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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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 하지만 나는 '누구?'하고 묻게된다. 그리고 쏟아지는 그의 책 중에서 나는 가장 먼저 '조서'를 선택하였다. 63년에 쓰여진 그의 첫소설! 노벨문학상 수상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미 세계문학전집54(민음사)에 배열되어 있을 정도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다는 사실, 그러나 나에게 한없이 낯설기만 한 작가이다.(물론 이제는 아니다!)

조서(調書-1. 조사한 사실을 적은 문서, 2.소송 절차의 경과 및 내용을 공증하기 위하여 법원 또는 그 밖의 기관이 작성하는 문서)라는 제목에서 무언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책이 생각했던 것보다 두꺼웠다. 그리고 차례를 보았다. 없다. 그런데 알파벳 순서가 눈에 들어온다. A,B,C, 나 Z까지 있을 줄 았았다. 그런데 조서R로 끝나는 것이 뭔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읽기 시작! 허걱허걱 숨이 막힌다. 아니 적잖은 충격 때문일까? 서너장을 읽다가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몇번 반복해야만 했다.
 

휴양지(?) 해변가의 외딴 빈집에 은둔하며, 죽음을 가장하여 그 누구와도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는 살아가는 주인공 아담 폴로, 그의 일상은 해변가를 어슬렁거리고,  담배를 피우고, 어느 개의 뒤를 쫓기도 하고, 가끔 시내에 가서 먹거리와 신문을 구해보는 것이 다라 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날 부랑죄, 주거침입, 강간 등으로 고소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실어증에 걸리면서 이야기를 맺는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조서G와 F의 이야기- 뒤쫓아 시내에 가는 상황(흔히, 사람이 개를 끌고 시내가는 것이 상식일 텐데)과 흰쥐와의 결투(?) 상황-가 기억에 남아있다.


아담의 이상 행동과 더불어 주변의 죽음, 강간, 폭행 등으로 더욱 우울하고 음산한 분위기는 '묻지마 범죄'와 같은 오늘날의 현대인의 잔혹성을 드러내면서도 순간의 들끓는 관심 속에서 이내 무관심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짤막하게나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무것도 소유하려 들지 않고 자연인처럼 사는 아담이 끊임없이 신문을 보려하고 결국에는 그 역시 신문의 한면을 장식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코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 부분을 읽어야만 아담이 29세의 학위가 두세개는 있고 부모 또한 있다는 정도의 신원이 밝혀지는 구도를 통해서 나는 아담의 몇안되는 정보에 얼마나 안심하게 되던지, 나를 뒤돌아보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름, 나이, 학교 기타 몇개의 신상명세를 파악하고서는 그 사람의 전부인냥 미리 앞서 판단하고 편견을 갖게 되는 나, 반성한다.)
 

너무도 단편적인 생각들의 서술이다. 시간의 흐름이 아닌 끊어진 공간의 연속만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술집에 들어서면서 술집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한 쪽 벽에 걸린 그림만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듯이 그렇게 끊어져 버린다.  하지만 나는 더욱 집중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아 어렵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하는 의문 투성이 속에서도 계속해서 한장한장 넘길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두서없이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은 서술은 우리의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였을까? 읽으면서도 바로 앞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나의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역시 현대인의 소외, 의사 소통의 단절을 표현하고자 함이었을까? 또한 철저하게 객관적인 서술 방식은 나로 하여금 아담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도록 하였다. 마치 내가 정신과의사나 상담치료사가 된듯한 착각에 빠져 열심히 아담의 이야기에 몰두하게 만드는 당위성 또한 작가의 의도였을까?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데 지극히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 단순하면서 또한 읽는 순간 이미지가 떠오르는 책만 골라 읽은 탓인지 오랜만에  천천히, 그리고 한글자 한글자 가슴에 꾹꾹 눌러담으면서 집중해서 책을 읽은 감회가 새롭고 보람된다. 이 역시 이 책의 힘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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