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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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실'이란 단어가 주는 가슴 쓰린 기억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걸맞는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상실? 상속? 어떤 상관관계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말하는 상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상실이 상속되는 것일까? 끊임없이 질문을 하였다. 인도의 이야기다. 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 그의 이력이 심상치가 않다. 물론 내게는 낯설기만 한 작가지만 말이다. 인도를 접한 것은 지난 해 읽은 '신도 버린 사람들(나렌드라 자다브)'가 가장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W를 통해서도 인도의 아동담보노동를 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리하면, 내 머릿속 인도내 사회문제라는 것은 계급간 문제, 그리고 가난일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책을 접근하였다.


이 책은 히말라야 북동부 고원 '칼림퐁(뭐~ 살짝 찾아보니, 히말라야 여행시 주요도시 중에 하나인가보다)'이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이'라는 열여섯살의 소녀와 '판사' 그리고 '요리사' '초오유'라는 낡아 허물어질 것 같은 저택에 살고 있다. 그리고 총기 약탈 사건이 일어난다.

첫번째, 부패한 경찰들과 GNLF-고르카 행방 운동-로 인한 칼림퐁의 혼란한 상황 속 '사이'와 사이의 수학 가정 교사이자 애인 '지안' 그리고 여러 주변인들의 이야기-롤라, 노니, 센 부인, 보티신부와 포티아저씨-가 있다.

또 하나, 판사의 이름, '제무바이'의 과거 이야기다. 인도의 식민지 시대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지식인 판사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영국유학에서 겪게되는 인종차별적 경험과 아내 '지미'에 대한 권위적인 모습으로 판사가 아닌 '제무바이'라는 구체적인 또다른 인물이 살아온 30년대 식민지 인도의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은 현재(80년대), 미국에서 불법 이주 노동자로 살아가는 요리사의 아들 '비주'의 이야기다.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그가 겪어야 하는 불안한 생활들을 여과없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총 3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사이(와 지안), 제무바이, 비주 3사람을 통해 식민지 시대와 80년대의 인도인의 모습을 통해 인도의 사회문제와 세계화, 이민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암담한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순진무구한 어처구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뭔지 모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바보'라는 말이 책 속에서 상대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로 통하지만 이들의 순진함이 들려주는 바보같은 이야기는 단순하지가 않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침을 삼키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지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 반전들, 여러인물들과 사이와 지안의 사랑, 그리고 분열 등 신분, 빈부, 계급, 민족(?)간 갈등 속 인간의 욕망, 어리석음과  인간의 또다른 추악하고 비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도, 인도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일제식민지 시대, 그리고 독재와 민주화의 70, 80년대의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며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의 모습이다. 이책이 갖는 중요한 가치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정, 불법이주노동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지금도 여러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인도의 사회문제가 아닌 우리의 사회문제일 것이다.

 

상실의 상속! 30년대, 80년대를 통해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또다른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판사, 사이, 비주가 갖는 한계 역시 지금 우리들의 한계인가? 그럼에도 나에게 이책의  가장 기억나면서도, 가슴 훈훈한 이야기는 요리사와 비주의 통화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부자간의 사랑의 대화, 그리고 부자가 서로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 이 책의 어둡고 불안한 모습들과 골머리 썩히게 하는 여러 문제들을 말끔히 씻어 날려버렸다.

 

