핍한 삶을 접하면서도, tv속 하나의 현상으로만 여기고 안타까운 순간의 마음으로 끝났던 일을 반성하면서, '현대사 연구 금지론'에 의한 독립운동사 말살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조선의 역사를 대함에 있어, 우리는 현중국의 영토를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그들에 의해 이미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지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이 단순히, 영토의 수복(?)을 위한 국수주의로 점철된 편협한 역사관에 따른 것이 아니다. 다만,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때만이, 진정한 자부심과 함께 애정이 싹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들은 우리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더욱더 흥미롭게,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읽어야했다. 또한, 책을 통해서 그동안 가졌던 역사의 많은 의문들(특히, 노론사관)을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은 분개하는 마음 속에서도, 당당하고, 역동적인 역사, 자부심을 느끼며, 진취적이고 원대한 역사를 만날 수 있으며, 우리가 가진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소원해본다. 더이상 중화사상이니, 식민사관에 허우적거리는 역사를 만나지 않기를, 제 갈 길을 올바로 찾은 역사를 쉽게 교과서 속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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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의 음모
파트리스 라누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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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선호하는 제목이 있다면, 몽환적인 느낌, 신비로운 느낌을 풍기는 '나비'가 단연 일순위일 것이다. '나비'에서 풍겨지는 그 느낌은 만국 공통인 것일까? 일본작가 '온다 리쿠'의 <나비>도 마찬가지였고, 이번에 읽은 <나비들의 음모> 역시 몽환적이고 철학적이면서, 신비로움을 간직한 기인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얼마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파피용(papillon)'이 프랑스어로 '나비'를 뜻하는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빠피용>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 속 '나비'의 설정과 이야기를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친구의 말에 정말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살짝 낯이 붉어지기도......  

 

 <나비들의 음모> 속 '나비' 자체가 특별한 소재로서 부각되어 이야기를 이끄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천체물리학자 '로익'이 처한 상황과, 작은 요트의 이름 '모르포 호' 역시 어느 나비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며, 로익의 인생관을 총괄하는 의미로 '나비들의 음모'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소설이 사건 중심보다는 '의식'과 '관념'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들었고, 뭔가 종잡을 수 없는 인물들(로익, 클라라, 솔)과 그 인물들간의 신경전 그리고 망망대해에 표류한다는 설정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큰 사건이라면, 조난당하고 바다에 표류하면서, 어느날, 클라라와 솔이 물에 빠지고, 그 주변을 상어떼가 어슬렁거리는데, 로익은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클라라와 솔, 자폐증을 앓던 솔이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반전을 이룬다. 자폐아 '솔'이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인식하게 되면서, 그 인식의 과정을 로익과의 대화로 풀어가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솔'을 염려하여 비밀상자를 만들고, 5가지 질문을 하게 되는데, '현실과 상상, 시간, 의식, 신' 등등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펼쳐지는 부분에서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문득, 요슈타인 가이더의 <소피의 세계>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마지막 결말은 '나비들의 음모'라는 제목이 빛을 발한다. "너의 눈은 결국 너를 속인단다"라고 말한 로익, 세계의 흐름(?)을 '나비들의 음모'라 정의했던 로익은 진정, 자신의 눈으로 보고 인식한 8개월간의 표류 생활를 증명하고 설명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물론 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독특한 이야기였다. 세상에 대한 인식과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망망대해에 조난당한 극한의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론 쉽게 몰입하기엔 다소 어려운 점이  초반에 있었다. 처음에는 시작한다는 예고도 없이 바로 이야기가 중반부로 전개된 것만 같아, '뜨악'하기도 하였고, '로익'의 의식이 현실에 자꾸만 침입하여, 혼란스러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어떤 '음모' 속, 극한 상황(클라라에겐 로익이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더해진다)에 처한 불안, 두려움 같은 심리상태와 자폐아 '솔'과의 대화부분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게 되면, 꽤나 호기심을 갖고 몰입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전체를 바라본다면, <나비들의 음모> 속 그 의미가 크게 눈에 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피의 세계> 속 반전만큼,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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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자 민음의 시 155
김언 지음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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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높고 청명하게, 푸르른 하늘과 울긋불긋 가을산의 정취, 황금빛의 가을 들녁은 기차를 타고 여행하라 강하게 유혹할 뿐이다. 그렇게 생동하는 자연을 곁에 두고, 책과 씨름한다면? 법정 스님 말씀대로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는 계절인 것이다. 그래도 가을이다. 한 편의 시, 하나만으로도 어떤 두께의 책을 능가할 만큼, 마음을 살랑살랑, 잔바람에 일렁이게 하는 계절, 그렇게 시를 벗하고 싶은 계절로 금새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가을에 시를 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소설을 쓰자>라는 시집을 만났다.

