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속을 걷다
Gloomy Sunday 그리고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의 한 레스토랑의 주인,일로나의 연인인 자보가 주방에서 케잌과 샴페인을 들고 걸어나온다.
"천사들은 늙지는 않지만 생일은 항상 돌아오지.그래야 샴페인 맛보니까.생일 축하해 나의 천사."
선물을 풀어보며 기뻐하는 일로나,그리고 여기저기에서 건배를 건네는 소리.일로나를 위해...
그리고 일로나를 사랑하는 또 한명의 남자.가난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제가 드릴거라고는 음악밖에 없어요.아직 다 끝냈지 못했지만 당신을 위한 거예요."
그리고 레스토랑가득 글루미 썬데이의 피아노소리가 울려퍼진다.
글루미썬데이는 이렇게 세상에 처음 들려졌다.
이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 헝가리 부다페스트
아름다운 여인인 일로나와 그녀를 사랑하는 자보와 안드라스 그리고 그녀를 가지고 싶어했던 또다른 남자한스의 이야기다.
레스토랑의 주인인 자보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치는 안드라스와 자신의 연인인 일로나가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되자 화를 내거나 결투를 신청하는 대신 일로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널 다 잃느니 너의 반이라도 갖겠어."
일로나를 반씩 나눠 갖은 두 남자.그리고 한여자.
그들은 그렇게 이상스럽지만 이상하게도 아름다운 사랑을 해나간다.
그리고 안드라스가 일로나에게 생일 선물로 바친 바로 그 노래는 온 헝가리 온 유럽으로 퍼져나가 엄청나게 유명해진다.
레스토랑은 언제나 많은 손님들로 북적이고 세사람은 잠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지만 불행한 일들은 갑작스럽게 감당할수 없는 크기로 세사람에게 다가온다.
첫번째 불행은 글루미 썬데이 신드롬.
아름답지만 너무도 우울한 글루미 썬데이.
그래서일까.이곡이 발표된지 8주만에 모두 183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노래를 듣는 도중 목숨을 끊었다.
헝가리에서 유럽에서 이제는 글루미 썬데이를 저주받은 노래 악마의 노래라고 수군대기 시작한다.
안드라스는 도나우강위에서 자신의 악보를 날리며 절망한다.
"사람을 죽이는 음악따위나 쓰는 나.다시는 작곡을 하지 않겠어."
하지만 불행은 점점 그 후로도 커진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2차대전.
자보는 유태인이었으며 한스는 독일인.
2차대전 독일인과 유태인 그리고 글루미 썬데이.
처음부터 행복해지기 어려웠던 이 영화는 어쩔수 없이 비극이 된다.
한때 자보에 의해 목숨을 건진적이 있던 한스.그는 어느날 대령이 되어 부다페스트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그는 자보의 친구가 아니였고 그저 유태인 학살에 혈안이 된 독일인 군인.
목숨의 은인이었던 자보를 한스는 이젠 노골적으로 경멸한다.
"이봐 유태인 돼지 양반,어디 멍청한 유태인 농담이나 한번 해보지 그래."
자보의 얼굴에는 절망같은 표정,하지만 한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아노앞에 앉아 있던 안드레아스에게도 명령한다."야 ,넌 노래를 연주해.그노래.야 안들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만든 노래를 그런 상황에서 연주하고 싶을리 없다.
피아노 앞에서 꼼짝도 안한채 한스를 노려보는 안드레아스.
식당의 분위기는 갑자기 차갑게 얼어 붙는다.
독일인이 유태인에게 총을 쏘는 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던 그 시기.
그 위험을 상황을 이기기 위해 일로나가 피아노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일로나의 육성으로 듣는 글루미 썬데이...뒤늦게 안드레아스가 피아노반주를 넣고 그렇게 글루미썬데이는 울려 퍼진다.
그제야 풀어지는 긴장.그렇게 노래는 끝나고 이제야 이렇게 다 무마되는가 했던 순간.
일로나가 숨을 몰아쉬는 사이 안드레아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액자구성인 이영화는 그 처음과 끝부분에서 일로나가 안드라스를 죽인 한스에게 복수를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덜 아픈게 만드는 글루미썬데이는 해피 엔디 무비로도 분류될수 있을지도 모른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그렇게 불리운다.
다뉴브의 진주.동유럽의 장미.그렇게 아름다운 수식어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도시.
그러나 배낭을 짊어진채 부다페스트 중앙역에 도착하게 되면 처음에는 좀 놀랄수도 있다.
아주 아주 오래된 건물.안내표시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지하철로 가는 통로는 벌써 몇해째 공사중.
그리고 경찰차인지 구급차인지 하루에도 몇번씩 울려대는 싸이렌 소리는 전유럽에서 시끄럽기로 일등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불만을 숙소에 가방에 내려놓고 가벼운 가방으로 숙소밖으로 걷다보면 점점 부다페의
공기에 익숙해진다.여름에도 밤이면 쌀쌀한 공기.여름이 아닌 계절에는 더 쌀쌀하거나 아주 추운 날씨.
부다페스트의 사람들은 마치 유니폼처럼 청자켓이나 가죽점퍼를 많이들 입고 다닌다.그리고 손에는 비닐 봉지같은 것들을 들고 다니는데 그 안에는 감자,파프리카,양파 그런 것들이 많이 들어있다.
부다페스트를 찾는 사람들이 꼭빼먹지 않는 두곳을 말한다면
하나는 영화 글루미썬데이에 모델이 되었다는 어느 레스토랑 그리고 영화에 등장했던 거리.
그거리는 엘리자베스 광장에서 영웅광장에 이르는 거리인데 부다페스트의 샹젤리제 거리라고도 한다.
그리고 다른 한곳은 당연히 도나우 강가이다.
부다페스트이 도나우강가에 가면 세번을 놀라게 되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이다.이런 곳이니까 글루미썬데이같은 곳이 나왔구나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두번째 놀라게 되는 것은 그곳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이 너무도 한정적이라는 사실이다.
도나우강가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로부터 노천카페의 대악단,특급호텔의 테라스,미국식 페스트푸드 점에서 음악들이 쉴새 없이 흐르고 있는데 그 음악들이 웬만하면 정말 웬만하면 이 세곡중 한곡이다.글루미 썬데이,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그리고 헝가리 무곡.
그리고 세번째 놀라는 것은 밤에 도나우 강가는 낮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멀리 보이는 궁전,아름다운 궁전,그리고 다리들.
그런데 그 야경속에 마치 불순물처럼 끼어 있는 것이 있다.
호객행위를 하는 젊은 아가씨들과 쿵짝쿵짝 요란한 음악을 틀어대는 반짝이 조명의 유람선과 담배연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품어대는 그러기에는 너무나 어린 그곳의 아이들.
좀처럼 변하지 않는 모습의 도시가 있는가 하면 작년과 올해가 너무도 다른 빠르게 변하는 도시가 있다.
부다페스트는 지금 빠르게 변하고 있는거 같다.그래서 기대되고 걱정이다.
더 아름답게 변해야 할텐데..더 헝가리답게..더 부다페스트답게..더 슬프고 아름답게 변해야 할텐데...
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 <필름속을 걷다>에서