참고로 '바리데기(황석영)'와 왠지 닮은듯 다른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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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기욤 뮈소 지음, 김남주 옮김 / 밝은세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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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기욤 뮈소의 소설이다. 기욤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지난 10월 '구해줘'를 통해서다. 그리고 최근에 그의 신간이 나오면서 기대감은 이내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를 내 손에 쥐게 만들었고, 결국 빠져들게되었다. 솔직히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처럼, 어떤 면에서는 기욤의 소설도 그렇다. '뭐야? 이거 똑같잖아'하면서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단순에 읽어버린다. 그리고 욕하는 드라마와 다른 뿌듯한 감정이 나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결국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욤의 놀아운 상상력에 감탄할 뿐이다. 그리고 그의 탁월한 글솜씨에 빠지면서 다음 글들을 기대한게 된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제목에서 나는 사랑의 달콤함과 부드러움 등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기존의 그의 소설에서 보았던 사랑, 죽음, 정해진 운명, 그것을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필사적인 몸부림 정도를 쉽게 예상하기엔 나는 너무도 단순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표지를 보니, 표지 뒤에 감추워진 소설 속 내용이 엿보인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야기, 프롤로그1과 2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너무도 넘쳐난다.
프롤로그1, 지금 하거나 영원히 하지 않거나. 이 말은 글을 읽는 내내 여러번 반복되었다. 선택의 순간, 우리가 망설이는 순간순간들, 그 속에 스물세살의 주인공 에단이 있다. 그의 생일, 약혼녀 마리사와 가장 친한 친구 지미 뒤에서 그는 그의 미래와 현실 속 모습을 그려본다. 그리고 사라져버린다. 어떤 말도 없이 혼잡한 사람들 속으로 에단은 사라진다. -> 몇장을 읽었다고, 나는 강한 충격에 휩싸였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과연 사랑을 찾아 돌아오는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뒤이은 혼란.
10년 후 셀린과의 이별에 대한 프롤로그2. 사실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강한 충격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에게 또다른 여인 셀린의 등장과 막연한 불안감에 이별을 하는 에단, 에단의 이별 방식은 극단적이었다. 사랑하는 연인, 친구, 가족과의 이별이 연기처럼 한순간에 사라짐과 같다면, 아무런 준비도 예고도 없는 것이라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아내야 할까? (물론 생각해보면 그런 이별은 '빈번하겠구나' 한다.)
그리고 성공한 정신과의사 에단, 명성과 돈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된 에단의 하루 2007년 10월 31일 토요일이 시작되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름 모를 여인, 그리고 자동차 파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에단, 그를 감싸는 불길함을 나역시 느끼면 서서히 책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방송 출연, 제시라는 소녀의 자살, 셀린의 청첩장, 그리고 택시 기사 등등의 새로운 인물들이 던지는 사건사고들~ 그 속에 하나의 연결고리를 찾아 헤매는 에단와 나!
그리고 2부와 3부의 반복되는 10월 31일 토요일의 하루,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 그렇다. 기욤의 소설은 많이 본 듯, 뻔한 이야기인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나에게는 늘 그랬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면 빠른 전개를 보여준다. 그리고 뻔한 이야기라는 단정 속, 생생함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나를 이끈다. 소제의 익숙함으로 인해 나의 머리 속의 생생함이 기욤의 가장 큰 장점일지 모른다. 물론 언젠가 보았던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다보면, 그의 독창성을 의심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덮은 후, 난 나의 상상력의 부재를 여실히 느낄 뿐이다.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 회상,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퍼즐 게임을 하는 듯한 구성은 나에겐 너무도 즐거운 오락거리 그 이상이었다. 에단의 선택과 행동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긴장과 궁금증은 증폭되기만 할 뿐이었다. 어떻게든 에단이 이 위기를 극복하기 바라며, 운명이란 것에 맞서 승리하길 바라며, 그리고  모든 것이 잘 풀렸으면 하는 행복한 결말에 대한 바람 등으로 초조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죽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 그리고 이별과 사랑, 그리고 용기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삶에 있어 가족, 친구들에 대한 나의 그릇된 생각들도 반성해본다. 결국 삶에 있어 사랑의 여러 형태를 보여주고 그 힘을 믿게 만들어 주는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한마디로, 한 번 빠지면 모든 것을 잊고 책 속에 몰두하게 되는 강한 흡인력이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그리고 기욤 뮈소의 소설 속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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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적들 1 -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특별한 이야기
이타 핼버스탬, 주디스 레벤탈 지음, 김명렬 옮김 / 바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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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적들 -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특별한 이야기'라는 부제에 마음이 끌렸다. 언제나 가족의 이야기는 남다름으로 다가와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따스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 계절 충분히 읽고 싶은 책 중에 하나였다.
깊은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책을 펼쳐보았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기적! 기대감은 있었으나 작은 기대였다.(작은 기적이라 하지 않는가?)

'형제의 우정'- 첫 번째 기적이야기-을 읽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온 몸에 소름이 확 끼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단 몇 장을 읽었을 뿐인데, 작은 기적들, 제목이 모든 것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았다. 기대감 100% 충만한 채, 온 몸을 감싸는 소름과 그로 인한 추위와 싸워야 할 시간들이었다. 

총 56편의 작은 기적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잃어버렸던 시간(60년의 긴 세월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 악보 한 장(남북전쟁시, 남군이 아버지와 북군이 아버지의 이야기-이 이야기는 우리의 아픈 동족상잔의 비극인 육이오를 생각하기도 하였다), 할아버지의 선행(윤회라고 해야할까? 선행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이야기), 친구가 선물한 일곱 아이(한 친구는 일곱번의 유산을 또다른 친구는 일곱번의 임신, 출산을 하게 되면서 일어났던 이야기, 가족, 그리고 친구의 소중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해요, 할아버지( 나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밤의 슬픈 기억에 고스란히 되살아나면서도 따스한 추억도 함께) 등이다.

