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상실'이란 단어가 주는 가슴 쓰린 기억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걸맞는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상실? 상속? 어떤 상관관계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말하는 상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상실이 상속되는 것일까? 끊임없이 질문을 하였다. 인도의 이야기다. 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 그의 이력이 심상치가 않다. 물론 내게는 낯설기만 한 작가지만 말이다. 인도를 접한 것은 지난 해 읽은 '신도 버린 사람들(나렌드라 자다브)'가 가장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W를 통해서도 인도의 아동담보노동를 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리하면, 내 머릿속 인도내 사회문제라는 것은 계급간 문제, 그리고 가난일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고 책을 접근하였다.


이 책은 히말라야 북동부 고원 '칼림퐁(뭐~ 살짝 찾아보니, 히말라야 여행시 주요도시 중에 하나인가보다)'이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이'라는 열여섯살의 소녀와 '판사' 그리고 '요리사' '초오유'라는 낡아 허물어질 것 같은 저택에 살고 있다. 그리고 총기 약탈 사건이 일어난다.

첫번째, 부패한 경찰들과 GNLF-고르카 행방 운동-로 인한 칼림퐁의 혼란한 상황 속 '사이'와 사이의 수학 가정 교사이자 애인 '지안' 그리고 여러 주변인들의 이야기-롤라, 노니, 센 부인, 보티신부와 포티아저씨-가 있다.

또 하나, 판사의 이름, '제무바이'의 과거 이야기다. 인도의 식민지 시대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지식인 판사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영국유학에서 겪게되는 인종차별적 경험과 아내 '지미'에 대한 권위적인 모습으로 판사가 아닌 '제무바이'라는 구체적인 또다른 인물이 살아온 30년대 식민지 인도의 이야기가 있다.

마지막은 현재(80년대), 미국에서 불법 이주 노동자로 살아가는 요리사의 아들 '비주'의 이야기다.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그가 겪어야 하는 불안한 생활들을 여과없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총 3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사이(와 지안), 제무바이, 비주 3사람을 통해 식민지 시대와 80년대의 인도인의 모습을 통해 인도의 사회문제와 세계화, 이민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암담한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순진무구한 어처구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뭔지 모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바보'라는 말이 책 속에서 상대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로 통하지만 이들의 순진함이 들려주는 바보같은 이야기는 단순하지가 않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침을 삼키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지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리고 이야기 속 반전들, 여러인물들과 사이와 지안의 사랑, 그리고 분열 등 신분, 빈부, 계급, 민족(?)간 갈등 속 인간의 욕망, 어리석음과  인간의 또다른 추악하고 비열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도, 인도인의 이야기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일제식민지 시대, 그리고 독재와 민주화의 70, 80년대의 우리의 모습을 비교하며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의 모습이다. 이책이 갖는 중요한 가치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가정, 불법이주노동자,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지금도 여러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인도의 사회문제가 아닌 우리의 사회문제일 것이다.

 

상실의 상속! 30년대, 80년대를 통해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또다른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판사, 사이, 비주가 갖는 한계 역시 지금 우리들의 한계인가? 그럼에도 나에게 이책의  가장 기억나면서도, 가슴 훈훈한 이야기는 요리사와 비주의 통화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부자간의 사랑의 대화, 그리고 부자가 서로 달려가는 모습을 통해 이 책의 어둡고 불안한 모습들과 골머리 썩히게 하는 여러 문제들을 말끔히 씻어 날려버렸다.

 

참고로 '바리데기(황석영)'와 왠지 닮은듯 다른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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