 

 제목 <소설을 쓰자>는 참으로 신선하다. '시'집이라면서, 소설을 쓰자라 하니, 뭔가 발칙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절로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그런데,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빈 가슴을 채우려 했던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야말로 책과 그것도 '시집'과 씨름을 하고 말았다.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시를 기대했던 나는, 분명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제목의 신선함 뒤에 감쳐진 그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그런데, 날카롭고 정신이 번쩍 듣다. 시 속, 아니 시어 하나하나 속의 숨겨진 날카로운 칼날과 마주하면서 긁히고, 찔리고, 만신창이가 된 듯한데,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 느낌은 또 무언이란 말인가!

 

<소설을 쓰자> 속 시들 속 나의 가장 큰 느낌이라면, 날카로움 그 자체였다.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 칼날을 들이대면서, 호되게 호통치고 있다. 작품 해설의 언어학과 존재론 같은 어려운 것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을 자각하고, 반성하게 한다. 여러 매체를 통해본 오늘의 우리 사회를 면밀하게 해집고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중국집 이름은 진짜루, 확인되지 않은 단무지와 양파와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 어제도 그제도 나는 확인되지 않은 논문을 읽고 확인되지 않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확인되지 않은 일기 예보를 빋고 나왔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비가 그친 것 같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와 나는 친구다.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진에도 찍혀 있다. 그 빗방울이.

- 미확인 물체 中

 

가장 극명한 것은 '말'에 대한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그 무수한 말들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낳고, 그 상체를 들쑤시고 있는지를, 섬뜩섬뜩할 정도로 마구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너무도 냉소적인 것은 아닌가 싶은 정도로 그 날카로움에 혀가 잘린 듯하다.

 

사건 다음에 문장이 생긱는 것이 아니라

문장 다음에 사건이 생긴다. 어떤 문장은 매우 예지적이다.

어떤 문장은 매우 불길하다. 그리고 어떤 문장은

자신의 말에 일말의 책임을 진다. 그것은 조금 더 불행해졌다.

- 이보다 명확한 이유를 본 적이 없다. 中



 

..... 촌각을 다투는 윤리의 싸움은 나의 입에서 크게 벌어진다. 누군가가 죽었다면 그건 나의 혀가 잘못 발음됐기 때문이다. 그는 실수로 나의 혀를 잘못 놀렸다.

 

한 사람의 부정확한 발음이 홍수로 시달리는 시내를 마비시켰다. 너무 많은 비와 한 사람의 시체가 떠내려간다. 폭동의 일부가 되기 위해 나는 여기 왔다.

 

모든발음과 증오가 소음 속에서 증발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입을 다물 수도 있다. 뚝 하는 순간 사람들은 입을 다문다. 아니 죽을 수도 있다. .....

- 입에 담긴 사람들 中



 

분명, 감성을 자극하는 따끈따근하고 보드라운 시를 원했다. 그야말로 가을이지 않은가! 그런데 <소설을 쓰자>는 정말 '시'로서 하나의 이야기, 너무도 차가워 가까이 하기 싫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말'에 대한 것이다. 별 생각없이 하는 말들 속에서 얼마나 우리는 잔인해 질 수 있는가! 빈틈없이 지적하고, 반성하게 한다.

분명, 나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반하였다. 하지만 '시'는 그 어떤 긴 말들보다도 간단하게 오늘의 우리를 이야기하고,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부끄럽게 하고 있었다. <소설을 쓰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을 갖도록 살짝이 구슬리고 있다. 이 가을 아주 독특한 시를 만나고자 한다면, <소설을 쓰자>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단, 단단한 마음 하나는 준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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