빛을 축복해야 할 때와 어둠을 저주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생은 우리에게 너무도 자주 놀라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상한 반전, 엇갈린 운명, 놀라운 결말, 이러한 일들은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인생에서 일어난다. -행운의 도둑(190쪽)

우리들 주변에서 있을 수도 있는 우연과도 같은 이야기, 아니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영화같은 이야기들이 모여 가족의 소중함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기적과도 같은 이 이야기들이 우연이었는지, 운명이었는지,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내 심장이 움직이며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가족 간, 때론 설명하기 힘들고 또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끈끈한 그 무엇'을 온몸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것으로 이 책이 참으로 고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가족들, 할머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부모님, 동생, 사촌동생들 앞으로 태어날 조카까지 모두 그립고 소중하기에 나는 더욱 열심히 살고 더많이 사랑할 것이다.

 가족 더나아가 친구, 그리고 이웃한 사람들 모두에 대한 따스한 사랑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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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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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 하지만 나는 '누구?'하고 묻게된다. 그리고 쏟아지는 그의 책 중에서 나는 가장 먼저 '조서'를 선택하였다. 63년에 쓰여진 그의 첫소설! 노벨문학상 수상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미 세계문학전집54(민음사)에 배열되어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다는 사실, 그러나 나에게 한없이 낯설기만 한 작가이다.(물론 이제는 아니다!)

조서(調書-1. 조사한 사실을 적은 문서, 2.소송 절차의 경과 및 내용을 공증하기 위하여 법원 또는 그 밖의 기관이 작성하는 문서)라는 제목에서 무언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책이 생각했던 것보다 두꺼웠다. 그리고 차례를 보았다. 없다. 그런데 알파벳 순서가 눈에 들어온다. A,B,C, 나 Z까지 있을 줄 았았다. 그런데 조서R로 끝나는 것이 뭔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읽기 시작! 허걱허걱 숨이 막힌다. 아니 적잖은 충격 때문일까? 서너장을 읽다가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몇번 반복해야만 했다.
 

휴양지(?) 해변가의 외딴 빈집에 은둔하며, 죽음을 가장하여 그 누구와도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는 살아가는 주인공 아담 폴로, 그의 일상은 해변가를 어슬렁거리고,  담배를 피우고, 어느 개의 뒤를 쫓기도 하고, 가끔 시내에 가서 먹거리와 신문을 구해보는 것이 다라 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날 부랑죄, 주거침입, 강간 등으로 고소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실어증에 걸리면서 이야기를 맺는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조서G와 F의 이야기- 뒤쫓아 시내에 가는 상황(흔히, 사람이 개를 끌고 시내가는 것이 상식일 텐데)과 흰쥐와의 결투(?) 상황-가 기억에 남아있다.


아담의 이상 행동과 더불어 주변의 죽음, 강간, 폭행 등으로 더욱 우울하고 음산한 분위기는 '묻지마 범죄'와 같은 오늘날의 현대인의 잔혹성을 드러내면서도 순간의 들끓는 관심 속에서 이내 무관심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짤막하게나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무것도 소유하려 들지 않고 자연인처럼 사는 아담이 끊임없이 신문을 보려하고 결국에는 그 역시 신문의 한면을 장식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코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 부분을 읽어야만 아담이 29세의 학위가 두세개는 있고 부모 또한 있다는 정도의 신원이 밝혀지는 구도를 통해서 나는 아담의 몇안되는 정보에 얼마나 안심하게 되던지, 나를 뒤돌아보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름, 나이, 학교 기타 몇개의 신상명세를 파악하고서는 그 사람의 전부인냥 미리 앞서 판단하고 편견을 갖게 되는 나, 반성한다.)
 

너무도 단편적인 생각들의 서술이다. 시간의 흐름이 아닌 끊어진 공간의 연속만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술집에 들어서면서 술집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한 쪽 벽에 걸린 그림만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끊어져 버린다.  하지만 나는 더욱 집중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아 어렵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하는 의문 투성이 속에서도 계속해서 한장한장 넘길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두서없이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은 서술은 우리의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였을까? 읽으면서도 바로 앞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나의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역시 현대인의 소외, 의사 소통의 단절을 표현하고자 함이었을까? 또한 철저하게 객관적인 서술 방식은 나로 하여금 아담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도록 하였다. 마치 내가 정신과의사나 상담치료사가 된듯한 착각에 빠져 열심히 아담의 이야기에 몰두하게 만드는 당위성 또한 작가의 의도였을까?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데 지극히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 단순하면서 또한 읽는 순간 이미지가 떠오르는 책만 골라 읽은 탓인지 오랜만에  천천히, 그리고 한글자 한글자 가슴에 꾹꾹 눌러담으면서 집중해서 책을 읽은 감회가 새롭고 보람된다. 이 역시 이 책의 힘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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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월요일 - 참을 수 없는 속마음으로 가득한 본심 작렬 워킹 걸 스토리
시바타 요시키 지음, 박수현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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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존에 나와있는 워킹걸에 대한 책을 읽지 않은 상태다. 명품, 스타일, 패션 등 관심 밖의 세계라 여기며 살고 있기에 호기심 따위는 별로. 그러다가 '참을 수 없는 월요일' 제목부터 뭔가 투덜투덜 이야기할 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랐다. (솔직히 투덜투덜 이야기 하는 소설 좋아라 한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같이 뭔가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 투덜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낄낄 거린다.)

낙하산으로 입사하여 출판사 경리로 일하는 주인공 '네네'는 그다지 이쁘지 않다. 스스로 못생겼다 한다.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다며, N게이지용 모형을 만드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다. 회사를 중심으로 해서 그녀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데 첫머리를 읽으면서부터 곧장 나를 발견하게 된다. 너무도 솔직담백하기에 더욱 아찔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참을 수 없는 월요일/ 모두에게 비밀인 화요일/ 눈물 나게 외로운 수요일/ 달콤 쌉쌀한 목요일/ 그래도 기쁜 금요일/ 목숨 겁니다. 주말입니다./ 또다시, 참을 수 없는 월요일 의 차례로 소소한 일상속에서 자그마한 사건들이 네네에게 일어난다.

  직장동료(코바야시)와의 정산영수증으로 인한 마찰과 복수사건, 상사의 불륜 현장을 목격, 평소와는 다르게 20만원의 거금으로 트리트먼트를 하고, 레이스 속옷을 지르고, 그리고 도난 사건, 같은 회사 편집장의 자살과 그 딸의 오해로 알게 되는 진실(이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너무도 단순하게 속았다는 사실에 부끄럽기까지 하다.), 회사 내에서의 이지메(왕따), 그리고 분개하고 받은 스트레스는 케이크 따위로 풀기도 한다. 또한 직장동료와의 화해와 친밀도 급상승, 절친한 동료 '야야'의 퇴사 그리고 묻지마 살인의 희생자(요즘의 고시원방화사건의 시사성까지 포함하면서)가 되고 사랑의 큐피터가 되기도 하는 등 나와 다를 것이 없는 네네와 야야의 이야기는 진정성을 가지면서 훈훈한 그 무엇을 남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거라며 회사에서 죽은 사람처럼 산다.'는 네네의 표현에서 나역시 즐거움을 배제한 회사 생활의 고달픔만을 생각하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무언가 나만의 방식으로 좀더 즐거움을 찾아내야 하는데 네네는 그것을 찾아낸다. 회사 건물을 모형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계획한 것이다. 그녀는 좀비가 아닌 살아 숨쉬는 워킹걸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 극적인 어떤 큰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단편적인 사건 전개식이 일본소설 아니던가!). 더한 것은 특별한 연애사건 조차 없다는 것이다. 소설 속 '사랑-연애'의 환상은 배제되면서 - 솔직히 야야의 로맨스를 자꾸 기대하게 하더니 살짝 사카우에와의 열린 결말 정도- 자투리 같은 '코바야시'와의 남다름이 다이다.

극적인 사건이 없이 단편적이고 일상적인 사건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전개가 지루함을 말하지 않는다. 기존의 편견으로 인한 소설 속 작은 반전들이 한 가득이기 때문이다.
또한 네네의 일상이 나와 하등 다른 바 없기에 책을 읽을수록 더욱 강한 흡입력으로 빠져들게 된다. 나는 천천히 읽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잔잔한 물결은 금세 큰 파도가 되버리고 나를 좌초시켜버린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정말 나도 '다행이다'라는 말에 뻐저리게 동감하면서 작음 감동까지 선사해 주는 고마운 소설이다.  
네네는 곧 나였음에 꼭 내 일기장 같은 이 소설을 그 누군가에게 선뜻 내밀지는 못하겠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며 자기의 회사 생활을 뒤돌아보며 또한 희망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아쉬움 점 하나를 뽑자면, 너무도 일상적인 우리들의 회화식 표현- 이것은 너무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만-과 일본어가 그대로 혼재되어 글을 읽는데 방해되기도 하였다. 일본소설이기에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번역소설의 한계겠지만,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뭐~ 나의 무식함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 사람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만큼 결과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같은 결과를 얻었을 때보다 훨씬 더 실망해. 불합리하다.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32쪽)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슬쩍 상대박에게 보여줄 수 있는 순간. 입고 있던 갑옷을 벗고 후~ 하고 속내를 드러낼 기회."(255쪽)

"...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내 눈앞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게 되니 인생은 항상 변화한다는 진실에 직면해버렸다. 좋든 싫든 모든 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변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남아 있는 건 없다. ... 앞으로 인생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환경이 변하지 않더라도 내 자신이 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 사람은 변한다. 그건 살고 있는 환경이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나는 바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변하지 않겠다고 노력해본들 역시 변한다. 변하지 않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에 빠져 가라앉아 버린다. ..."(286,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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